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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 떨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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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건군절 작성일05-04-24 00:04 조회1,8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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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 떨치다


사상, 정치, 외교적대결에서 승리

력사의 ≪종말론≫으로 유명해 진 프랑시스 후쿠야마는 이전 쏘련방과 동유럽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된 시점에 ≪내셔널인터리스트≫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한바 있다.

≪이제 세계는 력사의 종말을 경험하였다. 자본주의체제이외의 대안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주의가 붕괴된 상황에서 자본주의무한경쟁의 경제체제와 그것의 다른 한면인 정치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는 더 이상 상대적인 이데올로기로서가 아니라 인류를 이끌어 나가는 최상의 유일한 진리로서 존재하게 되였다.≫

후쿠야마의 주장에 따르면 이제 사회주의리념은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으며 존재할 필요도 없다는것, 그래서 지금까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와 량극체제로 유지되여 온 력사는 이미 끝났으며 자본주의의 일극체제로서의 새로운 세계는 앞으로 그 어떤 위협도 받음이 없이 영원한 진리로 존재할것이라는 사상이 담겨 있다.

당시는 이전 쏘련방과 동유럽에서의 사회주의가 붕괴되여 세계를 경악시키던 때여서 후쿠야마는 예언자인양 꼽혀 지고 자본주의의 진보적인 학자들마저도 사회주의리념의 종말론에 동조해 나서고 있었다.

세계가 사회주의리론에 마침표라도 찍혀 진것처럼 한창 열을 올리고 있던 1994년 11월 김정일장군께서 사회주의총서로 일컬어 지는 력작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를 발표하시였다.

로작은 쏘련방과 동유럽사회주의붕괴의 주요요인의 하나로 되였던 선행사회주의리론의 력사적제한성을 밝히고 주체사상원리에 기초하여 사회주의리론을 새롭게 전개함으로써 사회주의리론의 과학성, 진리성, 정당성, 우월성을 최상의 경지에 올려 세웠다.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와의 대결이 군사적대결, 정치외교적대결이기에 앞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사상간의 대결일진대 이북은 김정일장군의 이 사회주의사상을 무기로 틀어 잡고 제국주의와의 사상전에 림했던것이며 사상의 위력, 사상의 우월성으로 승리하고 후쿠야마의 사회주의종말론을 휴지쪼각으로 만든것이다.

이에 대하여 공산당련맹-쏘련공산당리사회 위원장 올레그 쉐닌은 자기의 글 ≪사회주의광명은 조선에서≫에 이렇게 썼다.

≪수많은 나라들이 사회주의리념을 버린 오늘 조선인민은 너무도 가혹한 환경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다.

수십년동안 지속되여 온 미국의 군사적위협과 도발, 경제봉쇄, 항시적인 전쟁위험, 거기에 지난 날 사회주의전체에 가해 지던 압력과 모략까지 두어깨에 받으며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다.

그 어려움속에서 조선인민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미국을 위압하는 국방력을 가지게 된 그 불가항력의 힘은 바로 주체사상이 낳은 자력갱생의 힘이고 그들이 틀어 쥔 로선은 바로 주체사상에 기초한 세계최초의 사회주의건설리론인 3대혁명로선이다.

바로 인민대중에게 파악된 조선로동당의 사상, 조선로동당의 로선이 그처럼 거대한 물질적힘으로 전환되고 있다.

지구상의 그 어떤 인민도 견딜수 없는 압력, 방대한 경제력과 군사력에 의거하던 대국도 이겨 낼수 없었던 그 압력과 회유, 모략을 조선로동당과 인민은 사상의 힘으로 이겨 내고 있으며 전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북에서 90년대 후반기 더욱 치렬해 진 제국주의련합세력과의 사상적대결에서 사회주의사상이 어떻게 옹호고수되였는가 하는것이다.

무릇 군사학에서는 진지를 사수하자면 그 진지의 지탱점을 옳바로 정하고 그 지탱점을 강화하는것이 중요하며 반대로 진지를 점령하자면 그 진지의 지탱점을 정확히 판단하고 그를 무력화시킬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 사회학에서도 유용한 주장이다.

제국주의자들과의 사상적대결에서 사회주의사상진지를 지키자면 그 어떤 자본주의사상독소에도 끄떡하지 않는 전위투사들의 집단, 사상의 강자들로 꾸려 진 지탱점이 있어야 한다.

