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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간 핵 시비 - 어제와 오늘/이 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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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3-11-23 00:00 조회3,0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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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2003년 11월22일 로스엔젤레스에서 범민련 재미본주, 재미동포서부연합회, 민족통신, 통일맞이나성포럼, 그리고 LA노사모 공동 주최로 개최된 <<북핵문제와 6자회담의 전망>>이라는 주제발표들 중 하나이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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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이활웅[통일문제 재미평론가, 자유기고가]

1. 배경

leehwalwoong.jpg1953년 7월 27일 발효된 한국 휴전협정은 3개월 내에 관련국들의 고위급회담을 열어 한반도에서의 외국군 철수를 포함한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하기로 규정하였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은 3개월이 되기 전 그 해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미군이 남한에 무기한 주둔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한국전쟁을 공식으로 종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차단해 버렸다. 휴전 후 9개월 만인 1954년 4월 26일에야 겨우 열린 제네바 정치회담은 외국군 철수를 포함한 한번도 평화보장에 관한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그 해 6월 15일 결렬되고 말았다. 그리고 남북한과 미국은 휴전협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군비증강을 추진해 나갔다.

2. 발단

한반도 핵 문제는 미국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미국은 휴전협정 제13항 d절의 규정을 무시하고 1950년대 말부터 비밀리에 남한에 핵무기를 반입하여 60년대 후반에는 핵무장을 완료했다. 미국은 이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방침(NCND)을 세웠다. 그러나 한때 남한에는 800기 내지 1200기의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남한에 배치된 미국의 핵무기에 대해 북한은 계속해서 강력히 항의하며 한반도의 비핵화를 주장했으나 미국은 NCND 방침에 따라 일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때 남한의 정부와 언론 및 일반 국민은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주장을 냉소 또는 반박하며 심지어 미국에 의한 대북 핵 공격을 은근히 바라는 여론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소련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에 따라 1991년 9월 28일 대폭적인 핵 군축계획을 발표하였으며 이에 따라 한반도의 핵무기도 철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북은 그 해 12월 31일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3. 북한 핵문제

가. 제1차 협상

북한은 1964년 소련에서 입수한 소형 원자로를 영변에 설치한 이래 원자력 시설을 계속 확장해 나갔다.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을 위시한 서방제국은 북한이 핵무기개발계획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으며 1989년경부터는 북한에 대해서 국제원자력기구와 핵 안전협정을 체결하고 핵사찰을 받으라는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1992년 IAEA와 핵 안전협정을 체결하고 전후 6차에 걸쳐서 IAEA의 핵사찰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과 IAEA는 북한이 핵무기제조계획을 숨기고 있는 듯 하다면서 IAEA의 특별사찰을 받으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압력이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거친 제재도 불사한다는 단계에 이르게되자 북한은 마침내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북한과 미국은 1993년 6월(뉴욕), 7월(제네바) 및 94년 8월(제네바)의 3차에 걸쳐서 힘겨운 협상을 버린 결과 1994년 10월 21 제네바에서 마침내 "합의된 요강"(Agreed Framework)의 형식으로 핵문제를 타결했다. 그 골자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북한은 영변에 있는 중수로 2기와 방사화학실험시설의 건설 및 운용을 중단하며, 미국은 북한에 경수로 2기(2000mw)를 2003년 완공을 목표로 제공해 준다. 그 동안의 전력 공백을 충당하기 위해 미국은 북한에 대해 경수로 1가가 완성될 때까지 매년 50만턴의 중유를 공급해 준다. 중수로에서 나온 폐 연료봉(약 8000개)은 밀봉보관처리하며 경수로 완성 후 중수로 시설과 같이 북한 외로 반출 폐기한다.

2)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원칙을 수락하고 남북한간의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준수하며 핵 확산금지체제에 잔류한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무력(핵무기 포함)불사용을 공식으로 보장하며, 무역제재를 해제하고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을 목표로 양국관계를 정상화해 나간다.

이에 따른 북한측 약속은 그 성질 상 즉시 이행되었다. 그러나 핵 타결 직후 실시된 미국 총선에서 공화당이 승리함으로써 미국측 약속은 불이행되거나 지연되었다. 특히 미국측의 공식적인 무력불사용 보장이 이행되지 않아 북한측을 불안하게 하였다.

