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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민민연합전선체 건설방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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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ohkilnam 작성일00-12-27 00:00 조회2,6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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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민진영세력들의 단결단합없이는 한국의 자주적 민주정부도 그리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도 이룩하기 힘들 것이다. 미국의 반세기 지배정책의 종말도 오로지 한국내외의 애국동포들이 광범위한 연합전선조직체를 묶어 세울 때만이 가능하다는 역사적 교훈들을 민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이나 일선 간부일꾼들은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물움에 대한 진지한 입장과 자세가 올바로 정립될 때에만 자주민주통일의 역사는 현실로 다가올것이라는 명제를 던저본다. 이에대한 문제에에 대한 전문가의 옥고를 신년특집으로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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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민운동단체들간의 연대연합과
대규모 연합전선조직체 건설문제


*한 백연(운동조직론 연구가)


한국민민운동에서의 가장 중요한 부족 점의 하나가 운동단체들간의 연대, 연합노력이 적극적이지 못하고 일상운동에서 행동통일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상 민민운동단체들간의 연대, 연합과 행동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전체 민민운동의 운명에 관한 중차대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일부 민민운동단체 간부들은 모종의 패권의식에 사로잡혀 연대, 연합을 고의로 외면하거나 이에 응당한 관심을 돌리지 않고 각개 약진하면서 좌절과 시련을 거듭 불러오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민민운동의 이 같은 중요한 결점을 극복하는데 일조 하려는 순수한 생각에서 필자는 그 동안 우리 민민운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을 토대로 민민운동단체들간의 연대, 연합과 대규모 연합전선조직체건설문제에 관한 소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1. 민민운동단체들간의 연대, 연합을 실현하는 것은
한국변혁운동의 성공을 위한 중대전제



민민운동단체들간의 연대, 연합을 실현하는 것은 한국변혁운동의 발전과 그 승리를 위한 필수여건이다.변혁운동은 궁극에는 변혁운동세력과 반변혁세력간의 역량대결로 귀착된다. 반변혁세력에 대한 변혁세력의 역량상 우세가 확고히 보장될 때 변혁운동은 성공을 이룩하게 된다. 이것은 장구한 인류 변혁운동사적 실천경험에 의해 확증된 절대불변의 진리이다.

일반적으로 변혁운동이 출발 및 발전기에는 변혁세력과 반변혁세력간의 역학관계에서 변혁세력측이 열세에 놓이고 불리하다. 각 나라의 사회 역사적인 여건에 따라서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거의 예외 없이 군대와 경찰, 검찰 등 방대한 상설적인 폭압적통치기구에 의거하고 있는 반변혁세력이 역량 상에서 변혁세력을 압도하게 된다. 이로부터 변혁운동을 준비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시기에 있어서 변혁운동가들의 최대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이 같은 역량상의 열세국면에서 벗어나 반변혁세력을 압도할 수 있는 위력한 변혁역량을 결속하겠는가 하는데 돌려 지게 된다.

변혁세력과 그에 저항하는 반변혁세력간의 역학관계에서의 우열을 결정하는 관건적인 고리는 사회중간세력이다. 다시 말해 사회중간세력이 어느 편으로 기울어지는가, 그 역량을 어느 쪽이 전취하는가에 따라서 변혁세력과 반변혁세력간의 역학관계에서의 우열이 결정되는 것이다.

사회중간세력은 구성상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중소상공인, 자유직업인 등과 같은 사회 계급, 계층으로서의 중간세력 즉 중산계층이다. 소자산계급에 속하는 이들은 계급적 제한성으로 인해 변혁에 대한 입장이 확고하지 못하며 변혁세력과 반변혁세력간에서 부단히 동요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중간세력이다. 이들 중에는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 같은 기본 계급, 계층도 있을 수 있고 중소상공인, 자유직업인과 같은 도시 소부르주아지들도 있게 되며 민족부르주아지들도 있다. 서로 다른 사회 계급적 처지에 있는 이들은 정치적으로 각성되지 못한 탓으로 다같이 확고한 정치적 입지를 정하지 못하고 변혁세력과 반변혁세력 사이에서 대체로 역량상 우세한 측에 편승하는 경향성을 가진다.

