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빚더미에 앉은 미국경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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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6-01-26 00:00 조회15,35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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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꾸러기 미국, 위태로운 세계경제 1] 미국 쌍둥이 적자의 딜레마
파탄 난 미국경제가 여전히 굴러가는 이유는?
2006-01-17
"전세계 중앙은행과 민간기업들이 앞다퉈 달러화와 미국 국채 등 달러화 표시 자산을 팔아치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미국 조폐창의 풀가동을 결정하고 24시간 달러화를 찍어낸다. 그럼에도 달러화 가치는 초 단위로 떨어지고 미국 내 금리는 계속 치솟기만 한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미국인들의 소비도 줄어든다. 미국의 경제위기와 더불어 세계적인 대공황이 시작된다."
<##IMAGE##> 이런 영화 시나리오 같은 이야기가 요즘 전세계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심심찮게 오가고 있다. 미국의 경상적자와 재정적자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른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s)"의 문제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이것이 머지않은 장래에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의 동반 붕괴를 불러온다 해도 놀라울 게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문제는 미국이 그만큼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얘기다. 적자만 계속 내는 기업이나 가계는 결국 빚을 누적시키다가 언젠가는 파산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제는 세계경제에서 미국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미국의 파산은 곧 세계경제의 공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이에 〈프레시안〉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문제, 그리고 이 문제가 초래하는 세계경제의 불균형(imbalance)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이며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알아보는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 이 시리즈에서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과 각종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그 속에서 한국경제는 어떻게 활로를 찾아야 하는지를 진단해본다. 〈편집자〉
빚이 너무 많아 오히려 큰소리 치는 미국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중국산 싸구려 물건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드니 위안화 가치 좀 올리라"고 중국에 압력을 넣는 나라, 가난한 나라들에게 자유무역협정을 강요해 자기네 물건 값을 낮게 조정해 많이 팔아먹고 싶어하는 나라,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의 이름을 빌려 세계 각국의 경제구조를 자기네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는 나라, 북한의 인권 문제와 중동 및 중앙아시아의 민주화 문제까지 떠맡아 고민하느라 바쁜 나라, 그런데 알고 보니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빚꾸러기 나라…. 이 나라의 이름은?"
정답은 "미국"이다. 쌍둥이 적자, 즉 경상수지와 재정수지의 동시 적자를 통해 전세계에 천문학적인 금액의 빚을 지고 있는 미국이 오히려 자국에 돈을 빌려준 나라들에 대고 큰소리친다. 빚이 너무 커지면 되레 큰소리친다는 빚꾸러기는 딱 미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레이건 정부 시절에 태어났지만 클린턴 정부 시절에는 조용했던 적자 쌍둥이가 2001년 조지 부시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의 집권 1기때 쌓인 빚만 해도 미국 국민들이 2004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국내총생산(GDP)의 8.1%에 달하는 9540억 달러나 된다.
빚을 갚아도, 안 갚아도 문제
일단 미국이 빚을 갚는다고 상상해보자. 세간의 상식대로라면 빚꾸러기가 정신을 차리고 빚을 갚으려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허리띠 졸라매기"다. 미국이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면 해외로부터의 수입을 줄이고(경상적자의 축소), 나라 살림을 옹색하게 운영(재정적자의 축소)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허리띠를 졸라매면, 미국에 수출해 번 돈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많은 나라들은 당장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다. 우리나라만 해도 2004년의 전체 수출 중 대미수출의 비중이 16.9%에 달한다. 중국도 미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히면 그동안 연간 10% 가까운 무서운 기세로 성장해 온 경제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미국경제가 붕괴되고 그 여파로 세계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경제까지 주춤하게 되면? 그 결과는 세계경제의 동반 침체다. 허리띠를 졸라맨 것은 미국인데도 전세계 다른 나라들이 함께 숨을 헐떡거려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이 빚을 안 갚고 버티면? 미국은 현재의 경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빚을 져야 할 것이고, 미국 외의 나머지 다른 국가들은 미국에 꿔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세계경제가 굴러가면, 결국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구조화돼 미국의 빚 부담을 전세계가 대신 떠안는 꼴이 된다.
따라서 미국이 돈을 갚을 능력이 있든 없든, 미국이 빚을 갚을 의향이 있든 없든 미국의 쌍둥이 빚은 미국 하나를 망하게 하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 모든 나라 국민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이것이 바로 현재 세계경제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로 꼽히는 "쌍둥이 적자의 딜레마"다.
미국의 빚 〉 한국의 GDP + 스웨덴의 GDP
2004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GDP의 5.7%인 6659억 달러, 이 중 99% 이상이 무역수지 적자다. 우리나라의 2004년 GDP가 6765억 달러이니, 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 전체가 한 해 내내 번 만큼의 돈을 해외에서 빌려 수입품을 사들인 셈이다.
한편 같은 해 미국의 재정수지 적자는 GDP의 3.4%인 3972억 달러다. 스웨덴의 2004년 GDP가 3460억 달러이니, 미국 정부는 스웨덴 국민 전체가 한 해 내내 벌어들인 소득보다 더 많은 금액의 적자를 낸 것이다.
이렇게 미국의 정부와 국민들이 빌린 빚이 누적된 미국의 대외순채무 잔액은 2004년 말 기준으로 3조2856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국민은 과소비의 왕…정부 살림은 엉망진창
이렇게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면, 그 빚으로 조달한 돈은 도대체 어디에 쓰였을까?
경상수지 부문에서 빚이 늘어난 이유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미국인들이 분에 넘치는 소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민들은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각각 자국의 화폐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함으로써 덤핑 가격의 수출상품으로 미국시장을 공략한다고 불평하지만, 사실 해외의 값싼 물건을 무분별하게 사들이기를 좋아하는 것이 미국인들의 오랜 습관이다.
한편 재정수지 부문에서의 적자는 부시 대통령의 경제정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부시 정부가 가장 돈을 많이 쓴 곳은 놀랍게도 "사회안전망의 구축" 분야다. 2004년만 해도 부시 정부는 사회보장, 소득보장, 의료보장에 각각 4955억 달러, 3346억 달러, 2693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사회복지 선진국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다. 미국에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불법이민자들이 넘쳐나고, 이들은 미국경제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미국 정부의 지출은 결코 과잉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의 원인을 파악하는 열쇠는 정부의 지출이 아니라 정부의 수입에서 찾아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집권 이래 공화당의 전통적인 경제정책인 감세정책을 고수해 왔다. 공화당이 신봉하는 공급주의 경제학에 따르면, 세금을 깎아주면 기업들이 투자를 열심히 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결국은 깎아준 세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낼 것이라고 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레이건 정부 때도 이와 같은 감세정책을 폈지만 정부 살림이 펴지기는커녕 오히려 후대에 빚만 떠넘겼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감세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부시 대통령도 이런 역사적 오류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같은 명분 없는 전쟁을 그만두면 그나마 정부 살림이 나아질 텐데, 이라크전이 실패로 끝난 것이 분명해진 시점에 이란이나 북한을 침공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워싱턴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2004년 한 해 국방비에만 4555억 달러를 쓴 부시 정부는 최근 국방예산을 감축할 필요성이 있다고 피력했으나, 이런 발언이 현실화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안 망하는 비결은 "달러 재활용"
빚으로 얻은 돈으로 떵떵거리며 행세하는 미국이 안 망하는 비결은 바로 외국이 미국으로부터 벌어들인 돈을 다시 미국에 꿔주고, 그 돈을 미국이 받아 사용하는 이른바 "달러 재활용(dollar recycling)"에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물건을 만들어 싼값에 미국에 수출하면 미국인들은 빚을 내서라도 이를 사들인다(미국 경상적자의 발생). 미국에 수출을 해 달러가 생긴 동아시아 국가들은 그 돈으로 그래도 안전해 보이는 미국의 국채를 산다. 그러면 미국은 국채를 발행해서 꾼 돈으로 정부가 진 빚을 갚는다(미국 재정적자의 보전). 한편 정부는 감세와 사회복지, 전쟁 등으로 인해 예산이 부족하니 또 돈을 빌린다(미국 재정적자의 재발). 그렇지만 정부가 예산을 팍팍 쓰니 경기가 부양돼 미국 국민들은 계속 과소비를 한다(미국 경상적자의 재발).
선순환인지 악순환인지 분간하기 힘든 이런 연쇄관계를 "달러 재활용"이라고 한다. 달러 재활용 구조 속에서는 경상수지 적자의 발생이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해주는 덕분에 미국은 여태껏 안 망하고 잘 살고 사는 것이다.
미국은 2004년에만 5950억 달러에 달하는 국채를 발행했다. 부시 집권기에 들어 연준(FRB)이 금리인하 정책을 유지하면서 시중금리가 떨어졌기 때문에 국채를 많이 찍어냈어도 정부가 지불해야 할 이자비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2004년부터는 정책금리를 잇달아 올리는 바람에 순이자가 약간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국채 발행을 통해 전세계의 잉여저축을 빨아들이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달러를 찍어내는 한 미국은 망하지 않는다고?
미국이 망하기라도 하면 빌려준 돈을 되받기 힘들 텐데도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국채를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바로 달러가 지닌 힘 때문이다. 전세계의 결제수단이 달러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들은 달러 보유액을 넉넉하게 유지하고 싶어한다. 특히 호된 외환위기를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이런 욕구가 강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통화인 달러를 찍어내는 기축통화국이라는 점이다. 10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찍어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미국 연준은 이 지폐를 다른 국가에 빌려주고 5%의 이자만 받아도 5달러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런 화폐주조 차익을 시뇨리지(seigniorage)라 한다. 미국이 이런 시뇨리지를 누리는 한 결코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 전세계 국가들의 공통된 믿음이었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제는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순항을 거듭했다. 최근 잇단 정책금리 인상이 있긴 했지만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있고, 부동산 가격도 급상승했으며, 주식시장도 안정적이다.
세계 최대의 채무국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데도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는 현상은 경제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1997년 말 외환위기가 일어났을 때 부동산과 주가가 폭락하고 금리가 30%를 넘지 않았는가?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도 최근 미국 경기가 순항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내비친 적이 있다.
지금 미국경제가 망하지 않는 것은 누군가가 미국의 과소비를 떠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역할은 미국에 수출을 해서 번 돈을 다시 미국에 꿔주는 나라들이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미국경제의 위태로운 행진을 부지불식간에 부축하며 도와주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하나다.
노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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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빚폭탄 도화선에 불 붙었나?
[빚꾸러기 미국, 위태로운 세계경제 2] 정작 미국인들은 무사태평
2006-01-18
지난 2년 간 세계경제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은 평균 4.7% 상승해 1970년대 이후 2년 연속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런 세계경제의 호황은 그 기초가 불안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이 세계 최대의 소비자이자 채무자가 되고,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은 미국인들에게 계속 돈을 대주면서(달러 리사이클링) 소비를 계속하도록 상품을 대주는(대미 수출) 구조가 과도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빚더미 미국경제가 국제금융 붕괴시킬 가능성은 75%"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싱크탱크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경제부장 로빈 뷰는 최근 발표한 "2006년 통화위기"란 글에서 "경제학자들은 이미 몇 년간 세계경제가 거대하고 지속될 수 없는 불균형을 안고 있다고 경고해 왔다"며 "미국의 소비자들과 정부가 미친 듯이 소비만 하고 거의 아무 것도 저축하지 않아 미국은 사업장비나 생산시설 확충을 위한 투자를 상당 부분 외국에 의존해야 했다. 그 결과는 경상수지 적자의 증가와 세계 다른 국가들에 대한 채무의 급증"이라고 지적했다.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사상누각(砂上樓閣)"은 빚더미에 올라 앉은 미국경제와 이를 떠받치고 있는 위태로운 세계경제를 묘사하기에 딱 적합한 표현이다. 모래 위에 세워진 현재의 호황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세계시장연구소(GMI)의 소장인 프레드 버그스텐은 지난해 9월 GMI가 브루킹스 연구소와 "세계경제의 10대 위험"을 주제로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 "미국의 쌍둥이 적자는 미국 달러화와 미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의 경착륙을 초래할 수 있다"며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국제금융체제를 붕괴시킬 가능성은 75%"라고 강력하게 경고한 바 있다.
