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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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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영박사의 축시, <민족통신 20년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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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9-11-03 15:32 조회27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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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노장의 해외동포 민족시인이며 <조국통일상>을 수상한바 있는 미주통일운동진영의 원로인 유태영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가 민족통신 창간 20주년 행사 일주일을 앞두고 축시를 보내왔다. 그는 그동안 255차례의 연재논평 <제3세계 눈으로 제패권 파헤친다>를 집필해 오면서 국내외 애독자들에게 찬사를 받아 왔다. 그의 축시를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유태영사모영결식008.jpg
*유태영박사가 사모님 운명한 이후 민족통신 대표와 자택앞에서 기념촬영한 모습


유태영사모운명29.jpg
*유태영박사가 사모님께서 운명하기 전 생전에 기념촬영한 모습










[축시]


민족통신 20년을 생각하며



 

유태영(뉴저지 거주 민족시인)

 


 

 

남과 북을 하나의 조국으로 간주하는

자주언론

 

하나의 핏줄로 달리고 쓸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20년을 밀어

 

백두에서  한라까지 뛰고 달려  세월이여!



 

우리 민족의 자주를 위하여

 

우리 민족의  하나됨을 위하여

 

20년을 달리고  달리며

 

 주먹으로 불의에 항거했다

 

 

아직도 쓸어지지 않고 달리고 있으니

 

아직도 물러서지 않고 항거하고 있으니

 

승리의 그날은 다가오고 있다

 

 

!


 

민족통신이여

 

남과 북을 하나의 조국으로 보는

 

자주언론이여!


 

 긍지와 자부심이여!


 

 

민족통신 20 불꽃 타오른다

 

백두산에서 한라산에서

 

통일의 불꽃 활활 타오르게 하라!


 

성조기를

 

이땅에서 불태우고

 

우리민족끼리 자주의 불꽃 타오르게하라!

 

 

비바람 눈보라와 싸우며

 

동서사방 설자리 없는 황무지에서

 

그래도 20년을

 

 바다있고 푸른 하늘 가진

 

 언론의 꿈을 지켜오지 않았는가!

 

 

그렇다!


 

그대는 누가 뭐래도


우리들 모두의

 

귀중한 


 

민족통신아니였던가?


 




 

<민족통신>의 테레비죤국을 설치하여 지난 몇해동안 무려 250여개의 동영상들을 촬영하고 제작하여 독자들에게 크게 호응을 받았던 민족TV의 책임자로 일하면서 보람을 느꼈다는 김백호 편집위원은 오는 <민족통신> 창간 20주년 행사를 앞두고 <나의 감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 내용을 여기에 게재하여 소개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민족통신 20주년을 앞둔 나의 감회



*글: 김백호(민족통신 편집위원, 민족TV 책임편집인)

민족통신-김백호-소형사진.jpg

*사진은 필자 김백호 민족통신 편집위원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한국 민주주의가 망가저가면서 미주동포들에게 의식이 깨어나는 동기가 됐던 것 같다.  나에게도 그러한 변화속에서 마음이 꿈틀거렸고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의견을 공유하면서 우연하게 노길남 박사를 알게됐다.


그 무렵 반공교육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조선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씩 듣게 됐다. 그때 들었던 CNC에 대한 설명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노박사님을 통해 조선의 실정을 하나씩 둘씩 알게 되면서 막연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민족통신을 알게 됐고, 내가 할 수 있는 동영상 제작기술로 문병란 시인의 엘에이 방문 특별 강연때 별 생각없이 영상취재를 돕게 됐다. 그것이  첫 인연이 되어 어언 8년의 세월이  된것 같다. 


그렇지만 그 이후 개인사정으로 3년정도의 연락관계를 끊고 소식도 없이 지내다가 우연히 유투브에서 노박사님이 극우세력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안부차 전화를 걸었고 다시 만나게 됐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편집위원으로 함께 호흡하며 일하고 있다.


그 이 후 헌신적으로 일하는 민족통신의 노길남 박사님과 손세영 편집위원을 보다 더 깊게 알게 됐다. 조국통일운동을 하는 두 분을 보면서 반공에 익숙한 나로서는 더욱더 흥미로운 일이 됐다.


