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5-02 06:55
[연재] 북한 사회주의 개조 완성을 선포한 제4차 당대회
 글쓴이 : 당대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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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회주의 개조 완성을 선포한 제4차 당대회

북한 정치 이해, 정치, 조선노동당 7차 당대회 2016-04-30 

※ 올해 북한에는 조선노동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당 대회가 개최된다.

북한 사회주의헌법 제11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명시하여 조선노동당이 북한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상하고 국가기관을 지도한다는 것을 표방하고 있다.

따라서 1980년 제6차 대회에 이어 36년 만에 열리는 제7차 당 대회는 북한의 향후 방향에 대한 중요한 논의와 결정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NK투데이에서는 북한 제7차 당 대회를 맞이하여 조선노동당의 역사와 구조, 당 대회의 의미, 제7차 대회의 전망 등을 구체적으로 파헤쳐보고자 한다.

그리고 '시리즈 ⑷ 조선노동당, 이것이 궁금하다!' 에서 조선노동당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려 한다.

북한의 집권당인 조선노동당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NKtoday21@gmail.com으로 보내주시길 부탁드린다.

<조선노동당 집중 분석>

⑴ 조선노동당의 창건과정과 그 의미
    ① ㅌ.ㄷ에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창당까지 http://nktoday.kr/?p=11311
    ② 조선신민당의 출현과 양당 합당 http://nktoday.kr/?p=11406
    ③ 합당의 배경과 의미 http://nktoday.kr/?p=11564
⑵ 조선노동당의 구조
    ① 조선노동당 운영원칙과 당대회·당대표자회 http://nktoday.kr/?p=11772
    ② 당 중앙 체계와 지방, 기층 당 체계 http://nktoday.kr/?p=11885
    ③ 조선노동당 체계와 자본주의 국가의 정당 체계의 차이점 http://nktoday.kr/?p=11949
⑶ 조선노동당의 역대 당대회
    ① 조선노동당이 창건된 첫 당대회 http://nktoday.kr/?p=12210
    ② 분단을 막고자 노력했던 제2차 당대회 http://nktoday.kr/?p=12322
    ③ '개인숭배' 논란 속의 제3차 당대회 http://nktoday.kr/?p=12414
    ④ '승리자의 대회'로 선포된 제4차 당대회
⑷ 조선노동당, 이것이 궁금하다!
⑸ 조선노동당 제7차 당대회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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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개조 완성을 선포한 제4차 당대회

⑶ 조선노동당의 역대 당대회
④ '승리자의 대회'로 선포된 제4차 당대회

 

조선노동당의 당대회는 당 내의 최고의사결정기구다.

북한의 당대회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달리 '꼭 필요한 시기'에 개최되어 왔다.

그렇다보니 이번 5월 6일부터 개최되는 제7차 당대회 역시 6차 당대회에 이어 36년 만에 개최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7차 당대회를 앞두고 지금까지의 성과를 '결속'짓기 위한 70일 전투가 북한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역대 당대회는 어떠한 시기에 진행되었고 어떤 내용을 논의했을까?

역대 당대회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도록 한다.

(계속)

제4차 당대회

조선노동당 제4차 당대회는 1961년 9월 11일부터 18일까지 8일 동안 개최되었다.

제4차 당대회는 166만 6,359명의 정규당원과 14만 5,204명의 후보당원들을 대표하여 총 1,230명의 당원이 참가하였다.

이 때 소련, 중국 등 32개 국가 대표와 각 국 공산당을 대표하는 외교사절들도 참석하여 조선노동당 창립 이래 최대 규모의 행사로 치러졌다.

서동만 교수의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에 따르면 당시 북한은 이 대회를 '승리자의 대회'라고 칭했다.

당대회가 개최되던 9월 11일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이 대회를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평화와 사회주의 진영의 동방 초소에 얼마나 위력한 진지를 꾸려 놓았으며 얼마나 자신만만하게 나아가고 있는가를 과시한 승리자의 대회"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제4차 당대회를 '승리자의 대회'라고 했을까?

도시와 사회에서의 사회주의적 개조 완성을 선포

이 대회에서 장장 6시간 이상에 걸친 장문의 보고를 진행한 김일성 주석은 "도시와 농촌에서 사회주의적 개조를 완성하고 사회주의의 기초를 건설할 데 대한 력사적(역사적)인 혁명과업은 승리적으로 완성되었다"고 선언했다.

앞선 연재글에서 제시했듯이, 1958년 북한은 농업과 공업, 개인상공업까지 모두 공동소유․공동분배, 즉 사회주의적 개조를 완성하였다. (관련기사 : '개인숭배' 논란 속의 제3차 당대회 http://nktoday.kr/?p=12414)

이는 사회주의적 개조를 1953년 한국전쟁 정전 이후 "생산력의 발전수준이 비교적 낮고 기술이 낙후한 조건하에서 불과 4~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성"한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김일성 주석은 사회주의적 개조로 북한 내에 "착취계급도 피착취계급도 없다"고 선언했다.

