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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직후인 2000년 7월 4일, 〈새 천년(2000)과 민족통일〉이라는 주제밑에 도쿄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출연자들이 나눈 이야기의 녹취록을 다시 정리했음.


출연자
정경모 : 씨알의 힘사(일본) 대표
한호석 : 재미 통일학연구소 소장
강종헌 : 재일 한국문제연구소 대표
진   행 : 강민화


존재 명분이 상실된 주한미군

강민화 : 역사적인 남북 수뇌들의 회담과 공동선언에 대해서 정경모 선생님은 이 선언이 조국통일 3대원칙의 재확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강종헌 선생님은 이 선언에 대해서 민족화해 선언이고 민족자주통일 선언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한호석 선생님은 공동선언 실천의 전망과 가능성에 대해서 주체의 운동의 견지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들에 토대해서 공동선언의 내용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공동선언의 첫째 항목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들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풀어 나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민족자주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평양에서의 수뇌회담이 끝난 이후 보도들을 보면 이 문제를 놓고 ‘외세배격적인 자주’냐 아니면 ‘비배타적인 자주’냐 하는 두가지 해석이 있고, 특히는 주한미군 문제를 놓고 남북간에 무슨 타협이 이루어졌다는 식의 논조도 보입니다. 정경모 선생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경모 : 미국이 군대를 거기(한국)에 주둔시켜놓고 두가지 명분을 걸고 있습니다. 왜 자기네들이 3만 7,000명 병력을 한국땅에 주둔시켜야겠는가, 첫번째는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인 억지력, 다시 말해서 북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그것을 억지하기 위해서는 자기네들의 군사력이 필요하다, 그런 논리이지요. 그런데 남북이 앞으로 자주적으로 통일국가를 이루겠다고 남북 정상이 7천만 앞에서 약속했단 말이요.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무슨 명목으로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 억지력으로서 3만 7,000명의 병력을 거기다가 유지해야 되겠는가, 제일 첫번의 명분이 붕괴된 것입니다.

또 하나의 명분은 중국과 러시아를 염두에 두면서 동북아시아에 있어서의 힘의 균형, 그것 때문에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그것을 내버려 두겠습니까? 푸틴이 며칠이면 베이징에도 가고 평양에도 간다고 합니다. 이 푸틴, 젊은 대통령이 요즘 미국에 대해서 상당히 강경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 아, 이 사람 괜찮은 사람 아닌가 하는 느낌이 가요(웃음).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한다면 미사일 문제로 NMD(미 국가미사일방어체제)를 클린턴이 평양에 대해서 해야겠다고 했어요. 왜냐 하니 북조선이 광명성 1호를 쏘고 말 안들으면 제2호를 쏘겠다고 나왔단 말이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항하기 위해서 NMD라는 것을 만들어야 되겠다, 그건 뭔가 하니 완전히 북조선을 지향해서 떠들고 있는 것인데, 지구 궤도 위에 올라간 다음에는 쏴 떨구기가 괭장히 힘이 드니까 속도가 느린 단계에서 쏴 떨군다는 모양인데, 그것을 자기 나라 알래스카에 설치한데요.

클린턴이 그렇게 말한데 대해서 푸틴은 알래스카에 설치하면 즉각 러시아에도 영향이 온다고 했습니다.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는 벌써 미사일 조약이 있습니다. 쏘면 안된다고. 왜 그런가 하니 방패가 세면 찌르는 힘도 세지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서로 방패는 다치지 말자고 레이건 시대에 소련과 미국 사이에 약속했는데, 그러면 북조선을 빌미로 삼고 NMD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러시아는 절대 반대입니다. 또 중국도 물론 절대 반대이고.

그런데 NMD가 잘 안되는 모양이지요. 하도 반대가 세고 미국안에서도 조선반도 남북의 화해가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무엇때문에 수백억이라는 돈을 거기다 쓰느냐고 반대가 일어났어요. 그래서 아마 그것은 클린턴이 슬며시 취소를 하겠어요.

