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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광주 통일운동진영 원로,장두석 선생 서거(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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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3-28 05:56 조회6,047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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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족통신 종합] 한 평생 자주,민주,통일운동과 국민건강을 치유하는 사업에 종사하면서 민주운동과 통일운동진영에 참가해 온  후진들을 위해 노력해 온 해관 장두석 선생께서 서울시간 2015년 3월25일 새벽 3시25분께 서거했다. 향년 77세.


고인은 6.15시대에 방북하여 통일진영의 한몫을 해왔고, 작년 2014년 북녘의 단군황릉에서 진행된 개천절행사에도 참석해 우리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해 오신 분으로 알려져 있다.


고인은 1938년 11월8일 전라북도 광주 출생으로 이전 이름은 장질석이다. 그의 생애에 관한 약력은 이렇게 적혀 있다.(아래 별첨 자료와 동영상 참조)


발인은 3월28일(토) 예정이며 장지는 5.18국립묘역이라고 광주 장례관계자들이 발표했다. 


https://youtu.be/2LhzV9KKe5w



페이스 북에 올라온 부고 소식은 다음과 같다.


해관 장두석 선생님 부고 안내


평생을 자주 민주 통일에 헌신하시고, 분단병 사회병으로 고통받는 환우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하신 해관 장두석 선생님께서 오늘(2015년 3월 25일) 새벽 3시30분에 서거하셨습니다.


비통한 마음으로 장례 일정을 알려드립니다.


그분의 몸은 비록 갔으나, 그 정신은 자주와 민주, 통일로 가는 민족 번영의 길을 밝히는 등대로 남아 겨레의 가슴 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례 : 조선대학교 장례식장 1층 특실
http://map.naver.com/local/siteview.nhn?code=15974144

발인 : 2015년 3월 28일 토요일

장지 : 518국립묘역
http://518.mpva.go.kr/518c/intro/intro05_01.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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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네트에 올라와 있는 고인의 발자취]

고인은 태어나자마자 거의 죽을 뻔 해 집 밖에 버려두었으나 살아났고 그로 인해 한쪽눈이 뒤집혔다고 한다.(실제로 보면 한쪽 눈은 엉뚱한 곳을 향해 휙휙 돌아간다!)  출생당시 가족들은 얼마못가 죽을까봐 호적에도 올리지 않고 거적떼기에 말아 집 밖에 내어뒀지만 이후 살아남아 3년 뒤 사촌동생과 함게 호적에 올려졌다고 한다. 호적상에 올려진 이름은 '장질석'으로 이유는 어머니가 천한 이름을 지어야 오래산다는 믿음 때문에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청소년기 불치병들을 가지고 온갖 병원을 다녔고, 광주시내 병원이란 병원은 전부 돌아다녔지만 소용없었다고 한다. 그러던중 어머니한테 무작정 "서울에 가겠다"며 집을나와 산에서 살면서 자연의학을 터득했다고 한다.

운동가적 면모로는 ‘소년 빨치산’ 활동을 시작으로 조봉암의 진보당, 야학운동, 가톨릭농민운동,신용조합운동, 5·18항쟁 등에 참여하면서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 개인적으로 죽산 조봉암과도 매우 친한 사이다.

1975년부터 전국 25곳에 ‘민족생활학교’를 열고 전통의학을 강의하고 있다. 최근 민족생활학교를 공사해 1년에 4회 100명을 교육할 수 있게 되었다. 민족생활학교 양현당 현판식에는 박준영 전라남도 도지사와 강기갑 민주당 의원등 고위인사가 참석했다. 이 외에도 장석웅 전교조 위원장도 교육관을 방문한적이 있다.

사람을 살리는 단식’등 10여권의 책을 냈다2. 또한 사람일보 에도 건강법을 투고중. 또한 그의 사이트 '건강아이' 에서는 무료 건강상담을 해준다.

