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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조의방북 재미동포대표단 보고회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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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1-18 10:28 조회2,1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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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로스엔젤레스에 이어 뉴욕에서도 평양에 조문간 재미동포 대표단의 보고회가 열렸다. 15일 뉴욕 인터쳐치 소강당에서 재미동포동부지역연합회(회장:함성국 목사) 주최로 열린 행사는 조문방북 소감들을 발표하는 대표들의 감동적인 소감에 대해 "오늘 모임은 가슴 찡한 분위기"라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함성국 목사 사회로 3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행사는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리준무 선생(우륵교향악단 단장겸 지휘자)의 인도로 북녘의 노래("조국의 품"과 "축원") 따라 부르기, 유태영 박사 보고강연, 송기뢰 박사, 리준무 선생, 민족통신 노길남 대표 소감 발표, 그리고 질의응답 순서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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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조의방북 재미동포대표단 보고회 진행




[뉴욕=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로스엔젤레스에 이어 뉴욕에서도 평양에 조문간 재미동포 대표단의 보고회가 열렸다. 15일 뉴욕 인터쳐치 소강당에서 재미동포동부지역연합회(회장:함성국 목사) 주최로 열린 행사는 조문방북 소감들을 발표하는 대표들의 감동적인 소감에 대해 "오늘 모임은 가슴 찡한 분위기"라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함성국 목사 사회로 3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행사는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리준무 선생(우륵교향악단 단장겸 지휘자)의 인도로 북녘의 노래("조국의 품"과 "축원") 따라 부르기, 유태영 박사 보고강연, 송기뢰 박사, 리준무 선생, 민족통신 노길남 대표 소감 발표, 그리고 질의응답 순서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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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영 박사(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 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그는 자세하게 쓴 자신의 보고문(8쪽자리 발표 인쇄해 온 자료)을 참석자들에게 돌리고 이를 3인(정기성씨, 김봉호씨, 최기봉씨)에게 낭독하게 한후 마지막에 자신의 소감을 간단하게 발표했다. 그의 보고문 요점은 다음과 같다.

북녘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거를 애도하는 이북 동포들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 이러한 국상은 지구촌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찿아 볼 수 없었다. 지구상에 이런 분위기는 전무후무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번 북의 국상을 관찰하면서 이런 모습이 지도자, 당, 군민의 혼연일체, 일심단결을 만들어 냈다고 보았다. 지도자에 대해 애통해 하는 북녘동포들은 고인이 (1)주체혁명의 완성과 조국통일의 기반을 굳혀놓았고, (2)민족의 정신력을 집대성하면서 자위력을 확고히 마련해 놓았고, (3)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 염원인 그 유훈을 받아 안고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선언, 10.4선언을 합의하고 선포했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후계지도자에 대한 계승문제에 있어서도 한치의 착오없이 김정은 대장을 차세대 지도자로 내세워 놓았다는 사실을 이번 조의방북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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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뢰 박사(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 도서기증회 회장): 조의방북하여 애도기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매 순간 순간 완벽하게 진행되는 모습을 보고 한마디로 놀랐다. 그렇기 때문에 2백여 해외동포들과 이를 방송매체로 바라보는 전세계 평화시민들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례식, 추모대회, 애도기간 행사들 모두가 한치의 착오없이 진행되었다. 나는 이를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각종 경공업 개발계획들이 빈틈없이 진행되어 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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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준무 선생(재미동포전국연합회 회원, 우륵교향악단 단장겸 지휘자):나는 이번 조의방북을 통해 “음악은 나의 첫사랑이다”고 지적하고 음악정치를 해 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례식 일정을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신적이 많았다. 평양을 들어갈 때 걱정과 슬픔도 많았지만 돌아올 때에는 갈 때와는 달리 북녘동포들이 용기와 힘을 가지고 슬픔대신 강한 결의에 찬 모습을 보며 든든한 마음을 갖고 돌아왔다. 고인은 음악예술정치를 통하여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을 이뤄놓기 위해 쪽잠과 줴기밥으로 휴식도 없이 현지지도하다가 달리는 열차에서 서거하신데 대해 그 토록 애통해 하는 북녘동포들의 심정이 무엇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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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길남 민족통신 대표겸 편집인: 남녘의 이휘호 여사일행, 현정은 현대구룹회장 일행, 지구촌 각지역의 해외동포 2백여명, 평양주재 외교관들이 참가한 북녘의 최고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거와 관련한 행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폭의 거대한 예술작품 같았다. 애도기간과 장례식, 추모대회가 열리는 기간에 새 영도자 김정은 대장이 해외동포들에게 베푼 세심한 배려에 대해 놀랄만했다. 참가자 모든 대표들도 나와 같이 깊은 감동과 감명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해외동포 언론인 민족통신과 제4언론(정기열 주필)에게 인터네트 설치를 해주어 고려호텔 방에서 기사와 사진들을 실시간 송고(30분에 6.6유러)할 수 있었다. 이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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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한국 정부가 자칭 <자유민주주의>라고 선전하면서도 알권리를 차단해 왔습니다. 남측 당국은 한국에 거주하는 독자들이 이 보도 자료들을 볼수 없도록 인터네트 열람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족통신>은 한국 독자들이 twitter 와 facebook을 통하여 이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주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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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도 울고 하늘도 울었다"