연대, 연합을 실현하는 것은 바로 이 사회중간세력을 조직된 역량으로 만들어 변혁세력의 편에 확고히 전취할 수 있게 하는 위력한 방도로 되며 더 나아가서 그것은 반변혁세력에 대한 변혁세력의 역량상 우세를 보장할 수 있게 한다.

80년 광주민중항쟁은 이를 반증하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청년학생들이 항쟁군중의 주력을 이루고 있었던 초시기만 해도 역량관계는 반변혁세력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대부분 사회중간세력으로 이루어 진 시민세력이 항쟁에 대거 합세하면서부터 역량관계는 항쟁군중측에 유리하게 역전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대규모 군 무력이 투입되기 전까지 지속됐다.

다시 말하면 광주시의 지역적 범위에서는 역량상 변혁세력이 반변혁세력을 확고히 압도했고 그로 인해 항쟁군중이 광주시를 10일 동안이나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연대, 연합을 실현하는 것은 또한 한국민민운동발전의 절박한 요청이다.

최근 10여년동안에 한국의 민민운동역량은 많이 성장했다. 민노총, 전농, 한총련, 민교협 등 계급, 계층별 민민운동단체들이 상당한 정도로 조직된 결과에 이루어 진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체들의 조직규모가 크지 못하기 때문에 민민운동의 총체적인 역량은 아직 미약한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 민민운동단체들중 가장 힘있는 부대의 하나인 민노총의 경우만 해도 아직은 1천 여만 노동자중에서 그 20분의 1에 불과한 60만 내외의 노동자들을 결집하고 있을 뿐이다. 전농이나 한총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전국의 농민대중이나 청년학생대중의 극히 제한된 일부를 결집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한총련의 경우는 대오가 날로 줄어들고 갈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분열이 심각하다.

그러다 보니 민노총 지도부가 총파업을 선언해도 이에 참가하는 노동자수가 10만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한총련이나 전농이 주관하는 대중투쟁의 경우에도 참가자수가 많아야 수천 명이다. 이 같은 소규모 대중투쟁으로써는 투쟁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뿐아니라 기득권세력에게 큰 타격을 줄 수도 없다.

그렇다고 민민운동단체들의 조직규모를 당장 5배, 10배로 늘일 전망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당면해서는 불가능한 것이다.이 같은 상황에서 변혁세력이 반변혁세력과의 역학관계에서 열세에서 벗어 날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민민운동단체들간의 연대, 연합을 공고하게 실현하는 것이다.

물론 크지 않은 몇몇 민민운동단체들간의 연대, 연합을 실현한다고 해서 그 역량이 전체적으로 반변혁세력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연대, 연합을 통해 부분적으로, 일시적으로는 반변혁세력을 압도할 수 있는 역량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6대 총선 시기 울산북구의 경우가 그것을 잘 실증해 주고 있다. 울산북구로 말하면 현대자동차소속 노동자들이 전체 유권자의 근 35%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으로서 전국연합, 민노총 등 민민운동단체들의 군중지반이 강한 지역중의 하나다. 따라서 선거전야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민노당후보의 당선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전국연합산하 울산연합 운동가들이 패권의식에 집착해 현대자동차노조에서 경선으로 선출한 후보를 제치고 민노당 지역지부에서의 재 경선을 통해 지역적 대표성이 없고 당선가능성도 불투명한 자기측 후보를 내 세움으로써 민노당의 유일한 1석희망을 거품으로 만들었다. 4.13총선 당시 울산북구에서 울산연합측이 패권의식을 떨쳐 버리고 민노총과 선거연합을 이룩하고 공동행동을 했다면 이 지역구에서만은 한나라당후보를 제끼고 민노당 후보를 무난히 당선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연대, 연합은 또한 어느한 계급, 어느한 단체의 역량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투쟁과제를 능히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민노총은 국민의 정부 출범초기부터 노동자대중의 생존권을 크게 위협하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주되는 것은 이 투쟁이 농민대중과 청년학생들, 중소상공인 등 다른 계급, 계층의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한데 있다. 이 같은 사태가 지속되는 한 민노총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반대투쟁은 가까운 기간 내에 좋은 결과물을 기대하기 어렵다.

