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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5]《연길감옥항일투쟁 기념비》참관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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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6-09-07 11:46 조회6,93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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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명주열사 자녀들(김진송 막내아들가 김진옥 막내딸)과 기념촬영하는 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노길남 민족통신 특파원은 중국의 항일투쟁 사적지들을 탐방하면서 주권이 없으면 나라 구성원들은 주인된 신분을 잃어버리고 만다. 주권을 장악한 외세는 주인이되고 주권을 상실한 나라 국민들은 외세의 머슴이나 노예신분으로 전락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주권이 없는 나라의 국민들이나 인민들은 나라 전체가 감옥이나 다름없다. 외세가 나라 주권을 빼앗고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노라면 퍼뜩 떠오르는 사회가 있다. 그것은 한국이다. 한국은 주권이 없다.” 안타까와 하면서 중국내 항일투쟁 사적들을 탐방하고 있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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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문식 교수(왼쪽)의 해설을 듣고 있는 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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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문식 교수(왼쪽)의 해설을 듣고 있는 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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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길 감옥소 자리에 지금은 연길인민예술전당이 들어섰고 그 오른쪽에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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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5]


《연길감옥항일투쟁 기념비》참관 수기


 

[중국 연길=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연길감옥항일투쟁 기념비》를 탐관하며 느끼는감회가 깊다. 감옥하면우선 자유가 없는 곳으로 떠오른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나라 중국도 작은 나라인 일본에 침략당하여 주권을 빼앗기고자유를 유린당한 역사가있다는 것을 돌이켜보면서 주권과 자주성이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새삼스럽게 느낀다.

 

주권이 없으면 나라 구성원들은 주인된 신분을잃어버리고 만다. 주권을 장악한외세는 주인이되고 주권을상실한 나라 국민들은외세의 머슴이나 노예신분으로 전락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주권이없는 나라의 국민들이나 인민들은 나라 전체가 감옥이나다름없다. 외세가 나라 주권을 빼앗고자기 마음대로 지배하기때문이다. 이런 생각을하노라면 퍼뜩 떠오르는사회가 있다. 그것은한국이다. 한국은 주권이없다. 가장 기본중의기본주권은 군사주권인데 기본주권을 한국의 대통령이마다하고 미국에 가져달라고 애걸하고 있는 바로 미국의 식민지인한국의 처지가 된다.

 

기자는 일제때감옥이었던 《연길감옥항일투쟁 기념비》를 방문하는 동안 중국사회를 비롯하여 한국의시민운동들, 해외애국운동 단체들이요란하게 외쳤던 싸드 배치 반대 함성을 접하면서 한국 대통령이 미국 식민지 괴뢰정부 이기에자기 국민들이 반대하여도 상전인 미당국의요구를 앞장서서 들어주어야 한다는 딱한 처지를 뼈저리게 느끼고있는 시기였기에 한층 주권없는 나라는 감옥과 같다고생각하지 않을 없다.

 

그렇기 때문에박근혜는 미지배세력의 개가 되어 러시아, 중국, 라오스를 돌아치며 미국이원하는 싸드배치’ 1 선전원 노릇하기에 눈코뜰사이 없이 헐레 벌떡 거리는 추태를보며 주인과 노예의차이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사실을 다시한번관찰하는 기회가 된다. 주권없는 나라의 신세가되면 이렇게 식민지의개가 되어야 하는 처절한 현실을 목격하고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하는 동안 기자는중국 연길시에 소재한《연길감옥항일투쟁 기념비》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날도 김명주열사(부인은서순옥 항일여성투사) 가족들  막내 아들 김진송, 막내 김진옥, 그리고 연길대학교 역사연구학자로 이름 높은 최문식 교수 세분이  기자를 안내해주었다.  

 

연길 감옥이 1924년에 건립되어 길림성4감옥으로 불리워오던 형무소가 일본침략자들에 의해 자작극으로 발생한 이른바9.18사변(1931) 직후 감옥도 일제로넘어가고 말았다. 어마어마한 감시로 운영되던 감옥에서 1935 67(음력 57) 탈옥사건이 있었다. 사건이 성공하였기에 당시 신문에서도 크게 보도되었다 주인공이바로 김명주 열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장소에감옥은 사라지고  인민예술전당 들어섰고, 입구 오른쪽에 눈에 띄는 장소에 《연길감옥항일투쟁 기념비》가 세워졌다.

 

《연길감옥항일투쟁 기념비》뒷면에는 1935 67(음력 57) 김명주는 리태근, 리영춘과 손잡고 또다시17 결사대를 조직한후 간수들이단오명절을 세는 기간을틈타서 족쇄를 끊고 일본지도관과 감옥장을 처단한후감방을 짓부시고 수백여명의 수감자들을 해방하여파옥하는데 성공했다는 내용과함께 이것이 동북지역의 파옥투쟁들중 유일하게성공한 투쟁이라고 기념비를 세운 2000 67일자로 씌여있다.

 

여기에서 탈옥투쟁을 주동한 김명주와 그의 부인 서순옥,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본다.

 

 김명주(1912.10.30~1969.8.17 본명은 김경만, 다른 이름은 한때 김경주) 결혼전부터 항일투쟁에 참여한 애국자들이었다. 그리고 그의 인, 서순옥(1921.11.24~2009.4.18  항일투쟁시기 이름은 서순월) 항일여성투사들 가운데 여성이었다.   

