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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권연대,<이창기 정신> 따라배우기 행사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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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9-01-31 02:36 조회8,9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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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민주권연대>는 지난 1월26일 서울서 자주시보 이창기기자 정신 따라배우기 행사 일환으로 "조국애와 민족애, 헌신성, 실천력과 실력, 동지애, 결사관철"의 5가지 주제로 <이창기 정신 토론회>를 진행해 관심을 모았다. 이 행사에 관한 보도자료(자주시보 1월30일)를 전재하여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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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민주권연대,<이창기 정신> 따라배우기 행사

 

 


"한 번 만나도, 100을 주는 이창기 동지"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01/30 [23:4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국민주권연대가 지난 26일 이창기 정신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제공-김한성]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국민주권연대는 "조국애와 민족애, 헌신성, 실천력과 실력, 동지애, 결사관철"의 5가지 주제로 <이창기 정신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제공-김한성]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지난 26일, 국민주권연대가 <이창기 정신> 토론회를 진행했다.

 

토론회에는 권오혁 통일정치포럼 공동대표, 김영란 자주시보 기자, 김철민 다큐창작소 감독, 서지연 주권방송 편집장, 윤태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선전국장이 나와서 이창기 동지의 삶을 돌아보면서 배워야 할 정신에 대해서 토론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주위의 사람들이 느꼈던 이창기 동지의 <1, 조국애, 민족애, 2. 헌신성, 3. 실천과 실력, 4. 동지애, 5, 결사관철>에 대해서 토론했다.

 

먼저 이창기 동지의 조국애와 민족애에 대해서는 김철민 다큐창작소 감독은 2005년 미군의 양민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잊을 수 없는 원한>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김철민 감독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10여 일간 이창기 동지와 함께 했던 시간은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으며, 지금까지 영상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며 운을 뗀 뒤에 “미군에 의한 학살당한 피해자를 인터뷰하면서 이창기 동지는 우리가 힘을 키워 반드시 미국에게 당한 범죄에 대해서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 미군의 학살에 대해서 울분을 참지 못하며 함께 분노했다. 또한 미군 범죄를 고발하고 민족자주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10일간 취재와 운전, 기사를 쓴 이창기 동지의 열정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또한 김철민 감독은 “일본의 조선학교에 함께 취재 갔을 때, 해외동포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함께 아파하면서 조국통일의 의지와 절박성을 동포들과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

 

김철민 감독은 오래전의 기억이지만 “이창기 동지와 미군 양민학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와 조선학교 취재 동행의 경험은 나에게 영상을 만드는 데 있어서 종자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와 영상이라는 창작물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뜨거운 조국애와 민족애를 갖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라고 밝혔다.

 

김영란 기자는 “이창기 동지의 조국애와 민족애는 기사를 쓰는 원동력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쓴 기사 방북취재의 결심에서 드러난다. 지난해 10월 말 당시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교착되어 있을 때, 본인이 병상에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으로 복귀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해 자신의 마지막 몸뚱어리를 바치겠다는 그 순결한 마음과 뜨거운 조국애와 민족애를 느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윤태은 선전국장은 “이창기 선배는 후배 대학생들을 만날 때 늘 민족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강연을 해주셨다. 가슴에 우리 민족에 대한 열렬한 의지를 갖고서 기사와 강연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 김철민 다큐창작소 감독 [사진제공-김한성]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서지연 주권방송 편집장 [사진제공-김한성]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이창기 정신 토론회 두 번째 주제, 헌신성에 대해 서지연 편집장이 먼저 기조발언을 했다. 서지연 편집장은 “이창기 동지는 자주민보, 자주시보를 위해서라면, 동지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동지였다”고 말했다.

 

이어 서지연 편집장은 “자주민보 시절에도 이창기 동지는 주위의 동지들이 재정 문제로 주저하고 있을 때 ‘재정은 자신은 책임질 테니, 동지들은 자주민보에만 집중해달라’고 말한 뒤에 끝까지 이를 지켜왔다. 심지어 자신의 집을 자주민보 사무실로 내어주고, 이창기 동지와 부인은 집의 다락방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창기 동지는 본이 여유가 있어서 내놓는다든가, 예비를 따로 마련해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헌신적인 동지였다”고 덧붙였다.