이들을 포함해 적지 않은 수의 국제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문제가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세계경제에 대한 심각한 위협요소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의 경제담당 편집자인 팸 우달은 최근 "불안한 기초"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2006년에는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이 내수침체에 빠질 것으로 전망해야 할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며 "그것은 바로 저금리, 고유가, 부동산거품, 사상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저축률, 사상최대의 경상수지 적자, 엄청난 재정적자 등"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의 달러 가치 하락, 불길한 조짐
아닌 게 아니라 올해 들어 연초부터 미국 연준이 정책금리 인상 행진을 마감할 가능성과 세계적인 부동산거품의 붕괴 조짐, 전세계적인 고유가 압력의 지속, 유럽연합(EU)과 일본의 재정긴축이 종료될 조짐 등이 한꺼번에 미국경제에 압박을 가하게 되면서 미국의 쌍둥이 적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EIU의 로빈 뷰에 따르면, 미국이 올해 당장 갚아야 할 돈만 9000억 달러에 이른다. 따라서 미국이 파산하지 않게 하려면 올해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미국이 빚을 갚을 달러를 대주기 위해 달러나 달러 표시 자산을 그만큼 많이, 아주 많이 사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달러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불안불안한 미국경제를 보면서 계속해서 달러를 무한정 사줄 나라는 없다. 이미 지난 2002년부터 달러는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잃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그들의 달러 또는 달러 표시 자산에 대한 구매욕도 수그러들고 있다. 달러 가치의 하락은 외국인들로 하여금 달러로 표시된 자산을 팔아치울 유인이 되고, 그러면 달러 가치가 추가적으로 더 하락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로빈 뷰는 "2006년에는 달러 가치의 하락이 더 빨라질 위험이 있는데, 그러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내 자산의 가치가 떨어진다"며 "이런 점을 고려해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팔기 시작하면 2006년은 달러화가 폭락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사태평한 미국인들, 무슨 배짱일까
그러나 정작 미국인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경제가 순항하고 있다고 자랑하기까지 하고, 일반 미국인들의 태도도 무사태평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GDP 대비 6%에 육박(2004년 기준)한다는 것은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실제 경제력보다 6% 만큼 더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미국의 저축률이 제로 내지 마이너스 수준에서 계속 머물고 있는 것은 미국인들이 빌린 돈을 갚을 마음이 별로 없다는 의사표현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빚꾸러기가 소비를 줄이지도 않고 저축도 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은 파산에 이르는 것이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윌리엄 클라인은 지난해 9월에 발간한 저서 〈채무국 미국〉에서 "미국이 현재의 재정정책 등을 수정하지 않으면 2010년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1조2000억 달러로 GDP의 7.5~8%, 대외순채무는 8조 달러로 GDP의 50%에 이를 것"이라며 "나아가 2024년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14%, 대외순채무는 GDP의 135%를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부 경제전문가들, 특히 미국 내의 보수적인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고 난리법석이냐고 반문하거나, 설사 미국의 쌍둥이 적자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미국 탓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적자는 좋은 것(Deficits are good)"이나 "영원한 공짜 점심(Perpetual free lunch)"의 관점은 앞의 경우에,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의 관점은 뒤의 경우에 해당한다.
◇"적자는 좋은 것"…?
"적자는 좋은 것"이라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미국에 경상수지 적자가 쌓이는 이유는 한마디로 미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잘 살기 때문이라고 본다. 미국이 무역상대국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최근 유럽이나 일본이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것은 그 나라들의 소비가 둔화되고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리처드 쿠퍼 하버드대학 국제경제학 교수는 "현재 미국은 세계 "잉여저축"의 10%를 끌어당기는 자석"이라며 "미국은 투자하기에 최적의 장소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은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들은 오히려 전세계 다른 나라들이 시장친화적인 개혁, 즉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면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가 자연히 해소될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이런 논리에는 두 가지 오류가 들어 있다. 먼저 미국이 고수익을 보장해주는 매력적인 투자장소라는 주장은 미국경제가 소비가 아니라 투자에 의해 견인될 경우에나 맞는 소리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 유입되는 자금은 주로 외국의 중앙은행들이 공적자금을 들여 미국 국채를 구입하는 데서 나오고 있다.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은 민간의 투자자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오류는 미국이 바라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국가 간 경상수지 불균형을 균형으로 되돌리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다는 역사적인 증거가 전혀 없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한 공짜 점심"…?
그런가 하면 달러 가치만 저하시키면 GDP의 5% 정도의 경상수지 적자는 손쉽게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미국의 해외자산 대부분이 달러가 아닌 현지 통화로 표시된 것이어서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자동적으로 해외자산 수익이 늘어나 미국의 빚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될 때만 성립한다. 첫째, 사람들이 달러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미리 예상하지 못 해야 한다. 사람들이 달러 가치의 하락을 예상하게 되면 달러 가치 하락에 따른 자산수익 증가라는 기대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해외 투자자들이 현재의 금리에서 미국 자산을 보유하는 것에 계속 만족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금리인상 행진이 종료되고 EU, 일본 등에서 금리인상의 신호가 나오고 있는 현 상황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런 두 가지 조건이 언제까지나 계속 유지될 수는 없는 게 당연하다.
미국 뉴욕 시에 있는 국제경제 연구소인 "루비니 국제경제모니터(RGE Monitor)"의 누레일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브래드 세처 옥스퍼드대학 연구원은 2005년 "미국 대외불균형의 지속가능성"이란 논문에서 "GDP 대비 무역적자가 GDP의 5% 수준에서 유지되면 10년 후인 2015년에는 GDP 대비 해외순채무가 GDP의 90% 정도로 늘어날 것이고, GDP 대미 무역적자가 약 8.5% 수준에서 누적된다면 2015년 부채비율이 GDP의 100%에 이를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통상 해외순채무가 GDP의 50%를 넘으면 대외부문에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보는 경제학의 상식을 감안한다면 아무리 미국이 기축통화국으로서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해도, 그런 빚꾸러기 국가에 영원히 자기 재산을 묶어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
한편 "메이드 인 차이나"의 관점은 쉽게 말해 미국 대외불균형의 원인이 미국이 아닌 중국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올해 2월에 정식 취임하게 될 벤 버난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지명자가 바로 이 논리의 신봉자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와 유럽 등지에서 큰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가 나고 있으므로 이에 따른 잉여자금을 흡수해줄 곳으로 매력적인 투자대상 자산을 가진 미국이 선택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곧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에서 초과저축이 발생하는 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관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로 미국의 정치인들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논리대로라면 미국의 대외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없는 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문제의 진원지가 중국이기 때문에 아무리 미국이 재정정책을 잘 해봐야 경상수지 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미국민들에게 설명해 납득시키기만 하면 적어도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태도를 취한다.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도 최근 "재정적자를 1달러 감소시켜도 경상적자는 20센트밖에 감소하지 않는다"는 한 연구결과를 인용하며 재정정책의 무력함을 호소한 바 있다. 또 미국의 정치인들 중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한 거시경제 모델을 인용해 "재정적자를 1달러 줄여도 경상적자는 40센트 밖에 줄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 수출을 통해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바람에 미국이 어쩔 수 없이 돈을 많이 쓰게 됐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올바로 말한다면, 미국이 자국의 엄청난 빚을 메우기 위해 중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잉여저축을 다 빨아들였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메이드 인 차이나"의 관점이 지닌 또 다른 오류는 최근 미국에 흘러든 자금 중 상당 부분이 외국의 중앙은행들이 미국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공급된 것인데 이것을 초과저축, 즉 "민간"의 저축이 미국으로 흘러든 것으로 잘못 보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관점에서 가장 비논리적인 것은 중국이 애써 번 돈을 계속해서 미국에 쏟아부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미국이 돈을 빌려다 투자는 하지 않고 소비에만 써버리는 걸 이제는 알 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데 언젠가 이런 돈의 흐름이 역전될 것이라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 혹시 알긴 아는 것이라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모르는 체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노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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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경제, 이대로 가다간 "하드랜딩" 하고 만다"
[빚꾸러기 미국, 위태로운 세계경제 3]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2006-01-19
미국의 쌍둥이 적자(twin deficits)가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다는 경고는 이미 몇 해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미국이 곧 망할 것처럼 몇 년 전부터 호들갑을 떨었지만 현재 미국경제와 부시 행정부는 저토록 건재하지 않느냐고,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이 그렇게 쉽게 망하겠냐고….
맞는 말이다. 미국은 분수에 넘치는 과소비와 명분 없는 전쟁을 계속하면서 이를 다른 나라들로부터 빌린 달러로 충당하는 비정상적인 경제구조를 놀라울 정도로 오랫동안 "잘" 유지해 왔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였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는 세계 최고의 수출품인 "달러"를 찍어내서 얻는 이익, 즉 미국의 시뇨리지가 해외의 잉여달러를 빨아들여 죽어가는 미국경제에 산소를 공급해준 덕분이다. 특히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달러재활용(dollar recycling)"이라는 놀라운 재활용 정신을 발휘하며 미국경제의 산소호흡기 역할을 떠맡아 왔다.
그러나 미국경제가 재생불능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한 조정(adjustment)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 경상적자와 재정적자를 합쳐 국내총생산(GDP)의 10%(2004년 기준)가 넘는 경제는 결코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불안한 기초 위에 형성된 달러의 가치는 필연적으로 하락할 것이고, 달러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 상실이 이를 가속할 것이며, 그 결과 미국 경제가 불황에 빠져드는 반전이 일어나는 시기가 분명히 올 것이다.
그래서 현재 세계 경제전문가들의 관심은 미국경제가 쓰러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미국경제의 조정(adjustment)이 과연 언제 어떻게 일어나느냐에 쏠려 있다.
"미 경상적자가 GDP 8% 넘으면 전세계 저축으로도 감당 못 한다"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최근 경상수지가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되는 경험을 한 25개의 국가들을 연구한 결과 대부분의 국가들이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5% 수준에 이른 시점에서 통화의 절하와 경기의 침체를 동반한 조정을 경험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현재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6%에 육박하고 있는데도 세계 기축통화 발권국가로서의 시뇨리지 이익에 힘입어 경상적자가 더욱 확대되는 상태를 지속시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돼 달러화에 대한 세계 투자자들의 신뢰가 유지될 수 없는 정도에 다다르면 이런 시뇨리지 효과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경상적자가 GDP의 8%(2004년 기준)보다 많아질 경우 이는 전세계의 초과저축을 모두 흡수해야 보전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물론 미국이 전세계의 저축을 100% 흡수하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미국의 경상적자가 GDP의 8%에 도달하면 이와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대외불균형 미국경제의 향후 행보…2006년~2010년에 탈 나나?
