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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1]<정상회담>에 기대거는 일본의 정경모선생(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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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8-04-26 03:36 조회8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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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길남특파원은 일본지역 취재중 정경모선생을 만나 간단하게 대담시간을 가졌다. 그는 선생에게 전화를 걸고 도꾜에서 전철을 두번 갈아타고 요꼬하마 히요시에 거주해 온 그의 자택을 찾았다. 기억력도 좋고, 말씀도 잘하시어 그의 건강이 좋은편이었다고 전했으나 그의 걸음걸이가 조금 불편한것 같아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그러나 옆에 계신 사모님은 나이도 94세이지만 그는 걸음걸이도 괜찮고 기억력, 목소리 모두 좋았다고 전하면서 최근 일본 3대일간신문인 <마이니찌=매일신문>의 특집보도가 지난 42일자에 특집보도로 실려 그 어느 한국언론들도 다루지 않는 내용을 마이니찌가 다뤄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족통신 편집실]


일본-정경모부부.jpg
[사진]일본 요꼬하마에 거주하는 정경모선생 부부를 심방한 민족통신 기자

 

 

[기획-11]이번<정상회담>에 기대거는 일본의 정경모선생

망명객 정경모선생의 근황을 듣는다


일본-정경모부부01.jpg

[사진]정경모선생을 대서특필로 다룬 마이니찌신문 4월2일자를 보여주는 민족통신 기자


 

 [요꼬하마 =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일본에 망명하여 장구한 세월을 살아오며 앉으나 서나 조국분단을 한탄하는 한편 자주적 평화통일을 갈망하여 온 정경모선생은 벌써 94세가 되었는데, 이번에야 말로 냉각되어 온 남북관계가 풀릴것 같아 기대에 차 있다고 반응한다.

 

기자는 일본지역 취재중 정경모선생을 만나기 위해 전화를 걸고 도꾜에서 전철을 두번 갈아타고 요꼬하마 히요시에 거주해 온 그의 자택을 찾았다. 기억력도 좋고, 말씀도 잘하시어 그의 건강이 좋은편이나 걸음걸이가 조금 불편한것 같아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옆에 계신 사모님의 나이도 94세이지만 그는 걸음걸이도 괜찮고 기억력 목소리 모두 좋았다.

 

두 내외가 독채로 된 자택에서 살고 계신다. 기자가 들어가자 미국에 있는 황규힉 선생을 비롯한 지인들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기자에 지난 시기에 방문했던 날들을 기억하며 그동안의 생활에 대해서도 묻기도 했다.

 

그는 기자와 안부들을 묻고 난뒤에 일본의 3대일간 신문중 하나인 <마이니찌=매일신문>201842일자가 대서특필로 다룬 김일성주석과 정경모 선생과 문익환 목사 등이 지난 198942일 평양에서 4.2선언을 한 성명서 부분과 관련내용들을 복사하여 그 한부를 건네준다.

 

일본 마이니찌(매일)신문서 4.2성명 대서특필


일본-정경모부부02.jpg

[사진]정경모선생을 대서특필로 다룬 마이니찌신문 4월2일자 보도

망명 한국인 정경모씨 93세, "조국에 봄은 옵니까"


정경모 선생은 이 신문에서 4.2공동성명을 특집으로 다룬 것도 놀랍지만 4.2공동성명을 이렇게 자세하게 보도한 것에 대해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는 반응이다.

 

일본의 3대일간지 마이니찌 신문은 문익환목사와 정경모선생이 지난 19893월에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고 역사적인 4.2공동성명을 발표한 그날을 기념하여 지난 42일자 특집판에 김일성주석과 정경모선생이 악수를 하는 사진까지 편집하여 장문의 내용을 소개한 것은 최근들어 조선이 국제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정세이기 때문에 이 같은 일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으로 이곳 지식인들은 유추하고 있다.

 

정경모선생에 대해 특집기사를 쓴 일본기자는 스쯔기 다꾸마라는 고참 언론인이다. 그는 1959년생으로 57세인 나이로서 이 신문사에서는 지금 현재 1982년부터36년 동안 일해 왔다고 한다. 그는 그 당시에도  4.2공동성명을 포함하여 조선문제에 관련한 주요 기사들을 집필하여 온 인물로 알려져 왔다.

 

이 신문은 정경모 선생이 평생을 통일운동을 해 온 인물이라는 소제목도 달아 그가 걸어 온 가시밭길을 상기시켜 주었다.

 

정경모 선생, 그는 누구인가


1924년 서울태생으로 경기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일본 게이오대학 의대 예과를 졸업하고 1950년에는 미국 에모리대학을 졸업했다. 전쟁이 터진 시기에는 미군에서 통역요원으로 일한바 있었는데 그 당시 문익환목사와 박형규목사와 친분을 갖고 지냈다.