개인 사비를 털어가며 민족통신을 운영하고, 조선을 방문 취재하고, 하루 일과를 오직 통일운동에 일념 하는 노길남 대표와 손세영 편집위원의 활동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은 언제나 정기 주간회의에 참가하여  국내외 정세도 분석하고, 학습도 하고, 취재 계획도 하며,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한편 내가 알고 있는 컴퓨터 지식은 다른 편집위원들에게 설명해 주기도 하면서 보람있는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생활은 어느새  일상적이 되었고, 이 과정을 통해 서로 형제처럼 친숙하게 됐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함께 일하면서 나의 호기심은 북부조국(조선)에 쏠렸고, 방북을 결심하게 됐다. 미지의 세계가 궁금하기만 했다. 그래서 비용마련 준비뿐 아니라 북녘에 관한 공부를 했다. 아는것 만큼 관찰 할수 있다는 생각에 조선에 관련된 자료들을 보기 시작했다. 때로는 탈북자들의 증언도 들어가며 북을 알려고 노력해 보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북에 대한 호기심은 높아갔다.


그리하여 2015년 10월10일 당창건 70주년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첫 방북길에 올랐다. 가슴 설레이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 첫방문의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흥분된 마음으로 조선을 방문하였기 때문이다. 나의 첫방문은 어쩌면 그동안 반공교육에 찌들어 온 세뇌된 지식과 선입견때문에 <악의 축> 나라가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심정도 내 마음속 한 구석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개인 적으로 준비한 카메라는 6종류가 됐다. 순간 순간 다양한 사회모습들을 나의 카메라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첫 방북 때 여러곳을 취재하러 다니다가 나는 내머리에 망치로 얻어 맞는 충격을 느꼈다.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학교에서 받은 반공교육과 병역을 마치면서 머릿속에 심어진 북에대한 적대감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촬영중에는 눈물도 많이 흘렀다. 그러면서 나에게 충격적인 큰 변화가 일어났다.


내가본 조선은 <악마의 축>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조선은 지상천국 이었다. 두번째 방문때는 좀 신중히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세번째 조선을 방문하고나서 조선은 천국이 맞다고 확신하게 됐다. 조선을 알면 알수록 그 사회는 지상의 낙원이 맞다는 사실에 부정할 수 없었다. 집없는 사람들이 없고, 공부하고 싶으면 평생을 돈없이 공부할 수 있고, 치료비가 없어도 무료로 병원에 입원하고 돈한푼 없어도 병을 고쳐주는 사회이고, 실업자들이 없고, 자살자들이 없는 사회이고,  범죄사건이 없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강도나 깡패들이 없는 안전한 사회라는 것을 절감했고, 세상에 세금없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조선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서 말하는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런 인식때문에 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은 조선을 따라 배워야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 이후에도 시간이 갈수록  조선에 대한 관심은 깊어갔다. 인터네트 자료들을 통하여 그리고 도서들을 통하여 조선을 공부해 왔다. 나에게는 조선을 이해하는데  <민족통신>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민족통신>에서 언론일을 하면서 내가 추구했던 "본대로 느낀대로 사실그대로" 자세와 맞아 떨어진 언론이 바로 <민족통신>이라는 사실도 발견했다. 게다가 통일운동의 길잡이가 되어 헌신적으로 일하는 민족통신과 함께 일한 덕택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급료를 받지않고 일하면서도 보람을 가졌다. 이때문에 짧은 시간에 2백여개의 동영상들을 제작하면서도 피곤을 느끼지 않았다. 때로는 밤샘을 하면서도 피로를 몰랐다. 



돌이켜 보면, 처음 인연이 되어 제작한 동영상은 2011년 8월13일이었다. 나는 그때 로스엔젤레스에서 남녘의 민족시인 문병란 선생이 8.15행사 강연을 하는 행사를 취재했다. 그것이  첫활동이었다. 그때 <민족통신>에 동영상으로 첫 꼭지를 올렸다. 그리고 그 이후 각종 행사들을 포함하여 북부조국방문  취재활동, 중국의 동북3성 취재활동, 독일 전역에서 현지 동포들과 독일인들의 활동을 촬영한 취재활동 및 미주지역 행사 등을 취재하여 제작한 동영상들은 지금까지 대략 200여 꼭지가 넘는다. 


