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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필라델피아 황규식선생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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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8-01-18 23:15 조회41,91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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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길남 민족통신 편집인은 처음으로 필라델피아 황규식 선생을 탐방하여 취재하였다고 밝히면서 그는  <81세의 청년>같다고 소감을 말한다.  그는 8순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학구적이며 생각하는 모든것들이 순수하여 그의 언행이 청년학생처럼 느껴진다. 그는 재미동포 통일운동진영의 원로가운데 한분이지만 그를 탐방하여 대화를 나눈 것이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라고 말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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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황규식선생(가운데)과 사모 김향순여사와 대담하는 민족통신 기자

 

[심방]필라델피아 황규식선생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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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황규식 선생은 <81세의 청년>같다. 그는 8순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학구적이며 생각하는 모든것들이 순수하여 그의 언행이 청년학생처럼 느껴진다.그는 재미동포 통일운동진영의 원로가운데 한분이지만 그를 탐방하여 대화를 나누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는 우선 그의 삶의 배경이 알고 싶어 질문했다. 그는 1937212일 서울태생이다. 황규식 선생은 양정고등학교, 그리고 서울문리대 종교학과를 1954년 졸업하고 1970년대 초반에 독일 문헨으로 유학을 가서 30개월정도 공부하고 1975 7월 가족들이 살고 있는 뉴욕으로 왔고, 19768월에 <필라델피아>로 이사와서 지금까지 사모님과 2남중 장남과 함께 살고 있다.

 

자신의 학교배경을 설명하며 고등학교는 전쟁시기가 겹쳐서 그는 194991일 경기공업에 들어가 6개월 공부하다가 전쟁이 터져 피난가서 피난학교에 다녔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보인상고, 성동고교 등을 전전하다가 마지막에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면서 3년동안에 무려 6개고등학교를 다닌셈이라고 회고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입대하여 1961년 제대한후에 고등학교 독일어교사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서울상고, 삼성고, 경동고 등에서 교원생활을 하며 서울대학을 포함하여 신학대학에서 조교로 그리고 강사로서도 생활하다가 공부가 더 하고 싶어 197322일 독일로 유학을 떠나 30개월가량 문헨대학에서 독일어와 신학을 공부하다가 2년 반후에야 미국의 가족 있는 곳으로 가서 합세했다.

 

그러고 보니 미국생활도 42년이 넘었다고 돌이켜본다.황규식 선생은 그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식품점을 포함하여 세탁소 등 자영업을 운영하였고, 부인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간호대학을 나와 간호원으로 일했고, 미국에 와서는 간호원(RN)으로 일하다가 황선생과 함께 가게도 같이 운영하며 가정을 꾸려왔다.부인 김향순여사는 전라남도 목포 출신으로 남편보다 미국에 간호원 취업이민으로 이민을 먼저 왔다. 


 

황규식선생은 바쁜 이민생활을 하면서도 사회정의, 조국통일 문제데 대해 관심이 많았고 기회만 있으면 참여하여 왔다. 이미 이민 초창기에 임창영박사가 1970년대에 이끌어 온 미주민련의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활동했고,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윤한봉씨가 조직한 한겨레청년연합, 한겨레연합 등에 첨여해 활동했고, 1990년대에는 전민특위, 자주연합, 재미동포전국연합회, 6.15미국위원회 등의 단체들에서도 참여하여 왔다. 그의 해외활동가운데에는 독일유학시절 뮨헨에서 이영빈목사의 아들, 이택씨(당시 학생)등과 함께 1970년대 초에 그 지역 동포간호원들의 권익쟁취를 위하여 동포간호협회를 조직하는데에도 기여해 왔다.

 

황규식 선생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의 북조선에 대한 이해는 대단히 높았다. 그는 1985년 첫 방북의 기회를 가진 것은 <>임창영박사의 권유였다고 밝히면서 그 후에도 2003, 2005, 20124차례 방북경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조선에 대한 소감을 묻자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조선의 25백만 동포들은 모두가 골고다의 고난의 십자가를 질머지고 투쟁하여 온 예수들이라고 평가한다.

 

북녘동포들의 고난의 행군은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뿐만 아니라 지난 70여년의 노정은 조선의 평화와 주권과 함께 인류사회의 평화와 주권을 위해 투쟁하여 온 지구촌 향도로서 사회주의 마지막 보루라고 거침없이 단언했다. 그는 이어 북을 잘 모르는 미국인들이나 한국인들은 북의 비핵화를 말하는데 조선은 <세계의 비핵화>, 다시 말하자면 비핵화를 하려면 미국을 포함하여 핵가진 나라들 전부가 비핵화하여야 한다는 깊은 뜻을 갖고 투쟁하여 온 나라가 조선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 <후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는 첫째로 공부하라고 충언했다. 정세를 제때 파악하며 역사공부를 하여야 이에 기초하여 올바로 실천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윤리적인 면에서 보통사람들 보다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말만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학습과 실천을 겸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기자는 황규식 선생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세상을 떠난 재미동포 애국자들의 이름도 다시 한번 상기하는 기회가 되었다. 필라델피아에서 활동하다가 세상을 떠난 내과의사 최도식 선생, 강근선생 등을 비롯하여 로광욱선생, 최석남장군, 최정열여사, 서정균선생, 문명자선생, 안용구선생,일본의 배동호선생 등의 이름들이 튀어 나올때 마다 자주운동, 민주운동, 통일운동의 선배들의 고귀한 업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기도 했다.


이번 황규식 선생댁을 심방하여 취재하게 된것은 언론인으로서는 아주 좋은 기회로 추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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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minzok615님의 댓글

minzok615 작성일

선생님 말씀에 아주 동감합니다.

<<<그는 첫째로 공부하라고 충언했다. 정세를 제때 파악하며 역사공부를 하여야 이에 기초하여 올바로 실천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윤리적인 면에서 보통사람들 보다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말만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학습과 실천을 겸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진하님의 댓글

최진하 작성일

“조선의 2천5백만 동포들은 모두가 골고다의 고난의 십자가를 질머지고 투쟁하여 온 예수들”이라고 말씀하신 황귷식선생님의 묘사는 짱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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