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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환 박사]고난의 행군때 이북이 견디고 생존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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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slee 작성일08-09-25 00:00 조회11,415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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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은 고난의 행군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김현환 자주사상 연구소장은 이북의 “객관적 요건인 사회적 평등과 물리적
억제력, 그리고 주체적 요인인 자주사상으로 일심단결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북은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극복할 수 있었고 이제는 강성대국 건설을 향하여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된다.”고 말한다. 김현환 박사의
기고문을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고난의 행군 때 이북이 망하지 않고 생존한 이유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이북은 1980년대 말 동구가 망하고 1991년 12월25일 소련이 붕괴되자 그 동안 물물교환식 무역을 해오던 사회주의 형제국들과의 무역거래가 끝이 나고 말았다. 그 때부터 이북은 개솔린을 비롯한 다른 필요한 물자들을 현금을 주고 사와야만 하였다. 거기다 이북은 1994년 7월8일 김주석이 서거함으로 대국상을 만나 민중들은 큰 슬픔에 잠겨 있었다. 거기다 1995년과 1996년 2년간 대 홍수를 만났다. 여기 저기 뚝이 문어져 돈밭이 진흙으로 덥혔고 공장들도 물에 잠겨 문이 닫혔고 전기가 부족하니 기차도 멈추어 섰다. 거기다 97년과 98년 2년간 대 가뭄이 들어 많은 지역에서 곡식들이 말라 타 죽어버렸다. 이때 이북 민중들이 심한 고생을 하였다. 이 시기를 이북에서는[고난의 행군], 혹 [강행군] 시기라고 부른다.

<##IMAGE##>이 때 이북은 참으로 어려웠다. 아마 다른 나라 같으면 수십 번 망했을 것이다. 이북의 안내원들이나 간부들도 자신들의 입으로 아마 다른 나라 같았으면 벌써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백기를 들었을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아마 며칠을 꿂고 나면 다른 나라 같았으면 인민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런데 이북에서는 이 고난의 행군시기에 어떤 폭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누구나 다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려고 노력하였지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자연재해를 누구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 그것은 사회주의 체제의 잘못도 아니고 지도자의 잘못된 정책 때문도 이니었다. 이북 민중들은 이 자연재해를 당하여 주저 앉아 남을 비난이나 하고 있지 않고 지도자와 당과, 군대와 일심단결하여 고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모든 가능한 노력을 다 하였다. 군대들도 앞장서서 어려운 일들을 다 맡아 재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들 이북 민중들이 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진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참으로 궁금하였다.

나는 그 원인을 객관적 요인과 주체적 요인 두가지로 나누어 찾아 보았다. 우선 이북은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북은 자본주의 사회처럼 생산수단을 일부 개인들이 사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이 공유하고 있다. 농장도 우리 농장, 협동농장으로 토지는 나라가 소유하고 있고 농사진 곡물은 나라에 일부 바치고 농사진 사람들에게 분배된다. 땅 소유주들이 토지도 사유하고 농사진 곡물도 사유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다르다. 공장도 마찬가지이다. 이북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우리 공장이지 내 공장이라는 것은 없다. 집도 나라에서 지어 세대 수에 따라 분배한다. 직장이 바뀌어 다른 지방으로 가게 되면 그 집을 내놓고 지방에서 새로 집을 분배받아야 한다. 집을 사고 팔 수 없다.

그러므로 이북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개인이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객관적 여건이 허락되어 있지 않다. 모든 인민들이 다 잘 살면 다 함께 잘 살고 못 살면 함께 못 살게 구조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북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으로 주민 모두가 평등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기본 생활구조인 경제에서 차별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평등]을 아무리 외쳐도 평등을 이룩하기가 힘들다. 요사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워 지니 빈부의 격차가 더 심해졌다고 한다.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다.

이북이 고난의 행군을 할 때 만약에 이남사회에서 처럼 10 퍼센트의 가진 사람들이 국가 재산의 반을 차지하고 호의호식하는 상황이었다면 반드시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굶어 죽을 바에는 가진 사람들의 집을 털어서라도 가족들을 먹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북에서는 사회구조적으로 빈부의 격차가 없이 평등하기 때문에 자연재해로 어려움을 겪을 때 도시와 농촌이 다 함께 어려움을 겪고 관리들이나 평민들이나 다 같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기 때문에 이북에서 고난의 행군을 할 때 폭동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 평양시를 비롯하여 도회지가 더 어려웠다고 한다. 먹을 것을 구하러 오히려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갔다고 한다. 학생들도 학업을 중단하고 식량을 찾아 시골로 내려갔다고 한다. 그래도 농촌에는 나물이라도 있지 않은가. 어촌에는 물고기라도 있고.