지난해 12월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발표한 "미국의 대외불균형 조정 시나리오와 시사점" 보고서에는 앞으로 미국의 대외불균형 문제가 언제 어떻게 조정될 것인지에 대한 3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되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시나리오별 조정 과정">
시나리오 1 시나리오 2 시나리오 3
급격한 조정
시작 시점 2009년 2006~7년 사이 원만한 조정
재정수지 연평균 -3.5%대 지속 연평균 -3.5%대 지속 2012년 이후
흑자 반전
무역수지 · 2006~8년 : -5%
· 2009년 이후 : 점차 개선 · 2006~7년 : -6.5%
· 2008년 이후(2007년 이후) 점차 개선 -1%
(2012년)
환율 · 2006~8년 : 5% 절하
· 2009년 이후 : 35~40% 급락 후 소폭 상승 · 2006~7년 : 변동없음
· 2008년 이후 : 20~30% 급락 25%까지
점진적 절하
경제성장률 · 2006~8년 : 3%
· 2009년 이후 : 경기 침체 후 2% 미만의 성장정체가 5년 이상 지속(마이너스 성장도 가능) · 2006~7년 : 3.5%
· 2008년이후 : 경기침체가 발생하여 1%미만의 성장정체가 2년간 지속된 후 반등 2~3%대
지속
자료 : 삼성경제연구소(SERI)
최악의 시나리오: 당장 미국경제 위기 닥친다
먼저 미국 정부의 재정정책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달러화 가치의 조정도 일어나지 않을 경우, 미 쌍둥이 적자의 반전 시점은 2006년이나 2007년으로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시나리오 2)
부시 정부가 감세 및 사회보장비 지출의 확대를 특징으로 하는 공화당 전통의 경제정책을 고수하면 미국의 재정 부문은 향후 10년 간 연평균 GDP 대비 3~3.5%의 적자를 지속할 것이다.
한편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통화가치 상승 등이 일어나지 않고 달러화 가치가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소폭의 상승세를 보인다면 이르면 올해 안에 미국의 무역적자는 GDP의 6.5%, 경상적자는 GDP의 8%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미국경제에 대한 해외투자자들의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고 금리가 급등하는 등 급격한 조정이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 경기침체를 동반한 급격한 조정이 단기적으로 이뤄진 후에는 향후 2년간 1% 미만의 성장정체가 있을 예정이다.
달러화 가치 떨어지면 위기는 4~5년 미뤄질 것
한편 미국 정부가 현재의 경제정책을 고수하는 가운데 달러화 가치가 주요 통화들에 비해 5% 이하로 조정되는 경우 쌍둥이 적자로 인한 위기는 2009년 이후로 몇 년 정도나마 미뤄질 수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 1)
달러화가 주요 통화 대비 5% 절하되면 무역수지 적자는 GDP의 5% 수준에서 그럭저럭 유지될 수 있지만, 경상수지 적자는 대외부채 누적에 따른 이자 부담이 증가함에 따라 악화될 것이다. 그 결과 2009년 대외순채무는 GDP의 55%에 달하게 될 것이고 바로 이때 달러화의 급락과 금리의 급상승을 동반한 급격한 조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전세계의 많은 경제전문가들도 구체적인 수치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이르면 올해 안에, 늦어도 2010년 내에는 이런 급격한 조정이 일어날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캐서린 맨 존스홉킨스대학 국제학 교수는 미국의 경상적자가 GDP 대비 13%(2004년 기준)에 이르는 2010년이 되기 전에 미국경제가 급격한 조정을 겪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국제개발센터(CGD)의 윌리엄 클라인 박사도 미국의 경상적자가 GDP의 8%(2004년 기준), 대외순채무가 GDP의 55%(2004년 기준)에 이르는 2010년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보았다.
국제공조에 힘입은 연착륙 시나리오
물론 이런 급격한 조정 시나리오와 다르게 미국의 쌍둥이 부채가 완만한 속도로 조정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이런 연착륙(soft landing)이 가능하려면 미국은 현재의 재정적자를 2% 미만으로 줄여야 하고 달러화의 가치도 주요 통화에 비해 25% 정도 절하돼야 한다. 이 경우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3% 대에서 유지되면서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도 완만하게 해소된다는 것이다. (시나리오 3)
이는 물론 부시 정부가 쌍둥이 적자 문제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재정수지의 개선에 힘씀과 동시에 국제적 공조를 통해 달러화 가치를 조정해나갈 것이라는 가정 아래 만들어진 시나리오다.
이대로는 경착륙 가능성이 높다
지난 몇 년 동안 국제통화기금(IMF), 선진7개국(G7), 전세계의 경제학자들이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세계경제의 불균형(imbalance) 문제를 지적하며 미국경제의 연착륙(soft landing)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도록 국제적 차원에서 노력하자고 촉구해 왔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서 개연성이 더 높은 시나리오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국제경제의 불균형이 지속되다가 이런 불균형 상태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위기 국면을 맞아 급격한 조정, 즉 경착륙(hard landing)이 일어나는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미국의 경상적자는 GDP의 3%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적자가 이 수준에서나마 유지되면 현재 GDP의 28%에 달하는 미국의 해외순채무를 줄이지는 못할지언정 더 늘어나는 것만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GDP 3% 수준의 경상적자는 미국의 평균 경제성장률과 실질이자 수준을 감안한 "외채 증가 저지선"인 셈이다.
미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에드윈 트루먼 박사에 따르면 미국의 경상적자를 현재의 절반 수준인 GDP 대비 3%로 줄이려면 미국 국민들이 각각 1인당 2350달러의 부담을 져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국의 경기둔화로 줄어들게 되는 1인당 GDP 1350달러에 달러화 가치의 상승으로 인한 무역손실액 1000달러를 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지 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의 정치인들이 대부분 쌍둥이 적자의 심각성을 못 본 체하고 필요한 조정을 임기 중에 하지 않고 뒤로 미루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미국 국민들에게 각각 2350달러의 비용을 부담하라고 주장해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태롭게 할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경제정책에 관한 한 미국 정계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스칼렛 오하라"식 처방이 유행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달러화 가치 하락도 미국인 과소비 못 막는다
게다가 미국의 경우 달러화 가치를 감소시켜도 수출이 늘어나고 수입이 줄어들어 무역수지가 개선되는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 환율의 변화가 수출품과 수입품의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한 "환율의 전이효과(exchange rate pass-through)"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린다 골드버그 박사와 스페인 나바라 대학의 호세 마누엘 캄파 교수가 공동 연구한 바에 따르면 달러 가치에 10%의 변화가 생기면 미국 내 수입품의 가격 변화는 3개월 안에 고작 2.5%, 몇 년이 지나도 4%를 초과하지 않는다고 한다. 연준의 자체 연구결과에 의하면 환율의 전이효과는 아예 제로에 가깝다.
따라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한다 해도 미국인들의 구매력은 별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는 달러화 가치에 조정이 일어나도 미국인들이 과소비를 계속해 경상적자가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세계경제가 성장하면 불균형 문제는 악화된다
한편 미국이 아닌 나머지 국가들, 특히 아시아의 정치인들은 미국의 대외적자가 확대됨으로써 생기는 경제적 이득으로 자국에서의 정치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자국 화폐 가치의 인상 등을 포함하는 국제적 조정(global adjustment)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자국 정부가 언젠가는 이 엄청난 미국의 대외불균형 문제에 대한 비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정책을 수립하지 않는다. 현재의 불균형 상태가 계속 유지될 수 있으리라는 비합리적인 가정 하에 이들이 움직이면 세계경제의 불균형은 더욱 더 심각해진다.
현재 세계경제 구조는 미국을 제외한 세계 전체 경제가 연간 1%만큼 성장하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0.7%만큼 늘어나는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세계경제가 1%로 성장할 때 미국의 수출은 1%만큼만 늘어나지만 수입은 이보다 훨씬 높은 1.7%만큼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만의 고유한 현상이다. 다른 국가들의 경우 세계경제가 성장하면 덩달아 수출도 늘고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며 국내 경기도 호전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세계경제의 호황이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문제는 심각해질 것이고 그 결과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는 더욱 더 심화될 것이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할까
이처럼 미국인들도, 미국 정부도, 다른 국가의 정부들도 당장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한 유인(incentive)들만 많은 상황에서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는 한계점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앞으로만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모두 세계경제를 균형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현재의 불균형 상태를 뒷짐 지고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미국경제와 세계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미국을 포함해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게임을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고양이(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세계경제의 불균형)의 위협은 알지만, 누구도 섣불리 나서서 그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노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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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가 떠안는 미국發 스트레스들
[빚꾸러기 미국, 위태로운 세계경제 4] "FTA 압력"에서 "전쟁터 찾기"까지
2006-01-20
미국의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와 다른 나라들의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는 동전의 양면이다. 빚꾸러기 미국이 세계경제에 일으키는 문제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대응 방식을 살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왜 이렇게 고단할 수밖에 없는지가 쉽게 이해된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가 국제 정치경제의 다이내믹스에 가장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 절상 압력" 넘어 "제2의 플라자합의" 주장까지
미국 정부가 자국의 엄청난 빚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온전히 바깥세상을 겨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중국을 향해 "세계의 식량자원, 석유자원을 불가사리처럼 빨아들이는 나라", "값싼 수출품과 덤핑으로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나라" 등으로 비난하면서 전세계에 "중국 위협론"을 퍼뜨리는 데 몰두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무역수지 흑자, 외국인 직접투자(FDI), 위안화 절상을 노린 단기성 투기자금 유입 등으로 급증하자 미국의 부시 정부는 "풍부한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중국이 위안화의 추가 절상을 견뎌낼 수 있다는 증거"라며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압력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11월 의회에 제출한 "국제경제 및 환율정책에 관한 하반기 연례보고서"에서 "2005년 7월 중국이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 환율 페그제를 폐지하고 미 달러화 대비 위안화의 명목환율을 2.1% 절상하는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안화의 절상률은 0.35%에 그쳤고 환율의 유연성도 향상되지 않았다"며 추가적인 위안화 절상을 촉구했다.
미국 민주당의 찰스 슈머 상원의원과 공화당의 필 그램 상원의원이 발의한 "슈머-그램 대중국 공정무역 법안"도 2006년 상반기 처리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중국이 환율조작을 그만두지 않을 경우 중국의 대미 수출품 전 품목에 대해 27.5%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게다가 부시 정부는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까지 동원해 중국에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를 도입하라고 끈질기게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의 외환당국자들은 "중국경제에 불안정을 초래하지 않도록 위안화의 "자율화"는 느린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거듭 밝히고 있어, 당장 국제 외환시장에 충격을 줄 만한 수준의 급격한 위안화 절상 조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의 일각에서는 중국의 위안화 절상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세계의 다른 주요 통화들의 절상 문제를 국제 협상 테이블에 올리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른바 "제2의 플라자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플라자합의는 지난 1985년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의 재무장관들이 당시 GDP 대비 3.4%에 달했던 미국의 경상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러 가치의 인하 및 파운드, 프랑, 엔 가치의 인상 조정에 전격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이 합의의 결과로 엔/달러 환율은 1년 남짓한 기간에 243엔에서 157엔까지 대폭 하락했고, 미국은 급한 대외불균형의 불을 끌 수 있었다.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윌리엄 클라인 박사는 최근 "신(新) 플라자합의(The Case for a New Plaza Agreement)"라는 글에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현재의 절반 수준인 GDP 대비 3%로 줄여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해외 다른 통화들의 가치가 달러화 대비 25% 상승할 필요가 있다"며 선진 20개 국(G20) 주도 하에 "제2의 플라자합의"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라인 박사는 신 플라자합의에 참여할 필요가 있는 20개 국으로 일본과 유럽연합(EU)의 주요국 등 선진국들 외에 한국,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가들도 거명했다. 그가 주장하는 각국 통화의 "적절한 절상 폭"은 싱가포르 92.1%, 일본 62.4%, 중국 43.3%, 한국 19.2% 등이다.