사상진지의 지탱점은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공세가 사상분야뿐아니라 군사적, 정치외교적분야를 포괄하여 립체적으로 행해 지는 조건에서 그 모두에 대응할수 있는 시각에서 마련되여야 한다.

선군정치는 인민군대를 바로 그러한 위치에 놓았다.

군대가 사상적, 정치외교적, 군사적대결의 모든 분야를 통털어 대응할수 있는 최선의 적임자이라는 리유와 함께 주요하게는 가장 어렵고 복잡한 시기 사회주의수호의 제1선에 선 군대야말로 사상정신력에서 누구도 따를수 없는 높이에 이른 집단으로 서게 된다는 당위에서였다.

인민군대를 사회주의사상진지의 지탱점으로 내세운 의도는 구체적으로 두가지로 음미된다.

그것은 첫째로, 사회주의사상적진지를 고수할 전위부대를 튼튼히 준비하기 위해서다.

제국주의자들과의 사상적대결에서 승리하자면 사상적진지를 철저히 고수할 사회주의사상의 전위부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회주의사회에서 사상적으로 가장 투철하고 사회주의운명을 두어깨에 짊어 지고 있는것이 바로 혁명군대이다.

혁명군대는 그 혁명성과 사상적신념이 그 어느 계급이나 계층보다도 투철하고 우월하다.

또한 사회주의사회에서 조직력이나 규률성에 있어서 혁명군대를 따를 사회적집단은 없다는것이다.

더우기 사회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나가고 있는 이북을 압살하기 위한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압력이 더욱 로골화되고 있는 상황은 인민군대만이 사회주의사상진지를 고수할 전위부대라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둘째로, 사회주의사회에서 혁명군대가 사상적으로 무장해제되면 사회주의적인 모든것이 허물어 질수 있기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혁명군대는 사회주의사상진지의 지탱점이라는것이다.

이전 쏘련방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에서는 사상진지의 지탱점문제가 상정되지도 않았을뿐아니라 사회주의를 총대로 수호하여야 할 군대가 사상적변질, 사상적와해의 앞장에 섰었다.

공민전쟁시기와 제2차 세계대전시기 ≪쏘베트정권을 위하여!≫, ≪쓰딸린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을 웨치며 목숨도 두려움없이 바쳐 싸운 붉은 군대는 흐루쑈브집권시기부터 군대안의 사상사업을 줴버리기 시작하였고 특히 고르바쵸브대에 이르러서는 군대의 비사상화, 비정치화가 로선화되면서 사상교양을 홀시하는 한편 1989년에 수십년간 실시해 오던 자본주의나라 방송들에 대한 전파장애를 전면적으로 해제하는 등 자본주의사상침습에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군인들은 미국의 소리방송, 자유방송 등 서방매스컴이 내보내는 반공, 반사회주의선전을 그대로 접하게 되였으며 국내텔레비죤은 시청률이 제일 높은 시간을 골라 서방소식과 미국식생활양식을 찬미하는 광고와 노래를 방영했다.

군대내에 미국을 숭배하는 서적, 신문 등이 아무런 려과없이 물밀듯 흘러 들었으며 그로 하여 군인들은 국내소식보다 미국의 ≪발전모습≫, 생활풍조를 더 잘 알수 있게 되였다.

신문 ≪쏘베쓰까야 꿀뚜라≫ 1989년 9월 21일부는 ≪수십년간 반동작품으로 평가되여 공연을 금지 당했던 희곡들, 서방연극들이 물밀듯이 극장들에 쓸어 들고 있다.≫고 하면서 군인들과 청년학생들이 그것을 보고 ≪구역질을 일으킬 대신 모방하고 싶은 느낌을 받고 있다는것은 아주 무서운 일≫이라고 개탄하였다.

군대가 술풍에 물 젖었으며 종교를 부활시킬데 대한 법령의 발표로 종교신자들이 군대에 쓸어 들었다.

자본주의사상에 물 젖은 군인들은 당과 조국도 모르는 무기력한 존재로, 돈밖에 모르는 미치광이로, 개인의 안락과 향락만을 추구하는 타락분자로 전락되여 앞을 다투어 당과 공청조직에서 탈퇴했으며 총 잡는것까지 거부해 나섰다.