그러나 이북 사회주의 사회에 아무리 <평등>이라는 객관적인 조건이 형성되어 있었어도 주체적인 요인인 인간자체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고난의 행군 때 붕괴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회와 역사의 주체인 인간이 준비되지 않으면 아무리 객관적인 여건이 준비되더라도 역사의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것은 진리이다. 만약 고난의 행군 시기 민중들이 고난의 원인을 잘 못 인식하고 그 고난의 화살을 당과 지도자에게 돌렸다면 아마 이북정권이 견디어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만약 인민군대들이 도저히 굶고 살 수 없으니 사회주의 체제와 정권을 바꾸자고 총칼을 휘둘렀다면 이북정권이 붕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북 민중들은 이북의 지도자가 민중들을 하늘처럼 여기며 민중들의 뜻을 받드는 민중의 수령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관리들과 당원들이 민중들의 충복으로서 자신들 보다 고난의 행군 때 더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실체험으로 목격했기 때문에 상급기관에 항의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 마다 늘 실시되는 학습을 통하여 이북 민중들이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차이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고 이북식 주체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가지고 그것을 옹호해 왔기 때문에 고난의 행군을 잘 극복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지도자와 당, 군대, 민중이 주체사상으로 일심단결하여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이북에 그 극심한 자연재해와 동구권의 붕괴가 있었음에도 생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주체적 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북에서는 <사상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사상론]을 중요시 하고 있다. 사회주의 종주국이라고 일컬어 지던 소련은 세계의 제2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상으로 일심단결된 주체를 강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총 한방 쏘아보지 못하고 붕괴되고 말았다. 핵무기를 포함하여 최신식 무기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 내고 사람이 다루는 것이다.

나는 주석께서 서거한 후 3 개월 쯤 지나서 단군릉이 완성되어 단군릉개건식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북으로 달려 갔다. 아마 10월3일 개천절에 맞추어 개건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개건식에 이북의 높은 간부들이 많이 참석하였다. 나는 그들과 함께 주석단에 서 있었는데 개건식이 끝나고 계단을 올라가며 해설자의 설명을 듣게 되었다. 나는 이북의 높은 한 간부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다 우연히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 높은 간부의 구두창이 떨어져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이북을 자주 방문하면서 이북사회에서는 위로 올라 갈 수록 높은 간부들이 겸손하고 소박하며 생활자체가 검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파트도 새로 완성되어 높은 간부들에게 옮겨 갈 것을 권하면 민중들에게 먼저 분배하도록 하고 오래된 아파트에 그냥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본주의 사회처럼 고관들이 대 저택에서 사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한다. 나는 1989년 청년축전 때 이북을 방문하여 5만 세대가 살 수 있는 현대식 아파트를 완공한 광복거리 완공식에 참석하여 아파트들을 둘러 볼 수 있었고 1992년 5만세대의 통일거리가 완성되었을 때도 통일거리 완공식에 참석하여 아파트들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이남 같으면 강남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그런데 그 거주자들이 평범한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지금도 재미동포들을 모시고 안내를 할 경우 광복거리와 통일거리를 지나면 꼭 저기 아파트에서 나오는 주민들을 보라고 말한다. 그들은 고관들과 상류층들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들이었다. 이북사회를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의 논리로 잴 수 없다고 내가 강조하는 것은 이때문이다.

사회와 역사의 주인인 인간, 민중이 준비되어야 한다. 인간을 무엇으로 준비시킬 것인가? 자주적 사상이다. 자주적 사상을 틀어쥐고 사상을 앞세워 인간개조를 해야 인간을 모든 것에 대비할 수 있도록 준비시킬 수 있다. 주체를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인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주석께서 [철학의 원리]를 밝혀 주었다.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다. 인간중심의 사회, 인간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회,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는 세계관을 가진 사회, 이북의 주체사회를 파괴할 힘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핵무기가 아니라 수소폭탄보다 더 무서운 힘으로도 이 의식화된 인간들의 일심단결된 집단을 파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힘은 준비된 역사의 주인들이 일심단결하는 힘일 것이다. 일심단결된 주체사회주의, 거기다 어떤 제국주의 세력이 침략해도 물리칠 수 있는 물리적 억제력을 가진 객관적 조건까지 갖춘 나라인 이북을 감히 침략할 자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바로 위와 같은 객관적 요건인 사회적 평등과 물리적 억제력, 그리고 주체적 요인인 자주사상으로 일심단결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북은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극복할 수 있었고 이제는 강성대국 건설을 향하여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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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ㅇㅇㅇ님의 댓글

ㅇㅇㅇ 작성일

글잘읽었습니다. 글내용에 보충을 하자면 ᆢ 이북이고난의행군을 이겨낸 또다른 중요한 원인은  그들에게는 항일어 전통이있고  그항일의 역사를배우며자라기때문입니다.  일제강점시기  유격대와 인민들이 합심하여 지켜낸 유격구도 일제어 봉쇄로 총맞아희생된 사람보다 아사한 사람들이 더많았지요. 일제시대 투사들은 나라도없고 후방도없이 일제와 싸웠는데ᆢ 그런역사를배우며 자란 이북사람들이 아무리힘들어도 제나라가있고 제군대가있고 믿고따르는지도부가있기에 고난의행군을이겨냈다고봅니다.

까치님의 댓글

까치 작성일

전혀 공감을 못하는 것은 아니나, 사실 어쩔 수 없어 지내온 시절이라는 것이지요.
쓸데없이 미화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지요.
경제를 제대로 운영할 수없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발생한 일이고, 주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을때 김정일이는 잘 먹고 할 것 다 했다는 건 만민들이 다 아는 거지요.
남들도 다 아는 사실을 항일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건 죽을 고생을 한 주민들을 우롱하는 처사이지요.
어쩔 수 없이 살아 온 것을 면피하려고 함부로 말하지 말고, 미화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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