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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미주기독학자가 "주체사상의 종언"을 읽고...[200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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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2-11-08 00:00 조회4,2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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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eblo.jpg[사진:미 간첩선 프에블로호가 이북 수병들에게 나포되어 미 대통령이 역사적으로 최초 사과문을 쓰고 체포된 미군들을 인수받게 되었던 사건당시(1968년)의 배-이 배는 동해에서 평양시 대동강변으로 옮겨와 1806년 9월2일 미 해적선 <샤만 호>가 우리 나라를 침략하려다가 김응우 선생(김 정일 국방위원장 증조)을 비롯한 평양시민들이 힘을 합쳐 그 해적선을 격침시켰던 바로 그 장소에 <프에블로 호>를 정박시켜 놓고 민족자주 역사의 산 교훈을 교육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2001.8.15 촬영)]

부시 미행정부의 호전정책이 가속화 되면서 미국의 전쟁정책을 부추기는 인사들은 이북에 대한 온갖 중상과 모략으로 세계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세계양심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조미간에 맺어진 제네바협정에 대한 조항들을 자신들이 이행하지 않고서도 검증도 되지 않은 핵문제를 들고 나와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조일관계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와중에 민족내부의 분열주의 세력들은 미국의 전쟁정책에 편승하여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도 체감하지 못하고 또다시 <6.15남북공동선언>을 파기하려고 날뛰고 있다. 한편 미주내 일부 목사들은 미정보국과 연계하여 민족화해를 방해하고 남북관계를 악화시켜 온 황장엽 같은 인물을 미국에 초청하여 이북 흠집내기 강연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과연 누가 이북을 논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미국 오아이오주 심손대학교 종교학 교수인 신은희 박사가 민족통신 독자란에 올린 <누가 북한을 논하는가>라는 글이 이 시기에 시사하는 바가 큰것으로 진단되어 여기에 소개합니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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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찬일의 주체사상의 종언을 읽고..>



이 항변적인 질문은 저자 안찬일이 책머리에서 던지는 물음이다. 안찬일은 평북 의주에서 태어나 26년간의 북한생활을 마감하고 1979년 군사분계선을 넘어 한국으로 귀순한 인물이다. 그는 1997년 “주체사상의 종언” (서울: 을유) 이라는 책을 통하여 현대 북한사회의 붕괴와 주체사상의 몰락을 서술하고 있다.

나는 이 글에서 분단의 아픔이 출산한 귀순자 안찬일이 겪었던 한 개인의 역경을 무차별적으로 비난하고자 하는 병든 마음이 전혀 없다. 그도 결국 분단시대의 희생자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한 개인의 인간적인 고생이 엮어있다고 해서 그가 세상에 내놓은 “주체사상의 종언”에 대하여 감상적인 “사상적 흥정”을 할 수만은 또한 없는 것이다.

그가 책 첫 장에서 밝혔듯이 이 책을 쓴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오늘날 북한에는 주체사상이 없다는 것을 분석”하기 위함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분석하여야만 하는 그의 어려운 출발에서 이미 감지 할 수 있듯이, 주체정신은 북조선 인민들의 깊은 내면적 수면 아래 여전히 견고하게 뿌리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그가 이 책에서 묘사하는 북한사회는 김일성 부자의 권력세습의 결과로 “더 이상 무너질 것이 없는 나라”이다. 그러나 과연 민족이 분단된 이후로 무엇이 무너진 것일까. 서양식 민주주의가 지배하지 않아서 무엇이 무너진 것일까. 가진 자들의 횡포로 없는 자들의 인권이 자연스럽게 유린되는 미국식 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아서 무너진 것이 과연 무엇일까. 오늘날의 북부조선의 경제위기가 과연 주체사상의 <수령 론> 때문인가. 과연 주체사상은 개인의 우상화만을 통하여 혈통세습을 하는 삼류종교성의 사상인가.