[조의방문기] 평양 그 뜨거운 눈물의 진실


*글:유태영 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IMAGE##>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의 초강도 현지지도의 나날에 겹쌓인 과로로 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에 달리는 야전열차 안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서거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2월 15일에 함경남도 현지지도를 하시고 돌아마자 동해 바닷가 눈보라에 젖은 옷이 아직 마르기도 전에 또 다시 북변의 어느 한 곳으로 현지지도의 길을 떠났다고 한다.

바로 며칠 후인 24일은 북에서 “항일의 여성 영웅으로 받드는 김정숙 어머니 탄생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일 위원장을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한지 20돌이 되는 기념일었다. 하여 김정은 대장은 이를 축하하는 예술공연도 준비하는 등 성대하게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담당 의사들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간곡히 말했다.

“지금 장군님의 몸 상태를 보면 피로가 겹쌓였고 건강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며칠 동안이라도 쉬셔야 합니다.”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의사들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나도 김정은 대장과 인민들이 훌륭한 예술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럴수록 나는 우리 인민들을 위해 한 가지라도 뭐 더 일을 해놔야 되지 않겠는가! 시간 늦잡지 말고 현지지도를 갔다 와서 공연을 보겠소.”

이렇게 또 현지지도를 위하여 먼 길을 떠났었던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생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넥타이 한번 제대로 매지 못하시고 고생만 하시다가 눈물겹게 떠나가시었다.” 라고 북녘 동포들은 통곡하고 있었다.


✦ 이 지구상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나라의 대국상


나와 이준무는 동행하여 12월 24에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29일 평양을 떠나 올 때 까지 줄곧 나의 머리와 가슴에 가득 차 있는 것은 ‘이 지구 인류역사상에 있어서 이런 나라는 전무후무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뉴욕을 출발하기 전부터 서울의 신문들은 ‘김정일의 사망에 의심이 있다. 열차에서 사망한 것 아니라 집이서 사망했다.’라는 기사를 퍼뜨리고 있었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수 없이 많이 북을 방문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북에서 말하는 “동무와 동지”라는 그들의 단어에 대한 참된 동감을 느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대국상 행사에 참석한 경험을 통하여 그들이 말하는 ‘동무와 동지’의 뜻에는 민족의식이 우선 강하고도 분명하게 포함되어 있고 또 나라의 최고지도자들을 비롯하여 당과 정부와 국가의 일꾼과 대중들이 모두 다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나는 1994년에 김일성주석 서거 당시에도 범민련 미주위원회 양은식 위원장과 동행하여 이른바 “조문파동”을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때는 매우 피상적으로 행사에만 참석하고 돌아 온 것 같이 느껴진다.