이전 쏘련과 동유럽에서의 군대에서 시작된 사상적와해로 인한 사회주의붕괴는 오늘날 단독으로 제국주의련합세력과의 치렬한 대결전을 벌리고 있는 이북에게 있어서는 반면교사로 비쳐 지는것이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인민군대를 철두철미 사회주의사상을 신념으로 간직한 사상의 강군, 신념의 강군으로 키움으로써 제국주의와의 사상적대결에서 주도적역할을 하는 지탱점이 되도록 하시였다.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사이에 도이췰란드의 포츠담에서 쓰딸린, 트루맨, 쳐칠(후에 애틀리로 교체)이 제2차 세계대전후 처리문제와 관련하여 회담을 진행하였다.

미국은 회의개막전날인 7월 16일에 첫 원자탄시험을 진행함으로써 힘의 립장에서 회담을 저들에게 유리하게 유도하려 했다.

미국의 의도는 도이췰란드에서 민주주의적단체들의 활동을 억누르고 파쑈무장력을 재생시켜 저들의 목적에 리용하며 유럽령토의 조정에서 더 많은 지배권을 차지하려는것이였다.

그러나 쓰딸린은 미국의 원자탄위협에도 끄떡없이 강경립장을 고수하였다.

그리하여 회담에서는 민주주의적정당, 단체들의 활동허용, 완전한 무장해제와 파쑈무장력 청산, 군사 및 반군사조직, 나치스기관 철페, 독점체의 청산과 경제의 비군사화, 무장장비의 생산금지 등 도이췰란드문제해결을 위한 제 원칙이 제시되였다.

미국은 원자탄위협으로도 자기의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했던 포츠담회담결과에 대한 앙갚음으로 정치외교에 있어서는 더욱더 힘에 의한 외교방향으로 나갔으며 1990년대에는 쏘련방을 굴복붕괴시키기에 이르렀던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늘의 북미외교대결에서 미국은 이북의 힘의 외교앞에 완전히 손을 들고 저자세외교로 림하고 있어 세상사람들의 조소를 받고 있다.

오늘날 세인들은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이 이북이 발사한 로동1호 미싸일위력앞에 북미기본합의문에 도장을 찍었고 1만 2천Km 탄도미싸일 발사를 가능케 하는 위성발사의 위력앞에 ≪채찍≫으로서의 ≪5027작전≫계획실행의 포기, 일부 경제제재해제조치와 같은 ≪당근≫방식을 택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으로 보고 있다.

무릇 외교는 말과 말, 두뇌와 두뇌의 싸움이다.

력사에는 순수 언변과 두뇌전으로 싸움에서 승리하거나 외교무대에서 성공한 사례들이 헤아릴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력사는 민족의 운명을 결정 짓는 중대문제결정에서는 반드시 군사경제적힘이 안받침될 때 성공하는것이지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는 한갖 말싸움으로 끝나고 만다는것을 뚜렷한 진리로 새기고 있다.

선군정치는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련전련승하는 불패의 정치이다.

선군정치의 이러한 불패성은 90년대 후반기 북미정치외교의 쟁점으로 부상되였던 ≪지하핵시설의혹≫, 탄도미싸일발사문제 처리에서 더욱 확실하게 확인되였다.

1994년 10월 제네바북미회담에서 클린톤대통령 담보서한에 따른 북미기본합의문이 채택되였을 때 미국의 강경보수세력은 그 채택을 달가와 하지 않았으며 파기를 주장해 나섰다.

미국회에서 다수파를 이루고 있는 공화당은 북미기본합의문이 채택된 초기부터 북미기본합의문자체가 잘못된것이라면서 ≪클린톤정권은 너무 양보하였다.≫느니, ≪백악관이 미북합의와 관련해 공화당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다.≫느니 하면서 그 합의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1995년 1월에 접어 들면서 미국회 상임위원회별로 기본합의문에 대한 청문회를 열고 ≪문제점≫들을 따지고 들었다.

미국회 상원외교위원회 위원장은 북미기본합의문을 ≪하나의 보수≫로 묘사하였고 공화당 원내총무는 ≪미국이 지내 많이 양보≫하였다고 반격을 가했다. 공화당의 주요의원들도 클린톤대통령이 ≪북조선이 핵계획≫을 저지시키기 위한 흥정에서 지나치게 많은것을 양보하였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합의문리행을 위한 자금제공을 거부함으로써 ≪그것을 뒤집어 엎기 위해 노력할것≫이라고 했다.

