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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방문기]8.15민족통일대회 차가운 머리로 성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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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2-08-29 00:00 조회1,1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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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서울의 <8.15민족통일대회>는 남북대표단들의 차가운 머리로 성사시켰다. 뜨거운 가슴만으로는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하나 같은 마음들이었다.

21778_41.JPG[사진:북측 대표단들이 떠다던 17일 인천공항에 환송나왔던 통일연대 회원들이 통일을 상징하는 단일기를 들고 눈물로 작별하는 장면- 8.15민족통일대회 공동취재단 제공]

한상렬 목사를 비롯한 통일연대 소속 <8.15민족통일대회>참석자들은 북녘 동포들을 만난 14일부터 그들이 떠난 17일까지도, 그리고 그들과 작별하고서도 못내 아쉬운 마음들을 간직한 채 북녘 동포들에게 죄송하다는 마음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민중연대 개소식이 민주노총 건물 9층에서 열리던 21일 밤에도 한 목사는 "죄송한 마음입니다"라는 말로 8.15대회를 돌아봤다.

그러나 <8.15민족통일대회>를 지켜 본 각계각층 애국동포들은 통일운동세력들이 인내로 지켜 낸 역사적 행사였다고 지적하며 민족민주세력의 성숙된 자세들을 높이 평가했다. 이번 행사는 남북이 민간교류행사의 일환으로 서울에서 8.15대회를 공동으로 개최함으로써 6.15선언의 이행을 민간단체들이 합법적으로 실천한 최초의 역사로 아로새겼다.

해 내외 애국세력들은 이 대회가 단지 최초로 열렸다는 데에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1) 반통일 세력의 방해책동을 인내로서 극복하여 성사시켰다는 점, (2) 2001년 평양에서 개최한 <8.15민족통일 대축전>을 통해 약속한 남북대표들의 약속을 서울에서도 57년만에 관철시킬 수 있었다는 점, (3) 애국세력과 민족분열세력을 극명하게 반영시켜 주었기 때문에 어떤 세력이 청산의 대상인가를 일깨워 준 점, (4)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의 길에서 이북은 결코 적이 아니라 반드시 함께 해야 할 동력이라는 점, (5) 조국의 통일은 자주의 원칙으로 실천하여야 하며 그 방도는 반드시 민족대단결로서 이뤄야 한다는 점등을 다시 한번 역사적 교훈들로 부각시켜 준 귀중한 행사라고 총화 해 주었다.

이번 행사는 또 민족분열세력들이 무엇을 노리는 가에 대하여서도 일깨워 준 계기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민족민주세력들이 자신들을 좀더 냉정하게 돌아 볼 수 있는 계기도 만들어 주었다.

4천여명의 규모로 계획된 행사가 10분의 1로 축소되었다. 범민련, 한총련 성원들의 대표참석이 불허되었다. 여운형 선생의 묘지참배가 불허되었다가 간신히 성사되었다. 북부조국의 지도자 이름이 들어가고 그의 문필이 삽입된 그림전시회가 안 된다고 말썽이 되었다. 남북청년학생대회의 일정을 공동발표문에 삽입하는 것도 말썽이 되었다. 남측대표단들이 북측 대표단 1백16명을 자유롭게 만나는 것조차도 제한되었다. 취재기자들이 북측 대표단을 취재하는 것까지도 일일이 감시를 받아야 했다. 축소된 모임에서조차 남북 대표단들의 만남은 지극히 제한 된 분위기 속에서 8.15대회가 진행되었다.

소수 언론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수구언론들, 특히 조.동,중 같은 언론들은 7천만겨레의 소원인 통일문제를 외면하지는 못하면서 가장 작게 취급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보도자세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해방 57주년을 맞는 <8.15민족통일대회>가 서울 장안에서 열리는데 이와 관련된 보도가 어찌하여 대서특필로 다뤄지지 않고 보일까 말까하는 자리에 외롭게 보도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자세는 일간 신문뿐만 아니라 방송과 테레비존 보도들도 마찬가지였고 월간 언론들도 같은 자세들이었다. 제도권 언론들이 이 행사를 눈에 띄게 다뤄준 기사들이 있다면 내용도 없이 다룬 사진기사 정도가 아니면 거의가 부정적인 시각에서 다룬 보도일 뿐이었다.