왜 그런가?

그 때는 김일성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전혀 준비가 되여 있지 않은 상태였고 또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극히 불안정한 상태의 초상집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나아가 김일성주석이 서거하자마자 자연재해까지 연이어지면서 북부 조국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수년간 겪어야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의 국가적 위기 속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위기 속에서 김정일 장군이 등장하여 민중의 동지로서 지도력을 발휘하여 군민이 홀연히 일체가 되어 외세의 위협에 견결히 대항하면서 핵 보유 강성대국을 창건한 눈물겨운 역사적 기적을 창조해 냈다.

이러한 역사적 생생한 경험 때문에 북녘 동포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서거에 대하여 그렇게도 슬프게 통곡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서방에서 그렇게 ‘허구와 거짓’이라고 선전해왔던 북 동포들이 혼연일체가 틀림없는 사실임을 우리는 이번 북녘의 대국상 행사 참가를 통해 직접 보고 돌아왔다.

계획한 영결식을 앞두고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이것을 평양 고려호텔의 창문을 통하여 내다보면서 나는 ‘하늘도 야속하다’는 생각를 했다. 하지만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 평양시민들에게는 눈이 내리고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차가운 날씨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음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운구차가 지나가게 될 길에 눈이 쌓이는 것을 염려한 대학생들을 비롯하여 평양 시민들은 남녀노소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불과 모포를 가지고 나와 아스팔트 길을 덮기 시작했다.

이불과 모포뿐만 아니라 목도리와 겉옷까지를 펴서 눈이 내리는 길을 덮고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운구차가 지나갈 길 위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십만의 평양시민들과 각지의 군중들이 삽과 호미 심지어 빗자루와 막대기를 들고 나와 아스팔트 길 위의 눈을 치고 얼음을 까고 있었다.

필자는 어느 한 여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왜 눈을 치고 어름을 까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단호했다.
“친애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편안히 가시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녀의 눈엔 눈물이 글썽하였고 목메인 음성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의 눈시울도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북은 김일성시대로부터 시작하여 김정일국방위원장시대까지 두 영도자가 일관된 조국사랑과 인민사랑의 통치이념을 실천해왔다고 주장해왔다.

어떻든 이번 대국상을 통해 “당, 군, 민 3위일체”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온 세상에 분명히 보여주었다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번 조문방문을 통하여 한국 속담에 ‘잔치 집엔 못 가더라도 초상집은 꼭 가야한다.’ 즉, ‘애사는 꼭 가봐야 한다.’는 전래 경구의 참 뜻을 이해하게 됐다.

12월 28에 영결식이 금수산궁전 광장에서 거행됐는데 약 10만의 군인들과 약 4만의 군중들이 3시간 정도를 끄떡없이 서서 영결식에 참가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진행과정과 군중들의 참가질서에 대하여 나는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영결식이 끝난 후에 목격하였다.
집에 돌아가려면 그 많은 군중들이 저마다 자기가 타고 온 차를 찾아가 차를 타야 한다. 때는 이미 해가 져서 어둠이 앞을 가리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뉴욕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교통경찰이 최소한 5~6십 명 정도는 배치하여 교통정리를 해야만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복잡한 수만 명이 저들의 차를 기다리고 또 타고 있는데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이나 군인이나 민간인 봉사자는 한 사람도 없는 것이었다.

그 많은 차들 중에는 외교사절의 외국인의 차도 많았는데 그들에게도 주차와 통행에 아무 특권이 없는 듯 했다.

그런데 더욱 더 놀라운 것은 빵빵 소리를 내는 운전수들이 단 한 사람도 없이 차들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때 “세계에 이런 나라는 없다.”라고 또 다시 생각하면서 우리 미주동포의 차를 타고 고려호텔로 왔다.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영결하는 그 슬픈 날에 마음과 눈에 피눈물이 바다를 이루고 있는 그 현장에서 서방세계 등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그 험상스러운 교통순경이나 헌병들의 모습 같은 것은 전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 북녘의 갑작스러운 대국상에 재미동포의 한 사람으로 참가하여 말로만 듣고 알고 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에서 ‘쪽잠, 줴기밥을 드셨다.’라는 사실과 또 ‘핵무기보다 강한 일심단결’ 등의 구호에 대한 이야기를 실감하고 충분히 이해하고 돌아왔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긴 업적은 무엇인가?


