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 김정일의 핵전략 새롭게 조명 > 투쟁속보란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3월 28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투쟁속보란

한국언론, 김정일의 핵전략 새롭게 조명

페이지 정보

작성자 동북아 작성일05-03-24 21:03 조회1,703회 댓글0건

본문

<CBS 라디오 "서울에서 평양까지> 2005년 3월 23일 보도



  
<!---로케이션 메뉴 --->  
   홈 > 라디오 > 서울에서 평양까지  

<!---로케이션 메뉴 끝--->
<!--여기서부터 템플릿 적용-->  

<SCRIPT> function update(seqno,code) { auth = 65; if ((code == auth) || (auth == 0)) { window.location.href = "pdbbs_update.asp?seqno=" + seqno + "&crtBlock=1&crtpage=1&what=&keyword=" } else { alert("귀하는 이 글을 삭제할 권한이 없습니다."); } } function DeleteConfirm(seqno,code) { auth = 65; if ((code == auth) || (auth == 0)) { ret = window.confirm("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 if (ret == true) { window.location.href = "pdbbs_delete.asp?seqno=" + seqno + "&crtBlock=1&crtpage=1&what=&keyword=" } } else { alert("귀하는 이 글을 수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 } function GoList() { window.location.href = "/radio/notice.asp?mode=list&crtBlock=1&crtpage=1&what=&keyword=" } </SCRIPT>    

   [ 제목 ] 3/23(수) 북한은 1985년에 이미 핵무기 생산을 시작했다(?)
<!-- 글정보 --> 글쓴이 서울평양 날   짜 2005-03-23
조회수 9 첨   부  

<!-- 글내용 -->1983년 핵개발을 완료
1984년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 성공
1985년 핵무기 생산 시작
1989년 미국 본토를 겨냥한 다단식 미사일 개발

북한은 이미 지난 1980년대에 핵개발은 물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마시일 개발까지 완료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핵무기 개발을 완료해 놓은 상태에서 마치 핵 개발을 시작하는 것처럼 해서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였다는 건데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이런 주장은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편 사람이 김정일의 비공식 대변인이라
불리는 김명철 북미평화센터 소장이라는 점이 비상한 관심을
끄는데요, 그는 어제 번역, 출간된 <김정일 한의 핵전략>에서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핵위협에 시달렸던 북한이 1950년대부터 핵개발 계획을 수립했고 1980년대에 무기화를 완성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의 핵위협에 시달렸던 북한의 "한"이 핵개발을
추동했다는 얘긴데요, 핵 무장력이 결국은 북미간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김명철 소장의 주장을 책을 번역한 월간 <말>
김종성 동북아 전문기자와 함께 분석해 봅니다.



아래 내용은 질의.응답의 주요점입니다.



---------------------------------------------------------------------


CBS 인터뷰







1. 북한은 1983년에 이미 핵개발을 완료했고 1984년에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 그리고 1989년에는 미국 본토를 겨냥한 다단식미사일을 개발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북한 핵개발에 대한  지식을 완전히 뒤엎는 주장이 제기됐는데요, 저자가 김정일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는 김명철 북미평화센터 소장이라는 점에서 그냥 간단히 무시할 수 없는 얘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선 김명철 북미 평화센터  소장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좀 살펴봤으면 좋겠습니다.




\ 김명철 소장은 북한과 국제무대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김명철 박사는 우선 북한에서 이러한 평가를 받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김명철은 나의 심중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했다. 그리고 김명철의 저서는 평양의 혁명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다음으로 김명철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ABC, BBC 등 서방 매스컴에서는 김명철을 김정일의 비공식 대변인 혹은 북한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부르고 있다. 서방 입장에서 볼 때, 김명철은 북한이 공식적으로 하기 힘든 메시지를 대신 표현해주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서방의 군사 외교 전문가들은 “지나고 보니까 김명철의 말이 정확히 맞더라”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미 해군대학 전략부장 조나단 프랭크,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같은 미국측 인사들도 김명철의 분석을 높게 평가한다. 그리고 미국은 김명철 박사에게 핵시설까지 공개했는데, 이는 그를 통해 북한 지도부를 위협하려는 것이다. 또 CIA나 미 국무부도 정기적으로 그를 초청하여 북한 정보를 캐내려 한다. 그러므로 전반적으로 볼 때, 김명철 박사는 북한과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신뢰를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북미평화센터는 어디에 있는 건가요?

현재 일본 사이타마현에 소재하고 있다. 김 박사는 홈페이지나 강연회 등을 통해 자신의 논평을 발표하고 있다.




2. 책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제목이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정일 한의 핵전략>... 핵 개발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도했다는 것과 함께 핵개발의 뿌리가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 같은데요...




\ 핵개발의 기원과 김정일의 역할

북한 핵개발의 배경은 한국전쟁으로 소급한다. 한국전쟁 때 미국은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혹은 휴전을 조기에 관철시키기 위해서 3차례나 핵무기 투하를 계획했다. 미국이 고려한 핵투하 지점은 만주를 포함해서 한반도까지 포함되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뿐만 아니라 우리 한반도까지 핵투하의 위협을 받았던 것이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핵공격 위협은 한국전쟁 후에도 계속되었다. 미국은 1957년 7월부터 한국에 대한 핵무기 배치를 시작했고, 1958년 1월 29일 그것이 완료되었다. 이것은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의 발표로 확인되었다. 이처럼 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이 가중되는 상황 속에서 북한은 최소한 자구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 1956년 이래의 비밀핵개발계획이다. 또 북한 핵개발의 중요한 동기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패권을 몰아내고 한반도를 외세 없는 땅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비밀핵개발을 장악한 것이 바로 김정일이었다.