1998년 8월 말 북한은 일본열도를 넘어가는 장거리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이에 미국은 페리 전 국방장관으로 하여금 대북정책을 재검토케 하였는데, 페리는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거래를 트는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을 권고하였으며, 이에 따라 북미관계가 점차로 풀려서 마침내 2000년 10월 방미중인 조명록 특사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사이에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그 중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상호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재로 전환한다.
2)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내정에 불간섭하며 외교관계를 발전시킨다.
3) 경제, 무역관계를 발전시킨다.
4) 북, 미 기본합의를 준수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도모한다.
5) 클린턴 대통령이 방북초청을 수락한다.

이 합의를 계기로 반세기에 걸친 북미간 적대관계가 마침내 청산되어 한반도의 평화가 드디어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는데, 그 직후에 실시된 미국 대선의 계표를 둘러싼 법정시비 끝에, 공화당 후보 죠지 부시가 당선자로 판결 받음으로써,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나. 제2차 협상

새로 등장한 부시의 공화당정부는 ABC(Anything but Clinton)정책과 대북 불신 및 편견에 따라 북미간 기본합의와 공동성명을 전혀 무시하고 대북 접촉을 전면 중지했으며, 남한의 대북 "햇볕정책"에도 제동을 걸었다. 부시는 북한을 "악의 축"의 나라로 지칭했으며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심한 인신공격을 가했다. 또 미 국방부는 북한을 핵 선제공격대상국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북미대화의 재개를 촉구하는 여론에 밀려 부시는 2002년 6월 북한과 회담하기로 결정하였으며 그 해 10월 국무부 켈리 차관보를 평양에 파견했다. 3일간의 평양방문을 마치고 10월 6일 서울에 들른 켈리는 북한이 핵계획 진행을 시인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10월 16일, 미국은 돌연 북한이 켈리 특사에게 핵 계획의 존재를 시인했다면서 북한이 핵계획을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즉각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이 북한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불가침을 확약하고 경제발전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할 용의가 있다고 제의했으나 미국은 이를 일축하고 북측이 94년의 핵 협정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면서 핵 포기 없이는 아무 협상도 없다고 못박았다. 그리고 11월 11일 미국은 핵 합의에 따른 대북 중유제공의 중단을 결정했다. 이에 맞서 북한은 12월 12일 영변 핵 시설의 재 가동을 시작했으며 12월 13일 IAEA 핵 감시원들에게 출국을 명하고 12월 21일에는 핵 시설에 대한 IAEA의 감시장치를 제거했다. 그리고. 2003년 1월 10일 핵 확산금지 조약으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했다. 이에 미국은 북한을 무력으로 치느냐 아니면 경제봉쇄로 묶느냐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버렸으며 한반도에는 새로운 위기감이 고조되어 갔다.

다행이 중국의 주선으로 북한과 미국은 2003년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베이징에서 3자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북한은 단계별 동시행동원칙으로 북한의 핵사찰, 핵의 영구폐기 및 미사일통제 등을 받아드리되 미국은 북한에게 불가침약속과 체제보장, 경제지원, 경수로건설과 중유공급재개 등을 실시할 것을 제의했다고 보도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반응이 없자 북한은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북한은 6월 말, 영변의 사용 후 연료봉 8000개의 재처리를 완료했음을 미국에 통보했다.

8월 초에 이르러 다시 중국의 주선으로 북한과 미국이 6자회담(남, 북, 미, 중, 러, 일)개최를 수용함으로써, 8월 27일부터 29일까지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열렸으나 아무 구체적 성과 없이 다시 만난다는 약속만 하고 폐막되었다. 이에 북한은 미국이 북한의 무장해제를 원한다는 것이 명백해진 만큼 북한은 이런 종류의 회담에 더 이상 참가할 필요가 없으며, 자주권을 고수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로서 핵 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가는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성명을 냈다.

두 달이 지난 10월 19일 부시는 뱅콕에서 북한이 핵무기 폐기조치를 취한다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다자간 문서에 서명할 용의가 있다고 언명했다. 이에 대해 북한 외무성은 10월 25일 "우리는 서면 불가침담보에 관한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우리와 공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고 동시행동원칙에 기초한 일괄타결을 실현하는데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10월 30일 방북중인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 우방궈가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하고 북핵 6자회담 재개에 원칙적으로 합의함에 따라 제2차 6자회담이 12월중에 재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3. 북한의 핵 능력

94년 북미합의의 미국 측 약속은 주로 시간을 두고 이행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당초부터 북한의 붕괴를 예상하고 그런 약속을 끝까지 지킬 의향이 없었다. 실제에 있어서 미국은 약속이행을 질질 끌기도 하고 아예 깔아뭉개기도 했다. 그러자 북한은, 특히 북한군부는,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만약에 대비해 파키스탄으로부터 은밀히 우라늄농축기술을 도입한 것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다.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북한의 우라늄기술도입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지만, 그때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 중이던 대북관계 개선교섭이 매듭을 지으면 자연 해소되는 문제로 보고 심각히 생각하지 않았으며 부시행정부가 들어설 때 그 정보를 인계해 주었다. 따라서 부시행정부는 북한의 우라늄농축계획을 이미 2001년 초부터 알고 있었는데, 1년 9개월이 지난 후 별안간 이 문제를 북한에게 따지고 든 것이다.