이 시대 정의를 위해  앞장서는 민족통신은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나라 조선을 바르게 알 수 있도록 힘쓰는 일과 통일운동하는 분들이 겪고 있는 좋은 일,  슬픈일, 그리고  힘든일도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을 소개하고 보도하면서 격려해 준 것이 <민족통신>의 역할이었고, 사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통신>은  우리공동체에 존재하는 귀중한 재보가 아닌가싶다.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한국에서 어려움을 당한 동지들에게 성금보내기 운동을 포함하여 북부조국이 어려울때 앞장서서 성금운동을 포함하여 각종 운동을 전개한 모습들은 나에게 있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들이었다.  반면에 한 통일운동 단체의 모순을 지적하며 정의편에 서서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고 자책해야할 일에 나섰을 때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진행형이 되고 있다.  이렇게 여러 일들을 경험하면서 정의를 놓고 나의 모순과  맞부딪쳤을 때 문제를 풀어가는 방도에서  어느것이  옳은 것인지, 그리고 어느것이 그른것인지에 대해서는 나의 숙제로 남는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민족통신>이 일반 다른 언론들과는 다른 점을 거듭하여 밝히고 싶은 것은 전혀 보수가 없고 오히려 일하면서 회비를 내고 일해야 하는 언론이 바로 <민족통신>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왜냐하면 아마도 이 세상에 이런 언론은 없을 것 같다. 이 <민족통신>은 오로지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사명감을가지고 일하는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언론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편집성원들은 보람과 긍지를 갖는다. 방북취재나 다른 지역 여행취재를 갈 때는 언제나 애독자들이 성금을 전하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민족통신>이 헌신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모습이라고 느껴졌다. 


노길남대표의 헌신적인 취재활동, 집필활동과 함께 손세영편집위원의 경제적 지원에 감사하고 특별히 물심양면으로 함께해 주시는 유태영, 양은식, 현준기, 김중산, 리준식,  박문재, 박기식, 구기본, 강산, 이인숙, 리준무 여러 선생님들과,  그밖에 민족통신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나는 가끔 <민족통신>회의에서 기적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노길남 대표는 <민족통신>이 지금까지 생존해 온 것은 기적이라고 말해왔다. 내가 볼 때도 불가능한 처지에서 가능을 창조한 언론으로 보았다. 그런데 올해로 20주년을 맞는다는 것 자체가 놀람 그 자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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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취재기간 외국인 기자들과 잠시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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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몸부림쳐온 평양공민 김련희씨 남편과 딸을 취재하는 민족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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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안내원 리광지도원과 한두번 만나 친형제가 된 김백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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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노길남대표와 김백호 편집위원이 잠시 기념촬영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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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민족통신 산우회가 매주 산행하면서 잠시 기념촬영한 모습-필자, 노길남대표, 손세영 편집위원



 

 

 

손세영 편집위원은 <민족통신>과 더불어 그 뿌리인 <한민족연구회> 두조직에서 출범할 때부터 함께했다. 그는 지난 30여년을 회고하면서  <한민족연구회>12년과  <민족통신20년을 돌아보면서 그 동안에 참여했던 인물들을 떠올리면서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는 이 글 마지막에서도 "나는 <한민족연구회> 12년과 <민족통신> 20년을 돌이켜 보면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지금까지 이 조직을 위해 도와준 여러분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그래서 이들이 베푼 사랑에 언제 이 엄청난 빚을 갚을수 있을지다시 머리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거듭 감사한 말을 잊지않고 있다.[민족통신 편집실]



 


민족통신 20주년을 앞둔 나의 감회 

 

*손세영(민족통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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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필자

 

<민족통신>과 그 뿌리인 <한민족연구회>와 인연을 맺은지 32년이 되었다. <한민족연구회>에서 12그리고 <민족통신>에서 20년이 되었다.


지난주 매주 모이는 편집위원 회의에서 <민족통신>창간 20주년을 맞아  편집위원들이  지나온 소감이나 발자취를 돌아보는 글을 쓰자고 결정하여 32년 세월을 회고해 보았다생각해 보니그동안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다그 보답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민족통신>창간 20주년을 맞으니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이 먼저 앞선다.


무엇보다 그간 <민족통신>에 좋은글을 보내준 필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그리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 애독자 여러분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민족통신>은 20년전  창간 되었다남과북을 하나의 조국으로 간주하는 자주언론으로 자주민주통일 운동을 전개하는 단체나 성원들 그리고 조국반도의 문제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있는 해.내외동포들에게 자료들과 방향을 제시하는 일간 인터넷 사이트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편집위원들은 노력하여 왔다그 편집방향은 정의와 진실전쟁보다 평화를예속보다 자주를 그리고 대결이나 경쟁보다 민족대단결을 추구하는데 과녁을 두었다.

 

우리말판과 영문판을 병행하여 왔으나 인력부족으로 영문판은 제대로 일간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던 것이 운영진의 안타까운 심정들이었다.