이렇게 NMD가 슬그머니 없어지는 것을 보면서 아까 이야기한 두가지 명분, 북조선에 대한 억지력으로서도 미군이 거기 있어야 될 이유가 없는 것이고, 또 중국이나 러시아를 적대시하면서 동북아시아에서의 군사력의 균형을 위해서도 3만 7,000명의 미군이 필요하다는 명분이 둘 다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한참 기를 쓸거예요. 절대로 철수는 못하겠다고. 그렇지만 내 생각으로는 철수 하느냐 안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철수하느냐가 문제일 것입니다. 그것이 언제라고 내가 찍어서 말은 못하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 미국은 자기 군대를 철수해갈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강민화 : 감사합니다. 강종헌 선생님은 이 민족자주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종헌 : 김대중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자주란 당사자 원칙입니다. 조선반도 문제는 남과 북이 당사자로서 통일 문제를 다루겠다, 그 정도 차원입니다. 그러나 북이나 해외에서 볼 때 자주라는 것은 반미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분단의 결정적인 원인을 가져다준 것이 바로 미국이었고 지금도 최대의 걸림돌로 되어 있는 것이 미국이기 때문에 자주라고 말할 때 우리는 반외세, 반미라는 말과 직결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외세를 배격하자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외세의 부당한 간섭과 개입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남쪽에서 이야기하는 자주란 낮은 차원의 자주입니다. 지금 남측이 할 수 있는 소리는 낮은 차원의 민족자주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다 포용해서 더 높은 차원의 민족자주로 나갈 수 있겠끔 우리가, 남, 북, 해외가 힘을 합치자는 것입니다. 자주 문제에 대해서 저는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부작용 없는 미군철거의 길
한호석 : 저도 주한미군 문제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평양회담을 생중계한 TV방송 화면을 다 보셨을텐데, 거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역사적인 회담장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가운데 앉아 있고, 그 오른쪽에 황원탁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그 왼쪽에는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이 앉아 있는 장면입니다. 이 두 사람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군 지휘관 출신, 친미파 관료의 대표주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역 없이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군 장성 출신입니다. 통일문제를 논의하는 그 회담장에 박재규 통일부 장관이 응당 배석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어째서 군부 출신으로 친미파 관료의 대표주자인 두 사람이 좌우로 앉아 있어야 했는가 하는게 문제입니다.

평양회담이 끝나자 마자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은 클린턴의 부름을 받고 백악관에 날아가 회담에 관하여 보고하였습니다. 평양회담이 끝나자 마자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은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장을 만나 평양회담에 관하여 이야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처럼 백악관, 중앙정보국과 직통하고 있는 친미파 관료가 좌우에 앉아 있는 상황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인 주한미군 문제에 관해서 자신의 구상이나 소신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겁니다.

주한미군 철수문제에 관해서 우리는 김일성 주석이 서거 전에 했던 말씀을 상기해야 합니다. 주한미군이 당장 나가라는 것이 아니다, 주한미군이 언제 나가겠는지 우리에게 약속을 하라, 이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바로 그러한 김일성 주석의 미군철수안을 김 대통령에게 이야기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작용이 생기지 않게 하면서 주한미군을 철거시키는 깉은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그것은 남북의 최고책임자가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주한미군이 나가더라도 인민군대가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불가침 약속입니다. 그와 함께 남측도 불가침 약속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불가침 약속은 이미 1991년의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천명된바 있습니다. 그것을 남북의 최고책임자가 책임지고 이행하겠다고 굳게 약속하고 상호신뢰를 가지고 이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한미군이 단계적으로 철수하더라도 절대로 동족끼리 피를 흘리는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확인했고, 이에 대해서 김대중 대통령도 공감을 표시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한미군 문제를 논의할 때 중요한 점은 주한미군이 무엇때문에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한미군이 전쟁억지력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한미군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전략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입니다. 주한미군이 동북아시아 지역의 전략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만 그 전략균형은 꼭 주한미군이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유지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한미군이 없어도 그 전략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으며 또 그러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주한미군의 진짜 존재 이유는 북조선에 대해서 적대정책을 유지하고 남한에 대해서 지배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적대정책과 지배정책은 돈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이 무너지면 남한에 대한 지배정책도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둘은 하나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각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미국의 적대정책과 지배정책이 없어지면 바로 그것이 자주통일을 실현하는 길이 됩니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영원히 주둔시킬 수 있을까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1990년 4월에 미국은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리고 제1단계 감축안을 이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감축안을 시행하려 할 때 이른바 ‘북조선 핵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감축안은 백지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감축안은 아주 파기된 것은 아니고 단지 한반도의 정세 때문에 집행을 유예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이제 미국은 평양회담으로 풀리기 시작한 한반도 정세를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을 예정된 대로 즉각 이행해야 합니다. 남과 북이 통일회담을 심화시키면서 연방제통일을 실현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고 한반도에서 동족끼리 피를 흘리는 전쟁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날이 오면 극소수의 미군을 남겨둘 것이 아니라 한사람도 남김 없이 철수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미국은 남한에서 억지로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체면을 깎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낮은 단계 연방제안과 연합제안의 공통성이란? 
강민화 : 민족자주 문제와 함께 중요한 것이 통일방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선언 2항에서는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과 남의 연합제안 사이의 공통점을 서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한호석 선생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과 연합제안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통일방도가 확정되어 갈까요?