공화당은 ≪북미제네바합의의 파기, 경수로건설지원저지, 이것이 공화당의 립장이다.≫며 공공연히 도전해 나섰다.

1996년 11월 초 미국 대통령선거전은 민주당과 공화당사이에 북미기본합의문 리행문제를 놓고 일방은 주요외교치적으로, 타방은 외교치욕으로 위상지으며 당리당략을 추구하는 비난전으로 일관되였다.

강경보수세력은 마침내 북미기본합의문을 파기하여 이북에 대한 고립압살기도를 관철시키고 클린톤행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적축구공을 차올렸다. 금창리≪지하핵시설의혹≫이라는것을 들고 나온것이다.

미국에서 이미전부터 퍼지던 핵의혹설이 증폭되기 시작한것은 ≪뉴욕타임스≫1998년 8월 17일부가 정보자료를 인용하여 ≪북조선이 비밀리에 건설하고 있는 지하시설이 핵무기개발을 재개하기 위한것으로 보인다.≫고 전한 때부터였다.

미국 ≪워싱톤 포스트≫ 1998년 11월 22일부는 ≪제네바핵동결합의를 좋아 하지 않는 의회와 국방성, 정보기관내 비판세력들은 최근의 지하핵시설의혹을 미북기본합의를 깨고 평양과의 대결정책으로 나아갈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고 전하였다.

민주당은 보조를 맞춘다는 심리를 내비치며 공화당이 마련해 놓은 지하핵시설의혹 레루우를 달리는 렬차에 동승하였다.

미행정부는 대북정책의 재검토에 들어 갔으며 ≪핵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한 기본합의문의≪보류도 어쩔수 없다≫는 방침을 굳혔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방장관은 1998년 11월 1일 ≪아사히신붕≫과의 인터뷰에서 ≪북조선이 지하시설사찰을 수락하지 않으면 미조틀거리합의는 붕괴위기에 직면하게 된다.≫고 공언하였으며 미국무성 대변인은 1998년 11월 9일 인터뷰에서 ≪북조선의 지하시설에 대한 사찰이 관철되지 않으면 북미핵협정의 존립자체가 문제시될것≫이라고 위협해 나섰다.

이북이 지하시설에 대한 ≪사찰≫을 끝내 거부할 경우 미행정부의 ≪단호한 대응≫이 결정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을것이라는 ≪경고신호≫들이 미당국자들과 강경보수세력들속에서 련이어 흘러 나왔다.

마침내 이북이 대응해 나섰다.

≪지하핵시설≫사찰소동은 공화국의 자주권과 국가안전에 관한 란폭한 유린행위로서 절대로 허용할수 없다, 그 무슨 의혹이라는것을 정 풀려거든 비렬한 중상모독으로 우리 공화국의 영상을 흐려 놓은데 대한 보상을 정치, 경제적으로 응당하게 하라는것이였다.

그것은 분명 화를 복으로 역전시킨다는 안속의 전략이였다.

미국은 이북이 요구하는대로 회담장에 나오지 않을수 없었고 몇차례에 걸치는 회담끝에 이북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여 ≪참관료≫를 바치는 조건에서의 참관이라는 문서채택에 도장을 눌렀다.

그리하여 1999년 5월 비싼 ≪참관료≫를 지불하는 조건에서의 미전문가팀의 금창리≪지하시설≫참관이 이루어 졌다.

당시 세계의 언론계는 미국의 여전한 굴욕외교에 대해 떠들었고 이북이 3억불의 참관료를 불렀는데 미국은 금창리 지하구조물에 5억딸라상당의 쌀을 가득 채워 주었다는것을 꼬집어 미국의 외교능력을 조소하였다.

당시의 북미사이의 외교전은 이남에서도 언론의 태풍으로 초점 맞추어 져 있었다.

