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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정유미선생 서거9돌즈음 북측서 조의문 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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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7-07-24 15:18 조회238,77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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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특위(미군범죄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활동으로 한생을 바친 재미동포 정유미 선생이 서거한지 오는 7월26일로  9돌을 맞는다. 이날에 즈음하여 북측의 전민특위 북측위원회와 6.15북측위원회가 공동으로 6.15공동선언실천 해외측위원회 사무국 앞으로 조의문을 보냈다. 정유미 선생은 2008년 7월26일  12 35분 경기도 남양주 에덴요양병원에서 암치료를 받던 중 향년55세로 서거했다. 고인의 유해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되었고, 매년 한국진보연대를 비롯하여 한국의 민족민주운동 단체들 성원들이 고인을 추모해 왔다. 조의문 전문을 여기에 게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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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5공동선언실천 해외측위원회 앞
 
    북과 남, 해외에서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려는 겨레의 지향과 념원이 날로 높아가고 있는속에 정유미선생서거 9돐을 맞이하고있습니다.

    이날을 맞으며 미군범죄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북측본부와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는 한생을 반미자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한 정의의 애국위업에 다 바친 정유미선생에 대한 북녘동포들의 경건한 추모의 마음을 고인의 유가족들과 귀 단체에 정중히 전하는바입니다.

    우리 민족이 겪는 민족분렬의 비극을 두고 그 누구보다 가슴아파하며 일찌기 통일운동에 한몸 바칠 비장한 각오를 품은 정유미선생은 미국땅 한복판에 미군범죄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공동사무국을 내오고 그 자신이 통일의 불꽃이 되여 지칠줄 모르는 정열과 강의한 의지로 자기의 온 넋을 다바쳐 싸우다 그처럼 바라던 통일의 날을 보지 못한채 불치의 병으로 우리곁을 떠나갔습니다.

    아직도 우리의 귀전에는 민족분렬의 장본인이며 아성인 미국에서 남조선강점미군의 철수를 피타게 웨치던 정유미렬사의 절규가 생생히 들려오고있습니다.

    정유미선생의 생애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성스러운 통일애국의 길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민족의 장한 딸, 참다운 통일운동가의 빛나는 한생이였습니다.

    정유미선생은 비록 서거하였지만 민족을 위한 애국의 길, 조국통일위업에 한몸 바친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한품에 안아 내세워주시는 따사로운 태양의 품속에서 오늘도 통일애국인사, 조국통일상수상자로 영생의 삶을 누리고있습니다.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간지 어느덧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민족의 화해와 대단합, 통일을 위해 바친 선생의 고귀한 넋과 한생은 오늘도 우리모두를 통일애국의 길로 힘있게 떠밀어주고있습니다.

    우리는 귀 단체와 인사들이 자주통일을 위해 온 넋을 바친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민족의 화해와 단합, 자주통일을 위한 거족적인 통일애국의 길에 앞장서나가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합니다.

 
미군범죄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북측본부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주체 106(2017)년 7월 26일

 


정유미 선생의 서거 7돌기념 추모회와 관련하여 민족통신이 2015년 7월25일 보도한 내용을 여기에 소개한다.

민족통신 보도(2015 7 25 )


재미동포 정유미 열사,

한국 민족민주운동 인사들 7년째 추모제 진행


[서울=민족통신 종합]미군범죄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전민특위) 사무총장으로 활약한 재미동포 정유미 열사가 운명한지 벌써 7년이 되었다. 그는 지난 2008 726 서울서 타계하여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되어 국내 민족민주운동 인사들이 7년째 추모제를 지내왔다. 금년에도 25() 손미희 선생을 비롯하여 일부 인사들이 고인의 묘지를 찾아 7주기 추모제를 진행했다.


동안 한국진보연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전국여성연대가 고인을 기억하는 모임을 가져왔다.


정유미 열사는 1962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976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성장하고 생활했다. 고인은 미국에서 살면서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열정적으로 투쟁했으며 2000 전민특위 공동사무국 사무부총장, 2005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다. 2001 코리아 국제전범 재판이 뉴욕에서 열렸을 남쪽에서도 미군학살 피해자와 유족들이 방문했었다. 그때 참가자들은 정유미 열사가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눈물을 흘리며 연설했던 모습을 잊지 않고 있다.


고인은 생전에 미군의 범죄를 폭로하고 분단된 남북의 상황을 알려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서울, 평양, 유럽 어디에라도 방문하여 진정성을 갖고 열정적으로 활동하였기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유미 열사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고인의 활동모습을 보면서 "생명력 있는 들꽃을 닮았다" 묘사했다. 그리고 측근은 그의 영결식에서 고인을 가리켜 꺾이지 않는 들꽃 같은 혁명가라고 불렀다.


정유미 열사 약력

1962 함평 출생 
1976
시카고로 이민 
1980
일리노이 주립대 - 회계학 전공 
1983
석암 회원 [시카고 인근지역 한인 대학생 청년 조직] 활동 
1989
재미한국청년 연합 [한청] 가입 
1990
시카고 청년교육문화원 원장 한청 시카고 지부 국제연대위원 역임 
1991 Nkrumah Washington
교육센터 [흑인청소년 교육 자립센터] 이사 자문위원 역임 
1994
북미주 조국 통일 동포회의 [동포회의] 가입, 국제연대 위원장 역임 
1994
동포사회를 위한 시카고 모임, 국제연대 위원장 역임 
1995
해방 50주년 평화통일 국제대회 [국제연대 실무] 역임 
1995
동포회의 자주연합으로 개칭, 국제연대 위원장 역임 
2000
전민특위 공동사무국 사무부총장 역임 
2001 ANSWER
전국 실행위원 역임 
2005
전민특위 공동사무국 사무총장 역임 
2006 6.15
민족통일대축전 대표단으로 광주행사에 참가 
지인들의 권고로 건강 검진 위암말기 진단 남측에서 투병생활 시작 
2008 7.26
12 35 남양주 에덴요양병원에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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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꽹과리님의 댓글

꽹과리 작성일

유미선생 벌써 9년세월이 흘러갔네요.
집회가 있을때마다 선봉에서서 피를 토하듯 부르짖던 한마디의 절규!  "조국의 자주적통일" 지금도 이 귀에 쟁쟁합니다.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투쟁의 길, 주변의 눈치가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조국통일의 한길로만 꿋꿋하게 걸었던 정유미열사!

전민특위!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기획하고, 이리뛰고 저리뛰며 성공시켰습니다.
손에 쥔것까지 다 쏟아부어버린 빈털털이...

그러나 그대의 이름은 조국의 품에서 더욱 빛이나고 있습니다.
누구를 애국렬사라 하여도 정유미만한 가슴뜨거운 열사가 또 어디 있을까.
 
조국통일상수상자 정유미열사님, 부디 편안한 잠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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