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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의 처 김영명은 친일매국노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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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 김 작성일14-05-28 11:47 조회6,06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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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때는 배우자를 보고 표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당장 국민 앞에 나서 배우자가 어떤 분인지 밝히는 것이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 정몽준

몽준아, 먼저 네 배우자, 김영명 여사부터 밝혀줄까?

1) 막강 혼맥을 자랑하는 악질 중의 최고 악질 친일파인 김동조의 막내 딸.. 김영명

2) 정몽준 부인.. 선거법위반 동영상.. '정몽준' 실명 거론하고, 선거 슬로건까지 소개, 명백한 선거법위반! 물론 조중동매 500만부가 받쳐주니까 걱정은 없다.... 조중동매는 다 너네 혈족이잖니? ㅋㅋ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736695&pageIndex=1

3)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후보인 정몽준 의원의 부인 김영명 씨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당했다. 10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김영명 씨가 새누리당 당사에서 대의원들에게 정 의원 지지를 호소하는 등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고 주장하며 전날 고발장을 제출했다

4) 5월 11일, 새누리당의 한 중랑구청장 예비후보 캠프를 방문, "막내가 일을 저지른 거 아시죠?"라며 운을 띄운 다음 "그 아이가 지금 대학가는 것을 실패하고 재수생이다. 바른 소리를 했다고 격려해주시고 위로해주시기는 하는데 시기가 안 좋았고요. 어린 아이다 보니까 말 선택이 조금 안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미개한 국민'이라는 말이 '바른 소리'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재확인!! 만약 다른 시기에 했다면 문제가 없는 말!! 기본적인 인식 체계의 문제이자 사고 방식, 혹은 세계관과 가치관의 문제다. 이 문제는 단순히 학생의 철없는 발언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소위 '사회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국민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의 문제!!

5) 김동조(金東祚. 부산 동래. 1918년 8월 14일 - 2004년 12월 9일)는 과연 누구인가!!

친일파의 거두,전직 외무장관이자 변호사.. 흔히 외교계의 거목이라고 알고 있다. 왜 거목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수구언론에서 그렇게 부르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다.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이며, 무슨 일을 했으며, 살면서 무슨 덕을 쌓았는지 그게 중요한 판단기준이어야지 무조건 고위 외교관료직을 수행했다고 해서 외교계의 거목이라고 불러주면 어쩌자는 거냐? 일본 큐슈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일본 후생성과 내무성에서 근무하면서 일제에 충성하는 것으로써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사람!! 반민족행위자 99인에 들어가는 인물중 하나!!

동족인 한국인을 감시하는 경관으로 인생의 첫발을 내디딘 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과 한국 사이를 빈번히 오가며 일본에 징용된 수많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저항을 일본인들에게 밀고했다. 나중에 일본인들은 그를 승진시켜 한국인들에게 식량과 다른 지급품들을 배급하는 전시 책임자로 삼았다.

1945년 이후 그는 미군정을 위해 역시 한국인들에게 식량과 물품을 배급하는 일을 했다. 이승만이 대통령이 된 후 그는 신설 외무부에 들어가서 차관으로 승진을 했다가 퇴직했다. 그는 1961년 군사 쿠테타 이후 여당과 중앙정보부에 외교고문으로 복귀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에 기여한 후 그는 첫 주일 한국대사가 되었다.

대사로 재직하는 동안 “그는 일본 정치가들에게 뇌물을 준 매수꾼으로서 재일한국인 사이에서 악명을 떨쳤다.” 1967년 그는 주미대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몇 년 후 그가 미국의회 방문을 준비하면서 1백 달러짜리 지폐가 가득 든 봉투들로 서류가방을 채우는 것을 본 고용인이 그 사실을 폭로하는 바람에 큰 물의를 빚었다.