1999년 8월호≪말≫은 그처럼 길고 지루한 대결끝에 미국이 얻은것이란 텅 빈 금창리굴간에 식량을 가득 태워 준것이였다고 조소하면서 이북이≪의혹≫을 만들면 미국은 식량을 지원하는 등 방도를 모색한다고 신랄히 폭로하였다. 또 이전YS의 비서실장을 지낸바 있는 한나라당의 박관용의원은 ≪핵과 미싸일문제 등에 있어서 북≪한≫의 대미전략에 미국이 놀아 나고 있다는 생각≫이라고 하면서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이북이 강성대국과 핵과 미싸일개발을 다그치여 세계강대국으로 발돋움해도 미국과 이남정권은 그를 막아 내지 못할것이라고 아우성쳤다. *(동아일보 1999. 9. 17자)

금창리≪지하핵시설의혹≫이 공중분해되자 미국의 강경보수세력이 전면에 들고 나온것이 이북의 이른바 ≪미싸일위협≫론이다.

이 ≪미싸일위협≫론의 본질은 한마디로 북의 미싸일이 미국본토를 타격할수 있다는것이다.

1998년 초 미국방성 년례전략보고서에 따르면 이북이 미국을 타격할수 있는≪탄도미싸일을 개발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로 지명되여 있다.(교도통신 1998년 2월 3일부)

≪미싸일위협≫론은 이북이 1998년 8월 31일 위성발사후 본격화되였다.

미국강경보수세력은 ≪광명성1호≫위성을 한사코 탄도미싸일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이 당장 미국본토에 날아 들것처럼 법석 고아 댔다.

미공화당 지도자는 1998년 8월 31일 ≪북조선이 탄도미싸일을 발사≫하였다고 하면서 ≪미국본토를 타격할수 있다≫, ≪대단히 위험하다≫고 떠드는 한편 미행정부에 ≪강력한 국제적지도력≫을 행사할데 대해 촉구하였다.

미국방성은 ≪북조선이 탄도미싸일을 발사≫한것을 확인하는것과 함께 이것이 ≪아시아의 안전보장을 뒤흔들수 있는 심각한 사변≫이라고 인식하고 ≪북조선측의 의도와 미싸일개발 능력에 대한 분석≫을 서둘렀다.

≪미싸일위협≫론은 ≪광명성1호≫위성발사 한돐이 되는 1999년 8월 31일을 계기로 극한상황에 치닫고 있었다.

평양이 미국의 순항미싸일공습을 당하기라도 할것 같은 위구가 팽배해 지고 있을 때 이북은 또다시 미국에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고 회담탁에 불러 냈으며 그리고 몇차례의 격돌끝에 미국의 강경의사를 꺾어 놓은데 이어 1999년 9월 17일 베를린북미고위급회담에서 북에 대한 경제제재를 일부 해제할데 대한 조치가 취해 지도록 하는 결과를 따냈다.

미국내와 세계는 그것을 초강대국의 또 한차례의 굴복외교로 떠들었다. 미공화당소속 의원들은 클린톤의 조치를 ≪백악관이 북의 압력에 굴복≫(에이피통신 1999년 9월 18일)하였다고 비평했으며 미국회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수십년간 지속되여 온 제재를 완화할데 대한 계획을 반대하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그는 성명에서 ≪클린톤행정부의 북조선에 대한 접근방식은 국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다음번 대통령하에서 유지되지 못할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세계≪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을 쥐락펴락하며 국제정치정세를 솜씨 있게 조정하여 제국주의자들과의 정치외교적대결전에서 련전련승하는 이북의 정치외교를 어떻게 볼것인가?

1990년대를 지나면서 이북이 취한 정치외교를 한마디로 특징 짓는다면 그것은 타협 없는 원칙외교라 할수 있다.

지금까지 력사에는 팔레랑식웅변과 설득외교, 비스마르크식철의 외교, 쳐칠식타산외교, 마쯔오까식간계외교, 몰로또브식침묵의 고압외교 등 각종 외교형태가 존재하여 왔다.

무릇 외교란 자기가 얻고저 하는바를 얻기 위한 하나의 정치예술이라 할수 있다.

때문에 력사에 기록된 그 어떤 유명한 외교형태도 다 하나와 같이 상대방에 대한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양보와 타협으로 자기가 얻고저 하는것을 얻을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것이 곧 외교라고 믿어 왔기때문이다.

그러나 이북이 취한 외교는 시종 타협을 모르는 원칙적인것이다.

