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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강점 4월10일~16일 주요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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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민권연구소 작성일05-04-08 10:04 조회1,5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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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강점관련
4월10일~16일 주요일지


한국민권연구소 제출


  본 일지는 미군강점 60년을 맞은 올해를 주한미군이 없는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 본 연구소가 만든 교양자료입니다.
미국과 주한미군이 한국사회를 예속화하고 강제점령해온 역사적 증거와 사건들을 정리하여 짧게 모았습니다.

본 일지는 한달을 주기로 정세동향 자료집에 실리고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서는 매 주 금요일에 일주일 단위로 공개되고 있습니다. 인터넷자료에 한해서 몇 가지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해설도 첨부됩니다.

주한미군 철수원년, 자주통일 원년을 일구는데 열심히 헌신하실 모든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료에 오류가 발견되거나 수정, 보완, 첨부사항 및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연구소 대표 이메일 minkwonyun@hanmail.net로 메일을 주십시오.

1969년
4월 15일 EC-121 대형 첩보정찰기 북한 영공을 침입했다가 격추
EC-121정찰기 격추사건(설명 있음)

1987년(6월 민중항쟁)
4월 13일   전두환 4.13 호헌조치 발표

설명
1) EC 121 정찰기격추사건
1969년 4월 15일, 미군전자정찰기 EC 121이 북한의 영공을 침범하여 불법 정찰활동을 감행하던 도중 긴급 출동한 북한의 요격기 MIG 21로부터 발사된 공대공 미사일에 맞아 격추 된 사건
EC 121정찰기가 격추 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닉슨 정권은 즉시 항공모함기동부대를 한국해역으로 급파하였다. 파견된 미국의 무력을 살펴보면 원자력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항공모함 "타이곤데로가", 항공모함 "레인저", 대잠항공모함 "호넷트", 전투함 "뉴저지", 수 백기의 폭격기, 전투폭격기 등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미국수뇌부는 사건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고 대대적인 ‘북폭’을 논의 하였는데 당시 수뇌부 일각에서 ‘북폭’을 감행할시 ‘대다수의 미군 전투기, 전폭기들이 격추될 것’이라는 진단을 하면서 ‘북폭’을 반대하여 결국 미국의 북한 침공은 실행되지 못하였다.
EC 121정찰기 격추사건은 프에블로호 나포사건과 함께 북한의 대북 군사대응방침인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하겠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련을 비롯한 대다수의 나라들이 미국의 공식적, 비공식적 불법정찰을 무기력하게 보아 넘길 수밖에 없었던 시절, 미국의 정찰기를 격추시킨 나라는 이북밖에 없었다.

2) 전두환 4.13 호헌조치 발표
미국은 한국에 대한 식민지적 지배를 주한미군을 통한 군사적 강점과 ‘대리정권’을 통한 정치적 지배로 유지해 왔다.
이러한 이유로 그동안 우리 민중은 주한미군 철거투쟁과 친미독재정권 타도투쟁을 펼쳐왔던 것이다.

전두환은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이름만 바꿔 ‘체육관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국민의 선택이 그대로 반영되는 직접선거보다는 여러 면에서 간전선거가 당선에 유리했던 것이다. 광주학살의 원흉인 전두환이 1981년 대통령 선거에서 90%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는 ‘희대의 사기극’이 가능했던 이유도 이 체육관 선거 덕분이었다.

1986년부터 우리 민중은 더 이상 친미독재정권이 유지되는 것을 묵과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개헌을 통한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요구하며 범국민적인 투쟁으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대통령 선거가 직선제로 바뀌게 되면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미국과 전두환 친미독재정권은 대대적인 민중운동에 대한 탄압을 감행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계역사상 단일사건 최대구속자를 기록한 ‘애학투련 사건’도 당시에 전두환 친미독재정권이 민중의 투쟁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중 하나이다.
범국민적인 민주헌법쟁취투쟁, 대통령직선제쟁취투쟁은 1987년에 들어서 활화산처럼 터져 오른다. 그 기폭제가 된 사건이 87년 2월에 발생한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이다.

같은 해 4월 13일, 항쟁으로 불타가는 민중의 투쟁을 탄압하기 위해 전두환은 마침내 ‘호헌조치’를 발표하였다.
당시 김성기 법무장관은 “개헌 논의라는 이름을 내건 불법행동이나 사회혼란 책동은 엄단하라”고 전국의 검찰에 지시하였고 당시 정호용 내무부장관도 경찰에게 ‘시위나 집회를 강력히 저지’하도록 명령하였다고 한다.

예사롭지 않은 한국 민중의 투쟁을 지켜보던 미국은 이미 한해전인 1986년부터 직접 국무장관 슐츠를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을 방한시켜 대통령 직선제 대신 의원내각제를 제안하며 사태를 봉합하려고 기도하였다.

전두환의 ‘호헌조치’에 분노한 중산층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인사들도 투쟁에 동참하면서 대규모 항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것이 87년 6월 항쟁이다.



**참고자료
①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1(박세길/돌베개)
②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2(박세길/돌베개)
③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3(박세길/돌베개)
④ 침략의 역사 항전의 역사(김희일/기획출판 한)
⑤ 김정일의 통일전략(김명철/살림터)
⑥ 한국민권연구소 격주간 <정세동향>
⑦ 인터넷 <통일뉴스> http://www.tongilnews.com
⑧ 인터넷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
⑨ 인테넷 <네이버> 뉴스검색 http://news.naver.com
⑩ 인테넷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 http://www.onecorea.org/
⑪ 각종 인터넷 포탈싸이트 지식검색 및 기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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