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이휘호여사 10일밤 병원서 영면,향년97세/대표적 여성운동가로 활동하다 DJ와 결혼 후 격변의 현대사 온몸으로/빈소에 각계 조문객들이 줄이어 방문중이라는 소식 >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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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이휘호여사 10일밤 병원서 영면,향년97세/대표적 여성운동가로 활동하다 DJ와 결혼 후 격변의 현대사 온몸으로/빈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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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9-06-11 01:24 조회34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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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6월10일 밤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영면했다.준비관계로 11일 오후 2시부터 조문이 시작된다고 관계자가 알렸다. 발인은 14일예정이다. 통일뉴스와 연합뉴스 10일자 보도자료를 게재하여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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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1일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차려놓은 빈소에 각계 조문객들이 방문중이라는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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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호여사가 2000년 6월 방북시 북최고지도자와 만났을 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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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호여사가 김정일위원장 서거때 조문차 2011년 평양방문했을 당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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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8월 18일 김대중 8주기 추도식 때 문 대통령과 환담하는 고 이희호 여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밤 세상을 떠났다. 향년 97세.

박지원 의원은 11일 0시를 조금 넘긴 시각 페이스북을 통해 “이희호 여사님께서 오늘 2019년 6월 10일 21시 37분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소천하셨다”고 알렸다.

“가족들의 찬송가를 따라 부르려고 입을 움직이시면서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덧붙였다. 이 여사는 노환으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박 의원은 “빈소 준비 관계로 내일 11일 오후 2시부터 조문이 시작된다”고 알렸다. 발인은 14일이다. 

이 여사는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나 여화여자전문학교와 서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대한 YWCA총무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를 맡는 등 한국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1962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했으며, 2000년 6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했다.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맡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힘써왔다. 

한편, 10일 낮 김대중평화센터는 13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6.15 남북정상회담 19주년 기념식」을 취소했다. 학술회의는 13일 오전 10시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으로 장소를 바꿔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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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보도자료(2019년 6월10일) 

 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별세…향년 97세(종합2보)
송고시간 | 2019-06-11 00:38


대표적 여성운동가로 활동하다 DJ와 결혼 후 격변의 현대사 온몸으로
지난 3월부터 투병 끝 DJ 서거 10주기 두달여 앞두고 타계…각계 조의 
세브란스병원에 빈소 차려져…'사회장'으로 치러질 듯
장상·권노갑 장례위원장 맡고 5당 대표 고문 참여할 듯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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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서울=연합뉴스) 설승은 기자 =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김대중평화센터는 이날 "이 여사가 오늘 오후 11시37분 소천했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올해 3월부터 노환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이 여사는 수년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지만, 최근 앓고 있던 간암 등이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주부터는 혈압이 크게 떨어졌다가 다시 회복되는 위중한 상황이 이어졌다.


1922년 태어난 이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전,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 램버스대를 거쳐 스카렛대를 졸업했다.

귀국 후에는 이화여대 사회사업과 강사로 교편을 잡는 한편 초대 대한YWCA 총무 등을 역임하며 여권 신장에 기여한 여성운동가로 활동했다.

1962년 상처한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한 뒤에는 정치적 동지로서 격변의 현대사를 함께했다.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과 납치 사건, 내란음모 사건과 수감, 가택연금 등 군사정권 내 이어진 감시와 탄압을 감내했고, 1980년 내란음모 사건 당시에는 국제적 구명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총선과 대선에 출마했을 때 찬조연설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조력자 역할을 했다. 독재정권 치하에서 구금됐을 때는 양심수 석방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997년 김 전 대통령이 4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70대를 넘어선 나이에 '퍼스트 레이디'로서 활발한 내조를 벌였다. 


(서울=연합뉴스) 사진은 지난 2007년 1월 1일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이희호 여사. 2019.4.21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특히 외환위기 직후 사회봉사 단체 '사랑의 친구들'과 '여성재단'을 직접 설립, 마지막까지 고문직을 맡는 등 아동과 여성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인 2001년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첫 여성부가 출범하는 데에도 이 여사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 재임 시 여성의 공직 진출 확대를 비롯해 여성계 인사들의 정계 진출의 문호를 넓힌 당사자기도 하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미경 한국국제협력재단 이사장,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등이 김 전 대통령 발탁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 전 대통령을 동행해 영부인으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 재직 시절 3남 홍걸씨에 이어 차남 홍업씨까지 잇달아 구속되는 등 시련도 겪어야 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재야와 동교동계의 정신적 지주로서 중심을 잡아왔고, 마지막까지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자리를 지키며 의욕적으로 대북 사업을 뒷받침해 왔다.