한국에 대한 자유무역협정(FTA) 압력도 같은 맥락
한편 미국은 천문학적인 무역수지 적자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최근 세계 각국과의 쌍무적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 "미국 FTA 추진 동향과 전략"에 따르면 미국은 원래 양자간의 FTA보다 다자간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선호했으나, 최근 WTO의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지역무역협정(RTA)이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자 양자간 FTA 체결에 다시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까지 이스라엘 등 16개 국과 FTA를 체결한 미국은 지난 2002년 발효된 "무역촉진권한(TPA)"의 만료시한이 2007년 6월로 다가옴에 따라 올 한 해 FTA 체결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TPA란 대외교역 협상의 최종권한을 갖고 있는 의회가 포괄적인 협상권한을 행정부에 한시적으로 이양한 것으로, 이런 권한이양 조처에 대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전세계 교역대상국들에게 미국의 자유무역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통상 FTA 하나를 체결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최소한 1년이라는 점을 감안해 미국은 올해엔 FTA를 체결하면 가장 경제적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이는 "하나의 국가"에 올인하기로 했으며, 이를 위해 우선 25개 대상국 후보를 선정한 뒤 그 중에서 한국을 최종적으로 뽑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3일 한미 FTA 체결의 최대 걸림돌 중 하나로 여겨졌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 문제가 매듭지어짐에 따라 최근 한미간 FTA 협상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국 정부는 다음달 2일 "한미 FTA 추진 관련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 전세계의 잉여자본을 흡수해야 빚더미 위에 건설된 자국의 경제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미국은 그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구(IMF) 등을 동원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얼마나 이로운지를 끈질기게 설파해왔다.
그 결과 전세계의 자본자유화는 엄청난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OECD의 "자본자유화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을 제외한 OECD 29개 회원국들의 평균 자본자유화 수준은 89.3%에 이른다. 미국이 95%로 선두이고, 일본, 독일, 영국 등의 자본자유화 수준도 85%이다. 터키, 멕시코, 체코, 헝가리 등 신흥시장국가들의 자본자유화 수준도 평균 84.2%에 달한다.
한국 정부도 최근의 달러화 가치 급락에 대응해 2010년에 완료 예정이었던 자본자유화 조치들을 올해 안에 앞당겨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자본자유화 수치도 곧 85%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처럼 미국이 강력하게 추진해 온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때문에 미국 기업들이 대부분 초국적화된 결과 미국 자본은 미국 정부의 통제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런 자본들은 쌍둥이 적자 문제가 재부각돼 달러화의 가치가 의심되는 상황이 오면 다른 어떤 자본들보다 먼저 미국시장에서 발을 뺄 것이다. 그때 가서, 국적을 따지지 않는 자본에 대고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탄식해봐야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다.
2005년 하반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잇달아 정책금리를 올려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자 미국으로 다시 몰려든 자금은 대부분 외국인 소유의 자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미국을 빠져나간 미국 자본은 다시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댈 데는 전쟁뿐?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여겨봐야 할 것은 미국이 흔들리고 있는 달러의 위상을 지키고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 자리를 고수하기 위한 노력으로 국내적인 구조조정이 아니라 신보수주의적 패권주의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재정적자가 날로 악화돼 가는데도 부시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군비를 확장하며 다음 전쟁터를 고르고 있다. 지난 7일 영국 신문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와 미국 예산전문가인 린다 빔스 하버드대 교수는 "부시 정부가 공식으로 발표한 이라크전의 비용 외에 전쟁의 "숨겨진 비용"만 1조~2조 달러에 달한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이렇듯 미국은 군비를 확장하고 그 위세를 과시하는 패권주의 전략을 통해 전세계에 미국의 말을 듣지 않는 나라나 지역에 대해 침공하겠다는 위협의 신호를 보내는 한편 위태로운 미국경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석유 등을 포함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이 미국의 석유 확보를 위한 침략전쟁이었다는 것은 이제 세간의 상식이 되었다.
이에 대해 지난해 말 영국의 국제구호단체인 "워온원트(War on Want)" 등을 포함한 영미의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은 공동보고서를 발표해 "미국 고위층의 압력을 받은 이라크 임시정부가 석유개발권을 놓고 셸 그룹 등 미국계 석유회사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며 "미국의 계획대로 이라크 석유개발권이 다국적기업들에 넘어가면 이라크는 국부(國富)를 최대 2000억 달러까지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미국이 통제불가능한 수준의 경기침체에라도 빠져들면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은 이러한 패권주의적 전략을 더욱 강화하려고 할 것이 거의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이 이런 패권주의적 전략을 강화하면 할수록 역으로 "세계경찰"로서의 미국의 권위는 약화될 것이다. 이미 이란과 같은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과 베네수엘라 등의 남미 좌파 국가들이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른바 "악의 축"으로 부상했다.
"이대로 놔둘 순 없다"…대안의 모색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세계경제의 대외불균형이 작동하는 국제사회에서 "당장" 살아남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세계경제의 작동 원리를 재구성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현실적인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로 각국의 경제가 세계경제 속으로 편입된 상황에서 세계경제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자 세계 각국의 좌파 성향 지식인들과 정치인들, 진보적 비정부기구(NGO)들은 다양한 대안들을 내놓고 이에 대한 논의와 실험을 구체화하고 있다.
리처드 런컨은 그의 저서 "달러의 몰락, 세계경제의 몰락"에서 현재 세계경제가 공급 과잉으로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기 때문에 세계의 정부들이 공급축소의 공동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상주의자들 사이에서 "세계정부" 수립의 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한편 미국의 쌍둥이 적자 등으로 국제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이 날로 커져가면서 단기성 투기자본을 규제하자는 논의도 조금씩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1990년대 칠레가 실행했던 가변의무예치금제도(VDR)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 박사가 주장한 토빈세(Tobin"s tax) 등 그간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제도들이 영국의 워온원트(War on Want)나 프랑스의 아탁(ATTAC) 등 반(反)세계화 성향의 국제 NGO들 주도 하에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가변의무예치금제도는 유입된 해외자본의 일정 부분을 일정 기간 중앙은행에 무이자로 예치하는 제도이고, 토빈세는 투기성 단기자본인 핫머니가 국경을 넘을 때 부과하는 세금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달러화에 치중한 현재의 결제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국제 공용화폐인 특별인출권(SDR)을 보다 더 광범위하게 사용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SDR이란 금과 달러 외에 국제통화기금(IMF)의 운영축을 보완하기 위한 제3의 세계화폐다. 그러나 SDR을 더 많이 사용하자는 주장은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신인도를 떨어뜨려 미국경제를 급속도로 침체시킬 위험이 있어 오히려 위험하다는 반박을 받고 있다.
이르면 올해 3월경 국제외환시장에 모습을 드러낼 전망인 아시아의 단일통화 "아쿠(ACU: Asian Currency Unit)"도 달러화 위주로 돌아가는 세계경제에 대한 대안적 실험의 하나다. 그러나 아쿠도 EU의 유로화가 그랬던 것처럼 당장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아시아 경제권에서 달러의 영향력 축소를 우려한 미국은 국제통화기금 등을 통해 아쿠에 대한 견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여러 차례 아시아통화기금(AMF)의 창설 등 아시아 국가들의 독자적인 움직임을 여러 차례 무력화시킨 바 있다.
국제사회의 공식 해결노력 시동할까?
미국의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면서 주요 선진국 정부들의 속내는 편치 않다. 이들은 미국 경제가 붕괴되거나 급격한 조정 국면을 맞을 경우 자국의 정치·경제에 미칠 타격을 내심 염려하고 있다.
미국을 대체할 유일한 슈퍼파워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은 미국경제에 탈이 나 전세계에 저성장 기조가 형성되면 가장 많은 위협을 받을 나라다.
그동안 엄청난 속도의 경제성장에 가려져 있었던 빈부격차, 민족갈등, 종교갈등, 환경오염 등의 정치사회적 불안요소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유지돼 온 중국 정권의 존망이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공안당국에 따르면 2004년 한 해에만 7만4000여 건에 이르는 시위가 발발하는 등 중국의 정치사회적 불만들은 이미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경기침체에서 막 벗어나기 시작한 일본과 상이한 정치경제 구조를 가진 나라들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계속 중인 EU도 중국과 비슷한 이유로 미국경제의 몰락을 두려워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주요 선진국들은 선진7개국(G7) 회담 등을 통해 미국 쌍둥이 적자 문제의 심각성을 국제사회에 상기시키고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의지를 창출하기 위한 걸음마를 시작했다.
2005년 유로/달러 환율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프랑스 재무장관은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쓴 소리를 했다. 지난해 G7 정상회담 성명서에도 "미국친구들(American friends)도 (급격한 환율 변동이 지닌 위험성을) 명심해야 한다"는 문구가 삽입된 바 있다.
세계 자금흐름에 부는 역풍
한편 그동안 미국에 호의적이던 전세계의 자금흐름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해 고유가로 물기가 오르자 국내의 경기 과열을 우려한 미국 연준이 잇달아 정책금리를 올리면서 세계의 잉여자본은 미국으로 집중했고 그 여파로 전세계 주식시장은 타격을 입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미국이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위세를 잃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 미국으로의 자금 유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외국의 민간 자금이 아니라 외국의 중앙은행들이라는 것이다. 2005년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의 국채, 주식 등을 순매수한 규모는 6980억 달러에 달하는데 그 중 1394억 달러가 외국 중앙은행들이 사들인 미국의 국채, 국가보증 채권에 해당한다.
외국 중앙은행들이 이렇게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이유는 국내의 무역수지 흑자로 쌓여가는 달러를 처분해야 국내 물가가 안정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난 1997~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에서 배운 "학습효과"로 달러 표시의 외환보유고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외 정부의 공적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좋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미국 자산의 가격을 올리고 그 결과 기대 수익률을 저하시켜 민간 부문의 투자를 둔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낸다.
보다 긴급한 문제는 미국의 급증하는 해외자금 수요와 해외 각국의 외환보유액 증가에 따른 자본손실 리스크가 증가해 미국과 해외 중앙은행들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 외환보유액의 70%가량이 달러화 자산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0일 중국 외환관리국의 후샤오렌 국장이 "외환의 자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외환투자 영역을 넓히겠다"며 외환보유액의 다변화 가능성을 내비치자 국제금융시장이 한바탕 혼란에 휩싸였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중국 본토의 8189억 달러(2005년 말 기준)와 홍콩의 1243억 달러를 합치면 그동안 전세계 외환보유액 1위를 지켜 왔던 일본의 8469억 달러를 넘어선다는 점, 그런 중국 외환보유액의 70% 이상이 미국 재무부가 발행한 채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이런 발언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이렇게 풍부한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앞으로 원유 등의 에너지원을 확보하고 해외 기업을 상대로 한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으로 보여 국제금융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이 달러 자산을 매각할 경우 미 달러화가 추가적으로 하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해 2월에는 한국은행이 "외환보유 통화 구성을 다변화할 수도 있다"는 언급을 하자마자 국제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고 미국 주식시장이 쇼크를 겪은 적도 있다. 2006년 2월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2146억6000만 달러로 이는 세계 4위 수준이다. 올해 들어 한은도 자본거래의 전면 자유화로 해외 투자 활성화가 본격화되면 외환 보유액의 다양한 활용 방안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외환보유액 다양화의 움직임에 대해 국제 투자은행의 한 관계자는 "중국과 한국이 실제로 외환보유액의 다변화를 하지 않더라도 투기세력들이 이 문제를 공론화해서 국제금융시장을 교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노주희/기자
200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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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격랑 견뎌낼 기초체력 있나?