 

조선은 해방정국을  맞았지만 기쁨은 잠시일 미국의 남한 점령으로 인하여 조국의강토는 남과 북으로갈라지고 말았고, 중국은모택동세력과 장개석 국민당세력간에 내전이 지속되어김일성유격대는 중국의 요청에의해 수많은 유격대원간부들과 무기 10만정까지지원하면서 유격대원 일부를중국에 남겨두고  조선으로 진격한시기에 서순옥-김명주부부도 중국에 남게 되었다. 중국 모택동군대가 장개석 국민당을물리치고 승리했던 시기이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가족들 사정 때문에중국 땅에 머무르게되었다.

 

그러던중 1960년대 중반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5~1976.12) 바람이 불어치자이에 김명주는 과격모험주의자들에 의해 수정주의자라는 모함을 받으며반혁명분자로 몰려 모진 탄압을 받다가 김일성주석의 영향으로 위기를 벗어 났지만  탄압의후유증으로 1969 817 중국에서 운명하고말았다.

 

김명주(1912.10.30~1969.8.17)  항일투쟁을 위해  목숨걸고 싸워온애국자였다. 재중조선인 역사학자인 김철수에 의하면“혁명렬사 김명주는 항일투쟁의 간고한 나날에혁명에 참가하여 연길감옥의 캄캄한 철창속에서, 동북의 광활한 대지우에서 일본침략자들과 영용히  혁명에 바쳤으며 10 내란(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 피비린 바람속에서 4인무리’의 박해를 받아 억울하게 숨진 우수한공산당원이었다”고 기록했다.

 

 

열사의 부인 서순옥은 남편 김명주열사는  세상을 떠났지만  뒤늦게나마  1983 조국 조선을 방문했다 방문에서김일성주석을 만날 없었다. 그의 본명은 10대에 서순옥이가 아니고‘서순월’이었다. 그래서인지 최고지도자를 보좌하는 일꾼들에의하여 상봉이 이뤄지지않은 같다김일성주석의 연고자가맞다는 이야기가 확인되자  드디어 1992 서순옥과  그의 막내아들 김진송, 그의 막내딸 김진옥 3명은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고 기쁨의 상봉이 이뤄졌다 이후 1년만인  1993년에도서순옥과 자녀들은 김일성주석과 재차 상봉시간을 가질 있었다

 

 서순옥은 이후 중국정부에서도2005 8 항일투쟁승리 60돌기념일을 맞아  후진타오(호금도) 주석으로부터 항일열사 기념메달을 수여받았다.

 

*관련 보도자료는 아래를 짤각하여열람하세요.


[기획-21]김일성주석 연고자, 서순옥-김명주 가족대담(동영상)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7128

 

 

《연길감옥항일투쟁》의 주역

김명주 열사의 해방후 행적


 

  김명주 열사는1946 1 연길현삼도만의 토비들을 숙청하는싸움에 참가했고, 장개석군과 마지막단계의 싸움판에뛰어 들어 중국 사회주의 혁명승리의 업적에기여하기도 했다. 1946 1947 장개석의 국민당군을 퇴진시키는 지휘관으로 활약하며 용맹을떨친 군관으로평가 받았다. 그러나1948 건강이약해지면서 후방근무로 배치받다가 1950 2월부터 연변전원공서 기업과과장으로 임명받아일해 오다가 연변조선족 자치주가창립되자 자치주민정처처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1969 중국공산당내부의 권력투쟁으로 야기된 이른바문화대혁명으로 반혁명분자로 취급받아같은 817 향년57세로 운명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그의 업적을재평가하여 지난 1982 ‘혁명열사확인증’을 사후에수여했다.

 

중국 동북지역에서의 조선족의  역할과 업적들은대단했다고 밝힌 최문식교수는 조선족의 항일투쟁역사, 중국사회주의 건설투쟁역사, 항미지원투쟁 역사에관한 《중국조선족 사료전집》 최근 2016 826 100권을 완료하여 출판기념회를 가졌다고 밝히면서흐뭇한 표정을 짓는 한편 지금 중국조선족미술대전20, 음악대전50, 민속대전 20 등을 출판하기 위해 이미  준비작업중인데 20권을 완료한 상태라고귀띔해 준다.

 

최문식 교수는항일투쟁의 사적지들을 참관할  주요한역사적 배경을 해설해주면서 중국의 조선족역사를 편찬하는데 느꼈던 절실한 소감은조선이 통일되지 못하고분단되어 있기 때문에조선족 자신들이나 남과 동포들 자신들이불리한 처지에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피력하면서 조선민족이 하루 속히 자주적으로 통일되어주권을 가진 통일국가가 된다면 역사자료들도 많이 보완될 있다고전망하면서 코리아 통일을간절히 소망하기도 했다.


(다음에는 왕청의김일성유격대 근거지 총사령부에 대해~)

 

 

[기획4]《연변혁명열사릉원》의 조선인 핏자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8116

[기획3]《항일무명영웅기념비》가 중국대학내 건립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8114

[기획-2]김일성 주석과 길림《육문중학교》현지방문 취재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8113

[기획1]중국 땅서 항일투쟁 전개한 발자취 탐방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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