사회가 어수선한 시점에서 체계도 안 잡힌 대한민국 정부 하에서 일제 고급관료 경력으로 들어와 이곳저곳 부처를 넘나들며 일하다가 느닷없이 외무부 정무국장이 되고 이승만 정권 하에서 불과 서른여덟 살의 나이에 외무부 차관이 되었다.

정통 외교 관료도 아니고, 단순히 일본사람들과 가깝다는 이유로 승승장구!! 충격적인 것은 굴욕적인 한일회담 당시 대한민국 정부의 수석대표였고, 주일대사였다는 점이다. 미국 중앙정보부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박정희가 허겁지겁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서둘러 체결한 것은 군사쿠데타 직후부터 일본 기업으로부터 6600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받는 등 뒷거래를 해왔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밝혀낸 것이다.

노무현대통령이 몸담고 있었던 꼬마민주당에서 96년 총선 당시 이 문제를 정치쟁점화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단순한 정치적 의혹제기로 폄하됐다. 어쨌든 그 선봉에 김동조가 있었던 것!!

김동조가 수석대표로 나가서 체결한 한일회담의 성과라는 것은 참혹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확인된 일제치하 징병, 징용피해자가 총 103만 명이었다. 그 가운데 약 8만 명이 사망자이고, 3만 명이 부상자였다. 그 가운데 겨우 8천명의 사망자 유가족에게 쌀 15가마 살 정도의 돈인 30만원씩 나눠주는 정도로 끝났다. 그렇게 형편없는 보상을 해주고도 개인청구권 문제는 흐지부지 처리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명확한 사죄도 문서로 전혀 받지 못했고, 독도 영유권도 확실하게 해 놓지 못했고, 피해자의 생사확인도 안 했고, 피해자 통계도 제대로 안 냈고, 사망자 유해발굴 문제도 논의하지 못했고, 위안부 및 원폭 피해자 문제는 거론조차 안했고, 징용 사할린 동포 처리문제도 꺼내지 않았다.

당시 일본의 대표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측의 제공은 배상과 같이 의무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경제협력이라는 기본적 사고를 갖고 있다". 이렇게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굴욕적인 협정을 돈 몇 푼 받고 체결하는 데 김동조는 앞장섰던 것이다. 과연 외교계의 거목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한일협정은 일본의 전범세력과 한국의 친일세력이라는 부도덕한 두 세력이 역사의 지배세력으로 등장, 야합하여 만든 합작품이다. 그래서 한일협정은 몇 푼의 돈에 혈안이 되어 일제식민지 과거사 인식을 전면 외면함으로써, 그에 부응한 손해배상 청구권에 대해 매우 불명확하게 규정하였다." - 이장희 교수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한마디의 사과도 없는 그런 비정상적인 한일협정을 맺는데 앞장선 공로로 김동조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미국이라면 껌뻑 죽던 시기에 주미대사를 무려 6년이나 하면서 유신정권을 합리화하는 첨병이 되었다.

그리고는 외무부장관에 발탁되어 2년여간 활동하다가 그 후 박정희의 외교담당 특별보좌관직을 2년여간 수행하며 반민주적 유신체제 수호의 간성이 된다.

유신 말기 난데없이 한국석유개발공사 사장을 역임하다가 박정희정권이 붕괴하고 나서는 관직에서 물러나 느닷없이 변호사 개업을 한다. 김동조의 약력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가 어떤 근거로 왜 변호사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모든 게 어수룩한 시기였다. 어쨌든 이런 대단한 이력을 가지고 김동조는 거대한 혼맥을 구성하기 시작한다.