 

특히 우리  운영위원들과 편집위원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로 일해왔다일하면서도 <민족통신제작에 소요되는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매월 월정헌금을 내고 일해 왔다그래도 경비가 모자라 취재활동을 위하여 미국의 로스엔젤레스를 중심으로 한 서부지역시카고를 중심으로 한 중부지역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부지역의 동포들 120여명의 후원자들 성금으로 충당하며  운영해 왔다돌이켜 보면, 20여년간 운영되어 왔다는 것이 기적이다이러한 고난과 시련기적의 역사가  ‘조국통일’위업에 한줌의 흙이라도 되길 기원해 왔다.


<민족통신>은 오랜세월 언론계에 몸담아온 노길남 대표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돈한푼 받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그리고 초창기에는 <민족통신인터넷 웹사이트 체계를 만들고 운영기술 방법까지 가르쳐준 최지윤김지영김승택 등의 무료봉사 일꾼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그 출범이 가능했다이들은 모두 <한민족연구회>회원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일꾼들이었다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방송영상 촬영분야 전문가인 김백호 편집위원의 정력과 열정으로 250여 편의 동영상을 제작하여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다.  또한 마이클 김과 같은 1.5세의 편집위원이 있었기에 <영문판>을 제작할 수 있었다.


초창기에 무료봉사 일꾼으로 참여했던 이들도 잊을 수 없다.  서승혜토마스김지미조이은주등 자원봉사자들이 영문판을 도왔고지난날 운영및 편집위원으로 참여하였던 이용식이정호백승배김영희정동현예정웅김봉호장광선최재영이태선님들의 헌신적 협조와 노고에 감사 말씀을 전하고 싶다.


<민족통신>은 창간이래  ‘민족언론상’ 을 제정해 내외에서 자주민주통일위해 활약하는 언론단체 및 언론인들을 선정하여 격려하고시상하는 행사들을 개최하여 왔다그리고 국제적학술발표대회를 주최하여 국제사회의 연대를 맺어왔다한편  재미동포민족민주운동단체들과 정세분석을 통하여 민족민주운동 진영의 지위와 역할을 인식하면서 운동의 진로를 올바로 설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노력하여 왔다또한 미주류사회의  반전평화운동 단체들과 연대사업을 펼쳐왔고 코리아반도에 재난이 생기면 남북 동포들을 돕는 성금모금(수해 재난 석방활동도 겸해 왔다.

 

<민족통신편집진은 특히 남과 북해외동포사회들을 대상으로 한  취재활동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래서 서울과 평양 일본과 중국유럽등지에 특파원들을 보내 생생한 현지 취재를 끊임없이 진행해 왔다.

 

<민족통신>편집진은 특히  남북화해와 협력을 추동시키는 각종보도로  해내외 동포사회로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오기도 했다.  특히 남녁동포들과 해외동포들이 갖고있는  북조국에 대한 편견이나 왜곡된 사실들을 바로 이해시키기 위하여  ‘북부조국 바로 알리기운동’ 을 전개해 왔다.

 

<민족통신>은 그동안 무려  75차례 이상 방북취재를 하면서 북부조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의료예술체육교육,  종교 등 취재와  재미동포 경제인 방북단(2005.9)을 구성 북경제인들과 상호경제교류 상담 , 북조선태권도 미국방문단(2007.10) 5개 도시 순방일정에 동행 취재 하여  해내외동포들과 미주류사회에 소개하여  큰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  북부조국 바로알기 방문단(2012.10)을 조직하여  통일토론회를 북부조국   ‘평양’에서 개최하여  -6.15선언  10.4선언의 정당성과 생활력이란 주제를 갖고 북녘동포들과 해외동포들이 함께 토론하고 의견들을 주고 받은 역사적인 행사는 우리 통일운동사에 남을 만한 행사였다그리고 중국의  동북삼성 ‘항일투쟁 조선유격대’ 전적지를  3차에 걸쳐 (2017.9/2018.9 포함탐방  취재 보도한 것 등은  모두  ‘북 조선 바로알기 운동’ 의 일환이었다.

 

<민족통신>이 1999 5월에 탄생된 것은 시기적으로 볼때  해내외민족민주진영 인터넷 언론의 효시라 볼수있다그렇기 때문에  <민족통신>은 해내외 애국세력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고 출범하여 활동할 수 있었다.