 

그러나 미군의 침략성과 차별에 대한 경험을 갖고 사퇴를 하고 이승만 정부에서 기술고문으로 일한바 있었으나 이승만과 그 정권이 반민주, 친미사대주의 정치권력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증오하게 되었다. 그는 또한 1960년 군사정변으로 박정희가 정권을 찬탈하고 국민들을 탄압하는 암흑시대를 맞자 일본으로 망명하게 되었고, 망명생활을 하면서 활발한 문필활동을 펼쳤다.

 

1973년에는 재일한통련 기관지인 <민족시보> 주필로 일한 경력도 있고 같은 해 김대중선생 납치사건이 터졌을 때 일본 진보 월간지였던 세까이(세계)지에 기고하여 한국군사독재의 만행을 폭로하여 일본사회에 김대중선생이 누구인가를 널리 알리기도 했고, 이어서 1980년 광주항쟁이 일어난 이후에는 <씨알의 힘>이라는 이름의 사숙을 열어 당시 재일동포사회에서 통일운동가로 그리고 이론가로 활동해 왔다.


그의 예리한 글들은 일본사회 뿐만 아니라 한국과 해외동포사회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찢겨진 산하>를 비롯하여 <일본인과 한국인>, <어느 한국인의 생각>, <한국민중과 일본>, <기로에 선 한국>, <일본의 본질을 묻는다> 및 자신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의 불침번>, 그리고 부르스 커밍스가 쓴 영문도서 <The Origin Of the Korean War(코리아 전쟁의 기원)>를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정경모 선생은 그의 생애 가장 소중한 추억은 19893월 문익환목사와 동반하여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주석을 만날 수 있었던 것과 42일 북측 조평통과 민간인 차원에서 4.2공동성명을 발표하였던 그 역사적 사실이라고 회고한다.

 

그는 그때의 일을 돌이켜보며 사실 그 당시 삼엄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목숨걸고 이북에 가서 공동성명까지 발표하였다.”라고 말한다. 이런 일 때문에 문익환목사 가족들하고는 지금도 가까이 지낸다고 하면서 몇년 전에는 문익환목사의 맡딸 문영금, 세째 아들 문성근, 외손자 박문칠도 자신의 집을 다녀갔다고 밝힌다.

 

정경모 선생이 말하는 4.2성명은 9개항 가운데 4번째 항에서 남북통일방안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통일방안은 처음부터 완전히 하나로 되기 힘드니까 남북 양측의 이념이나 제도를 그대로 두고 1단계 통일방도로서는 <연방제 통일>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내용이다.

 

그 당시에 발표한 4.2공동성명에서 밝힌 4번째항은 쌍방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지 않고 일망이 타방을 압도하거나 타방에 압도당하지 않는 공존의 원칙에서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우리민족이 선택해야 할 필연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방도가 되며 그 구체적인 실현방도로서는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에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같은 방도에 대해서는 김일성주석께서 이미 19801010일 고려민주연방제에 대한 내용을 천명한 적이 있었고, 그리고 2000년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김대중대통령이 6.15남북공동선언을 하면서 그 선언내용에서도 언급된바 있었다.

 

기자는 이날 정경모선생과 대담을 갖는 시간 잠시 부인도 자리를 같이하자고 제언하여 그를 옆자리에 앉게 했다. 나까무라 지오꼬 여사인데 이분 또한 94세 동갑내기이다. 정경모 선생이 일본생활할때 하숙집 딸이었는데 인연이 되어 67년전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결혼생활에 대한 소회를 묻자 지오꼬 여사는 평범한 여성이라고 말하면서 저분이 가난해서 평생 어려운 생활만 지속해 왔다.”고 솔직하게 답변한다.

 

이들 부부는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장남은 정강헌씨(64)인데 정년퇴직하여 은퇴생활을 하고 있고, 둘째 정이영씨는 58세로 오사카에서 중국소수민족에 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고 교수생활을 하면서 그의 장인이 제주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분의 영향을 받고  일본에서 <제주4.3항쟁>과 관련된 모임에 참가하여 활동해 왔 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요즘 정세와 관련하여 이북의 젊은 지도자가 정치를 괜찮게 한다고 말하면서 그동안 남북문제가 실망스러웠는데 이번에는 남북 양측 지도자들에게 기대가 된다고 언급한다. 이제 역사적인 그 시간은 불과 얼마남지 않은 시점에 와있다



*정경모 선생의 자택 연락처:

일본: 04-5561-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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