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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애호가 작성일13-07-23 21:18 조회53,4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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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71]북 음악예술 통해 북을 알아본다/

노래《내나라》는 1956년 김혁작곡해 소개





<##IMAGE##> 리준무 지휘자(뉴욕 우륵교향악단 단장)는 북 음악예술을 통해 북을 알아본다는 민족통신 연재-71번째로 노래《내나라》를 소개하는 글을 보냈다. 이 노래는 김혁 작곡, 가사는 집체적으로 한 노래로서 이북동포들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 곡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김일성주석을 높이 모실 수 있었기에 암담하고 비참하던 우리민족의 수난사가 존엄 높고 영광스러운 민족번영의 역사로 찬란하게 전환될 수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긍지 높고 행복한 민중으로 될 수 있었다고 긍지 높게 말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의 글 전문을 여기에 게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글:리준무 지휘자(뉴욕 우륵교향악단 단장)


이 노래는 1956년 김혁이 작곡하였고 가사는 집체적으로 작사한 것이다.




[1]

산 좋고 물 맑은 아름다운 내나라
여기 내가 태어났고 자라나는 곳
수령님 사랑 속에 행복은 꽃피어
사람마다 내 조국 노래 한다네

[2]

천리마 달리어 번영하는 내 나라
우리모두 화목하게 살아가는 곳
위대한 수령님 천만년 모시고
통일된 조국에서 길이 살리라

[수령님 모시고 길이 살리라]



얼마 전에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최씨라는 사람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때 같이 왔던 사람 서너 명과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조국문제, 통일문제와 민감한 시사이야기를 하느라고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계속되었고 특히 통일문제에 대한 의견들은 끝이 없이 제기되었다. 이번에는 노래를 들으면서 이야기의 주제를 바꾸어 분위기를 새롭게 해 보고 싶었다.

“우리 심심하니 이북 노래나 한 곡 들으면서 이야기를 계속합시다.”라고 제안 하였다. “그거 참 좋지요”라고 하면서 최씨는 맞장구를 치고 나왔다. 오디오 음향기에서는 맑은 목소리로 감칠맛 나게 부르는 가요<내나라>의 아름다운 선율이 테너가수의 노래로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손님들은 노랫소리에 도취되어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한참 노래를 듣던 최선생은 말문을 여는 것이었다. “질문이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습니까?”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남에서 대학교육까지 받고 온 최씨는 성격이 후덕하여 사람들의 호감을 받고 있는 사람인데, 들리는 바에 의하면 노래솜씨도 일품이라고 하였다. 이 사람은 기분이 나면 노래를 한가락씩 뽑아 부른다고 하였다.

《내나라》는 노래가 참 좋습니다. 최씨가 말을 꺼내었다. “산 좋고 물 맑은…의 가사를 보면 산천을 노래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였는데 이것은 어쩌면 남과 북이 그렇게 같을 수가 있느냐”고 신기해 하는 그는 평소에 나름대로 이북노래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오늘은 허심탄회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보겠다고 하였다.

솔직히 《내나라》는 가사를 귀담아듣지 않으면 남의 노래인지 북의 노래인지 잘 구분이 안되었다. 그러나 이북의 노래들은 선율이 아름답고 자연스러우며 반주도 화려하게 편곡되어있어 이남의 가곡을 들을 때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의 질문은 의외로 당돌하고 단도직입적이었다.

왜 이북노래에는 가사에 ‘수령님’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많이 나오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다 반공교육의 산물이겠거니 하며 스쳐 지나가려 했는데 질문이 하도 어이가 없는 것이어서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한참 동안이나 빤히 쳐다보았다. 최씨는 노래의 절(節)마다에는 ‘수령님 사랑 속에 행복이 꽃핀다’고 했는데 수령님의 사랑과 인민들의 행복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남에서는 대통령의 행복이 오히려 국민들의 고통으로 되어오는 때가 많이 있었지 않았느냐면서 무엇 때문에 이북 사람들은 노래에서까지 수령님, 수령님 해 쌌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왜 이북의 민중들이 그렇게 까지 수령님을 존경하고 수령님에 열광하는 것인지 자기에게 그 점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좀 해 달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어머니가 있듯이 누구나 다, 자기가 사랑하는 나라가 있다. 그러나 어머니조국이라 불러야 할 “내 나라”가 없었던 참담하고 서글픈 시절을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암흑 같은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일제의 총칼에 속절없이 죽어나가 그 흘린 피가‘피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런 때에 여명을 알리는 “조선의 별”이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수령님 품속에서 행복의 꽃을 피워가며 살아왔던 이북의 민중들은 자기를 안아주는 나라와 삶을 끝까지 책임져주는 당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이북의 근로대중들은 오늘의 이 행복이 어디서 그냥 굴러들어온 떡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자기가 태어났던 바로 그 땅, 그 국토 위에 살고 있었으나 주권이 없는 탓에 견디기도 힘든 노예생활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불러야 할 어머니 조국이 없어져버리니 언어는 있어도 서로 말을 할 수가 없었고, 훌륭한 글자가 있었어도 쓸 수가 없어 무용지물로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름답다는 삼천리강산도 저주의 땅덩어리로 전락되어 버리고만 것이다.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에서 그때의 심각한 상황을 <세기와 더불어>첫 페이지에 이렇게 기술하였다. “…수려한 산천경개를 자랑하는 이 강토는 일본제군화와 대포바퀴 밑에서 짓이겨 있었다. 민중은 국권을 강탈당한 슬픔과 분노에 치를 떨었다”고 언급하며 <시일야방성대곡>의 여운이 살아지지 않고 있던 이 땅의 초야와 지붕 밑에서 수 많은 충신들과 유생들이 망국의 한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였다.