김동조의 부인은 약사이다. 약사출신인 부인 송두만과의 사이에 2남 4녀를 두었다. 장남 김대영은 현재 외국어대 무역학과 교수... 김민영의 부인은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인 정다미.. 장녀 김영애는 스스로 거물급 인사다. 모건스탠리 부사장.. 차녀 김영숙은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을 지낸 손원일의 장남 손명원(현대미포 사장과 쌍용자동차 사장을 역임)과 결혼, 손원일의 부친이 유명한 손정도 목사... 셋째 딸 김영자는 GS그룹 허씨 집안에 시집을 갔다. 남편이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사장.. 허광수는 조선일보 사장 방상훈과 사돈이면서 동시에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과 사돈인 조중동혼맥의 핵심인물!! 또한 이병철과 더불어 삼성을 공동 설립한 허정구의 셋째 아들, 작은 형은 GS 칼텍스 회장 허동수!! 셋째 딸 김영자(GS 칼텍스의 부회장)와 사위 허광수 사이에서 낳은 허유정이 현재 조선일보에서 후계자 수업을 하는 조선일보 사장 방상훈의 아들 방준오!! 방준오가 김동조의 외손녀 사위가 된다는 말~~

허광수의 누나는 누구냐? 바로 벽산그룹 회장 김희철의 부인 허영자!! 김희철의 제수씨가 박정희 셋째 형 박상희의 딸 박설자!! 김희철의 동생 김희용은 박정희의 조카사위가 되는 거고, 박근혜의 사촌형부가 되며 김종필과는 동서지간!!

허광수의 삼양인터내셔널을 살펴보자!! 우리들이 그토록 미워하는 조선일보 류근일 주필이 바로 삼양인터내셔널의 사외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작은 아버지 허준구는 LG건설 명예회장!! 또 다른 작은 아버지 허신구는 LG그룹 부회장!! 막내삼촌인 허승조는 GS유통 대표이사로서 태광그룹 창업주 이임룡의 장녀 이경훈과 결혼!!

차녀 김영숙과 사위 손명원 사이에 낳은 손정희가 영화배우 남궁원의 7막7장 아들이라는 헤럴드경제신문 사장 홍정욱(전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결혼, 헤럴드 경제신문은 노태우의 사돈인 신명수가 창업한 회사!!

김동조의 후손들이 얼마나 막강한가? 지금 김동조의 막내 사위 정몽준과 부인인 막내딸 김영명의 인맥을 더한다면 이것은 거의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한다!!

한국 그랜드 서클의 폐쇄성과 고립성과 배타성과 경직성을 민주개혁세력은 주목해야 한다. 한국 수구 겹사돈 모임을 무시하면 안 된다. 한국의 기득권은 바로 이런 강고한 카르텔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개혁이 지지부진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개혁을 원하지 않는 강력한 기득권 세력들이 혼맥을 통해서 거대한 망을 형성하고 저항하기 때문이다.

정몽준이 2002년 12월 18일 밤 10시에 느닷없이 노무현 후보를 왜 버렸겠나?

조선일보의 후계자인 김동조의 조카 사위 방준오를 빼고 설명이 가능할까?

http://cafe.daum.net/antimb/HXck/160354?q=%B1%E8%B5%BF%C1%B6%20%C4%A3%C0%CF%C6%C4

ps. 김동조는 1979년 박정희의 죽음을 예감하고 은퇴를 고려할 때 석유공사사장에 취임.. 1981년 변호사를 개업하였는데 이미 공직에서 은퇴를 하였으므로 국유본에 나라를 팔아먹는 공무원 신분인 외교관을 더 이상 할수 없게 되자 민간인 신분으로서 재벌도 아닌 사람이 국유본 일을 계속려면 변호사가 최적이라고 판단..

딸들이 친일파인맥을 이용해 출세하였는데 한국친일파들이 뽐뿌를 받은 이유가 일본이 네오콘에서 뉴라이트로 전향할 때 양다리를 잘 걸쳐서 국운이 융성하였는데 국내친일파들도 이때 신분상승을 이루었음. 둘째딸이 모건스탠리 부사장이 되고 정몽준 총독의 아내이자 실질적인 브레인인 김영명.. 딸들 덕에 빅터황제에서 성공적으로 록펠러가문으로 말을 갈아 탈수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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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친일파후손들은 어쩔수가 없어~!!!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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