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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아전쟁: 그 진실을 벗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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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7-06-22 07:13 조회1,1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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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6월 22일 《우리 민족끼리》
 
《코레아전쟁: 그 진실을 벗긴다》(1)

 
지난 2010년에 재미교포인터네트언론 《민족통신》에 조선전쟁의 발발과 관련한 글이 실리였다.
《코레아전쟁: 그 진실을 벗긴다》라는 글내용을 련재로 소개한다.
 
조선전쟁은 누가 도발하였는가
 
지구상에 존재한 전쟁은 서방언론들이 보도하는 내용과 그 사실이 전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이러한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의 똑같은 현상으로 나타났다. 제국주의자들이 약소국들을 비법적으로 침략하고서도 그 리유를 엉뚱한것으로 둘러대는것이야말로 정말 파렴치한 수법인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침략은 물론 이라크침략행위에서도 그 리유를 다른것으로 둘러대며 합리화해왔던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선전쟁의 경우도 례외는 아니다. 미국은 이미 아시아를 침략하여 자기 세력을 확대하기 위한 일환으로 온갖 불법적행위를 자행하여왔다.
1866년 침략선 《셔먼》호의 침입도 그중 한 경우에 해당되며 1905년 《타프트-가쯔라》밀약도 마찬가지였다. 공통적인것은 경제적리권과 군사적팽창주의에 그 원인이 있었던것으로 진단된다. 다시말하면 제국주의자들이 자기 리속을 채우려고 간섭하고 침략하였던것이다. 조선전쟁도 바로 그러한 제국주의자들의 침략행위의 일환인것이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전쟁의 리유를 《북조선의 남침》이라고 주장하면서 남조선인민들에게는 북조선이 《적》이라고 선전하는 한편 미국과 이를 지원해준 15개국의 나라들을 마치도 《천사》처럼 미화시켜왔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이 이라크를 대량살상무기를 소지했다는 구실로 침략한것과 아주 류사한 양상을 띠였다.
그래서 조선전쟁을 립체적으로 연구하여온 학자들, 량심적인 종군기자나 지식인들은 미군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라고 비판하여왔다. 이것이 이라크전쟁의 진실이며 조선전쟁의 진실이기도 하다.
100년동안 미국의 폭력성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회수가 더 많아졌다. 세계에서 자칭 《경찰국가》에 의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있다.
미국인들은 원주민을 학살하면서 죄의식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자신들은 세계의 모든 종족들을 개화시켜 관리할 책무가 있다는 론리를 확립했다. 그래서 세계정복이 그들의 의무가 됐다.
우리 민족은 미제가 조선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리승만친미괴뢰정권의 토대를 닦아준 사실을 지금도 기억하고있다.
리승만은 일제때부터 조선독립의 운명을 미국의 외교로선에 맡기자고 한 외세의존형의 역적으로서 독립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였다. 이때문에 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리승만을 길러왔다. 리승만은 항일투쟁을 목표로 민족의 단결을 위해 활동한 사람이 결코 아니다. 정반대로 해외에 있던 항일독립단체들을 미국의 조정에 따라 파괴하고 와해시키는 행위를 하였고 안중근과 같은 애국지사를 《테로범》으로 부른 사람을 미국은 독립투사로 위장하여 초대《대통령》으로 앉혔다.
우리 민족은 나라의 분렬을 원하지 않았다. 분렬에 앞장선 리승만《정권》을 원하지 않았다. 리승만괴뢰도당은 국민의 희망에 의해, 국민이 탄생시킨 《정권》이 아니고 미국이 남조선사람들의 소망을 짓밟고 반대하는 국민을 무차별 학살하고 친일파들을 규합해 강제로 세운 《정권》, 즉 《정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남조선인민들의 참여가 배제된채 세워진 《정권》으로서 우리의 자주적인 정권이 아닌, 오직 미국의 대륙지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권》이며 미국의 보호가 없으면 하루아침에 국민들에 의해 무너질 사대주의《정권》이였다.
리승만이 《국가안보》를 리유로 《반공법》을 만들었는데 우리의 국가가 어디에 있는가? 리승만《정권》은 사실상 《국가안보》보다는 국민들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보호할 구실로 권력안보가 필요하였기에 《반공법》과 같은 압박수단이 필요했던것이다.
미국은 해방후 김구암살, 인민항쟁탄압 등 미군정이 저지른 죄악을 조선사람들끼리 다투게 하여 자기의 소행을 감추려고 리승만과 같은 하수인세력을 필요로 하였다.
미국은 팽창주의야욕으로 일제패망전부터 조선땅에 저들의 립장을 대신하면서 지원할 하수인역의 《정부》를 세우기 위해 리승만을 육성하여왔다고 볼수 있다.
미국은 우선 조선반도의 남쪽을 지배권역에 넣고 다음에는 이를 발판으로 대륙으로의 더 큰 팽창의 야망을 가지고있었다.
조선전쟁의 원인은 그보다 앞선 작은 전쟁이였고 작은 전쟁의 원인은 미국의 태생적본능인 팽창주의야망에 있었다. 조선전쟁을 포함한 지구상에서 미국이 저지른 전쟁은 모두 팽창주의야망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볼수 있다.
미국은 1866년 침략선 《셔먼》호를 타고 우리 나라에 침략의 첫발을 들여놓은 때에 벌써 평양에까지 침입하여 주민들의 재물을 강탈하고 부녀자들을 릉욕하였으며 대포와 총을 마구 쏘아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학살하였다. 그후 미국은 《차이나》호, 《쉐난도아》호 등 함선들을 련이어 침입시켜 조국반도를 정복해보려고 날뛰면서 온갖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다. 20세기 초부터 미국은 일제의 조선강점을 적극 지지하여 미주의 독립운동단체들을 탄압하였고 장지연과 전명운 등 애국지사들을 처형하였다. 미국의 외교관 스티븐슨은 일본의 조선침략을 옹호하는 연설을 하였다.
 