미국 교회여성연합외 '용감한 여성상', 미국 캘리포니아주 '이 해의 탁월한 여성상', 무궁화대훈장, 펄벅 인터내셔널 '올해의 여성상' 등 인권과 여성문제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특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4일이며, 당일 오전 7시 고인이 장로를 지낸 신촌 창천교회에서 장례 예배가 열린다.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이다. ☎ 02-2227-7550

김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두달 여 앞둔 이 여사는 가족 측의 의사에 따라 사회장으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이 여사의 장례를 주관할 장례위원회가 구성된 가운데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와 평화당 권노갑 고문이 위원장을 맡고, 5당 대표가 장례위원회 고문으로는 참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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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최순옥님의 댓글

최순옥 작성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재미여성 최순옥

추가소식...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10일 밤 11시 37분경 가족들이 임종을 지키는 가운데 편히 소천했다. 이 이사장은 유언을 통해 그동안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자신에게 베풀어준 국민의 사랑에 감사함을 전하고 남편의 곁으로 돌아갔다.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은 김대중평화센터 김성재 상임이사는 1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이사장의 마지막 모습과 유언을 전했다. 이 이사장은 유족이 모두 임종을 지키며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찬송을 부를 때 평소 좋아하던 찬송가가 흘러나오자 이를 함께 부르며 임종을 맞이했다고 김 이사가 전했다.

김 이사는 고인의 두 가지 유언을 전했다. 그는 “이희호 여사께서 우리 국민들께서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자신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씀했다. 우리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서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 이사장은 유언을 통해 고인이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머물던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가칭)’으로 사용하도록 당부했다. 또한 노벨평화상 상금은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김 이사는 “이 유언을 받들어 변호사 입회하에 세 아들의 동의를 받아 유언장을 작성했다. 유언 집행에 대한 책임은 제게 맡기셨다. 그리고 김 대통령 기념사업,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위한 김대중평화센터 사업을 잘 이어가도록 당부하셨다”고 언급했다.

고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이 이사장은 향년 97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대중평화센터는 고인이 어떠한 병으로 소천한 게 아닌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알렸다. 김 이사는 “장기들이 조금씩 둔해지며 병원에 입원하셨지만, 한 번도 의식을 잃으신 적은 없다. 힘이 없으시니 눈을 감고 계시다가 병문안을 온 사람이 있으면 눈을 뜨고 손을 잡고 반갑게 맞이하셨다”고 말했다.

김대중평화센터 박한수 기획실장은 이 여사의 임종 직전 모습을 전했다. 박 기획실장은 전날 오후 4시 55분경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다녀갔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권 여사는 이 이사장에게 “사랑하고 존경한다. 저희가 오래 기억하겠다. 제가 외로울까 봐 봉하(마을)에 자주 오시고는 했는데 최근 뵙지 못했다. 여사님은 좋으시겠다, 대통령님한테 가실 수 있어서”라고 말했다.

박 기획실장은 “그때 여사님이 눈을 계속 감고 계시다가 뜨셨다. 이 모습을 권 여사도 보았고, 가족들도 이틀 정도 눈을 감고 있다가 뜬 모습을 보며 ‘여사님, 어머님 편안하세요.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후 오후 10시 32분경 이 이사장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됐다고 한다. 이때 그의 둘째 아들인 김홍업 전 의원이 곁으로 와 이 이사장에게 “아무 염려 마시고 예수님 꼭 만나세요. 아버님도 만나시고. 제가 잘할게요. 사랑하고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장례는 가족들의 뜻에 따라 김대중평화센터와 장례위원회 주관하에 ‘여성 지도자 영부인 이희호 여사 사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장례위원회는 당초 계획이었던 오후 2시에서 앞당겨 오전 11시부터 조문을 받기 시작했다.

김 이사는 장례위원회 고문으로 여야 5당 대표가 확정됐다고 밝혔다. ‘북한 측의 조문단 방문’과 관련해서는 “아직 연락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고인의 발인은 오는 14일 오전 6시 발인 형식을 갖추지 않고 세브란스 영안실에서 운구한 뒤 오전 7시 신촌 창천감리교회에서 장례예배를 하는 것으로 치러진다. 이후 고인은 동교동 사저를 둘러본 후에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국립묘지에서는 보훈처 주관으로 장례 절차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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