어린 김일성주석은 이런 시국에서 느낀 심정을”오라는 사람도 없고 반겨줄 사람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니 어린 나로서도 기가 막히고 눈앞이 캄캄해졌다”라고 하면서 어린 마음에도 꼭 나라를 찾아야 하겠다는 결심은 더욱 굳어져만 갔다.

긍지 높은 《내나라》

8월15일은 광복 67돌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이한 우리민족은 민족재생의 새 세상을 펼쳐준 항일의 영장 김일성주석과 일제를 쳐부수고 승리를 가져온 항일유격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기의 재산과 지혜 그리고 목숨까지 바친 애국 선열들에게 가장 숭고한 경의를 드린다.

일찍이 어린 나이에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굳은 맹세를 하고 조국해방의 길에 나섰던 김일성주석은 1932년 4월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 하였다. 김일성주석은 민중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주체사상의 이론과 공명정대한 혁명노선을 바르게 세워서 조국해방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으며 비범한 군사적 예지와 탁월한 지략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승리로 이끌어냈다.

시인 박세영은 김일성주석이 이뤄놓은 조국광복의 감격과 해방의 은인으로 조국에 개선한 장군을 맞이하는 벅찬 기쁨을 한시라도 빨리 대중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박세영은 민주의 새 조선에 떠오르는 위대한 태양을 모시는 긍지를 거창한 화폭에 담아 모시려는 심정을 다음과 같이 힘차게 노래하였다.


노동자 대중에겐 해방의 은인
민주의 새 조선엔 위대한 태양…….




차별이 없는 《내나라》

토지개혁을 단행하여 근로대중에게 농사지을 땅을 무상분배를 하여 농민들이 당하였던 가난의 서러움을 없애 주었고 남녀평등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문맹퇴치운동을 대대적으로 실시하였다.

해방이 되면서 바로 시작한 문맹퇴치 사업은 점차 무상의무교육의 기초를 닦아 놓았고 이러한 운동은 해방 당시에 한 개의 대학도 없던 이북에 150여 개의 대학이 설립되었고 600여 개의 전문대학이 생겨나 소학교 중학교를 포함해서 교원수가 무려 20만 여명에 달 한다고 하였다.

학생 25명마다 교원 한 명이 배정 된다는 이야기 이다. 지금은 지식인들의 대열이 200만을 돌파 하였고 1946년과 비교해볼 때 대학은 70여배로 성장 했으며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학비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날 우주공간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며 북조선의 과학기술을 세계에 과시하며 국력을 신장 시킬 수 있었던 것도 주석님의 교육에 대한 원대한 구상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일성주석은“우리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서는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강조 하였다. 그리고”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여 조국을 통일하는 것이 나의 희망입니다. 나는 나라가 분열된 첫날부터 민족대단결을 조국통일의 중요원칙으로 내세우고 그 실현을 위하여 꾸준히 투쟁하여 왔습니다” 라고 지적하면서 민족대단결의 중요성을 두번, 세번 강조하였다.

오늘날 3세계 나라에서는 북조선이 미국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책동에 맞서 벌어지고 있는 첨예한 대결 전에서 걸음마다 승리를 쟁취해오는 통쾌한 모습을 보고 부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북 사람들은 이런 통쾌한 승리의 모습을 수령복과 장군복이라고 한다. 그래서 민중들은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이다.

김일성주석을 높이 모실 수 있었기에 암담하고 비참하던 우리민족의 수난사가 존엄 높고 영광스러운 민족번영의 역사로 찬란하게 전환될 수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긍지 높고 행복한 민중으로 될 수 있었다고 긍지 높게 말하고 있다.

“최선생 이제 이해가 되셨습니까?”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우리는 노래<내나라>를 같이 불렀다. 그리고 박장대소 하였다. 유쾌한 웃음소리는 멀리 퍼져나갔다. 하 하하하……..



북조선 노래 《내나라》감상--여기를 짤각해 열람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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