나는 김정일 국위원장의 뜻밖의 서거가 발표된 12월 19일부터 평양에서 진행되고 있는 추모행사들, 특히 ‘대가족의 아버지’를 잃은 애절한 통곡의 모습, 28일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엄한 영결식과 그리고 29일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중앙추모대회가 전 민족적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진행되는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혁명의 유산”을 명료하게 나의 마음속에 가득 채울 수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긴 “혁명의 유산”에 대하여 나의 느낀 바는 다음의 세 가 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한생은 백두산 3대장군으로 출생한 그의 삶의 시작으로부터 한평생을 ‘주체혁명의 완성’을 향하여 시종일관해 왔다는 점이다. 그가 남긴 <주체혁명의 완성>은 조국통일의 완성과 직결되어 있다.

오늘 세계는 그 어느 곳, 그 어느 제3세계 나라들을 막론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룩한 ‘주체혁명의 길’을 지침으로 삼고 따르고 있다. 그럼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긴 유산은 우리 민족의 유산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특히 제3세계에 남긴 유산이기도 하다고 생각하였다.

둘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긴 최대의 유산은 민족의 정신력을 집대성하여 이룩한 ‘핵 무기 보유와 위성의 발사’이다.
고난의 행군을 선두에서 헤쳐 나온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명칭만으로 국방위원장이 아니라 명실 공히 국방위원장이 되어 한 많은 민족의 운명을 송두리째 변혁시키는 엄청난 업적을 민족 앞에 유산으로 남긴 것이다.

강대국들은 약소민족들을 비참하게 희생시키면서 핵 실험을 수백 번 실험한 후에야 비로소 핵보유국들이 됐다.
그 얼마나 많은 약소국 민중들이 영국과 미국의 핵 실험 현장에서 비참하게 죽었으며 방사능의 피해를 당했으면서 피해보상도 받지 못하고 죽어 갔던가!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총명한 두뇌로 그 누구를 희생시키거나 희생양으로 삼지 않고 또 소란을 부리지도 않고 스스로 ‘새 세기의 산업혁명’을 일으켜 단숨에 세계 앞에 핵 보유국으로 등장했다. 이보다 더 큰 우리 민족에게 남긴 역사적 유산이 또 다시 있겠는가?

셋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긴 업적은 우리 민족의 사활이 걸린 민족통일을 완수하기 위하여 혁명의 위업을 계승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역사에 남을 유산을 남겼다.

세계가 주목하는 세기적 통치권의 계승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완벽하게 해결하였다. 당과 군대와 인민의 최고 지도자로 김정은 대장을 잘 가르치고 키워 내세운 역사적 결단은 세계가 놀라고 주목할 만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세력이 세계 곳곳에서 약소국들을 집어 삼키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 오늘의 국제적 정세 하에서 조국의 평화통일의 튼튼한 길을 유산으로 닦아 놓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 주민들과 함께 닦아놓은 길을 파탄시키려고 미국은 ‘개혁개방’과 ‘핵 페기’라는 침략적 수단방법의 공세를 총집중하고 있음을 절실히 파악했다.
그래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세계가 깜작 놀라는 철통같은 통치체제를 이미 닦아 놓았고 제국주의 침략의 야욕을 원천봉쇄하는 ‘핵 억제력’을 구축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던 것이다.

북녘 동포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거를 애도하며 땅을 치면서 통곡하면서도 절대로 실망하고 좌절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김정은 후계자가 튼튼히 존재하여 우리 민족을 집어삼키려는 제국주의 세력을 물리치고 강성대국을 건설할 것이며 민족의 평화통일 과업을 능히 이루어 낼 것임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

( 2012년 1월 15 유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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