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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부시는 결국 평양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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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slee 작성일02-03-02 00:00 조회3,7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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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외교전문가 김명철 박사(조미평화센터 소장)는 24일 로스엔젤레스에서 가진 강연회를 통해 "부시 미대통령은 결국 평양에 방문하게 된다"고 예견하면서 현재의 대북강경정책은 그 수명이 길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조미관계를 총체적으로 분석한 결과 (1)2003년에 미국의 한반도 영향력 결정적 약화, (2)2005년 연방통일 기틀 마련, (3)2008년 주한미군 철수완료시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자신있게 전망했다.

이날 오후 6시 자주민주통일미주연합 남가주지부(회장:김정주 박사) 주최로 열린 강연회는 50여명이 참석, 평상시에 별로 듣지 못하던 조미관계와 한반도 통일전망에 대해 청취하면서 한시간 이상 진행된 김박사의 강연에 숨소리를 죽이면서 집중하기도 했다.
kmc03.jpg그는 최근의 부시 미대통령이 남한을 방문한 것과 관련해 지난날 "북한 지도자를 믿지 못하겠다느니 북도 악의 축이라고 말하다가 1년도 못돼서 그 말을 지속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그런 말들은 일종의 말놀이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김박사는 또 "부시가 중국방문시에 장쩌민 주석에게 김정일과 회담할 수 있도록 부탁한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되물으면서 과거에는 이북이 미국과 회담하자고 요청하였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 미국이 이북하고 대화하자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미간의 관계와 주변국의 관계들을 분석해 보면 "부시는 평양에 올수 밖에 없는 처지"라고 전망했다.

김박사는 이렇게 내다본 배경을 크게 두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김정일의 통일전략의 역사성이고 또하나는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들의 배경들이다.
kmc01.jpg김정일의 통일전략에 대해서 그는 (1)한의 성전으로 일본과 미국에 대해 "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푸는 투쟁에 대해 그동안 보관을 가져왔고 (2)미국과의 정치전쟁으로 문제를 풀어야 통일을 이룰수 있다는 관점에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 먹을 것을 줄여가면서 장기적으로 대책을 강구해 왔다는 입장이고 (3)군사문제로 풀수 밖에 없다는 관점을 세우게 되었는데 그것은 일제와 분단이후 줄곧 문제가 되어온데서 나온 이른바 <선군정책>을 통해 통일문제를 해결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온데 근거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kmc02.jpg그는 일반적으로 작은 나라 이북이 초강대국 미국과 상대가 되겠는가라고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많은게 당연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7세기 고구려의 을지문덕, 11세기 고려 강감찬, 16세기 이순신 등의 명장들이 강력한 외침들을 물리친 역사들을 포함하여 가까이에는 조선전쟁에서 이북과 미국은 결국 정전을 통해 전쟁이 승리없이 비기고 말았는데 이 전쟁이 비겼다는 것은 결국 이북이 초강대국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긴것으로 봐야한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김박사는 조미간의 핵외교, 미사일외교에서도 이북이 미국에 맞설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이북의 특징적 성격을 풍산개에 비교하여 설명했다. 일본 엔에치케이 테레비방송이 풍산개는 이리와 거의 비슷(99%)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이 풍산개나 이리는 지도체계가 질서가 있고 주도권때문에 싸움을 하지 않고 먹이를 가지고도 웃지위에 있는 것이 아랫지위에 있는 것으로 부터 빼앗지 않고 양보하고 싸울때는 끝까지 투쟁하는 기질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날 <조미외교관계 충돌>에서도 구체적으로 증명된 실예들이 소개됐다. (1)프에블로 나포사건(1968.1.23)에서도 죤슨대통령이 사죄를 해야했고 (2)미정찰기(E-121)침범사건(1969.4.15)으로 이북이 미국정찰기를 공대공미사일로 추격시켜 33명의 미군이 즉사했는데도 닉슨대통령은 항공모함 4척으로 위협하는 척하다가 끝내는 아무 실효없이 끝난 사건이 있었고, (3)미루나무(포플러) 벌채사건(1976.8.18)도 포드 대통령이 집권한지 3년째 되든 해 미군병사 30여명이 공동경비구역에 있는 미루나무를 도끼로 자르려고 하자 4명의 이북병사가 맨손으로 달려들어 못하게 하자 미군 한명이 던진 도끼를 받아가지고 막바로 미군을 향해 던지자 그것이 명중하여 2명의 미군장교가 즉사하고 4명의 이북병사들이 태권도로 나머지 28명을 미군들을 엎차기등으로 물리쳐 미군들이 도망간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미국은 폭격기와 항공모함 미드웨이를 들이대며 위협하였으나 북을 공격하지는 못하고 이북이 유감(regret)이라는 정도로 끝낸 사건, (4)조미간 최초의 핵대결(1993-94)에서도 클린턴 대통령은 말로만 1만명 미군증파니 하며 위협하다가 결국에는 93년 6월2일 뉴욕교섭 통해 94년 10월21일 제네바합의서에 양자가 서명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뉴욕교섭 몇일전인 93년 5월29일 이북이 하루에 지대지 미사일 3발을 발사했는데 하나는 일본 근해, 나머지 두발은 괌과 하와이 근해에 명중시키는 바람에 미국측서 질겁을 하고 조미합의서에 서명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결과 (1)2003년까지 경수로 건설완료, (2)양자간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도록 하였는데 그 당시 미국은 얼마 않있으면 이북이 붕괴하겠지 하는 마음에서 서명했는지 모르지만 이 합의서때문에 부시행정부는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 김박사의 분석이다.