세계 어느 사상사를 보아도 사상과 그 사상의 실현에 한치의 오차도 없는 사례는 없다. 이는 결국 어떤 사상이든 “인간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적 산물은 특정한 역사와 문화적 상황의 영향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 특수한 상황을 떠나서 비판할 수 없는 기본적인 법칙성을 갖고 있다. 서구의 기독교사상도 북조선의 주체사상도 이런 면에서 예외일 수 는 없을 것이다. 이론과 실제가 겸비되어 현장 속에 실천되는 것을 우리는 프락시스 (praxis)라고 한다. 프락시스란 어느 시공의 한 순간에 멈춰있는 시공 제한적 원리가 아니고 인간주체로 끊임없이 인간을 섬기고자하는 “사상”과 “적용”의 다이나믹한 <원운동 (cyclical movement)>의 원리이다 . 저자 안찬일은 이 책에서 주체사상과 북한사회체제의 그 다이나믹한 프락시스의 원운동의 원리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체제의 모순이나 실패를 통하여 사상의 종언을 고하여야 한다면 철학적 사형선고의 첫 대상은 주체사상이 아니고 아마도 서양기독교사상일 것이다. 예수라는 한 마을의 청년이 민중을 위해 싸우다 정치범으로 사형 받은 이후, 예수사상을 수호하는 많은 종교인들은 신격화과정을 통하여 결국 그를 신의 아들로 “우상화”하였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수많은 종교전쟁을 일으켰으며, 세계 어느 종교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여인대학살(witch hunting)의 만행을 저질렀으며 북미와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집단 인종청소 (ethnic cleansing)를 자행한 사상이었다 . 안찬일은 주체사상을 “조선식 나치즘”으로 비유하지만, 사상적 나치즘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주체사상이 아니고 서양기독교의 정치성에 타락한 종교사상일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이 시대 “종언” 되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21세기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의 담화 (1996년7월26일) 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주체사상 역시 고정불변의 진리로 모실 것이 아니고 우리민족이 당면한 난국을 헤쳐 나아가기 위하여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발전시켜 “사상개조”의 운동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다.

한민족의 분단 이후로 외세의 횡포와 세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주독립을 향하여 민족의 반을 함께 이끌고 존립하여야 했기에 형성되었던 아버지 수령과 어머니 당 그리고 수령과 당이 함께 호흡할 수밖에 없는 인민의 유기체적인 사회정치 생명체의 원리가 단지 개인권력의 압제의 수단이라는 것일까. 수령은 결코 “개인”이 아니다. 수령 론을 서양의 개인주의식 (individualism) 사고관점에서 보면 “독재”라는 개념으로 자동 연결된다. 안찬일의 논리대로 수령 론이 세습제의 정당성만을 위한 사상적 허구라며 도대체 어떤 “권력의 영광”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후계자 김정일 위원장앞에 놓여있는 “정치권력”이란 인민의 처절한 기아와 미국의 압박 속에서 생존의 길을 사력을 다하여 모색하는 것과 자주독립의 원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절박한 투쟁과 돈의 맘몬 앞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의 <권력>만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사막에 물이 없어 모래를 마셔가며 인민들을 살려야하는 고독한 아버지의 투쟁이 아닌가. 안찬일이 말하는 권력의 화려한 세습의 영광을 나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이제 우리는 주체사상을 단면적으로만 비판할 것이 아니고 후기 현대시대의 시대정신에 맞게 재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종언”이 아니라 “재창조”를 말하겠다. “붕괴” 가 아니라 “합류 (confluence)”를 말하겠다. 쟈크 데리다는 쓰여진 텍스트에만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텍스트와 텍스트사이에 그 무한의 공백에서, 침묵의 여백에서 진리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주체사상은 체제 속에서 보여지는 현상에만 그 정신적 핵심이 있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 사상의 줄기 줄기 사이 보이지 않는 여백에는 엄청난 인민들의 고난의 진리가 서려있고 아버지의 고독한 투쟁의 잔영이 남아있으며, 어머니의 가슴 에이는 애린의 그 비통함이 절절히 녹아 있는 것이다. 그것이 주체사상의 진리가 아닐까.

이제 글을 마치며 나는 저자 안찬일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누가 북조선을 논하는가. 아니 누가 진정으로 북조선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누가 진정으로 민족의 아픔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떠나오고 싶지만, 때론 저주하고 싶은 배고픔과 참담한 역경 속에서도 그러나 어머니의 땅이기에 아버지의 생명이기에 우리 조선대가족의 살림이기에 거기 그곳에 남아서 처절하게 싸우며 견디는 우리 조선민족의 반. 우리 조선하늘의 반. 그 비명의 메아리를, 그 침묵의 외침을 통해 들여오는 주체적인 민족정신의 호소를 그 땅을 떠나 온 우리는 다만 겸허하게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북조선에 남아 민족의 반을 지키는 형제자매를 생각하며… 나는 그들을 “칼”이라고 부르겠다. “날이 시퍼런 칼”이라 하겠다. 바로 그들이 조선을 말하고 민족을 논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닌가.

“곧아 부러질망정 나는 칼이 되겠다
곧이 곧 대로 찌르고 힘이 부치면 차라리 부러지는 칼이 되겠다
구부러진 끝으로 상대를 불의에 낚아채는 그런 갈고리는 되지 않겠다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이 되겠다.” (정민의 “돌위에 새긴 생각” 중에서)


2002년 11월8일


*글:신은희(미국 아이오아주 심슨대학 종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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