한호석 : 우리 민족은 28년전에 조국통일 3대원칙에 합의했습니다. 7.4남북공동성명에 천명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입니다. 원칙이 나왔으면 이를 수행하는 방도와 방안이 나와야지요.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1994년 6월 하순, 김일성 주석은 서거 직전 약 보름동안에 평양회담을 준비하면서 조국통일문제에 관한 수십차례의 친필교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그 친필교시를 통일문건으로 종합했던 때는 1994년 7월 7일, 서거 직전이었습니다. 그 통일문건은 평양회담이 열리면 그 회담에서 해결해야 할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었으므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채택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김일성 주석은 당시 지방에 현지지도차 내려가 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전화통화를 하셨습니다.

그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수령님, 그것은 채택된 것으로 생각하시고 집행하십시오. 정치국 회의에 제출하는 실무적인 일은 제가 맡아서 처리하겠습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전화통화였습니다.

그 통일문건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들어있었을까요? 문건은 외부에 공개한 적도 없고, 또 공개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전연 알 길이 없는데, 거기에는 평양회담이 열리면 조국통일 방안을 합의하는 문제가 들어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0년 10월 노태우는 당시 안기부장 서동권이라는 사람을 평양에 몰래 보냈습니다. 1990년은 미국이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을 이행하기 시작한 시점이었습니다. 노태우는 질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한반도 정세의 흐름에 편승해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노태우의 밀사를 만난 김일성 주석은 연방제 통일안을 합의한다면 노태우를 평양에서 만나 평양회담을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연방제 통일안을 합의하지 않고 그저 옥류관 냉면이나 먹고 돌아가려면 평양에 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평양회담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려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결심은 이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양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서 잘 설명한 뒤에 남북공동선언에 포함시키자고 말했습니다.

회담장의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준영 청와대 댜변인이 나중에 전한 말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웅변조로 김 대통령에게 무엇인가 설명했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 그것은 연방제 통일방안에 관한 설명일 것입니다.

김 대통령은 집권 이전에 자신의 3단계 통일방안에 연방제 통일을 제2단계로 포함시킨 바 있으므로 연방제 통일방안 자체를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받아들이고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회담이 끝난 뒤에 연방제 통일방안을 반대하고 있는 반통일세력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 반통일세력이란 미국이고 남한의 반통일세력입니다.

그래서 김 대통령은 내가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고 서울에 돌아가면 김대중이가 북의 통일방안을 받아들이고 왔다고 아우성칠게 아니냐,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말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용순 비서와 따로 상의했습니다. 그런 뒤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6.15공동선언에 나와 있는 대로 연합제안과 연방제안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그 공통성에 바탕을 두고 통일을 실현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그 공통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남북공동선언에는 공통성과 관련해서 구체적인 설명이 나와 있지 아니하므로 남측에서는 자의적인 해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모두 틀린 해석들뿐입니다.

연방제안과 연합제안의 공통성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시 10년 전 1990년 10월에 노태우의 밀사가 평양을 방문했던 사건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 김일성 주석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받아들이라고 하셨는데 그 방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밀사는 즉흥적으로 연합제 방안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통일을 한꺼번에 실현할 수 없지 않느냐, 점진적·단계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바로 그런 뜻에서 두 방안 사이에 공통성을 찾아보자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두 방안 사이에 있는 공통성이란 통일실현의 점진적, 단계적 측면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통일실현의 점진적, 단계적 측면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그것은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를 점진적, 단계적으로 풀어 간다는 뜻입니다. 나라를 통일하는 문제는 결국 국가주권을 하나로 통일하는 국가주권의 연방화 문제인데, 그것은 결국 연방화의 단계를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점차적으로 높여 간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국가주권의 핵심사항인 군사권과 외교권을 한꺼번에 연방정부가 장악하고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 단계적으로 장악하고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통일되면 낮은 단계의 연방에서는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군사권과 외교권을 가지고 있게 될 것입니다. 두 정부가 군사권과 외교권을 각각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연합제안과 연방제안 사이의 공통성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것은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군사권과 외교권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낮은 연방화의 단계라 할지라도 그것은 두개의 주권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주권국가라는 사실입니다.