전농의 농축산물시장개방반대투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90년대초 미국의 한국에 대한 시장개방압력이 거세지면서 시작된 이 투쟁이 노동자대중과 청년학생들, 광범한 도시서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다른 계급, 계층, 다른 단체들과의 연대, 연합을 실현하지 않으면 어느한 계급, 계층 또는 어느 한 운동단체가 개체의 힘만으로는 그 어떤 과제도 해결하기 어렵다. 반대로 연대, 연합을 실현한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문민정부 초기에 민노총이 총파업투쟁을 통해 정부의 노동법개악시도를 저지시킨 성과를 거둔 바 있다. 당시 민노총의 총파업투쟁은 농민대중과 청년학생들, 학계, 종교계, 언론계 등 광범한 계급, 계층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노동자대중이 각계층과의 연대투쟁에 힘을 넣음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측면에서 운동가들은 반변혁세력에게서도 배워야 한다. DJ가 지난 15대 총선에서 JP와 연대하지 않았다면 집권을 못했을 것이다. 그처럼 이질적인 두 정치집단이 연대해 정권을 창출하는데 동일의 목적을 위해 나가는 민민운동단체들이 왜 연대, 연합을 못하겠는가.

한편 민민운동단체들간의 연대, 연합을 통해 변혁세력의 역량상 열세를 극복하는데서 산술적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측면이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연대, 연합에 참가하는 모든 민민운동단체들은 다 자기 고유의 대중기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단체들간의 연대, 연합의 실현은 전반적인 민민운동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를 엄청나게 높이는 결과를 이루게 되며 그것은 연대, 연합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것이 강고할수록 더 큰 상승적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1987년 6월 민중항쟁시기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중심으로 한 민주세력의 대단결과 항쟁과정에서의 그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시민세력을 비롯한 광범한 대중의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불러일으킨 사실이 그것을 말해 준다.

민민운동단체들의 연대, 연합을 강화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의 한국사회변혁운동정세의 요청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그것이 전민족적이며 전세계적인 지지 속에서 적극적인 실천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인해 우리 한국민중의 사회변혁투쟁과 조국통일투쟁에는 전례 없는 유리한 정세여건이 조성되었다.

우리 민중의 자주화에 대한 지향과 요구가 더는 "불법"이 아닌 정당하고 적법한 것으로 각인되었고 이에 따라 민중의 자주화운동은 활화산처럼 분출되고 있다.또한 민중의 사상과 정신 및 사회적활동을 극심하게 억제해 왔던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되어 민민운동단체들과 각계 민중이 사회변혁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벌일수 있게 됐다.

전 민중과 전 민족이 조국통일열망으로 충만해 있다.그러나 한편에서는 반변혁세력, 반통일세력들이 현 정세국면을 역전시키기 위한 대반격을 준비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다.남북간의 화해, 교류, 협력관계가 급진전되고 한국민중속에서 반미, 반외세 자주화투쟁이 고양되는데 놀란 미국은 겉으로는 남북화해, 협력관계의 발전과 조국통일을 위한 움직임을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초조감을 감추지 못하며 6.15 공동선언의 급속한 실천에 브레이크를 걸
고 있다.

이미 역사의 장막뒤로 물러났던 수구기득권세력들이 타고난 불운아인 김영삼씨를 부추겨 내세우고 단말마적인 기를 돋우며 "대반격"을 꿈꾸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환경여건에서 민민운동단체들은 신속히 전열을 수습정비하고 올바른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고 그에 따라 사회변혁운동과 조국통일운동을 추진해야 성공을 앞당겨 나갈 수 있다.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전열을 수습정비하는 중요한 내용의 하나가 곧 민민운동단체들간의 연대, 연합을 강화하고 대규모 연합전선조직체를 결성하는 것이다.제반 사실은 한국변혁운동의 현 단계에서 민민운동단체들간의 연대, 연합을 실현하는 것이 매우 절박한 요청임을 실증해 준다.

