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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운섭선생의 해외동포운동 40년,그는 아직도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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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9-08-08 20:04 조회5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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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내 언론들이 해외동포운동에 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마이뉴스 박준영기자는 8월6일자를 통해 독일의 동포운동사 연재보도 첫 소식을 독일동포 윤운섭선생(70)을 소개하면서 <국내 동포들에게 힘이 될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윤운섭선생은 민족통신이 제정한 제2회 평화사회정의상을 수상하는 <한민족유럽연대>의 제2대 의장을 역임한바 있었다. 이 보도자료를 여기에 전재하여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윤운섭인물사진01.jpg
독일거주 동포 윤운섭선생(70)

 


해외동포운동 40년, 그는 아직도 뜨겁다

[재독 한인 민중운동사 ①]

 "국내 동포들에게 힘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19.08.06 12:36l최종 업데이트 19.08.06 12:59l박준영(disciple0411)


윤운섭과 독일동포운동사-1.jpg
지난 시기 독일서 <박근혜 퇴진>을 외쳤던 유럽동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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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한민족유럽연대에서 동료들과(맨왼쪽이 윤운섭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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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광주아시아포럼에 참여한 윤운섭선생(가운데 청색 잠바를 입고 있음)





1960·1970년대 우리 정부는 국내 실업난 해소와 외화 획득을 위해 광부와 간호원을 독일로 파견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극심한 실업문제를 겪고 있었고 이에 많은 청년들이 파독 광부 및 간호원에 지원했다. 이들은 대부분 3년 계약직으로 광부로는 7900여 명, 간호원으로는 1만여 명이 독일로 이주했다. 이들은 '산업 역군'이라 불리며 이들의 경제적 가치에 집중해 평가됐다. 그러나 우리 사회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측면도 적지 않다. 이 연재에서는 1960·1970년대 독일로 간 파독 간호원, 광부 중 국내외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운동에 참여한 이들, 혹은 이들과 관계맺고 있는 사람들을 차례로 인터뷰하여 소개한다. 이 연재를 통해 한국 이주사에서 재외 한인들의 사회참여운동 시작과 흐름을 짚어보려 한다. - 기자말

윤운섭(70)씨는 1971년 파독 광부로 독일에 왔습니다. 당시 22세였던 윤씨는 독일에 가서 경제적으로 부모님을 부양하고 동생들 학비를 지원하려는 생각에 독일행을 결심했습니다. 윤씨가 처음 이주한 지역은 독일 탄광지대인 서북부의 도르트문트(Dortmund) 였습니다.

처음 가서 경험한 독일 사회는 한국과 많이 달랐습니다. 개인과 가족에 대한 사회보장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가난은 개인의 책임인줄 알았지만 국가가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해주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우리 사회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게 했습니다.

광부로 3년 계약이 끝난 이후 한국으로 돌아가 가족을 부양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고 윤씨는 독일의 한 병원에 취직했습니다. 또한 함께 독일에 온 파독 간호사와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서 일을 하며 한국에서 온 노동자, 학생 등과 함께 한국의 노동문제에 대한 공부도 병행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 소식을 듣습니다. 독일 기자인 위르겐 힌츠피터(Jürgen Hinzpeter)씨가 광주에서 찍은 사진, 영상 자료 등을 보았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우리 군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그 장면을 왜곡없이 접한 윤씨를 포함한 당시 독일의 한인 약 600여 명은 베를린에서 광주 시민들의 요구에 동참하는 시위를 갖습니다. 이후 <찢어진 기폭>이라는 제목의 연극도 준비하여 상연했습니다.

  
 2018년 광주아시아포럼에 참여한 윤운섭씨



이렇게 시작된 '재유럽 오월민중제'가 올해로 39회를 맞았습니다. 1980년 이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과 우리 사회 민주주의 발전을 기원하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오월 민중제'와 더불어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외신에 알리거나 기금을 마련하여 국내 관련 단체에 송금하는 일도 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은 우리 사회 문제에 대한 윤씨의 관심이 더 높아지게했고, 윤씨는 우리 사회 많은 문제는 분단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980년대 후반 윤씨가 참여하던 재유럽민족민주운동협의회가 국내 학생통일운동세력과 함께 통일운동을 펼쳤고 1990년 범민족대회에서 윤씨는 평양에 방문했습니다.

이를 이유로 윤씨는 한국에 올 수 없었고, 당시 관련 통일운동을 한 이들은 안기부 주도 여러 조작사건에 휘말리기도 했으며 유럽 한인 사회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2010년이 되어서야 30년 만에 한국에 방문할 수 있었고 윤씨와 관련 단체를 둘러싼 오해들도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 갖은 오해와 탄압으로 고생했지만 여전히 한반도 평화 통일에 대한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독일식 흡수통일이 아닌 남과 북이 화홰와 협력, 공존의 방식으로 평화 정착 및 통일을 이뤄야하며, 이를 위해 해외 동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고싶다"고 밝혔습니다.
  

 독일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


윤씨는 이후에도 국내 노동 문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박근혜정권 탄핵 등 국내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윤씨는 "해외에서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 해외 동포들이 하는 행동들이 국내 동포들에게 힘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랜 시간 해외 한인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덧붙여 그는 "다른 해외 지역의 한인들이 어디에 있더라도 우리 문제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여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내는 일에 큰 힘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최근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5·18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활동 등에 참여하는 청년들을 보며 이들을 어떻게 해외 한인 사회참여 운동의 주체로 동참시키고 소통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 청년들이 바쁜 현실 속에서도 우리 문제에 주인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간절한 고민과 바람이 세대간 차이를 극복하고 다음 세대의 마음에 닿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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