2009-10-25 뿌리 깊은 느티나무 -장두석 민족생활의학자로 광주KBS '집중인터뷰 이사람' 에 출연했다.
또한 '현미밥 채식'으로 유명한 대구의료원 황성수 박사와도 같이 강연회를 가진적이 있다. 자연의학계에서는 매우 유명하다.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의 주장은 전형적인 유사과학에 속한다. 장두석의 글에선 '천지신명의 조화'나 '우주 변화의 질서', '하늘의 기운'과 같은 알듯말듯한 표현이 자주 등장하며, 특히 ‘오만하고 분수에 넘친 자본주의 문명’과 ‘안을 들여다보면 오직 무지와 탐욕만 있을 뿐 텅 비어있는 현대의학이란 신흥종교’‘자신들의 무지를 가리기 위해 진단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기계에 의한 테스트만을 습관적으로 남발하는 의사’들에 대한 혐오발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회가 혼란하고 질서가 무너지고 예의염치는 병들고 법도는 무너지면서 탐욕과 이기로 인해 모든 병을 부르게 되며, 식·의·주생활을 우리 민족의 전통 생활양식대로 완전히 바꾸면 병 치료는 물론 예방까지 된다는 것이 그 요지.

장두석은 소년 시절 사경을 헤매다 입산한 후 질병 없이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야생동물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은 뒤 병이 완치되는 체험을 통해 자연의학에 눈떴다고 한다. 그의 이론은 음양오행론에 깊이 기반하며, 현대의 각종 질병은 전통 미풍양속의 상실과 배금주의의 팽배, 서구화된 의식주 등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특히 단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을 비롯한 모든 질병은 먹은 음식이 배설되지 않아 독소가 몸에 쌓여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단식으로 몸을 대청소하고 전통발효음식과 천연식품의 섭취를 통해서만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싱겁게 먹으라'는 것은 국민을 병마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어 병원으로 끌어내는 의사들의 탐욕과 사치에 불과한 행위이며, 오히려 ‘맵고 짜게 먹어야 건강하게 산다’고 강조한다. 염분의 과잉섭취 때문에 고혈압이 오는 게 아니라 미네랄이 없는 정제염을 먹기 때문에 칼슘 부족으로 고혈압에 걸린다는 것. 발효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장에 혐기성 미생물이 급증하여 장염을 일으키고, 활성산소가 많아져 몸이 망가진다고. 끓인 물을 식혀서 화초나 물고기에게 주면 금방 죽어버리니 생수를 마셔야 한다거나, 숙변은 만병의 근원, 은 극 알칼리성 체질에서 나타나는 신체이상이란 주장 등도 설파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모든 주장들은 현대의학과는 전면 대치되는 내용이다.

한편 관절염 치료 카레로 유명한 허현회는 장두석 본인이 직접 인정한 그의 후학이자 신봉자이며, 장두석이 운영하는 '건강아이'에도 다수의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 장두석과 허현회는 많은 부분에서 서로의 사상을 공유하고 있으며, 장두석은 허현회를 '거대한 기득권 의료계의 벽을 절감하며 숨죽이고 있을 때 용감하게 다윗의 돌팔매를 던지고 나선 혁명가'# 라 극찬하기도 했다.

허현회에 관해선 기사와 블로그백괴사전허현회 어록 등을 참고. 입을 다물 수 없을만큼 충격적인 주장들이 넘쳐난다. 엔하위키 내에도 동물병원이 알려주지 않는 30가지 비밀 등 허현회를 언급한 항목들이 일부 존재하는데, 이것들만 보아도 허현회와 장두석이 어떤 인물인지는 대략 감이 잡힐 것이다.

장두석 씨가 운영중인 양현당의 건축비용은 1,900여 평생회원의 모금을 통해 마련되었으며, 이곳에선 단식/생채식/운동법/관장법/풍욕/냉온욕 등에 관한 교육을 초급과정 11일 95만원, 중급과정 21일 170만원, 고급과정 31일 225만원 (2012년) 의 참가비로 매달 진행하고 있다. 장두식 씨가 이러한 모금 및 교육, 저술, 언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근본 원동력이 무엇일지는 각자 판단하도록 하자.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 측의 현대의학에 관한 태도 및 그 대안과 장두석/허현회의 주장이 놀랍도록 완벽히 일치한단 사실은 단순한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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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작성일

서울소식:

영면 첫날임에도 장례식장 특실 넒은 방으로 끊임없이 조문객이 밀려들었다.