 

독자들은 민족민주운동에 관한 각종 소식들을 신속히 접하게 되었고 특히 남녁 동포들은 <민족통신>  통하여 북취재 소식들과  해외동포 민족민주운동 소식들을 한순간에 접할 수있어 창간 5주년이 되는 2004년에는 지구촌 1백여 나라들에 산재한 해외동포들과 남녁 동포들의 구독 독자수는  1백만여 명을 훨씬 넘어서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남한의 ‘한나라당’의원들 중심으로 한 사대매국세력은 민주운동통일운동에 기여해 온 해외 인터넷 언론들을 봉쇄하는 공작이 시작되어 2004 11 <민족통신>을 포함 34개 인터넷 웹사이트들이 완전히 차단시키는 폭거를 자행했다소위 남한의 자유민주주의가 말하는 언론출판의 자유는  사망선고를받고 사각지대로  빠지고 말았다.


여기서 <민족통신>  뿌리였던  <한민족연구회>(1987.11.11창간)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없다이 조직도 노길남 대표가  1987년 뜻있는 삶을 살자는 미주동포(중소상인)33인을 묶어 조직된 단체였다나는 노길남대표와 지금은 고인이 된 유상준위원과 함께 이 조직을 건설하는데 참가했다노길남 대표가 코리안스트리트 저널을 사직할때 깨닳았던 교훈,  ‘대중이 조직화되지 않으면 무기력하기 짝이없다” 는 역사적 교훈이 이조직을 만들게 된 동기였다.

 

33명으로 구성된 조직이었지만 7~8명의 실행위원들은 매주모여  국내외 정세분석과 작은일 부터 실천하자는 운동으로 부터 시작했다.  1987년 출범할 때 초대회장은 노길남님초대이사장에는  유상준님을 선임하고  16명의 이사진 회원 33명으로 <한민족연구회>가 창립되었다.  첫 사업으로  <민족상>  <민족장학상>을 제정하여 민족자주평화통일운동에  기여해온 인물이나 단체들을 선정하여 격려 하는데 목적을 두고 활동했다민족장학상은 민족의 얼을 잊지않고 통일운동 선봉에선 젊은 청년학생들을 격려하기위해 <민족장학금>을 매년 수여 해왔다이런활동은 <한민족연구회>가 통일운동진영의 후원단체의 성격으로 자리매김하여 왔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민족통신> 20,   <한민족연구회>12,  총 32년 동안의 활동은  여러분들의  헌신적 협조와  물심양면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오늘의 <민족통신>이 유지될수 있었던 것도 애독자들의 뜨거운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나는 한 성원으로서 여러분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하며 그 고마운분들을  다시 기억해본다.

 

이미 세상을 떠난 선우학원 박사님이 베풀어 준 사랑을 잊을 수 없다그리고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이활웅현준기박기식유태영박문재함성국양은식강은홍윤길상임춘성한호석리준무정기열조명지이금순송학삼김려식 ,김수해최기봉이종천이미일, 전화심,황규식김필주모욱빈정기성장호준,  김태정이선명최장길이흥로정귀상김미해오영칠구기번김원유이민수강상배장소암이만영백행기강산남관우리준식, 임원섭,이병상김수복김대창이응곤송성자한동상전영순, 김신규, 유동성, 김동균국영길허철차종환황인관육재규홍순호 김현환김영순김상일이세방민경석, 이길주, 은호기오인동조재길, 김용현, 김기대김헬렌김중산양운석이준수이용오이인숙박영준하용진김창옥이승호,  김인숙이원영왕용운김시환송영애정선모정영철박승우권두안이종수마리아문,  최태호윤관흠샌디 신,  하워드 이나기봉김윤경문동호정무노종국이동익,  신은미김웅진박신하한시헌심흥근, 이성화, 송현정, 배미자, 김현정, 윌리암조, 김광태, 조동설, 김성호, 존김조경미이화영오은영김인자,  송상원오순선정연진박세헌박찬영김붕남허남호김경철최덕화노경숙유정분김인경박효순임승민조희균박용석최무년조만철김갑숙 등이 떠오른다. (무순 존칭 생략)

나는 <한민족연구회> 12년과 <민족통신> 20년을 돌이켜 보면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지금까지 이 조직을 위해 도와준 여러분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그래서 이들이 베푼 사랑에 언제 이 엄청난 빚을 갚을수 있을지다시 머리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민족통신 운영위원회는 오는 11월9일과 10일 양일동안 진행될 민족통신 창간20주년을 맞아 제5회민족언론상 수상자들과 제2회 평화사회정의상 수상자들을 다음과 같이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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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민족통신 창간15주년 기념 제4회민족언론상 시상식후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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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민족통신 창간15주년기념 제4회민족언론상 시상식후 참석자들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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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기념식 행사에 참석한 각계각층의 동포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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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민족언론상 시상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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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9일 제2회민족언론상
수상자인 연합뉴스 강진욱기자와 
뉴욕 통일학연구소 한호석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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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5일 제1회 민족언론상
수상자인 일본 통일평론 최석룡선생,
한겨레신문 박해전기자 부부들 참석