[빚꾸러기 미국, 위태로운 세계경제 5(
파탄 난 미국경제가 여전히 굴러가는 이유는?
2006-01-17
"전세계 중앙은행과 민간기업들이 앞다퉈 달러화와 미국 국채 등 달러화 표시 자산을 팔아치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미국 조폐창의 풀가동을 결정하고 24시간 달러화를 찍어낸다. 그럼에도 달러화 가치는 초 단위로 떨어지고 미국 내 금리는 계속 치솟기만 한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미국인들의 소비도 줄어든다. 미국의 경제위기와 더불어 세계적인 대공황이 시작된다."
<##IMAGE##> 이런 영화 시나리오 같은 이야기가 요즘 전세계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심심찮게 오가고 있다. 미국의 경상적자와 재정적자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른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s)"의 문제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이것이 머지않은 장래에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의 동반 붕괴를 불러온다 해도 놀라울 게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문제는 미국이 그만큼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얘기다. 적자만 계속 내는 기업이나 가계는 결국 빚을 누적시키다가 언젠가는 파산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제는 세계경제에서 미국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미국의 파산은 곧 세계경제의 공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이에 〈프레시안〉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문제, 그리고 이 문제가 초래하는 세계경제의 불균형(imbalance)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이며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알아보는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 이 시리즈에서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과 각종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그 속에서 한국경제는 어떻게 활로를 찾아야 하는지를 진단해본다. 〈편집자〉
빚이 너무 많아 오히려 큰소리 치는 미국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중국산 싸구려 물건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드니 위안화 가치 좀 올리라"고 중국에 압력을 넣는 나라, 가난한 나라들에게 자유무역협정을 강요해 자기네 물건 값을 낮게 조정해 많이 팔아먹고 싶어하는 나라,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의 이름을 빌려 세계 각국의 경제구조를 자기네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는 나라, 북한의 인권 문제와 중동 및 중앙아시아의 민주화 문제까지 떠맡아 고민하느라 바쁜 나라, 그런데 알고 보니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빚꾸러기 나라…. 이 나라의 이름은?"
정답은 "미국"이다. 쌍둥이 적자, 즉 경상수지와 재정수지의 동시 적자를 통해 전세계에 천문학적인 금액의 빚을 지고 있는 미국이 오히려 자국에 돈을 빌려준 나라들에 대고 큰소리친다. 빚이 너무 커지면 되레 큰소리친다는 빚꾸러기는 딱 미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레이건 정부 시절에 태어났지만 클린턴 정부 시절에는 조용했던 적자 쌍둥이가 2001년 조지 부시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의 집권 1기때 쌓인 빚만 해도 미국 국민들이 2004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국내총생산(GDP)의 8.1%에 달하는 9540억 달러나 된다.
빚을 갚아도, 안 갚아도 문제
일단 미국이 빚을 갚는다고 상상해보자. 세간의 상식대로라면 빚꾸러기가 정신을 차리고 빚을 갚으려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허리띠 졸라매기"다. 미국이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면 해외로부터의 수입을 줄이고(경상적자의 축소), 나라 살림을 옹색하게 운영(재정적자의 축소)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허리띠를 졸라매면, 미국에 수출해 번 돈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많은 나라들은 당장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다. 우리나라만 해도 2004년의 전체 수출 중 대미수출의 비중이 16.9%에 달한다. 중국도 미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히면 그동안 연간 10% 가까운 무서운 기세로 성장해 온 경제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미국경제가 붕괴되고 그 여파로 세계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경제까지 주춤하게 되면? 그 결과는 세계경제의 동반 침체다. 허리띠를 졸라맨 것은 미국인데도 전세계 다른 나라들이 함께 숨을 헐떡거려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이 빚을 안 갚고 버티면? 미국은 현재의 경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빚을 져야 할 것이고, 미국 외의 나머지 다른 국가들은 미국에 꿔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세계경제가 굴러가면, 결국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구조화돼 미국의 빚 부담을 전세계가 대신 떠안는 꼴이 된다.
따라서 미국이 돈을 갚을 능력이 있든 없든, 미국이 빚을 갚을 의향이 있든 없든 미국의 쌍둥이 빚은 미국 하나를 망하게 하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 모든 나라 국민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이것이 바로 현재 세계경제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로 꼽히는 "쌍둥이 적자의 딜레마"다.
미국의 빚 〉 한국의 GDP + 스웨덴의 GDP
2004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GDP의 5.7%인 6659억 달러, 이 중 99% 이상이 무역수지 적자다. 우리나라의 2004년 GDP가 6765억 달러이니, 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 전체가 한 해 내내 번 만큼의 돈을 해외에서 빌려 수입품을 사들인 셈이다.
한편 같은 해 미국의 재정수지 적자는 GDP의 3.4%인 3972억 달러다. 스웨덴의 2004년 GDP가 3460억 달러이니, 미국 정부는 스웨덴 국민 전체가 한 해 내내 벌어들인 소득보다 더 많은 금액의 적자를 낸 것이다.
이렇게 미국의 정부와 국민들이 빌린 빚이 누적된 미국의 대외순채무 잔액은 2004년 말 기준으로 3조2856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국민은 과소비의 왕…정부 살림은 엉망진창
이렇게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면, 그 빚으로 조달한 돈은 도대체 어디에 쓰였을까?
경상수지 부문에서 빚이 늘어난 이유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미국인들이 분에 넘치는 소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민들은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각각 자국의 화폐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함으로써 덤핑 가격의 수출상품으로 미국시장을 공략한다고 불평하지만, 사실 해외의 값싼 물건을 무분별하게 사들이기를 좋아하는 것이 미국인들의 오랜 습관이다.
한편 재정수지 부문에서의 적자는 부시 대통령의 경제정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부시 정부가 가장 돈을 많이 쓴 곳은 놀랍게도 "사회안전망의 구축" 분야다. 2004년만 해도 부시 정부는 사회보장, 소득보장, 의료보장에 각각 4955억 달러, 3346억 달러, 2693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사회복지 선진국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다. 미국에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불법이민자들이 넘쳐나고, 이들은 미국경제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미국 정부의 지출은 결코 과잉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의 원인을 파악하는 열쇠는 정부의 지출이 아니라 정부의 수입에서 찾아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집권 이래 공화당의 전통적인 경제정책인 감세정책을 고수해 왔다. 공화당이 신봉하는 공급주의 경제학에 따르면, 세금을 깎아주면 기업들이 투자를 열심히 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결국은 깎아준 세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낼 것이라고 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레이건 정부 때도 이와 같은 감세정책을 폈지만 정부 살림이 펴지기는커녕 오히려 후대에 빚만 떠넘겼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감세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부시 대통령도 이런 역사적 오류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같은 명분 없는 전쟁을 그만두면 그나마 정부 살림이 나아질 텐데, 이라크전이 실패로 끝난 것이 분명해진 시점에 이란이나 북한을 침공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워싱턴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2004년 한 해 국방비에만 4555억 달러를 쓴 부시 정부는 최근 국방예산을 감축할 필요성이 있다고 피력했으나, 이런 발언이 현실화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안 망하는 비결은 "달러 재활용"
빚으로 얻은 돈으로 떵떵거리며 행세하는 미국이 안 망하는 비결은 바로 외국이 미국으로부터 벌어들인 돈을 다시 미국에 꿔주고, 그 돈을 미국이 받아 사용하는 이른바 "달러 재활용(dollar recycling)"에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물건을 만들어 싼값에 미국에 수출하면 미국인들은 빚을 내서라도 이를 사들인다(미국 경상적자의 발생). 미국에 수출을 해 달러가 생긴 동아시아 국가들은 그 돈으로 그래도 안전해 보이는 미국의 국채를 산다. 그러면 미국은 국채를 발행해서 꾼 돈으로 정부가 진 빚을 갚는다(미국 재정적자의 보전). 한편 정부는 감세와 사회복지, 전쟁 등으로 인해 예산이 부족하니 또 돈을 빌린다(미국 재정적자의 재발). 그렇지만 정부가 예산을 팍팍 쓰니 경기가 부양돼 미국 국민들은 계속 과소비를 한다(미국 경상적자의 재발).
선순환인지 악순환인지 분간하기 힘든 이런 연쇄관계를 "달러 재활용"이라고 한다. 달러 재활용 구조 속에서는 경상수지 적자의 발생이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해주는 덕분에 미국은 여태껏 안 망하고 잘 살고 사는 것이다.
미국은 2004년에만 5950억 달러에 달하는 국채를 발행했다. 부시 집권기에 들어 연준(FRB)이 금리인하 정책을 유지하면서 시중금리가 떨어졌기 때문에 국채를 많이 찍어냈어도 정부가 지불해야 할 이자비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2004년부터는 정책금리를 잇달아 올리는 바람에 순이자가 약간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국채 발행을 통해 전세계의 잉여저축을 빨아들이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달러를 찍어내는 한 미국은 망하지 않는다고?
미국이 망하기라도 하면 빌려준 돈을 되받기 힘들 텐데도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국채를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바로 달러가 지닌 힘 때문이다. 전세계의 결제수단이 달러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들은 달러 보유액을 넉넉하게 유지하고 싶어한다. 특히 호된 외환위기를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이런 욕구가 강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통화인 달러를 찍어내는 기축통화국이라는 점이다. 10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찍어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미국 연준은 이 지폐를 다른 국가에 빌려주고 5%의 이자만 받아도 5달러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런 화폐주조 차익을 시뇨리지(seigniorage)라 한다. 미국이 이런 시뇨리지를 누리는 한 결코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 전세계 국가들의 공통된 믿음이었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제는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순항을 거듭했다. 최근 잇단 정책금리 인상이 있긴 했지만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있고, 부동산 가격도 급상승했으며, 주식시장도 안정적이다.
세계 최대의 채무국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데도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는 현상은 경제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1997년 말 외환위기가 일어났을 때 부동산과 주가가 폭락하고 금리가 30%를 넘지 않았는가?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도 최근 미국 경기가 순항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내비친 적이 있다.
지금 미국경제가 망하지 않는 것은 누군가가 미국의 과소비를 떠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역할은 미국에 수출을 해서 번 돈을 다시 미국에 꿔주는 나라들이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미국경제의 위태로운 행진을 부지불식간에 부축하며 도와주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하나다.
노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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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빚폭탄 도화선에 불 붙었나?
[빚꾸러기 미국, 위태로운 세계경제 2] 정작 미국인들은 무사태평
2006-01-18
지난 2년 간 세계경제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은 평균 4.7% 상승해 1970년대 이후 2년 연속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런 세계경제의 호황은 그 기초가 불안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이 세계 최대의 소비자이자 채무자가 되고,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은 미국인들에게 계속 돈을 대주면서(달러 리사이클링) 소비를 계속하도록 상품을 대주는(대미 수출) 구조가 과도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빚더미 미국경제가 국제금융 붕괴시킬 가능성은 75%"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싱크탱크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경제부장 로빈 뷰는 최근 발표한 "2006년 통화위기"란 글에서 "경제학자들은 이미 몇 년간 세계경제가 거대하고 지속될 수 없는 불균형을 안고 있다고 경고해 왔다"며 "미국의 소비자들과 정부가 미친 듯이 소비만 하고 거의 아무 것도 저축하지 않아 미국은 사업장비나 생산시설 확충을 위한 투자를 상당 부분 외국에 의존해야 했다. 그 결과는 경상수지 적자의 증가와 세계 다른 국가들에 대한 채무의 급증"이라고 지적했다.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사상누각(砂上樓閣)"은 빚더미에 올라 앉은 미국경제와 이를 떠받치고 있는 위태로운 세계경제를 묘사하기에 딱 적합한 표현이다. 모래 위에 세워진 현재의 호황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세계시장연구소(GMI)의 소장인 프레드 버그스텐은 지난해 9월 GMI가 브루킹스 연구소와 "세계경제의 10대 위험"을 주제로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 "미국의 쌍둥이 적자는 미국 달러화와 미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의 경착륙을 초래할 수 있다"며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국제금융체제를 붕괴시킬 가능성은 75%"라고 강력하게 경고한 바 있다.