해방 전 초등학교 시절부터 일제에 반대하며 시위를 조직했다가 퇴학을 당하는 등, 남달리 민족의식이 강했던 해관 장두석 선생이다. 그는 해방 전후 혼란스런 정국에서도 조국의 자주와 통일을 위해 온몸을 바쳐 싸웠다.

조국의 자주통일과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조봉암의 진보당에서 활동하는 등 청춘을 다 바쳐 싸웠다. 5·18 광주항쟁 당시 계엄군의 진입을 막기 위한 죽음의 행렬 투쟁, 수습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다가 군사법원에 체포됐다. 무참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맞섰다. 12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던 중 1981년 사면·석방되었다.

감옥에서 나온 장두석 선생의 무릎이 고문을 받는 과정에 얻어맞고 깨진 탓에 잘 걷지도 못했다고 한다. 부인 김동례 여사는, 장두석 선생이 물리치료를 받는 등 평생을 고생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그런 몸이지만, 장두석 선생은 단 한시도 집에서 편하게 지내지 않았다. 이후에도 1989년 민족생활학교를 세우고, 2000년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상임대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겨레하나되기운동분부 공동대표를 맡아 민족운동과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 해관 장두석선생님의 말대로 저 역시 몸건강하게 잘관리하고 그럴거얘요~!!!!

사람일보님의 댓글

사람일보 작성일

▲ 해관 장두석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이사장.    © 사람일보
민족생활의학을 이끌어온 해관 장두석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이사장이 25일 새벽 3시30분 서거했다. 향년 78세. 빈소는 광주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층 특실에 마련됐으며, 28일 발인한다. 장지는 5.18국립묘역.
 
고인은 1938년 전남 화순군 이서면 학당마을에서 태어났으며, 학력은 초등학교 2년 중퇴가 전부이다. 1950년 백아산으로 들어가 소년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1953년 폐수종과 간질환이 악화되자 옹성산에서 단식과 생채식 등으로 완치하면서 자연치유력을 체험했다.
 
고인은 진보당, 민자통, 민족학교, 신협, 가톨릭농민회, 양심수 구명운동, 민주회복국민회의 등에 참여했다. 전통의학과 민간요법 등 동서고금의 의서를 섭렵하여 민족의학의 체계를 세우고 자연건강대학을 열어 민중의학을 펼치기 시작했다.
 
1978년 광주 양서협동조합을 설립하여 판금서적, 사회과학서적을 보급하고 와이더블유 위장결혼사건으로 505보안대에 구속되어 고초를 겪었다.
 
1980년 5.18 광주항쟁에서 ‘죽음의 행진’ 등을 단행하다 수배되어 505보안대로 끌려가 군사법정에서 12년형을 선고받고 사면 석방되었다. 그 후 5월 영령 제사, 항쟁 기념비 건립사업, 추모제 등을 주도하다 수감되는 등 요시찰 인물로서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범민련 남측본부,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민족문제연구소에 참여해 통일운동에 헌신했다. 한편, 적벽유적사업, 정효자기념사업, 규남하백원선생기념사업, 향토문화유적보존회 등 고향 일에 앞장섰고, 전통문화를 지키는 일에도 힘써 왔다.
 
1989년 민족생활학교를 열어 3만5천여명의 수련생을 배출했고, 1991년에는 독일 중국 인도 일본 캐나다 등 세계 각국에서 초청을 받아 민족생활법 강연 및 수련회를 열었다.
 
1998년부터 <민족생활신문>을 발행하고, (사)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전국 20여 곳에 민족생활관을 열어 전통문화와 생활건강에 대한 교육을 펼쳐 왔다.
 
저서로는 <사람을 살리는 단식>, <민족생활의학>, <사람을 살리는 생채식>, <병은 없다> 등이 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한 장두석 선생의 한생은 자주 민주 통일과 민족 번영의 길을 밝히는 등불로 빛을 뿌리고 있다.

뉴욕동포님의 댓글

뉴욕동포 작성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뉴욕 맨하탄 김인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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