 
[공고]


민족통신 제정 제5회민족언론상은 한국<주권방송>과 워싱턴 디씨의 <21세기 언론-영자신문>발행인 정기열박사 선정하고, 그리고 제2회 평화사회정의상 수상단체들은 유럽독일의 동포단체 <한민족유럽연대>와 미국평화단체인 <평화재향군인회-Veterans For Peace>로 각각 선정하는 한편 20주년 기념 특별상으로 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의 대부로 평가받아온 권오헌선생(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과 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으로 활약해 오면서 2백48차례의 연재기사 <제3세계 눈으로 미제패권 파헤친다>를 집필해 온 유태영박사를 각각 선정했다. 

그리고 민족통신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성원해 준 현준기선생박문재박사, 양은식박사, 박기식선생, 리준무선생, 강산선생, 구기본선생에게 특별감사패를 드리기로 <민족통신>운영위원회가 결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시상식은 2019년 11월9일(토) 오후6시 로스엔젤레스 시내 제이제이 그랜드 호텔 로열룸에서 진행됩니다. 주최측은 이 행사가 남과 북 해외동포들이 함께하는 화해협력의 행사로 만들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이날 한호석박사(뉴욕 통일학연구소 소장)의 조국통일 강연과 통일문화행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19년 7월11일
민족통신 운영위원회

 






<민족통신>의 뿌리는 <한민족연구회> 비롯되었다한민족연구회(1987.11.11) 1999년까지 12년동안 <민족상> <민족장학상> 시상해 오다가 1999 5 인터네트 언론으로 <민족통신> 제작해 왔으나  창간일은 전신인 <한민족연구회>  창간일로 기념해 왔다그래서 여기에 역대 수상단체들  혹은 수상자들을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역대 <민족상> <민족장학상 수상자(혹은 단체)>


 

 

*역대 <민족상> <민족장학상수상자들:

 


1  민족상(1987)-정만수선생 부부,민족장학상-박재숙학생,UCLA  민중문화연구소)

2 민족상(1988)-뉴욕거주 김정순선생 양심수돕기 10여권 도서출판민족장학생으로 김현관(라성한청년), 이은주학생(민주청년학생회)

3 민족상(1989)-재독한국여성회(유정숙,조국남 참석), 민족장학생은 이승호학생(UC 버클리), 안동희학생(로스엔젤레스 상업미술대)

4 민족상(1990)-재일한국청년동맹장학상은 주은민학생(애청회원) 최경호학생(민중문화연구소)

5 민족상(1991)카나다<해외동포이산가족찿기회> 전충림선생장학상은 구본천학생(UC버클리),

6 민족상(1992)-남녘의 민족작가 <녹슬은 해방구저자 권운상선생장학상은 김윤제학생(UC버클리), 정준규학생(UCLA 풍물패 한울림 대표)

 7 민족상(1993)-임창영박사장학상은 박영진학생(UC버클리), 민규성(UCLA 우리문화공동체)

8회민족상(1994)–김영철목사장학상은 박장신학생(UCLA,한울림 풍물패)

9 민족상(1995)-육재규선생 가족장학상은 남장우청년(SFO 풍물패 한마당)

10 민족상(1999)-선우학원박사장학상은 정혜린 청년(가주청소년 예술단)


 


***역대 <민족언론상> <평화사회정의상수상자들:


 

1 민족언론상 수상자(2002.5.5):

윌셔 레디슨 호텔서 진행

수상단체:

일본의 통일평론(최석룡 발행인)

박해전기자(한겨레 신문)

 

2 민족언론상 수상자(2004.5.9):

가든 스위트 호텔서 진행

수상자:

강진욱기자(연합뉴스),

한호석소장(뉴욕 통일학연구소)

 

3 민족언론상 수상자(2009.11.14)

용궁식당 별관

 

남녘의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4 민족언론상 수상자(2014.11.8)

일본의<민족시보>

한국의<자주민보>


1 <평화사회정의상수상단체(2014.11.8)

미국인 평화운동 단체들: IAC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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