미국은 그때 북한이 우라늄을 통한 핵무기계획의 존재를 시인했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은 켈 리가 핵 계획의 존재여부를 하도 고답적으로 따지고 들기에 북한은 자위권을 지키기 위해 핵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질 수 있다고 응수해 준 것이라고 그 때의 경위를 설명한 바 있다. 실제에 있어서 미국의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인사들도 있었다. 또 북한의 우라늄 기술 수준은 아직 미약하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은 북한이 적어도 1, 2개의 핵탄두를 이미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종전까지 핵무기 보유설을 부인했으나, 제2차 핵 협상 과정에서 강력한 핵 억지력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사용 후 연료봉 8000개의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5, 6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풀루토늄을 추출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4. 미국의 선택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에게는 북한과의 협상타결, 현상교착 및 북한붕괴 추구의 세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 협상타결

핵 협상을 타결하고 북한과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선택이다. 이것은 1994년과 1999년에 이미 시도된 방식이다. 그러나 그 때의 시도는 북미간의 상호 불신으로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미국은 94년 방식의 재탕은 없으며(will not buy same horse twice), 북핵 폐기는 검증가능하고(verifiable), 불가역적이며(irreversible), 완벽한(complete)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미사일, 생화학무기, 재래식 무력, 인권, 마약 및 위조지폐거래 문제 등도 타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북한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불가침 확약을 요구하지만, 부가하여 북한의 주권 존중, 적대정책 지양 및 경제발전 방해 지양 등을 요구하고 있다.

북미간 새 협상의 타결여부는 북한이 과연 미국이 원하는 검증(intrusive inspection)을 수락할 수 있을 것이며 또 핵문제 외에 미사일이나 생화학무기까지는 혹 모르겠지만, 재래식무력, 인권, 마약, 위조지폐문제 등까지도 미국과 협상할 용의가 있겠는가, 그리고 미국이 과연 북한이 만족할 만큼 불가침과 주권 존중 및 정치적 경제적 적대정책 지양의 약속을 해줄 수 있겠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나. 현상 교착

공존을 위한 협상이 결렬되거나 협상이 되더라도 상호신뢰가 없어서 협상의 결과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에는 현상의 교착상태가 계속되거나 재래될 것이다. 그런 경우 북미간 대치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북한은 핵 개발계획을 계속 추진할 것이며, 미국은 북한에 대한 봉쇄정책을 강화하며 UN 및 국제기구를 통한 정치적, 경제적 대북 제재를 강행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조치가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둘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다. 북한체제 붕괴 추구

핵문제와 미사일 및 기타 문제를 타결하고 북한과 공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상교착상태에 만족할 수도 없으면 남는 방법은 북한 체제붕괴를 추진하는 길밖에 없게 될 것이다.

1) 그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전쟁이다. 미국은 유사시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계획을 이미 가지고 있으며 그에 필요한 무기도 준비중에 있다. 물론 주변제국의 반대나 비 협조, 그리고 이라크에서의 고전 등으로 당장에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치르기 어려운 사정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 정세가 호전되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한반도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태세를 미국은 갖추고 있다.

2) 북한 체제붕괴를 가져오기 위한 간접적인 방법으로 전쟁은 아니하되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여 북한체제를 약화시켜서 궁극적으로는 체제의 내부파열을 초래한다는 선택으로서 이는 미국이 이미 음성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방식이다.

부시와 공화당정권은 일단 북한과의 공존을 위한 협상타결을 추진하되 북한이 원하는 체제안전보장과 경제적 반대급부는 6자회담을 통한 다자간 문서로서, 즉 미국의 책임과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형태로 제공하면서 북한의 핵 능력을 실질적으로 거세한 다음, 북한체제의 붕괴를 목적으로 한 간접적 공작을 강화하는 일방 필요하면 무력도 사용해서 궁극적으로는 북한체제의 붕괴를 성취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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