급속한 경제성장

김일성 주석은 보고에서 제3차 당대회(1956)때 선포된 1차 5개년계획(1957~)을 2년 반만에 완성했다고 주장했다.

보고는 5년 동안 공업총생산액을 2.6배 성장시킨다는 목표를 그 절반기간인 2년 반 만에 완성하고 1957년부터 1960년까지 4년 동안 공업총생산액은 3.5배로 성장했다고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연평균 성장률은 36.6%에 달해 60년도 공업생산수준은 1944년에 비하여 7.6배가 되었다고 했다.

특히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성장시키는 노선 하에서 기계제작공업을 창설하고 국내 기계자급률이 46.5%에서 90.6%에 달한 점을 들어 '민족경제의 자립적 토대'가 구축되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1955년부터 본격화된 '주체'의 노선에 상당히 부응하는 경제적 성과였다.

아울러 식량문제도 기본적으로 해결되었다면서, 1960년도에는 곡물생산량이 380만 3천톤, 1956년 대비 32%가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김일성 주석은 이 같은 성과가 "사회주의 건설의 대고조 속에서 천리마운동의 발전과정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천리마운동의 총화

제4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은 천리마운동을 공식화했다.

천리마운동은 "공산주의 교양과 혁명전통교양을 결부시켜" 진행했던 결과로서 "생산에서의 집단적 혁신운동과 근로자들을 교양개조하는 사업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것으로 정의되었다.

천리마운동이란 옛날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말이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말이다.

즉, 천리마를 탄 기세로 사회주의 건설에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자는 것이다.

근로 대중이 자기 일에 대해 강한 책임의식과 자부심을 갖고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과 혁신을 이룩하자는 운동으로서 북한식 '혁명적 군중노선'의 전형인 셈이다.

북한에 세워져 있는 천리마 동상. ⓒ키리아노프 알렉, 러시스카야 가제타(Российская газета)
북한에 세워져 있는 천리마 동상. ⓒ키리아노프 알렉, 러시스카야 가제타(Российская газета)
천리마운동은 1956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사회주의적 경쟁운동'이다.

이 전원회의에서 중앙위원들은 5개년계획의 첫해인 1957년의 인민경제계획 과제들과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들을 토의했다.

여기서 김일성 주석은 "당 일꾼(간부)들이 군중 속에 깊이 들어가 대중의 창발성을 최대한 발동시켜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기한 내에 완수하자"고 제기하여 천리마운동이 시작되었다.

12월 전원회의 결정에 따라 조선노동당과 정부의 지도일꾼(간부)들이 전국 각지의 주요 공장과 농촌에 직접 파견되었다.

김일성 주석은 북한 중공업에서 중요한 단위인 강선제강소(철강제조)를 방문하여, 소련이 요구하는 경제노선(경공업․농업중심)으로 수정하지 않아 소련에서의 원조가 급격히 줄었다면서 이를 극복하고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노동자들의 열의뿐이라고 호소했다.

1956년 강선제강소를 찾은 김일성 주석의 모습. ⓒ민족21
1956년 강선제강소를 찾은 김일성 주석의 모습. ⓒ민족21
그리고 김일성 주석은 그 자리에서 "생산계획을 직접 근로자들과 토의하여 그들의 노력적 열성을 동원하는 조직사업"을 진행했으며, 강재 6만 톤의 생산능력밖에 안된다고 하던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목표량을 9만 톤으로 높이고 생산경쟁운동을 진행하게 된다.

그 결과 그해 강선제강소는 12만 톤의 강재 생산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뿐만 아니라 다음해인 1957년에는 전체 생산능력이 19만 톤밖에 안된다고 보았던 강재생산량을 27만 톤까지 올려놓았다.

제1차 5개년계획의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제기되었던 천리마운동은 그후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 5개년계획 기간을 앞당기는 원동력으로 되었다.

당시 천리마 운동의 구호. 출처 : 인터넷
당시 천리마 운동의 구호. 출처 : 인터넷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제4차 당대회가 '승리자의 대회'로 된 배경이었다.

청산리 정신과 청산리 방법

제4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은 당내 '종파주의(개인이나 분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태도) 청산'을 공식화했다.

그러면서 "교조주의(특정한 교의나 사상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현실을 무시하고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태도)의 해독적 영향을 극복하는 사상적 투쟁을 계속 강력히 진행함으로써…모든 분야에서 주체를 튼튼히 수립"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당 지도체계와 사업방법에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바로 1960년에 나온 '청산리 정신'과 '청산리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난 1959년 12월 전원회의에서는 더 큰 경제성장을 위해 전반 조선노동당 일꾼들의 역할을 높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 조선노동당․국가 일꾼들이 헌신적이고 모범적인 활동을 진행해 대중의 열의와 창발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결정이 난 것이다.