민민운동단체들간의 연대, 연합을 실현하는 것은 내외 변혁운동의 역사적 경험과 교훈으로부터 제시받는 필연적인 요청이기도 하다.장구한 기간의 내외 변혁운동의 역사는 변혁운동가들에게 수많은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여러 변혁운동세력이 상호 연대, 연합을 이룩함이 없이는 그 어떤 변혁운동도 성공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나라 반일민족운동사가 남긴 귀중한 교훈이다. 반일무장투쟁의 초시기 중국 동북지방 도처에 중국인반일부대(일명 구국군)들과 조선인 민족주의독립군부대들이 할거해 있었다. 이들은 다같이 반일을 제창하면서도 김일성 주석이 이끄는 반일인민유격대에 대해서는 나라도 민족도 모르는 "공비"라며 극도로 적대시했다.

일제의 악선전과 모략책동으로 당시 반일인민유격대는 많은 경우 일제의 앞잡이취급을 당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반일인민유격대에 대한 중국인반일부대들과 독립군부대들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 잡고 그들과의 관계를 개선함이 없이는 반일인민유격대가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었다.

김일성 주석은 반일무장투쟁의 초기부터 각이한 반일무장세력과의 연대, 연합을 실현하는데 큰 힘을 돌렸다. 무지한 중국인 반일부대들이나 반일인민유격대에 대한 극심한 편견을 가진 독립군부대들과의 연대, 연합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과정에는 시련도 많았고 가슴아픈 희생도 많이 냈다. 김주석이 가장 아끼는 전우이던 이광과 그의 수하 30여명의 유격대원들이 바로 중국인 반일부대들과의 연대, 연합을 위한 사업과정에서 반일부대들에 의해 집단 학살되었다.

그러나 김주석은 반일인민유격대와 다른 반일무장부대들과의 연대, 연합의 실현여부에 반일무장투쟁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신념과 의지를 굽히지 않고 포기함이 없이 끈질기게 연합전선사업을 전개해 오의성부대나 위사령부대와 같은 중국인반일부대들과 양세봉 등 독립군부대들과의 연대, 연합을 성사시키고 반일무장투쟁을 확대발전에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은 중국 동북지방의 민족운동자들은 많은 오욕의 자취를 남겼다. 이들은 본래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로 분열돼 끝없는 파쟁을 일삼다가 나중에 동포들의 여론에 밀려 형식상 "국민부"로 통합했으나 그후에도 파쟁은 지속됐다. 그 와중에서 독립군부대들도 흩어지고 심지어 그 일부는 일제에게 투항했다. 참으로 그 말로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당시 이들이 파쟁을 지양하고 연대, 연합의 길로 나갔다면 말로가 그렇게 비참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같은 교훈은 지난 시기 한국의 민민운동단체들의 역사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1987년 6월 항쟁은 한국의 반독재민주화운동사상 특기할 대규모 민중항쟁이었다. 명망 있는 한 지성인은 그 본질에 대해 논하면서 그것은 "분열이 아니라 통합이었다"고 피력했다. 요컨대 민주세력의 대통합이 6월항쟁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다는 지적이다.

항쟁전야에 각이한 민주화세력간의 연대, 연합 시도가 본격화 됐다. 지역운동세력과 부문운동세력이 하나로 결속되고 민민운동세력이 보수야당과 손을 잡는 등 전국적 판도에서 반독재민주화세력이 하나로 결집했다.고립 분산적으로 움직이던 반독재민주화세력이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중심으로 하나로 결집됨으로써 그에 대한 대중의 신뢰와 지지도가 급격히 높아 졌다.

청년학생들을 선두로 사무전문직, 생산직 노동자들이 대거 나섰다. 농민, 중소상공인, 도시영세업자들, 자유직업인들이 확고히 항쟁의 편에 섰다. 천주교와 기독교, 불교 등 종교계가 조직적으로 항쟁을 지지해 나섰다. 20여일 동안 지속된 항쟁에는 5백 여만의 대중이 참가해 "단군 이래의 대참여"로 기록되었다. 그야말로 전민중적 항쟁이었고 그 위력 또한 파격적이었다. 얼마 전까지도 거침없이 "호헌"을 고집하던 오만한 5공세력이 백기를 들고 직선제개헌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민민세력의 대연합이 가져 온 거대한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6월항쟁의 열기가 채 냉각되기도 전에 당시까지는 민주운동 지도자로 행세하던 두 김씨가 또다시 대립해 서로 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저마다 직선제선거에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두 김씨중의 한사람은 "4자필승론"까지 운운하면서 대통령당선을 장담했다. 그러나 결과는 엄청 다르게 나왔다. 겨우 유효투표수의 36.8%의 지지표밖에 받지 못한 군부출신의 노태우씨가 1위로 당선되었다. 두 김씨의 득표율을 합치면 55.2%에 이르렀지만 그것이 양분됨으로써 그 같은 결과가 초래되었던 것이다. 만일 그때 두 김씨가 서로 대립하지 않고 어느 쪽으로든 하나가 되어 선거를 치렀다면 군부독재는 5공으로 막을 내렸을 것이며 또 그렇게 됐더라면 한국의 민주화과정도 훨씬 더 빨리 진척되었을지 모른다.