문익환 목사의 방북과  ‘느슨한 연방제’ 합의
강민화 : 방금 연방제으 점진적, 단계적 실현이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정경모 선생님은 문익환 목사님님의 방북에 동행하셨습니다만 그때 김일성 주석님과 문익환 목사님 사이에서, ‘느슨한 연방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 문 목사님과 함께 계셨던 선생님으로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정경모 : 이 이야기를 하려면 문 목사와 김대중씨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이제까지 말 안한 것을 비로소 내가 이야기합니다.

문 목사가 평양 가기 전에 김대중씨와 굉장히 깊이 이야기를 하고 갔습니다. 문 목사는 억울하게 3년동안 징역살이 했는데 김대중씨도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일을 했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김대중씨하고 이야기하면서 간다고 했지요. 정경모가 중간 역할을 해서 평양에 간다고. 그러니까 김대중씨가 잘 갔다 오라고 그때 돈으로 10만원짜리 자기 앞수표를 서른장 주었어요. 굉장히 큰 돈입니다. 그래서 문 목사는 김대중씨한테서 여비까지 받고 평양에 간 것입니다.

왜 그럼 김대중씨가 문 목사에게 여비까지 주었는가. 둘 사이에서 김 주석께서 말하는 연방제에 대해서 남쪽의 현상을 가만히 두고 어떻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를 두 분이 아마 굉장히 깊이 이야기한 다음에 갔을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문 목사한테서 들은 이야기인데, 김 주석의 연방제안을 2단계로 인정하고 우선 연방제를 만들고 연방정부가 군사, 외교권을 쥐고 두개 지역정권, 지방자치체를 두자, 말하자면 이것은 미국식 연방제예요. 워싱턴에 있는 미국 연방정부가 군사와 외교권을 쥐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금 50개의 주마다 주 정부가 있습니다.

그래서 김 주석이 말씀하신 것은 이 미국식 연방제를 단꺼번에 하자는 것시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문 목사는 아마 김대중씨 이야기를 받아서 이야기했을 것인데, 그는 처음부터 3단계를 이야기했어요. 평화교류, 평화협력, 평화통일로 가자는 것인데 그 연장선 위에서 아마 문 목사는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단꺼번에 연방제로 가기는 상당히 힘들다고.

김대중씨도 연방정부에 대해서 반대한 것은 아니예요. 그의 의도는 연방정부를 하되 연방정부가 처음부터 군사,  외교권을 쥐는 것이 아니라, 그 대신 유엔에 대해서는 한 집안이라는 문제를 걸고 한 나라로 돌아간다, 남북이 합의했을 때는 투표도 하고 남북의 의견이 같지 않을 때는 기권하는, 그런 식으로 우선 문제를 걸어 놓고 유엔에는 같이 들어가자고 생각을 했을테지요.

그러니까 김대중씨의 의견을 받아가지고 문 목사는 남쪽의 사정으로 볼 때 도저히 단꺼번에는 힘들다고, 그래서 김일성 주석에게 한 나라라는 것을 상징하게 유엔에는 같이 들어가고 군사, 외교권은 남북이 따로 따로 갖는다, 우선 교류와 협력의 기간을 두자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때 김 주석께서는 교류나 협력이나 하고 이산가족도 만나고 돈벌이도 하고 하면 됐잖으냐, 통일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가 남쪽에서 굉장히 나올 때 북쪽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그것은 곤난하다,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분이 여러가지 생각한 끝에 주석께서 그럼 좋다, 그럼 3단계를 내가 받겠다,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고 하셨답니다. 그러니까 김 주석께서는 그 당시에 벌써 문 목사를 통해서 김대중씨의 의견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3단계로 가자, 이 3단계가 ‘느슨한 연방제’입니다.