<8.15민족통일대회>가 한창 진행중인 16일 일부 주요 일간신문 2면 하단에는 5단 규격의 광고가 시스템사회운동본부(대표 지만원 박사) 명의로 게재되었는데 그 내용들은 통일운동단체들을 매도하고 남북화해와 협력을 잔혹하게 방해하는 글들로 <대국민 경계령! 좌익세력 최후의 발악이 시작됩니다>라는 제목아래 애국세력들을 사정없이 중상하며 수구세력들을 민족이간의 길로 선동하는 것들로 빽빽이 채우고 있었다. 이 신문의 1면에는 남북이 공동으로 벌이는 8.15대회에 관련된 기사는 1단짜리로도 취급하지 않았다. 그 다음 날인 17일자 1면에는 지면 한가운데 부시 미대통령이 15일 미국의 한 지방연설(한국과는 무관한 내용) 장면을 대서특필로 다루면서 8.15남북공동행사 폐막과 관련한 보도는 맨 아래쪽 위치에 1단짜리 기사로 취급했다. 제도권 언론들의 <8.15민족통일대회> 보도자세들은 북측대표 공연단을 생 중개한 에스비에스 테레비죤 방송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민족을 사랑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민주언론들의 시각들은 제도권 언론들과는 크게 달랐다. 월간 <민족21>은 9월호를 통해 제도권 언론들이 소홀하게 다뤘던 <8.15민족통일대회>에 대한 보도자료들을 풍성하게 취급해 주었다. 특집으로 취급하여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면(51쪽)을 이 행사에 할애한 <민족21>은 역사의 현장들을 꼼꼼하게 취재하여 보도해 주었다. 이와 함께 민족민주 인터넷언론들로 활약해 온 <통일뉴스>, <민중의 소리>, <유뉴스>, <오마이뉴스> 등도 8.15대회 공동취재반을 구성하여 특별보도 하면서 현장행사들을 실감 있게 볼 수 있도록 동영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허지만 민족민주 언론들이 남녘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한계성을 안고 있었다. 정부당국의 간섭과 관련하여 이들이 고민해 온 제한성들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발행주체들의 경제력도 부족했다. 그래서 일꾼들은 거의가 봉사하는 수준에서 희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도권 언론인들은 대체로 부유한 생활을 하면서 고생을 모르는 것 같다. 이에 비해 진보언론인들은 대부분 애국을 생활 신조의 중심에 놓고 고생을 낙으로 생각하며 삶을 영위하는 모습들이다.

인터넷 언론, <민중의 소리>는 그 동안 민족민주인터넷 방송국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어 오다가 <민중의 소리>로 이름을 바꾸고 최근에 기자들을 공개 모집하였는데 급료를 받지 않고 무료로 봉사하는 기자 직책에 응모한 젊은이들이 무려 2백 여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남녘의 진보언론인들은 자신들의 소속이 어디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격려하면서 동지애를 발휘하는 아름다운 모습에 크나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8.15민족통일대회>가 성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그 배경에는 진보언론인들의 노력과 자문들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로 진단된다. 통일운동권 안팎에는 <8.15민족통일대회>진행을 놓고 강 온 세력의 엇갈린 평가들도 없지 않았다. 민족분열세력들의 책동에 감정으로 맞선 나머지 이 대회의 개최여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하는 소리도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회를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는 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진보언론계 대부분은 그 어떤 장애물들이 가로 놓여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는 여론으로 몰고 갔고 그리고 성사 후에도 통일연대, 민화협, 7개종단 대표들이 인내로서 지켜 낸 이번 대회에 대한 성과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해 준 자세들은 진보언론들의 성숙도를 반영해 주기도 했다.

이번 대회는 또 9월에 개최될 남북청년통일대회, 남북여성통일대회, 남북축구대회, 아시아올림픽대회에 북녘 선수단과 응원단 615명이 참가하는 행사들을 가능하게 하는 징검다리의 역할로 자리 매김 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8.15민족통일대회>는 또 제한 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행사들이었으나 이 행사를 통해 소개된 사진전, 미술전, 독도문제 토론회 등은 남북 모두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을 진한 감동으로 부상시켜 주었다. 이러한 인식과 감동은 제도권 언론들의 외면으로 당시에 모든 대중들에게 전달될 수는 없었으나 점차로 대중과 대중들의 마음으로 서서히 전도되고 있다는 사실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행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차가운 머리로 성사시켜 민간차원에서 이뤄진 역사적인 대회로 기록되었지만 그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은 남북교류가 여전히 당국의 간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교류차원의 굴레 안에서 맴도는 한계성들을 여실히 입증해 주기도 했다. 이것은 또한 민간역량이 당국의 간섭을 배제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증거로 나타나기도 했다. 때문에 이러한 부족 점들을 메우자는 소리도 높았다. 통일연대, 민화협, 7개종단이 이뤄 놓은 기초 위에 좀 더 폭 넓은 기구가 구성되어 제 정당 및 사회단체들은 물론 기층대중들인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등 각계각층이 광범위하게 참여하여 모두가 통일운동의 주체로서 혹은 주인으로서 6.15남북공동선언을 다함께 실천할 수 있는 날, 그 날을 간절히 기도하는 밤이다.


민족통신 8/25/2002 minjok@minj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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