이에 김일성 주석은 '이신작칙(以身作則, 자기 스스로 몸소 실천해 모범을 보임)'의 모범을 보일 것을 강조했고, 가장 앞장에 서서 대중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현지지도를 자주 다녔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청산리 정신', '청산리 방법'이었다.

임영태 연구위원의 '북한50년사 2'에 따르면, 1960년 2월 김일성 주석은 보름동안 청산리 협동농장에서 농민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현지지도를 실시했다.

1960년 2월 김일성 주석은 청산리 농민들과 함께 보름동안 생활하며 '청산리 정신'을 만들어냈다. 출처 : 인터넷
1960년 2월 김일성 주석은 청산리 농민들과 함께 보름동안 생활하며 '청산리 정신'을 만들어냈다. 출처 : 인터넷
김일성 주석은 이 기간동안 농장 농민들과 대화하고 당 일꾼들의 사업을 검토해 당 사업에 나타나고 있는 형식주의와 관료주의(상급자에게는 약하고 하급자에게는 힘을 내세우려 하며, 자기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면서도 독선적인 행동이나 의식을 보이는 따위의 특성)를 해결하기 위해 몇몇 방안을 제시했다.

이런 현지지도 과정에서 윗사람이 대중 속에 깊이 들어가 아랫사람을 도와주면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청산리 정신', '청산리 방법'이 출현했다.

김일성 주석은 "청산리 방법의 기본은…늘 현지에 내려가 실정을 깊이 알아보고 문제 해결의 올바른 방도를 세우며 모든 사업에서 정치사업, 사람과의 사업을 앞세우고 대중의 자각적인 열성과 창발성을 동원하여 혁명과업을 수행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고 주장했다.

황석영 작가의 '사람이 살고 있었네'에 따르면, 청산리 방법의 요체는 당사업을 사무실에서의 복잡한 회의와 잡다한 문서놀음이 아니라, 창조적 열정이 들끓는 기계 앞과 논밭머리에서 사람들과 주고받는 살아 있는 삶의 사업으로서 전환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후 '청산리 정신'과 '청산리 방법'은 북한 모든 분야에서 당과 국가가 구현해야 할 사업방법으로 자리잡았으며 이것이 제4차 당대회에서도 보고되고 제시되었다.

전면적 사회주의 공업화를 위한 제1차 7개년계획(1961~1970) 제시

제4차 당대회에서 북한은 1953년~1955년 제1차 3개년계획, 1957~1960년 제1차 5개년계획(4년 만에 조기달성) 성과에 이어 1961~1967년 제1차 7개년계획 구상을 발표했다.

북한이 제1차 7개년계획에서 세운 기본과제는 "승리한 사회주의 제도에 의거하여 전면적인 기술혁명과 문화혁명을 수행하여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임영태 연구위원의 '북한50년사 2'에 따르면, 제7차 계획의 목표는 공업생산을 3.2배, 농업생산을 2.4배, 국민소득을 2.7배 증대시킨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무료교육과 무상치료 등의 과제를 완수함으로써 "사회주의 공업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춘다"는 계획을 세웠다.

당 규약 개정 및 당 중앙기관 선거

제4차 당대회에서 당 규약을 수정하여 조선노동당을 "영예로운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전통의 직접적인 계승자"라고 명시했다.

당 중앙기관 선거이 진행되어, 위원장에 김일성 주석, 부위원장에 최용건, 김일, 박금철, 김창만, 이효순 당원 등이 세워졌고, 총 85명의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 50명이 선출되게 된다.

※참고자료

임영태, "북한50년사 1", 들녘, 346~372페이지
임영태, "북한50년사 2", 들녘, 18~23페이지
황석영, "사람이 살고 있었네", 시와사회사, 1993, 127~131페이지
서동만,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1945~1961)", 선인, 529~589페이지
김근식, "북한의 '혁명적 군중노선' 연구", 서울대 석사논문, 1991, 51~52페이지

<조선노동당 집중 분석>

⑴ 조선노동당의 창건과정과 그 의미
    ① ㅌ.ㄷ에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창당까지 http://nktoday.kr/?p=11311
    ② 조선신민당의 출현과 양당 합당 http://nktoday.kr/?p=11406
    ③ 합당의 배경과 의미 http://nktoday.kr/?p=11564
⑵ 조선노동당의 구조
    ① 조선노동당 운영원칙과 당대회·당대표자회 http://nktoday.kr/?p=11772
    ② 당 중앙 체계와 지방, 기층 당 체계 http://nktoday.kr/?p=11885
    ③ 조선노동당 체계와 자본주의 국가의 정당 체계의 차이점 http://nktoday.kr/?p=11949
⑶ 조선노동당의 역대 당대회
    ① 조선노동당이 창건된 첫 당대회 http://nktoday.kr/?p=12210
    ② 분단을 막고자 노력했던 제2차 당대회 http://nktoday.kr/?p=12322
    ③ '개인숭배' 논란 속의 제3차 당대회 http://nktoday.kr/?p=12414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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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16-06-01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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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