이번에 김대중씨와 김정일씨가 만나서 ‘느슨한 연방제’에 대해서 말하면서 공통점을 발견했다는 것은 벌써 11년 전에 돌아가신 김 주석과 문 목사하고의 이야기 때문에 그것이 굉쟝히 쉽게 달성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김대중씨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각한 ‘느슨한 연방제’가 뭔가, 제 생각으로는 앞으로 있을 경제협력 또 여러가지 교류와 굉장히 관련이 되어 있다고 봅니다.

경제협력 이야기가 있었는데, 경제협력이란 인프라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도로, 통신시설, 항만,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철도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 해도 거대한 자금이 들어요. 제가 듣기에는 남쪽이 경제성장 했다고 하지만 굉장히 취약한 경제력이니까 이북과의 경제협력을 위해서 쓸 수 있는 돈이 8억달러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철도망, 도로망까지 포함하면 80억달러라도 모자랄 것이지요. 그럼 앞으로 일본사람하고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지 문제가 되는데, 그런 거대한 경제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같이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경제협력, 문화교류, 이런 것을 하려면 단독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하면 자연발생적으로 연합정부가 되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김일성 주석이 말씀하셨습니다. 단꺼번에 연방정부가 생겨서 연방정부가 단꺼번에 군사, 외교권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든 얘기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경제교류가 시작되고 문화교류가 시작되고 여러가지 교류가 시작이 되면 북과 남을 연결시키는 공동기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석께서 말씀하신 군사권과 외교권을 쥐는 연방정부에 선행하는 그런 기구가 되겠지요. 그것이  ‘느슨한 연방제’가 되는 것 아닙니까?

2854년을 감옥에서 보낸 비전향장기수들
강민화 : 이번에는 강종헌 선생님이 통일운동과 결부해서 이 문제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강종헌 : 평양선언 제2항에서 남북의 통일방안에 공통성이 있다, 그렇게 됨으로써 지금까지 남쪽에서는 연방제를 주장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렸는데 연방제가 전 민족적인 지지와 승인속에 합법성을 쟁취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사실 서로 상대방을 인정 안하고 자기 하는 대로만 통일하겠다고 하니까 분단이 계속되었습니다. 50년동안 7.4남북공동성명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남쪽에서는 통일을 위해서 북과 연대하겠다, 북은 적이 아니다, 우리 동포다, 이런 주장을 하면 다들 잡혀가서 죽거나 오랜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정경모 선생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김구 선생, 여운형 선생, 그리고 조봉암 선생, 그런 민족주의 지도자들이 북과의 연대나 통일을 주장했기 때문에 비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분들 말고도 통일을 위해서 불모의 땅에 씨를 뿌리고 또 물을 주고 거름을 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름 없는 용사들이 38선을 넘고 넘나들면서 통일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1960년도에 4.19혁명이 일어나고 그때부터 30년동안, 90년까지 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된 투사들이 200명을 넘습니다. 그러한 희생속에 통일의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희생되지 않더라도 30년, 40년이라는 엄청난 세월을 지조를 지키고 통일을 위해서 생애를 바치신 분들이 많았지요. 그 분들이 모두 다 아, 내 생각이 잘못했다. 당신 하는 말이 옳소, 북이 잘 못했고 남이 옳았다, 그런 식으로 했으면 연방제가 가능합니까? 가능하지도 않지요. 그러나 남쪽에서 지조를 지킨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남쪽 사회에서 민주화운동이 진전되면서 소위 말하는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이 하나씩 풀려 나왔습니다. 다행히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 감옥에 남아 있던 장기수 언르신들이 모두 풀려 나왔습니다. 지금 파악되는 분들 중에 제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94명 분들이 1980년대 말부터 작년까지 석방되셨답니다. 그러나 거의 모두가 오랜 감옥생활 때문에 병드시고 또 연령도 70세를 넘은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해마당 몇분씩 돌아가십니다. 94명중 지금 남아 계시는 분들이 77명이라고 합니다. 그중에 가족들이 기다리는 북에 돌아가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59명입니다. 이 분들이 이번에 지난 적십자회담 합의에 따라서 9월 초에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의 품으로 가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번 평양회담과 평양선언에 많은 의의가 있지만 저는 이 이름없는 영웅들이 인간으로서의 시간을 회복하게 만든 이 합의에 대해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박수)

제가 존경하는 분 가운데 비전향장기수의 한 분이신 신인영 선생이 계십니다. 그 분은 32년을 감옥에서 보내셨습니다. 참고로, 나오신 94명의 비전향장기수분들이 감옥에서 보내신 세월을 전부 합하면 몇년이 되는지 아십니까? 2천 854년입니다 (장내에서 한숨 쉬는 소리). 한사람당 평균 31년이 됩니다. 우리가 5처년 역사라고 합니다만, 그 반 이상을 그 분들은 한해 한해씩 통일을 위해서 견디셨습니다. 기막힌 세월이지요. 그 32년을 감옥에서 보내신 신인영 선생은 남쪽출신이고 사회주의 이념을 따라서 6.25때 북으로 가셨고 통일을 위해서 다시 되돌아 오셨습니다.