3. 그렇다면 북한의 핵개발 프로젝트는 어떻게 추진된 겁니까?




백두산식 핵개발계획이라고 불린 이 비밀계획은 1956년에 시작되었다. 1956년에 30명의 북한 핵물리학자들이 소련유학을 떠났다. 같은 해에 영변에는 방사과학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북한의 핵개발은 1980년대에 빛을 보게 되었다. 1983년 평안북도 평산에 우라늄정련소가 완공되었다. 이 해에 김정일은 핵개발을 완료했다. 그리고 핵개발을 바탕으로 김정일은 전군 지휘권을 장악했다. 1984년 북한은 탄도미사일 발사실험에 성공했다. 다음 해에는 핵무기 생산라인이 가동되었다. 그리고 1989년에는 미 본토를 직격할 수 있는 다단식 미사일이 개발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북한은 이미 1980년대에 비밀 핵강대국이 된 것이다.




4. 1983년에 이미 핵개발을 완료했고 1984년에는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 김명철 소장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드는 건 어떤  건가요?




그에 관한 객관적 증거는 미국측 증거일 것이다. 지난 2월 16일 CIA는 북한의 핵능력을 인정한 바 있다. 물론 미국 대통령이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CIA는 1960년대 이래 수차례에 걸쳐 북한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에 관한 정보 보고를 한 바 있다. 김 박사도 저와의 인터뷰에서 이 점을 수차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레이건, 아버지 부시, 클린턴이 북한을 압박하다가 결국에는 북한과의 직접 협상으로 전환한 것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에 관한 정보 보고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의 ICBM 즉 대륙간탄도미사일은 1993년에 실제 실험되었다. 당시는 제1차 북핵위기가 진행되던 상황이었다. 북한을 압박하던 미국이 막판에 돌아선 진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북한이 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하와이와 괌 앞바다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두 곳은 모두 미군기지 근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2000년 이후로 미국 언론에서 보도된 바 있다.




5. 미사일 시험발사도 그렇고 핵개발도 그렇고 미국과 일본의 막강한

정보망을 무력화시키고 비밀리에 개발과 실험을 완료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그런 의문이 드는데요...




미국의 정보력에 대한 경외심을 버려야 한다. 미국의 정보력에 대한 과대평가의 진원지는 바로 미국이다. 그들은 그러한 과대포장을 통해 상대방 국민들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것이다. 한국전쟁 때 중공군은 1950년 10월에 참전했지만, 미군이 중공군 사령관의 성명을 파악한 것은 다음 해인 1951년 하반기였다. 미국의 실제 정보수준은 그 정도다. 그리고 미국의 정보망이 정말 치밀하다면, 2000년 61.5 정상회담도 어쩌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최첨단 정보수집은 첨단 장비가 아닌 사람의 힘에 의해서 가능하다. 북한에 미국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상황에서 미국의 정보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의 정보 수준이 그 정도이기 때문에 북한은 미국의 견제를 유유히 뿌리치고 핵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6. 1989년에 이미 미국 본토를 겨냥한 다단식 미사일을 개발했다면 1998년에 광명성 인공위성을 시험발사한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닌 건가요?




광명성 시험발사의 성공은 북한의 로켓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이 세계 어디에도 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광명성 시험 발사 후인 2002년 1월의 CIA 보고서에서는 북한 미사일의 최대 사정거리가 15000km가 된다고 보고했다. 이는 광명성의 위력이 반영된 보고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정리하면 광명성 위성 발사는 북한의 ICBM이 적어도 15000km 이상을 비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7. 북한이 핵개발을 완료해 놓고 핵개발을 추진하는 것처럼 위장해서

미국과의 협상을 유도했다는 점도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데요...

\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결국 거짓말을 했다는 것 아닙니까?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데...




북한이 보기에 북핵위기는 북미간의 문제다. 그런데 지금도 북미 양국은 법률적 의미의 전쟁상태에 있다. 전쟁상태에서 상대방을 기만하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안된다. 오히려 속은 쪽에 잘못이 있는 것이다.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상대방에게 속은 미국 정부가 받아야 할 것이다.




8. 김명철소장은 북핵 위기가 결국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는데요... 북한의 희망사항을 옮겨놓은 듯한 느낌도

듭니다.




김명철 박사가 파악하는 향후 시나리오는 크게 3가지다. 첫번째 시나리오는,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고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도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핵보유국 북한과 전쟁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그리고 미국이 중동에서 발이 묶여 있고 또한 유럽과의 관계 회복이 시급한 상황에서 미국이 동북아에서 또 다른 전쟁을 벌이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첫 번째 시나리오를 선택하기는 힘든 것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미국이 북한의 핵억지력 증강을 묵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이 핵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가만히 앉아서 패권 몰락을 맞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나리오 역시 실현 불가능하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대북제재를 해제하며 북한을 테러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것입니다. 현재 상황에서는 세 번째 시나리오가 가장 무난하며 또한 북미 양국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김 박사는 그러한 생각에서 북미 양국의 평화적인 극전 반전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만약 세 번째 시나리오가 성사되면 앞으로 동북아는 북미 양강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북미 양국이 연대하여 동북아의 핵확산을 막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의 한반도 영향력이 제거될 것이기 때문에 통일의 장애물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과 북이 대등한 입장에서 민족의 비원이며 민족의 한인 통일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