이들을 포함해 적지 않은 수의 국제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문제가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세계경제에 대한 심각한 위협요소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의 경제담당 편집자인 팸 우달은 최근 "불안한 기초"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2006년에는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이 내수침체에 빠질 것으로 전망해야 할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며 "그것은 바로 저금리, 고유가, 부동산거품, 사상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저축률, 사상최대의 경상수지 적자, 엄청난 재정적자 등"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의 달러 가치 하락, 불길한 조짐
아닌 게 아니라 올해 들어 연초부터 미국 연준이 정책금리 인상 행진을 마감할 가능성과 세계적인 부동산거품의 붕괴 조짐, 전세계적인 고유가 압력의 지속, 유럽연합(EU)과 일본의 재정긴축이 종료될 조짐 등이 한꺼번에 미국경제에 압박을 가하게 되면서 미국의 쌍둥이 적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EIU의 로빈 뷰에 따르면, 미국이 올해 당장 갚아야 할 돈만 9000억 달러에 이른다. 따라서 미국이 파산하지 않게 하려면 올해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미국이 빚을 갚을 달러를 대주기 위해 달러나 달러 표시 자산을 그만큼 많이, 아주 많이 사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달러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불안불안한 미국경제를 보면서 계속해서 달러를 무한정 사줄 나라는 없다. 이미 지난 2002년부터 달러는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잃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그들의 달러 또는 달러 표시 자산에 대한 구매욕도 수그러들고 있다. 달러 가치의 하락은 외국인들로 하여금 달러로 표시된 자산을 팔아치울 유인이 되고, 그러면 달러 가치가 추가적으로 더 하락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로빈 뷰는 "2006년에는 달러 가치의 하락이 더 빨라질 위험이 있는데, 그러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내 자산의 가치가 떨어진다"며 "이런 점을 고려해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팔기 시작하면 2006년은 달러화가 폭락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사태평한 미국인들, 무슨 배짱일까
그러나 정작 미국인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경제가 순항하고 있다고 자랑하기까지 하고, 일반 미국인들의 태도도 무사태평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GDP 대비 6%에 육박(2004년 기준)한다는 것은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실제 경제력보다 6% 만큼 더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미국의 저축률이 제로 내지 마이너스 수준에서 계속 머물고 있는 것은 미국인들이 빌린 돈을 갚을 마음이 별로 없다는 의사표현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빚꾸러기가 소비를 줄이지도 않고 저축도 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은 파산에 이르는 것이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윌리엄 클라인은 지난해 9월에 발간한 저서 〈채무국 미국〉에서 "미국이 현재의 재정정책 등을 수정하지 않으면 2010년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1조2000억 달러로 GDP의 7.5~8%, 대외순채무는 8조 달러로 GDP의 50%에 이를 것"이라며 "나아가 2024년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14%, 대외순채무는 GDP의 135%를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부 경제전문가들, 특히 미국 내의 보수적인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고 난리법석이냐고 반문하거나, 설사 미국의 쌍둥이 적자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미국 탓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적자는 좋은 것(Deficits are good)"이나 "영원한 공짜 점심(Perpetual free lunch)"의 관점은 앞의 경우에,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의 관점은 뒤의 경우에 해당한다.
◇"적자는 좋은 것"…?
"적자는 좋은 것"이라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미국에 경상수지 적자가 쌓이는 이유는 한마디로 미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잘 살기 때문이라고 본다. 미국이 무역상대국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최근 유럽이나 일본이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것은 그 나라들의 소비가 둔화되고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리처드 쿠퍼 하버드대학 국제경제학 교수는 "현재 미국은 세계 "잉여저축"의 10%를 끌어당기는 자석"이라며 "미국은 투자하기에 최적의 장소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은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들은 오히려 전세계 다른 나라들이 시장친화적인 개혁, 즉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면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가 자연히 해소될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이런 논리에는 두 가지 오류가 들어 있다. 먼저 미국이 고수익을 보장해주는 매력적인 투자장소라는 주장은 미국경제가 소비가 아니라 투자에 의해 견인될 경우에나 맞는 소리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 유입되는 자금은 주로 외국의 중앙은행들이 공적자금을 들여 미국 국채를 구입하는 데서 나오고 있다.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은 민간의 투자자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오류는 미국이 바라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국가 간 경상수지 불균형을 균형으로 되돌리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다는 역사적인 증거가 전혀 없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한 공짜 점심"…?
그런가 하면 달러 가치만 저하시키면 GDP의 5% 정도의 경상수지 적자는 손쉽게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미국의 해외자산 대부분이 달러가 아닌 현지 통화로 표시된 것이어서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자동적으로 해외자산 수익이 늘어나 미국의 빚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될 때만 성립한다. 첫째, 사람들이 달러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미리 예상하지 못 해야 한다. 사람들이 달러 가치의 하락을 예상하게 되면 달러 가치 하락에 따른 자산수익 증가라는 기대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해외 투자자들이 현재의 금리에서 미국 자산을 보유하는 것에 계속 만족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금리인상 행진이 종료되고 EU, 일본 등에서 금리인상의 신호가 나오고 있는 현 상황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런 두 가지 조건이 언제까지나 계속 유지될 수는 없는 게 당연하다.
미국 뉴욕 시에 있는 국제경제 연구소인 "루비니 국제경제모니터(RGE Monitor)"의 누레일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브래드 세처 옥스퍼드대학 연구원은 2005년 "미국 대외불균형의 지속가능성"이란 논문에서 "GDP 대비 무역적자가 GDP의 5% 수준에서 유지되면 10년 후인 2015년에는 GDP 대비 해외순채무가 GDP의 90% 정도로 늘어날 것이고, GDP 대미 무역적자가 약 8.5% 수준에서 누적된다면 2015년 부채비율이 GDP의 100%에 이를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통상 해외순채무가 GDP의 50%를 넘으면 대외부문에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보는 경제학의 상식을 감안한다면 아무리 미국이 기축통화국으로서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해도, 그런 빚꾸러기 국가에 영원히 자기 재산을 묶어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
한편 "메이드 인 차이나"의 관점은 쉽게 말해 미국 대외불균형의 원인이 미국이 아닌 중국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올해 2월에 정식 취임하게 될 벤 버난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지명자가 바로 이 논리의 신봉자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와 유럽 등지에서 큰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가 나고 있으므로 이에 따른 잉여자금을 흡수해줄 곳으로 매력적인 투자대상 자산을 가진 미국이 선택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곧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에서 초과저축이 발생하는 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관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로 미국의 정치인들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논리대로라면 미국의 대외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없는 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문제의 진원지가 중국이기 때문에 아무리 미국이 재정정책을 잘 해봐야 경상수지 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미국민들에게 설명해 납득시키기만 하면 적어도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태도를 취한다.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도 최근 "재정적자를 1달러 감소시켜도 경상적자는 20센트밖에 감소하지 않는다"는 한 연구결과를 인용하며 재정정책의 무력함을 호소한 바 있다. 또 미국의 정치인들 중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한 거시경제 모델을 인용해 "재정적자를 1달러 줄여도 경상적자는 40센트 밖에 줄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 수출을 통해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바람에 미국이 어쩔 수 없이 돈을 많이 쓰게 됐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올바로 말한다면, 미국이 자국의 엄청난 빚을 메우기 위해 중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잉여저축을 다 빨아들였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메이드 인 차이나"의 관점이 지닌 또 다른 오류는 최근 미국에 흘러든 자금 중 상당 부분이 외국의 중앙은행들이 미국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공급된 것인데 이것을 초과저축, 즉 "민간"의 저축이 미국으로 흘러든 것으로 잘못 보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관점에서 가장 비논리적인 것은 중국이 애써 번 돈을 계속해서 미국에 쏟아부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미국이 돈을 빌려다 투자는 하지 않고 소비에만 써버리는 걸 이제는 알 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데 언젠가 이런 돈의 흐름이 역전될 것이라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 혹시 알긴 아는 것이라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모르는 체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노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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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경제, 이대로 가다간 "하드랜딩" 하고 만다"
[빚꾸러기 미국, 위태로운 세계경제 3]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2006-01-19
미국의 쌍둥이 적자(twin deficits)가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다는 경고는 이미 몇 해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미국이 곧 망할 것처럼 몇 년 전부터 호들갑을 떨었지만 현재 미국경제와 부시 행정부는 저토록 건재하지 않느냐고,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이 그렇게 쉽게 망하겠냐고….
맞는 말이다. 미국은 분수에 넘치는 과소비와 명분 없는 전쟁을 계속하면서 이를 다른 나라들로부터 빌린 달러로 충당하는 비정상적인 경제구조를 놀라울 정도로 오랫동안 "잘" 유지해 왔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였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는 세계 최고의 수출품인 "달러"를 찍어내서 얻는 이익, 즉 미국의 시뇨리지가 해외의 잉여달러를 빨아들여 죽어가는 미국경제에 산소를 공급해준 덕분이다. 특히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달러재활용(dollar recycling)"이라는 놀라운 재활용 정신을 발휘하며 미국경제의 산소호흡기 역할을 떠맡아 왔다.
그러나 미국경제가 재생불능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한 조정(adjustment)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 경상적자와 재정적자를 합쳐 국내총생산(GDP)의 10%(2004년 기준)가 넘는 경제는 결코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불안한 기초 위에 형성된 달러의 가치는 필연적으로 하락할 것이고, 달러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 상실이 이를 가속할 것이며, 그 결과 미국 경제가 불황에 빠져드는 반전이 일어나는 시기가 분명히 올 것이다.
그래서 현재 세계 경제전문가들의 관심은 미국경제가 쓰러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미국경제의 조정(adjustment)이 과연 언제 어떻게 일어나느냐에 쏠려 있다.
"미 경상적자가 GDP 8% 넘으면 전세계 저축으로도 감당 못 한다"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최근 경상수지가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되는 경험을 한 25개의 국가들을 연구한 결과 대부분의 국가들이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5% 수준에 이른 시점에서 통화의 절하와 경기의 침체를 동반한 조정을 경험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현재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6%에 육박하고 있는데도 세계 기축통화 발권국가로서의 시뇨리지 이익에 힘입어 경상적자가 더욱 확대되는 상태를 지속시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돼 달러화에 대한 세계 투자자들의 신뢰가 유지될 수 없는 정도에 다다르면 이런 시뇨리지 효과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경상적자가 GDP의 8%(2004년 기준)보다 많아질 경우 이는 전세계의 초과저축을 모두 흡수해야 보전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물론 미국이 전세계의 저축을 100% 흡수하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미국의 경상적자가 GDP의 8%에 도달하면 이와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대외불균형 미국경제의 향후 행보…2006년~2010년에 탈 나나?