조선반도의 분단선이 단지 판문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쪽 감옥이 분단의 최전선입니다. 그 분이 이번 평양회담 며칠전에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오래 오래 껴 안았으면 좋겠소, 남의 힘 빌리지 않고 우리 힘으로 일구는 통일의 첫 결실이었으면 좋겠소.”

저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마지막에 뜨겁게 포옹하신 장면을 보면서 이 말씀이 머리에 떠 올랐습니다. 그 분이 염원한 대로 두 정상이 오래 오래 껴 안았습니다.

연방제 통일을 위해서는 어느 한쪽이 모든 고난을 이겨내면서 자기 신념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반세기였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의 노고가 이제야 우리 모두의 축복속에 보답받게 되었다, 저는 통일 방안의 합의에 대해서는 그런 감격을 금할 수 없습니다.

통일을 위해 민족의 힘과 슬기를 모아야 한다
강민화 : 예,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데 시간이 무정하게 흘러갑니다. 이제 꼭 한사람분의 발언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발언 시간을 멀리 미국에서 오신 한호석 선생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한호석 선생님, 마지막에 앞으로의 전망과 우리가 통일을 위해서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한호석 :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야기는 다시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유훈 가운데 하나는 끊어진 남북의 철도를 연결하는 사업이었습니다. 이는 제가 여기 앉아 계시는 정경모 선생님이 쓰신 글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입니다. 김일성 주석은 끊어진 철도가 이어지는 날, 첫 남행 통일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리시겠다는 구상을 하셨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조선노동당은 이 통일유훈을 한 점, 한 획도 바꾸지 말고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평양회담에서는 남북의 철도연결 사업이 합의되었습니다.

지금 남측은 남북 철도 연결사업을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고 있지만 북측에서는 주석의 통일유훈을 관철하는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을 출발하기에 앞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꼭 서울을 방문하시도록 요청했습니다. 그 청을 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신이 서울에 가기 전에 다른 국가 고위간부가 먼저 서울을 답방한 뒤에 가겠다고 말했다 합니다.

남북공동선언은 7천만 민족 앞에서 엄숙히 서약한 약속입니다. 서울회담에서는 그 약속을 얼마나 이행하였는가를 총화하면서 통일 정세를 다음 단계로 전진시키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당면한 과제는 연방제통일 실현을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서 반통일세력의 간섭과 개입을 차단하고 방해를 배격해야 하는 데로 집중됩니다. 이를 위해서 7천만 민족이 힘과 슬기를 모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본국 동포와 해외동포의 구별이 있을 수 없고 남녀노소의 구별, 계급계층의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민족의 피를 받고 태어난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통일정세가 나날이 변화되고 있는 오늘 조국통일의 길 위에 걸림돌이 있으면 하나라도 걷어 내고 디딤돌을 만들어 하나라도 더 놓아가면서 하루빨리 분단의 민족적 재난과 불행에서 벗어나는 길로 전진해야 합니다.

자주강국, 경제부국, 문화대국의 연방통일국이 삼천리 강산에 세워지는 날, 위대한 조국 만세, 위대한 민족 만세를 부를 수 있도록 함께 힘써나가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강민화 : 역사적인 평양회담 직후에 내외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서 개최된 오늘 토론회입니다만, 사실 시간이 너무나도 제한되고 또 저희들 운영상의 미숙함 때문에 여러분들의 기대에 충분히 보답해 드리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남북공동선언이라는 통일의 이정표가 마련된 오늘, 우리가 이번 사변을 어떻게 보아야 하며 또 앞으로 통일정세는 어떻게 흘러가겠는가 하는데 대한 세 선생님들의 귀중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신심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토론회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통일운동을 힘차게 벌여 나가는데서 매우 중요한 계기점이 되었다, 이렇게 확신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여러분, 세 선생님들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주십시오.(2017.4.1다시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