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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8]중국 하얼빈의 명소-‘중앙대가(中央大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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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6-09-13 10:44 조회5,1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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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노길남특파원은 안중근의사의 거사현장을 탐방한 이후 하얼빈의 명소로 알려진 ,<중앙대가>라는 명소를 방문했다. 하얼빈은 동북3성에서 가장 도시이며 동시에 동양과 유럽건축양식이 어울려 건설된 ‘중앙대가(中央大街)’는 이곳의 명소로 널리 이름나 있다. 흑룡강 최대의 지류인 송하강연변에 있는 강물과 중앙대가가 맛닿아 있어 이것을 찾는 중국사람들이나 국제관광객들에게 동양의 모스코바’, 혹은 동양의 파리로도 느끼게 해준다고 이곳 거주민들은 자랑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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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물만두의 왕자로 자랑하는 식당에 들려 5가지 종류 물만두 맛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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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명한 한 빵집앞에 40여명의 관광객들이 줄지어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


 

[기획-8]중국 하얼빈의 명소-‘중앙대가(中央大街)’

 

[중국 하얼빈=민족통신 노길남특파원] 동북3성에서 가장 도시이며 동시에동양과 유럽건축양식이 어울려건설된 중앙대가(中央大街)’ 이곳의 명소로 널리 이름나 있다.

 

흑룡강 최대의지류인 송하강연변에 있는 강물과 중앙대가가 맛닿아있어 이것을 찾는 중국사람들이나 국제관광객들에게 동양의모스코바, 혹은 동양의파리로도 느끼게 해준다고이곳 거주민들은 자랑한다.

 

하얼빈이라는 말은 만주족의 말로 그물 말리는 이라고한다. 19세기 러시아가 철도건설기지로 사용하며근대적인 도시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러시아건물과 문화가 오늘날까지 아시아에서는 없는 이색적인문화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거리는 115여년전러시아의 건축설계사에 의해 건설된 동서양 종합문화를 반영한 거리로이곳 거리 2킬로 미터 조금 안되는구간의 도로는 전부 1메터 높이의 4각형 돌로 바닥을 깔아서 거리길도 아시아에서 맛보지못하는 유럽문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이곳은  15일부터 한달가량 얼음축제, 눈축제, 빙설제로 국내외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   계절에이곳을 찾으면 건축, 조각, 회화, , 음악 등이 어우러진예술세계도 감상할 있다는 것이다. 빙등제가열리면 이곳에는 15백여점의 얼음 조각상들이 만들어져 볼만한구경거리가 된다고 이곳 주민들은 자랑한다.

 

중앙대가 입구에들어서서 1.5킬로메터 가는 동안 골목 골목에는 비찬틴양식의 건축물도 보이고, 러시아 건축양식, 유럽의 교회당, 러시아정교 건축양식등도 보인다. 거의 북쪽으로 끝자락에 가면 송하강이 흐르는 강물이보이고 직전에홍수방지승리기념탑이 세워져있다. 탑은 1932 812일에 홍수가났고, 1959 96일에, 그리고 18 전인 1998 822 송하강이120.89메터의 물높이로 대홍수가졌지만 이것을 극복하고복구할 있었다는것을 기념하여 <홍수방어승리기념탑> 세우게 되었다고한다.

 

본래 하얼빈 농촌마을이었다. 그런데1898 러시아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장하면서 이곳이 도시의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이곳이 러시아와 가까운지역이라는 지정학적 원인도있었다. 1917 러시아혁명이후에는 50만명 가량의러시아인들이 이곳에 피난와서거주한 역사도 있었다. 그리고 일제가 만주지역을 지배하던 시기 마지막 일제를 밀어내는총공격시기에 러시아군대가 무려 150만여명이참가하여 일제를 후퇴시킨역사도 있었다고 이곳 시민들이 설명해 준다. 이곳 주민들이 이러저러한 역사적 배경때문에 비교적 러시아인들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것이다.

 

명소로 알려진중앙대가 1900년에 완성된 것으로기록되어 있다.르네쌍스바로크 양식을 본딴 건축물들이 무려 1.5킬로메터구간에 71개나 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중앙대가의 거리(정확히1,450메터) 구간에 깔린 돌들은 886만개가된다고 전문가들에 의해 집계되었다고 한다. 돌은 화강암을 이태리봄페이의 유적지 거리와비슷하고 독일에 있던 거리의 돌길과도유사하게 보인다. 거리이름은 완공된 이후 20여년동안은 <중국대가>라고 불리우다가 1925년부터 <중앙대가>라고 개칭했다. 때부터 거리가 동양의모스코바 거리, 동양의파리라는 별명도 부르게되었다고 한다.


거리에는관광객들도 다양했고, 이곳을찾는 연령층도 남녀노소모두가 포함된다. 가족들과함께 오는 모습들도많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는 먹거리도많다.중국식, 러시아식, 일식, 이태리식, 조선식등의 식당들이 즐비해있다. 기념품점들도 다양했다. 빵집 앞에는 30여명의 관광객들이 줄을서서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의 빵맛이아주 좋다는 것이다. 기자는 중앙대가를 걸어서 1.5킬로메터 산책을 하고 북쪽 종착지인 송하강을바라보며 감상한 다음 돌아오는 중간지점에 있는 물만두집에 들려 점심을했다. 안내해 주던 김철옥씨가  5가지 종류의 물만두를대접해 주어 요기를했다. 5섯가지 모두 맛이 독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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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네모 돌이 땅밑으로 1메터가량 박혀있다. 115년된 돌거리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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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네모 돌이 땅밑으로 1메터가량 박혀있다. 115년된 돌거리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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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보이는 강이 송하강이다. 백두산/장백산에서 흘러 내려온 강이다. 동쪽으로 흐르다가 흑룡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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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7]《안중근 이등박문 쏘다》현장 하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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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방-5]중국동포사회서 공작하는 한국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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