지난해 12월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발표한 "미국의 대외불균형 조정 시나리오와 시사점" 보고서에는 앞으로 미국의 대외불균형 문제가 언제 어떻게 조정될 것인지에 대한 3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되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시나리오별 조정 과정">
시나리오 1 시나리오 2 시나리오 3
급격한 조정
시작 시점 2009년 2006~7년 사이 원만한 조정
재정수지 연평균 -3.5%대 지속 연평균 -3.5%대 지속 2012년 이후
흑자 반전
무역수지 · 2006~8년 : -5%
· 2009년 이후 : 점차 개선 · 2006~7년 : -6.5%
· 2008년 이후(2007년 이후) 점차 개선 -1%
(2012년)
환율 · 2006~8년 : 5% 절하
· 2009년 이후 : 35~40% 급락 후 소폭 상승 · 2006~7년 : 변동없음
· 2008년 이후 : 20~30% 급락 25%까지
점진적 절하
경제성장률 · 2006~8년 : 3%
· 2009년 이후 : 경기 침체 후 2% 미만의 성장정체가 5년 이상 지속(마이너스 성장도 가능) · 2006~7년 : 3.5%
· 2008년이후 : 경기침체가 발생하여 1%미만의 성장정체가 2년간 지속된 후 반등 2~3%대
지속
자료 : 삼성경제연구소(SERI)
최악의 시나리오: 당장 미국경제 위기 닥친다
먼저 미국 정부의 재정정책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달러화 가치의 조정도 일어나지 않을 경우, 미 쌍둥이 적자의 반전 시점은 2006년이나 2007년으로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시나리오 2)
부시 정부가 감세 및 사회보장비 지출의 확대를 특징으로 하는 공화당 전통의 경제정책을 고수하면 미국의 재정 부문은 향후 10년 간 연평균 GDP 대비 3~3.5%의 적자를 지속할 것이다.
한편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통화가치 상승 등이 일어나지 않고 달러화 가치가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소폭의 상승세를 보인다면 이르면 올해 안에 미국의 무역적자는 GDP의 6.5%, 경상적자는 GDP의 8%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미국경제에 대한 해외투자자들의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고 금리가 급등하는 등 급격한 조정이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 경기침체를 동반한 급격한 조정이 단기적으로 이뤄진 후에는 향후 2년간 1% 미만의 성장정체가 있을 예정이다.
달러화 가치 떨어지면 위기는 4~5년 미뤄질 것
한편 미국 정부가 현재의 경제정책을 고수하는 가운데 달러화 가치가 주요 통화들에 비해 5% 이하로 조정되는 경우 쌍둥이 적자로 인한 위기는 2009년 이후로 몇 년 정도나마 미뤄질 수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 1)
달러화가 주요 통화 대비 5% 절하되면 무역수지 적자는 GDP의 5% 수준에서 그럭저럭 유지될 수 있지만, 경상수지 적자는 대외부채 누적에 따른 이자 부담이 증가함에 따라 악화될 것이다. 그 결과 2009년 대외순채무는 GDP의 55%에 달하게 될 것이고 바로 이때 달러화의 급락과 금리의 급상승을 동반한 급격한 조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전세계의 많은 경제전문가들도 구체적인 수치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이르면 올해 안에, 늦어도 2010년 내에는 이런 급격한 조정이 일어날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캐서린 맨 존스홉킨스대학 국제학 교수는 미국의 경상적자가 GDP 대비 13%(2004년 기준)에 이르는 2010년이 되기 전에 미국경제가 급격한 조정을 겪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국제개발센터(CGD)의 윌리엄 클라인 박사도 미국의 경상적자가 GDP의 8%(2004년 기준), 대외순채무가 GDP의 55%(2004년 기준)에 이르는 2010년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보았다.
국제공조에 힘입은 연착륙 시나리오
물론 이런 급격한 조정 시나리오와 다르게 미국의 쌍둥이 부채가 완만한 속도로 조정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이런 연착륙(soft landing)이 가능하려면 미국은 현재의 재정적자를 2% 미만으로 줄여야 하고 달러화의 가치도 주요 통화에 비해 25% 정도 절하돼야 한다. 이 경우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3% 대에서 유지되면서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도 완만하게 해소된다는 것이다. (시나리오 3)
이는 물론 부시 정부가 쌍둥이 적자 문제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재정수지의 개선에 힘씀과 동시에 국제적 공조를 통해 달러화 가치를 조정해나갈 것이라는 가정 아래 만들어진 시나리오다.
이대로는 경착륙 가능성이 높다
지난 몇 년 동안 국제통화기금(IMF), 선진7개국(G7), 전세계의 경제학자들이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세계경제의 불균형(imbalance) 문제를 지적하며 미국경제의 연착륙(soft landing)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도록 국제적 차원에서 노력하자고 촉구해 왔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서 개연성이 더 높은 시나리오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국제경제의 불균형이 지속되다가 이런 불균형 상태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위기 국면을 맞아 급격한 조정, 즉 경착륙(hard landing)이 일어나는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미국의 경상적자는 GDP의 3%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적자가 이 수준에서나마 유지되면 현재 GDP의 28%에 달하는 미국의 해외순채무를 줄이지는 못할지언정 더 늘어나는 것만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GDP 3% 수준의 경상적자는 미국의 평균 경제성장률과 실질이자 수준을 감안한 "외채 증가 저지선"인 셈이다.
미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에드윈 트루먼 박사에 따르면 미국의 경상적자를 현재의 절반 수준인 GDP 대비 3%로 줄이려면 미국 국민들이 각각 1인당 2350달러의 부담을 져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국의 경기둔화로 줄어들게 되는 1인당 GDP 1350달러에 달러화 가치의 상승으로 인한 무역손실액 1000달러를 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지 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의 정치인들이 대부분 쌍둥이 적자의 심각성을 못 본 체하고 필요한 조정을 임기 중에 하지 않고 뒤로 미루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미국 국민들에게 각각 2350달러의 비용을 부담하라고 주장해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태롭게 할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경제정책에 관한 한 미국 정계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스칼렛 오하라"식 처방이 유행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달러화 가치 하락도 미국인 과소비 못 막는다
게다가 미국의 경우 달러화 가치를 감소시켜도 수출이 늘어나고 수입이 줄어들어 무역수지가 개선되는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 환율의 변화가 수출품과 수입품의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한 "환율의 전이효과(exchange rate pass-through)"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린다 골드버그 박사와 스페인 나바라 대학의 호세 마누엘 캄파 교수가 공동 연구한 바에 따르면 달러 가치에 10%의 변화가 생기면 미국 내 수입품의 가격 변화는 3개월 안에 고작 2.5%, 몇 년이 지나도 4%를 초과하지 않는다고 한다. 연준의 자체 연구결과에 의하면 환율의 전이효과는 아예 제로에 가깝다.
따라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한다 해도 미국인들의 구매력은 별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는 달러화 가치에 조정이 일어나도 미국인들이 과소비를 계속해 경상적자가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세계경제가 성장하면 불균형 문제는 악화된다
한편 미국이 아닌 나머지 국가들, 특히 아시아의 정치인들은 미국의 대외적자가 확대됨으로써 생기는 경제적 이득으로 자국에서의 정치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자국 화폐 가치의 인상 등을 포함하는 국제적 조정(global adjustment)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자국 정부가 언젠가는 이 엄청난 미국의 대외불균형 문제에 대한 비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정책을 수립하지 않는다. 현재의 불균형 상태가 계속 유지될 수 있으리라는 비합리적인 가정 하에 이들이 움직이면 세계경제의 불균형은 더욱 더 심각해진다.
현재 세계경제 구조는 미국을 제외한 세계 전체 경제가 연간 1%만큼 성장하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0.7%만큼 늘어나는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세계경제가 1%로 성장할 때 미국의 수출은 1%만큼만 늘어나지만 수입은 이보다 훨씬 높은 1.7%만큼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만의 고유한 현상이다. 다른 국가들의 경우 세계경제가 성장하면 덩달아 수출도 늘고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며 국내 경기도 호전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세계경제의 호황이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문제는 심각해질 것이고 그 결과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는 더욱 더 심화될 것이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할까
이처럼 미국인들도, 미국 정부도, 다른 국가의 정부들도 당장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한 유인(incentive)들만 많은 상황에서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는 한계점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앞으로만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모두 세계경제를 균형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현재의 불균형 상태를 뒷짐 지고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미국경제와 세계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미국을 포함해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게임을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고양이(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세계경제의 불균형)의 위협은 알지만, 누구도 섣불리 나서서 그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노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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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가 떠안는 미국發 스트레스들
[빚꾸러기 미국, 위태로운 세계경제 4] "FTA 압력"에서 "전쟁터 찾기"까지
2006-01-20
미국의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와 다른 나라들의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는 동전의 양면이다. 빚꾸러기 미국이 세계경제에 일으키는 문제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대응 방식을 살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왜 이렇게 고단할 수밖에 없는지가 쉽게 이해된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가 국제 정치경제의 다이내믹스에 가장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 절상 압력" 넘어 "제2의 플라자합의" 주장까지
미국 정부가 자국의 엄청난 빚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온전히 바깥세상을 겨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중국을 향해 "세계의 식량자원, 석유자원을 불가사리처럼 빨아들이는 나라", "값싼 수출품과 덤핑으로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나라" 등으로 비난하면서 전세계에 "중국 위협론"을 퍼뜨리는 데 몰두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무역수지 흑자, 외국인 직접투자(FDI), 위안화 절상을 노린 단기성 투기자금 유입 등으로 급증하자 미국의 부시 정부는 "풍부한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중국이 위안화의 추가 절상을 견뎌낼 수 있다는 증거"라며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압력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11월 의회에 제출한 "국제경제 및 환율정책에 관한 하반기 연례보고서"에서 "2005년 7월 중국이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 환율 페그제를 폐지하고 미 달러화 대비 위안화의 명목환율을 2.1% 절상하는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안화의 절상률은 0.35%에 그쳤고 환율의 유연성도 향상되지 않았다"며 추가적인 위안화 절상을 촉구했다.
미국 민주당의 찰스 슈머 상원의원과 공화당의 필 그램 상원의원이 발의한 "슈머-그램 대중국 공정무역 법안"도 2006년 상반기 처리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중국이 환율조작을 그만두지 않을 경우 중국의 대미 수출품 전 품목에 대해 27.5%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게다가 부시 정부는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까지 동원해 중국에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를 도입하라고 끈질기게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의 외환당국자들은 "중국경제에 불안정을 초래하지 않도록 위안화의 "자율화"는 느린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거듭 밝히고 있어, 당장 국제 외환시장에 충격을 줄 만한 수준의 급격한 위안화 절상 조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의 일각에서는 중국의 위안화 절상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세계의 다른 주요 통화들의 절상 문제를 국제 협상 테이블에 올리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른바 "제2의 플라자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플라자합의는 지난 1985년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의 재무장관들이 당시 GDP 대비 3.4%에 달했던 미국의 경상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러 가치의 인하 및 파운드, 프랑, 엔 가치의 인상 조정에 전격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이 합의의 결과로 엔/달러 환율은 1년 남짓한 기간에 243엔에서 157엔까지 대폭 하락했고, 미국은 급한 대외불균형의 불을 끌 수 있었다.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윌리엄 클라인 박사는 최근 "신(新) 플라자합의(The Case for a New Plaza Agreement)"라는 글에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현재의 절반 수준인 GDP 대비 3%로 줄여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해외 다른 통화들의 가치가 달러화 대비 25% 상승할 필요가 있다"며 선진 20개 국(G20) 주도 하에 "제2의 플라자합의"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라인 박사는 신 플라자합의에 참여할 필요가 있는 20개 국으로 일본과 유럽연합(EU)의 주요국 등 선진국들 외에 한국,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가들도 거명했다. 그가 주장하는 각국 통화의 "적절한 절상 폭"은 싱가포르 92.1%, 일본 62.4%, 중국 43.3%, 한국 19.2% 등이다.