그는 "만약 미국이 2003년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이북이 핵무기 개발, 미사일 발사실험이 본격적으로 진행 될 것이며 이에 따라 일본의 핵무장, 남한의 핵무장 등의 문제들 때문에 이런 현상을 바라지 않는 미당국은 세계군사전략상 딜렘마에 빠지게 되어 궁극적으로는 일본, 한국의 핵무장 견제를 위해서도 어쩔수 없이 이북의 요청을 수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로 인해 미국이 또다시 강경대응으로 도전해 올 경우에는 일본, 미국본토, 그리고 남한은 일시에 불바다로 화하게 될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고 예상 했다.

이와같은 상황전개 때문에 부시는 평양에 오지 않을 수 없다고 그는 재차 전망했다. 부시는 그때 가서 자신이 평양에 가야 산다는 생각을 하게 되리라는 말이다. 미국의 국내경제 쇠퇴로 인한 압박을 비롯하여 유럽에서의 미국고립, 2004년 미국대통령선거 등의 변수들을 놓고서도 부시의 불가피한 평양방문을 예고했다.

강연이 끝나고 참석자들의 질의 응답 시간도 흥미를 모았다. 한 참석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한방문에 대해 묻자 그는 김정일 위원장은 남한방문에 대해서는 날자를 박지는 않았지만 사실 작년에 갈 생각도 있었으나 (1)남한 국방부가 재작년 <국방백서>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6.15선언한 상태에서 이북을 주적으로 발표한 점과 (2) 김영삼 전대통령과 일부 수구세력이 김위원장 남한방문을 반대하며 시끄럽게 한점과, (3)현 남한정부가 러시아와의 매끄러운 외교를 하지 못해 미국 부시 대통령에게 호감을 갖지 못한 점 등의 이유들을 들어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닌 것으로 설명했다.

또 한 참석자는 이북에 아사자가 4백만명이나 된다고 하는 데 이점에 대해서는 그 실태가 어떠냐고 묻자 그는 식량이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4백만명 운운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중상모략이라고 대답하면서 그런 말들이 오고 가는것에 대해 그렇게 기분나쁘게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그러면 그럴수록 그 만큼 세계국가들의 식량지원이 늘어나지 않겠느냐며 웃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통일전망과 어떤 통일이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에 대해 적화통일은 있을 수 없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고 대답하면서 양측의 현실들을 존중하는 기초위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연방통일> 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떨어져 살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그냥 합칠 수 있겠느냐며 문패는 하나로 하되 당분간은 침대를 따로 놓고 사용하며 사는 부부의 관계를 예로 들었다. 이것을 연방통일이라고 하면서 동양인들의 일반적 정서를 연결시켜 설명했다. 두 침대를 놓고 살다보면 지난 날들의 오해나 불신도 사라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애정도 돌아오지 않겠느냐며 사람들의 이별과 만남의 일반정서를 나라의 통일과 관련시켜 설명했다. 그는 이어 2008년 주한미군 완전철수 시기를 예견하면서 미국의 학자 사무엘 헌팅턴의 분석은 2010년이라고 진단(문명의 충돌: The Clash Of Civilization, Remaking of World Order)해 2년의 차이는 있는 분석이라고 소개하면서 2005년 연방통일을 이뤄도 주한미군을 박절하게 나가게 하는 것 보다는 체면을 살려 3~4년의 시기를 두고 명예퇴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동양의 예의도 된다고 해설했다.

마지막으로 한 참석자는 이북의 핵무기 소유유무를 묻자 그는 극비라며 직접 응답을 피하면서 미국관리들로 부터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 왔는데 그럴때 나는 "핵문제는 조미간에 직접 전쟁이 돌발하게 되면 그 존재유무가 곧 밝혀 질것"이라고 대답했을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금년 1월11일 미 중앙정보국이 미국상원군사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이북은 1만5천킬로미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준비를 완료했다는 소식을 알리는 것으로만 질의자의 질문에 응했다.

[민족통신 노 길남 편집인 2/25/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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