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10] ≪평양곡산공장≫에 얽힌 영도자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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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6-12-19 23:19 조회15,041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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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73번째 방북취재중에 이 공장을 참관한 것은 퍽 의미가 깊은 것 같다. 왜냐하면 김일성주석께서 조국해방직후 평양에 입성하여 최초로 현지지도한 곳이 중공업단지도 아닌 ≪평양곡산공장≫이다. 이 식료품 공장이 김주석께서 최초로 현지지도 한 공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것 같다. 그래서 이 공장에 대한 이야기는 한층 더 호기심이 많았다.[민족통신 편집실]
[방북-10]
≪평양곡산공장≫에 얽힌 영도자들의 사랑
이번 73번째 방북취재중에 이 공장을 참관한 것은 퍽 의미가 깊은 것 같다. 왜냐하면 김일성주석께서 조국해방직후 평양에 입성하여 최초로 현지지도한 곳이 중공업단지도 아닌 ≪평양곡산공장≫이다. 이 식료품 공장이 김주석께서 최초로 현지지도 한 공장이라는 것을 아는 해외동포들이나 외부사람은 많지 않은것 같다. 그래서 이 공장에 대한 이야기는 한층 더 호기심이 많았다.[민족통신 편집실]
[방북-10]
≪평양곡산공장≫에 얽힌 영도자들의 사랑
[평양=민족통신 노길남특파원]김일성주석께서 조국해방직후 평양에 입성하여 최초로 현지지도한 곳이 ≪평양곡산공장≫이다. 이 식료품 공장이 김주석께서 최초로 현지지도 한 공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것 같다. 그래서 이 공장에 대한 이야기는 한층 더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김일성주석께서 10대에 조국땅을 떠나면서 조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되어야 돌아오겠다고 다짐하고 25년이 지난 세월이 된 1945년 9월22일 고국 땅을 밟으셨다. 그리고 이틀 후인 9월24일 선교역 영제동에 소재한 ≪평양곡산공장≫을 찾으시여 현지지도 하셨다고 설명하는 이 공장의 간부들은 흥분된 목소리로 알려준다.
이날 기자가 취재차 참관했을 때 평양식료연합기업소의 강철근 기사장(한덕수경공업대학 졸업생)을 비롯하여 이 공장의 김대혁 발전기사, 이 공장의 혁명사적관의 리상진 선생이 안내하며 공장 곳곳을 설명하여 주었다.
≪평양곡산공장≫은 평양식료련합기업소에 소속된 대규모 시설로서 여기에서는 사탕과자, 드롭브스, 물류옥당, 포도당, 강냉이기름 등을 생산한다고 말한 간부들은 이 공장은 사실상 1927년 미국기업에 의해 건설되어 1930년 조업했는데 1931년 설비를 추가하였다가 일본에 넘겼다고 안내자들은 설명해 준다. 일제강점기에 어떻게 미국기업이 이곳에 들어와 영업을 하였는지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공장이 실제로 일제에서 조선으로 넘어 온것은 1945년 9월이후였다. 그 때로부터 조선이 조선식으로 관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김일성주석께서 15차례 현지지도 하셨고,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7차례, 김정숙항일혁명여성투사께서 4차례, 그리고 김정은위원장께서 2009년 12월11일과 2016년 6월15일 두차례 현지지도 하신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공장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과자를 공급하는데 크게 기여해 왔다. 그리고 조국해방 초기에는 이 공장이 북녘의 경제에 도움을 준 한 공장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평양곡산공장≫은 지난 시기 사탕원료를 수입하여 왔으나 이제는 강냉이 옥당을 이용하여 각종 사탕과자들을 제조하고 있다. 그래서 김정은위원장께서 2016년 6월에 자체적으로 제조한 당을 <주체당>으로 명명하여 그 이름을 앞으로는 <주체당>으로 사용하도록 하셨다고 이 공장 간부들은 밝혀준다. 그래서 이 공장은 직원 1,400여명이 강냉이 3만여톤으로 물엿 1만여톤, 옥당 1만여톤, 사탕과자 1만여톤을 제조한다고 설명한다.
이 공장을 1945년 9월24첫방문하신 김일성주석께서는 해방조국에서 해방의 주인으로서 공장의 주인으로서 일할수 있는 해방조국을 맞게되어 기쁘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김정숙항일여성투사는 1946년 3월13일 첫 방문때에는 여성운동의 필요성을 말씀하셨고, 1947년 4월16일 김정숙 항일여성투사는 여성들에게 식료품증산운동을 강조하셨고, 1948년 10월10일에는 백두3대장권이 이곳을 방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이후 1956년 11월1일에는 김일성주석께서는 몽골대통령과 함께 이곳을 방문하셨고, 1957년 12월29일에는 주석님의 가르침에 의해 강냉이 쌀과 강냉이 국수가 나왔고, 1960년 8월9일에는 주석님께서 기슥기를 보아주시며 지침을 주셨고, 1968년 4월5일에는 자동입각기를 보아주시며 지도를 하신 기록이 있고, 1968년 11월22일에는 강냉이로 입쌀을 제조하도록 지침을 주셨고, 1979년 9월3일에는 옥당 견본품을 만들어 판로를 개척하는 돌파구를 만들도록 지도하셨다고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또한 2009년 12월11일에는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사탕으로 드롭프스를 만드는 제작을 자동화로 진행할 지침을 주어 그 과업을 현실로 수행하게 이르렀고, 2010년 8월24일에도 현지지도를 통하여 우리기술로 생산하는 방도들을 지침으로 내려주셨다고 이 공장 관계자들은 지난 시기를 회상하며 영도자들의 희생적인 업적들을 하나 하나 짚어준다.
이 공장 근로자들은 이번 200일전투에서도 이미 지난 11월말에 그 목표를 완료했다고 밝힌다. 연간 목표량은 3만톤이지만 4만8,575톤을 달성했다. 이 ≪평양곡산공장≫은 1974년 70일 전투시기를 비롯하여 1978년 100일전투, 1980년 100일전투, 1988년 200일전투, 1989년 200일전투 시기에도 주어진 과업들을 완성하여 빛나는 업적들을 과시한바 있었다.
특히 김정은시대에 들어와서는 공장시설의 자동화, 무진화, 무균화 등으로 현대화하는 한편 효소공업화를 한층 더 발전시키고, 효소분해법에 의한 당으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그 상표도안이나 봉지들을 국제화하여 내용과 포장의 질도 함께 수준을 높였다. 김정은위원장께서는 2016년 4월21일 상표들도 인민이 좋아하는 도안들을 비준하여 새로 만들도록 지침을 주셨다고 관계자들은 최고지도자의 인민대중중시정책을 말한다.
김정은위원장께서는 또한 이 공장의 화학분석실, 계기분석실, 미생물분석실도 통합생산체계화 시켜 이 시설설비들을 국산화하여 자체힘으로 생산하도록 가르침을 주셨다고 직장간부들은 강조하면서 이 공장의 생산과정이 무진화, 무균화하여 <교과서적인 공장>으로 운영할 것을 당부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공장의 1,400여명의 근로자들은 김정은위원장의 뜻인 ≪어머니 조국을 위해 더 많은 땀을 흘리자! ≫는 구호를 추켜들고 ≪교과서적인 공장≫으로 빛을 내고 있다고 그 긍지를 자랑하고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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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미주청년님의 댓글
미주청년 작성일
노길남박사님,
정열적으로 취재하는 모습보며
큰 박수 보냅니다.
건강히 돌아오셔서
거기 소식 많이 많이 전해 주셔요!!!
김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