한국에 대한 자유무역협정(FTA) 압력도 같은 맥락
한편 미국은 천문학적인 무역수지 적자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최근 세계 각국과의 쌍무적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 "미국 FTA 추진 동향과 전략"에 따르면 미국은 원래 양자간의 FTA보다 다자간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선호했으나, 최근 WTO의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지역무역협정(RTA)이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자 양자간 FTA 체결에 다시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까지 이스라엘 등 16개 국과 FTA를 체결한 미국은 지난 2002년 발효된 "무역촉진권한(TPA)"의 만료시한이 2007년 6월로 다가옴에 따라 올 한 해 FTA 체결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TPA란 대외교역 협상의 최종권한을 갖고 있는 의회가 포괄적인 협상권한을 행정부에 한시적으로 이양한 것으로, 이런 권한이양 조처에 대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전세계 교역대상국들에게 미국의 자유무역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통상 FTA 하나를 체결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최소한 1년이라는 점을 감안해 미국은 올해엔 FTA를 체결하면 가장 경제적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이는 "하나의 국가"에 올인하기로 했으며, 이를 위해 우선 25개 대상국 후보를 선정한 뒤 그 중에서 한국을 최종적으로 뽑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3일 한미 FTA 체결의 최대 걸림돌 중 하나로 여겨졌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 문제가 매듭지어짐에 따라 최근 한미간 FTA 협상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국 정부는 다음달 2일 "한미 FTA 추진 관련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 전세계의 잉여자본을 흡수해야 빚더미 위에 건설된 자국의 경제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미국은 그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구(IMF) 등을 동원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얼마나 이로운지를 끈질기게 설파해왔다.
그 결과 전세계의 자본자유화는 엄청난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OECD의 "자본자유화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을 제외한 OECD 29개 회원국들의 평균 자본자유화 수준은 89.3%에 이른다. 미국이 95%로 선두이고, 일본, 독일, 영국 등의 자본자유화 수준도 85%이다. 터키, 멕시코, 체코, 헝가리 등 신흥시장국가들의 자본자유화 수준도 평균 84.2%에 달한다.
한국 정부도 최근의 달러화 가치 급락에 대응해 2010년에 완료 예정이었던 자본자유화 조치들을 올해 안에 앞당겨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자본자유화 수치도 곧 85%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처럼 미국이 강력하게 추진해 온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때문에 미국 기업들이 대부분 초국적화된 결과 미국 자본은 미국 정부의 통제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런 자본들은 쌍둥이 적자 문제가 재부각돼 달러화의 가치가 의심되는 상황이 오면 다른 어떤 자본들보다 먼저 미국시장에서 발을 뺄 것이다. 그때 가서, 국적을 따지지 않는 자본에 대고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탄식해봐야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다.
2005년 하반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잇달아 정책금리를 올려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자 미국으로 다시 몰려든 자금은 대부분 외국인 소유의 자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미국을 빠져나간 미국 자본은 다시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댈 데는 전쟁뿐?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여겨봐야 할 것은 미국이 흔들리고 있는 달러의 위상을 지키고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 자리를 고수하기 위한 노력으로 국내적인 구조조정이 아니라 신보수주의적 패권주의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재정적자가 날로 악화돼 가는데도 부시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군비를 확장하며 다음 전쟁터를 고르고 있다. 지난 7일 영국 신문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와 미국 예산전문가인 린다 빔스 하버드대 교수는 "부시 정부가 공식으로 발표한 이라크전의 비용 외에 전쟁의 "숨겨진 비용"만 1조~2조 달러에 달한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이렇듯 미국은 군비를 확장하고 그 위세를 과시하는 패권주의 전략을 통해 전세계에 미국의 말을 듣지 않는 나라나 지역에 대해 침공하겠다는 위협의 신호를 보내는 한편 위태로운 미국경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석유 등을 포함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이 미국의 석유 확보를 위한 침략전쟁이었다는 것은 이제 세간의 상식이 되었다.
이에 대해 지난해 말 영국의 국제구호단체인 "워온원트(War on Want)" 등을 포함한 영미의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은 공동보고서를 발표해 "미국 고위층의 압력을 받은 이라크 임시정부가 석유개발권을 놓고 셸 그룹 등 미국계 석유회사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며 "미국의 계획대로 이라크 석유개발권이 다국적기업들에 넘어가면 이라크는 국부(國富)를 최대 2000억 달러까지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미국이 통제불가능한 수준의 경기침체에라도 빠져들면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은 이러한 패권주의적 전략을 더욱 강화하려고 할 것이 거의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이 이런 패권주의적 전략을 강화하면 할수록 역으로 "세계경찰"로서의 미국의 권위는 약화될 것이다. 이미 이란과 같은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과 베네수엘라 등의 남미 좌파 국가들이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른바 "악의 축"으로 부상했다.
"이대로 놔둘 순 없다"…대안의 모색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세계경제의 대외불균형이 작동하는 국제사회에서 "당장" 살아남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세계경제의 작동 원리를 재구성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현실적인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로 각국의 경제가 세계경제 속으로 편입된 상황에서 세계경제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자 세계 각국의 좌파 성향 지식인들과 정치인들, 진보적 비정부기구(NGO)들은 다양한 대안들을 내놓고 이에 대한 논의와 실험을 구체화하고 있다.
리처드 런컨은 그의 저서 "달러의 몰락, 세계경제의 몰락"에서 현재 세계경제가 공급 과잉으로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기 때문에 세계의 정부들이 공급축소의 공동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상주의자들 사이에서 "세계정부" 수립의 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한편 미국의 쌍둥이 적자 등으로 국제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이 날로 커져가면서 단기성 투기자본을 규제하자는 논의도 조금씩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1990년대 칠레가 실행했던 가변의무예치금제도(VDR)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 박사가 주장한 토빈세(Tobin"s tax) 등 그간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제도들이 영국의 워온원트(War on Want)나 프랑스의 아탁(ATTAC) 등 반(反)세계화 성향의 국제 NGO들 주도 하에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가변의무예치금제도는 유입된 해외자본의 일정 부분을 일정 기간 중앙은행에 무이자로 예치하는 제도이고, 토빈세는 투기성 단기자본인 핫머니가 국경을 넘을 때 부과하는 세금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달러화에 치중한 현재의 결제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국제 공용화폐인 특별인출권(SDR)을 보다 더 광범위하게 사용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SDR이란 금과 달러 외에 국제통화기금(IMF)의 운영축을 보완하기 위한 제3의 세계화폐다. 그러나 SDR을 더 많이 사용하자는 주장은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신인도를 떨어뜨려 미국경제를 급속도로 침체시킬 위험이 있어 오히려 위험하다는 반박을 받고 있다.
이르면 올해 3월경 국제외환시장에 모습을 드러낼 전망인 아시아의 단일통화 "아쿠(ACU: Asian Currency Unit)"도 달러화 위주로 돌아가는 세계경제에 대한 대안적 실험의 하나다. 그러나 아쿠도 EU의 유로화가 그랬던 것처럼 당장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아시아 경제권에서 달러의 영향력 축소를 우려한 미국은 국제통화기금 등을 통해 아쿠에 대한 견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여러 차례 아시아통화기금(AMF)의 창설 등 아시아 국가들의 독자적인 움직임을 여러 차례 무력화시킨 바 있다.
국제사회의 공식 해결노력 시동할까?
미국의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면서 주요 선진국 정부들의 속내는 편치 않다. 이들은 미국 경제가 붕괴되거나 급격한 조정 국면을 맞을 경우 자국의 정치·경제에 미칠 타격을 내심 염려하고 있다.
미국을 대체할 유일한 슈퍼파워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은 미국경제에 탈이 나 전세계에 저성장 기조가 형성되면 가장 많은 위협을 받을 나라다.
그동안 엄청난 속도의 경제성장에 가려져 있었던 빈부격차, 민족갈등, 종교갈등, 환경오염 등의 정치사회적 불안요소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유지돼 온 중국 정권의 존망이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공안당국에 따르면 2004년 한 해에만 7만4000여 건에 이르는 시위가 발발하는 등 중국의 정치사회적 불만들은 이미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경기침체에서 막 벗어나기 시작한 일본과 상이한 정치경제 구조를 가진 나라들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계속 중인 EU도 중국과 비슷한 이유로 미국경제의 몰락을 두려워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주요 선진국들은 선진7개국(G7) 회담 등을 통해 미국 쌍둥이 적자 문제의 심각성을 국제사회에 상기시키고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의지를 창출하기 위한 걸음마를 시작했다.
2005년 유로/달러 환율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프랑스 재무장관은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쓴 소리를 했다. 지난해 G7 정상회담 성명서에도 "미국친구들(American friends)도 (급격한 환율 변동이 지닌 위험성을) 명심해야 한다"는 문구가 삽입된 바 있다.
세계 자금흐름에 부는 역풍
한편 그동안 미국에 호의적이던 전세계의 자금흐름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해 고유가로 물기가 오르자 국내의 경기 과열을 우려한 미국 연준이 잇달아 정책금리를 올리면서 세계의 잉여자본은 미국으로 집중했고 그 여파로 전세계 주식시장은 타격을 입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미국이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위세를 잃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 미국으로의 자금 유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외국의 민간 자금이 아니라 외국의 중앙은행들이라는 것이다. 2005년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의 국채, 주식 등을 순매수한 규모는 6980억 달러에 달하는데 그 중 1394억 달러가 외국 중앙은행들이 사들인 미국의 국채, 국가보증 채권에 해당한다.
외국 중앙은행들이 이렇게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이유는 국내의 무역수지 흑자로 쌓여가는 달러를 처분해야 국내 물가가 안정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난 1997~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에서 배운 "학습효과"로 달러 표시의 외환보유고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외 정부의 공적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좋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미국 자산의 가격을 올리고 그 결과 기대 수익률을 저하시켜 민간 부문의 투자를 둔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낸다.
보다 긴급한 문제는 미국의 급증하는 해외자금 수요와 해외 각국의 외환보유액 증가에 따른 자본손실 리스크가 증가해 미국과 해외 중앙은행들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 외환보유액의 70%가량이 달러화 자산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0일 중국 외환관리국의 후샤오렌 국장이 "외환의 자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외환투자 영역을 넓히겠다"며 외환보유액의 다변화 가능성을 내비치자 국제금융시장이 한바탕 혼란에 휩싸였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중국 본토의 8189억 달러(2005년 말 기준)와 홍콩의 1243억 달러를 합치면 그동안 전세계 외환보유액 1위를 지켜 왔던 일본의 8469억 달러를 넘어선다는 점, 그런 중국 외환보유액의 70% 이상이 미국 재무부가 발행한 채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이런 발언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이렇게 풍부한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앞으로 원유 등의 에너지원을 확보하고 해외 기업을 상대로 한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으로 보여 국제금융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이 달러 자산을 매각할 경우 미 달러화가 추가적으로 하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해 2월에는 한국은행이 "외환보유 통화 구성을 다변화할 수도 있다"는 언급을 하자마자 국제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고 미국 주식시장이 쇼크를 겪은 적도 있다. 2006년 2월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2146억6000만 달러로 이는 세계 4위 수준이다. 올해 들어 한은도 자본거래의 전면 자유화로 해외 투자 활성화가 본격화되면 외환 보유액의 다양한 활용 방안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외환보유액 다양화의 움직임에 대해 국제 투자은행의 한 관계자는 "중국과 한국이 실제로 외환보유액의 다변화를 하지 않더라도 투기세력들이 이 문제를 공론화해서 국제금융시장을 교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노주희/기자
200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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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격랑 견뎌낼 기초체력 있나?
[빚꾸러기 미국, 위태로운 세계경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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