《단선단정》을 반대하여 일떠선 남조선인민들의 투쟁
 
1948년 2월 5일에 미군정장관 러취가 미군철수설을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한 이틀후에 발생한 2. 7봉기는 1948년 5월 10일로 예정된 《단독총선》을 앞두고 미군정지역에서 《단독정부》가 수립되는것을 반대하여 일어났다.
당시 남조선인민들은 다음과 같이 웨쳤다. 《조선의 분할침략계획을 실시하는 <유엔한국위원단>을 반대한다. 남조선의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한다. 량군 동시철수로 통일민주주의정부수립을 우리 조선인민에게 맡기라. 제국주의앞잡이 리승만 등 친일반동파를 타도하라 …》
경상남도 밀양군에서는 2월 7일 이른아침에 농민들이 지서 두곳을 습격하고 여기에 경찰이 발포를 쏘아대면서 10여명이 사살되고 100여명이 검거되였다. 합천군에서는 오전과 오후 두차례에 걸쳐 농민들이 지서를 공격하여 역시 100여명이 검거되였다.
이와 류사한 충돌이 2월 20일까지 2주동안 진행되였다. 전체 참가인원은 약 200만명이며 이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은 100여명, 투옥된 사람은 8 500명정도로 추산된다.
1948년 5월로 예정된 《제헌국회 총선》을 앞둔 2월 9일 백범 김구는 《삼천만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단선단정》반대의사를 분명히 하는 등 이에 합세하여 남조선인민들이 《단선단정》을 반대하여 일떠섰다. 이렇게 태여난 《정권》이 리승만친일파《정권》이였다.
1948년 《창군》당시의 군수뇌부는 대부분이 일본군, 관동군출신이였고 미군정에 고용됐던 친일세력들이 그대로 《정권》상층부에 자리잡고있어 인민들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하였다. 악랄하게 날뛰였던 일제앞잡이들이 해방후에도 그대로 경찰조직에 등용되여 치안을 맡아 애국적인사들을 탄압하였고 반《정부》기운도 여전하였다.
미군정이 관동군출신을 남조선괴뢰군구성의 주도세력으로 삼았던것은 일제강점시기 만주에서의 전투경험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즉 중국대륙을 정복하기 위해 그들의 경험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미군정청의 자금에 의해 운영되는 친일극우단체인 《서북청년단》(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를 배출한 단체)의 폭력에 시달리던 제주도에서 남조선만의 《단독정부》수립을 의미하는 《5. 10총선》을 반대하여 일어난 1948년의 제주4. 3인민봉기와 제주항쟁을 진압하라는 명령에 불복해서 일어난 려수, 순천의 군인폭동 그리고 뒤이은 유격투쟁 등으로 남조선인민들은 저항했다.
독립을 방해하고 다시 식민지노예로 만들려는 외세와 친일매국노통치하에서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자유를 위해 싸우다 죽는 길을 택하였던것이다.
제주4. 3인민봉기가 일어나자 미군정은 무자비한 살륙으로 탄압하기 위해 일본군 장교출신들을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그때 친일세력들은 남조선인민들의 배척의 대상이 되여 불안전한 위치에 처해있었다. 미군정은 그들 친일세력에게 진압을 맡겼다.
미국은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의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하여 식민지노예로 만들었다. 원래 리승만은 남조선인민들이 반대하기때문에 그의 명령에 따를 사람이 별로 없었다. 친일파들도 미군의 지시를 따르지 허수아비인 리승만의 지시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것이다.
해방후 김구를 비롯한 민주인사들을 수없이 죽인 주범은 미군이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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