변혁운동에서 각이한 변혁세력간의 연대, 연합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다른 나라 변혁운동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이란에서의 반황제, 반미 회교운동을 보기로 하자. 이 운동은 2천 5백여년동안 지속되어온 세습적군주제를 청산하고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매우 방대한 투쟁이었다.

당시 이란의 황제이던 팔레비는 친위병 1만 3천명, 비밀경찰 5만 4천명, 정복경찰 13만명, 특무 20만명, 헌병 1만명, 군대 43만명 등 막강한 폭압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팔레비황제는 미국의 적극적인 비호를 받고 있었다. 당시 이란에는 4만 3천여명의 미군사고문과 기술요원들이 상주하고 있었으며 공식적으로 확인된 CIA 요원만도 2천명을 넘었다. 또한 군사적인 위협을 목적으로 그 지역에 상시적으로 방대한 미해군무력을 배치하고 있었다.

팔레비황제는 미국의 적극적인 비호 밑에 자체의 방대한 폭압역량에 의거해 어떻게 하든 친미군주제정권을 온존시키고자 필사적 노력을 다 했다. 그러나 이란민중은 회교지도자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하나로 똘똘 뭉쳐 그들에게 주어진 변혁과제를 1977년 5월부터 1979년 2월까지 2년도 못되는 단기간 내에 성공시켰다.

이란에서의 반미, 반황제 운동승리에 작용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모든 반미, 반황제 운동단체들의 연대, 연합이 실현된 것이다.당시 이란에는 이란인민당(공산당의 전신), 이란민족전선, 학생연맹 등 서로 다른 정치적 지향과 군중적 기반을 가진 반미, 반황제 운동단체들이 많았다. 각 단체들은 보수와 진보, 계급, 계층의 이해관계의 한계를 벗어나 호메이니의 왕조타도와 민주회교공화국수립노선을 일치하게 지지했으며 운동의 전기간 반미, 반황제 세력들의 연대, 연합을 견지했다.

팔레비는 각 반정부단체들의 연대, 연합을 파탄시킬 목적으 "공산주의자들이 소련의 사주를 받고 있다", "이란애국자들이 올바른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이란에 공산독재정권이 서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반미, 반황제세력들의 연대, 연합을 파탄시키고 특히 회교세력과 진보민주세력간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으려고 했다.

그러나 운동지도자들은 팔레비의 음모를 제때에 간파하고 그것을 분쇄함으로써 항쟁단체들간의 연대, 연합과 행동통일을 끝까지 견지했으며 이로써 반미, 반황제 운동에서 높은 대중성을 획득하게 되었다.반미, 반황제 운동의 결정적 시기가 임박한 1978년 12월 10일과 11일 2일간에 걸쳐 진행된 회교순교제기념시위투쟁에는 전국적으로 2, 500여만명(수도에서만 3백만명)이 참여했으며 항쟁이 결정적시기에 들어 선 1979년 2월이후 투쟁에는 수도에서 만도 매일 평균 4백만명이상의 시민들이 궐기했으며 그 와중에 병사들이 집단적으로 시위대중편에 합세함으로써 결국 무장봉기로 발전했고 팔레비친미정권을 타도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사례는 이란에서의 반미, 반황제 운동 외에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제반 사실은 한국 민민운동의 현단계에서 민민운동단체들간의 연대, 연합을 실현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대규모 연합전선조직체로 발전시키는 것이 변혁운동의 성공을 위한 필수적 전제임을 확증해 주고 있다.
(아래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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