그들은 능란한 정치정세조정술로 미국과 일본 등을 대화마당에 끌어 내고는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든 자기들의 주장을 고수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기들의 주장은 곧 원칙이였고 한치도 양보할수 없는 건곤일척의 카드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상하게도 이북의 타협 없는 원칙외교에 끝내는 미국과 일본 등 그 어떤 대화상대도 다 타협을 하며 이북의 조건을 들어 준다는것이다.

왜 그런가? 다시 말해서 이북의 정치외교가 그처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배경은 무엇인가 하는것이다.

미국의 위력한 비정부연구단체인 외교관계협의회는 1998년 6월에 낸 정책보고서에서 ≪김정일체제는 망하지 않는다. 북조선을 무력으로 무릎 꿇게 할수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북외교지침을 발표한바 있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외교의 배경에는 군사적힘 내지는 경제력이 있는것이다. 그 힘에 의거하여 외교는 전개되는것이고 외교는 얻고저 하는것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고도 말할수 있다.

이북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북이 그처럼 든든한 담력과 배짱으로 세계정치정세를 솜씨 있게 관리하고 그처럼 외교에서 원칙을 고수할수 있는것은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라는 힘이 있기때문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김일성주석 서거이후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하고 인민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나라의 기둥으로 내세우시고 조성된 어려운 난국을 타개해 나가시는 무적필승의 선군정치를 펼치고 계신다.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로 하여 이북은 내부적으로 인민군대와 민중이 똘똘 뭉쳐 김정일최고사령관을 받드는 세계최초의 일심단결의 총폭탄집단으로 준비되고 대외적으로는 그 어떤 강적에게도 머리 수그리지 않고 당당하게 싸워 나가는 강력한 정치군사대국으로 등장하게 된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북의 타협 없는 원칙외교의 배경이라고 할수 있다.

그 어떤 강적도 무서워 하지 않고 일격에 타격하여 때려 눕힐 위대한 힘-선군정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북의 정치외교에 그 어느 나라인들 승자가 될수 있겠는가.

1993년 ≪핵사찰≫소동과 1998년 ≪지하핵시설의혹≫소동, 이북의 위성발사후 미싸일소동 등을 끈질기게 벌려 온 미국이나 일본 등 제국주의련합세력들이 오늘날 이북과의 정치외교적대결에서 흰기를 들고 평양을 찾아 가고 있는데서 쉽게 그 답을 찾을수 있다.

미국은 1999년 5월 클린톤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인 페리를 평양에 파견하여 북과의 대결의 평화적해결을 주문했다.

페리는 평양을 다녀 온 후 평양을 무력으로 굴복시킬수 없으며 평양은 바그다드나 베오그라드와는 전혀 양상이 다른 국가이며 그를 쉽게 보아서는 된타격을 받을수 있다는것을 전제로 하고 평화적방법으로 북미관계를 해결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페리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그처럼 미싸일소동에 열을 올리던 일본은 전 총리인 무라야마를 단장으로 하여 소위 ≪초당파≫대표단을 무어 평양에 보내 조일국교정상화회담재개를 주문하고 수십만t의 식량을 평양에 보내는 등 조일관계정상화를 위해 추파를 던지고 온갖 아양을 다 떨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김정일장군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로 하여 이북은 제국주의자들과의 정치외교전에서 승자가 된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거대한 제국주의의 우두머리이며 세계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이나 경제대국임을 표방하는 일본이 결코 이북의 승리를 완전히 무릎 꿇고 축복하여 주고 있는것은 아니다.

미공화당의 ≪아미타지보고서≫작성자들을 비롯한 보수세력들은 아직도 이북을 선제공격하여 군사적방법으로 짓눌러 버려야 한다는 침략야망에 들떠 있고 일본에는 아직도 ≪평양을 일격에 괴멸≫시켜 버리겠다고 호언하는 신따로 도교도지사와 같은 극우익보수세력들이 결집되여 있다.

그러나 개는 짖어도 행렬은 간다고 했다.

김정일장군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가 있어 이북은 그 어떤 위기도 솜씨 있게 조정관리하여 자기의 의도와 요구를 완전무결하게 관철시켜 나갈것이다.

이북이 이미 동북아시아의 무시할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였으며 오늘의 국제정치가 평양을 축으로 하여 펼쳐 지고 있는 사실이 이를 반증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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