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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특집-6]민족자주의 넋이 듬X 담겨 있는 열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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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1-08-30 00:00 조회2,4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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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노길남 특파원]



[특집-6] 대성산 혁명열사릉과 신미리 애국열사릉 참관

yulsa04.jpg<2001 민족통일대축전> 평양행사를 취재하는 기간 중 8월14일 한때 대성산에 있는 『혁명열사릉』과 신미리에 소재한 『애국열사릉』을 참관했다. 이 두 열사릉에는 사대주의 인물들은 전혀 없었다.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민족의 제단에 한 몸 받친 인물들과 8.15광북이후 남과 북 해외에서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초월하여 조국의 하나됨을 위해 피와 땀 흘리다가 운명한 애국자들의 넋이 고이 잠들어 있는 곳들이었다.

『혁명열사릉』은 평양시내에서 북서쪽 방향에 위치하고 있는 대성산 주작봉에 자리잡고 있다. 고구려 24대 장수왕 때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해 대성산으로 정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주위에 을지봉, 소문봉, 장수봉이 있는데 주작봉이 있는 혁명열사릉에서 평양시를 굽어보는 경치는 장관으로 느껴진다.

yulsa01.jpg 이 열사릉은 1968년 9월1일 장소가 결정되어 조선로동당 창건 30주년을 기념하여 1976년 7월5일 완공되었고 10년 후인 1985년 10월 창건 40주년을 기념하여 4배로 확장했다고 안내원 여성이 설명해 준다. 입구에는 진군편, 방어편, 추모군상 편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묘지에는 이름과 약력 출생일과 별세일이 적힌 묘비와 석조제단들이 각 묘지마다 놓여있다.

입구 왼쪽에는 김 일성 주석의 교시문이 쓰여진 석조물이 세워져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발이 담겨 있다. 「항일혁명렬사들의 숭고한 혁명정신은 우리 당과 인민들의 심장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yulsa02.jpg이 열사릉에는 1백32명의 열사들의 민족정신과 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동으로 만든 흉상들과 함께 묘비가 세워졌는데 이 가운데 눈에 띄는 인물들 가운데는 항일투쟁 시기의 조선혁명군 지휘관이었던 김혁(1907.10.11-1930.8.25), 차광수(1905.4.5-1932.10.30), 혜산 경찰서에 끌려가 일본경찰의 조서에 응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혀를 끊은 마동휘 열사(1912.10.9-1938.1.9), 그는 부인과 자녀들이 모두 민족의 제단에 몸을 받친 가정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열사 가족들의 흉상과 묘비가 있다. 필자는 기관총수였던 최원일 열사(1918.10.28-1941.8.14)의 묘비를 지나갈 때 그의 묘앞에는 5개의 화환들을 보았다. 그가 전사한 날이 바로 오늘(8월14일)이 60주기가 되어서 김 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낸 화환과 더불어 누군가가 올려놓은 4개의 꽃다발이 그의 묘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혁명열사릉』마지막 줄 가운데에는 김정숙 동지(1917.12.24-1949.9.22: 항일무장투쟁의 여장군이며 김 일성 주석의 부인)라고 쓰여진 묘비와 흉상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참관단들이 모두 한 줄로 나란히 서서 머리를 조아려 인사를 하는 것이 예절로 되어 있다. 묵도의 순간에는 어딘가에서 장엄한 음악이 울려 나왔다.

yulsa06.jpg 『애국열사릉』은 일제 때의 항일투쟁으로 전사한 열사들도 있었지만 특히 광복이후에 주체사회주의를 건설하다가 운명한 열사들을 포함하여 북과 남 해외 동포들 중 조국통일운동에 헌신적으로 몸 받친 5백25명의 열사들을 안치한 묘지이다. 이곳은 흉상대신에 묘비에 천연 돌을 넣어 이 돌에 열사들의 사진들을 새겨 넣은 것이 특징이다. 1986년 6월8일 세워진 애국열사릉은 김 정일 국방위원장이 98년 이곳에 현지답사중 천년돌에 사진을 새겨 넣자는 제안에 98년 9월에 일제히 묘비에 천연돌 사진을 새겨 넣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혁명열사릉에는 호칭을 동지로 썼으나 애국열사릉에는 생시에 사용하던 호칭으로 동지, 선생, 여사 등으로 쓰여졌다.

애국열사릉에는 63명 비전향장기수들이 이북에 송환되어 그 동안 운명한 두분이 있었는데 리종환 동지(1922.11.21 - 2001.4.30), 윤용기 동지(1926.8.2 - 2001.6.13)로 쓰여진 묘비에는 사진과 함께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라는 호칭도 첨가되어 있다.

yulsa05.jpg 이곳에는 18살에 전사한 어린 영웅열사도 있고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에 김구 선생과 함께 평양회의에 참석하고 그후 50년 12월10일에 서거한 김규식 선생, 남북에 널리 알려진 이북노래 <휘파람>의 작곡가이며 혁명시인인 조기천 선생(1913.11.6 - 1951.7.31), 리준 열사의 아들 리용 선생(1888.4.7 - 1954.8.18), 최덕신 선생과 그의 부친 최동오(천도교)교령, 이북의 종교인 강량욱 목사, 문학인 홍명희 선생, 조미간 정전협정의 서명자였던 조선인민군 대표 남일 정무원 부총리, 로동신문사 부장이며 인민기자였던 리대영 기자, 려운형 선생의 딸이며 조국전선 의장이였던 려연구 여사(1927.8.29 - 1996.9.28), 재일조선인총연합회 한덕수 의장(1907.2.18 - 2001.2.21) 등이 영면하고 있다.

필자는 특히 『혁명열사릉』참관에서는 일제의 치하에서 민족주의자 뿐만아니라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였던 우리 선열들이 얼마나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불굴의 투쟁을 전개하였는가를 알게 되었고 『애국열사릉』참관을 통해 이 묘지는 그야말로 <민족대단결 묘지>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기에는 북과 남, 그리고 해외동포 열사들의 넋들이 한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모든 이들이 가졌던 민족철학은 <조국은 하나>였다. 북에 살았건 남에 살았건 그리고 해외에 살았건 이들이 지향했던 애국의 길은 <하나의 조국관>이었고 민족자주를 바탕으로 한 <자주적 조국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끝) [200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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