 

또한 서지연 편집장은 “이창기 동지는 운동하는 후배들을 헌신적으로 지원해서, 주위의 진보운동 단체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심지어 구속되어 있을 때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챙겼다. 그리고 이창기 동지는 유언으로 가족들에게 운동단체를 후원할 것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친 동지였다”고 이창기 동지를 기억했다.

 

권오혁 공동대표는 “주권방송이 이사하고 스튜디오를 만드는데, 이창기 동지가 직접 와서 방음시설을 만드는 것까지 도움을 주었다”고 이창기 동지에 대해 말했다.

 

세 번째 토론주제 실천력과 실력에 대해서는 김영란 기자가 먼저 말을 했다.

김영란 기자는 “이창기 동지의 실천력은 자주민보, 자주시보 18년의 역사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인터넷 자주민보는 북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민족정세 분석을 가장 집중적인 기사로 설정하고 매일매일 기사를 이창기 동지는 썼다. 인터넷 언론은 누구나 자신들이 원하는 시간에 접속하기에 늘 발 빠르면서도 정확한 기사를 쓰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이창기 동지는 이를 담보하기 위해서 잠을 줄여가면서도 일을 했다. 또한 자주시보가 창간되는 과정 역시 이창기 동지의 완강한 실천력을 보여준다. 보수 세력의 공세로 자주민보가 폐간당하는 속에서도 웬만한 사람이면 주저앉을 수도 있는데 이창기 동지는 정면돌파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기억했다.

 

또한 “이창기 동지의 높은 실력은 문화예술, 북의 군사력, 정세분석 등 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정확히 썼고, 특히 민족에 대한 기사를 누구보다 명확하고 정확하게 써 이창기 동지의 기사를 보면 ‘눈이 확 뜨인다’, ‘심장이 뛴다’는 평가가 많다. 그리고 한해에 800편에 가까운 분석 기사를 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높은 실력의 원동력은 늘 학습하고 사색”했기에 가능했다고 김영란 기자는 말했다.

 

이에 대해 서지연 편집장은 “해외 동포들은 늘 아침에 일어나면 자주시보를 본다고 한다. 일본이나 미국에 있는 동포들이 자주시보를 통해 정세를 파악했다. 이창기 동지의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고, 김철민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와 조선학교에 취재 갔을 때 이창기 동지는 늘 새벽까지 기사를 쓰고 공부를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덧붙였다.

 

 



▲ 김영란 자주시보 기자 [사진제공-김한성]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윤태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선전국장 [사진제공-김한성]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토론 네 번째 주제인 동지애에 대해서는 윤태은 선전국장이 먼저 발언했다.

윤태은 선전국장은 “이창기 선배는 ‘한 번을 만나도 100을’ 주시는 선배였다. 단 한 번을 만나도 이 동지가 끼니를 거르고 다니지 않을까 걱정하며 정성스러운 식사를 차려주었던 모습이 기억난다. 암 투병 중에도 늘 후배들이 병간호하러 가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직접 밥상을 차려주었다. 그리고 늘 만나는 후배들에게 ‘요즘 아픈 곳은 없는지’, ‘경제생활은 어떻게 담보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 섬세한 질문 속에 이창기 선배가 동지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 “이창기 선배가 몸이 갑작스레 안 좋아져 대학생들이 병문안을 가서 대학생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방문 환영사업 등을 진행한다고 말을 하니까 ‘대학생들이 있어 힘이 난다’, ‘모든 답은 우리 민족에 있다’며 너무나 마르고 힘겨워 보이는 외면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단 있는 목소리로 힘을 주셨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윤태은 국장은 “병문안 간 학생들이 돌아갈 때는 지갑을 열어 5만 원을 주었다. 이창기 선배는 병문안을 오는 모든 동지에게 5만 원을 주었는데 선배가 준 5만 원은 그 어떤 금액보다 표현할 수 없는 크나큰 동지애가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서지연 편집장은 “이창기 동지의 동지애는 후배들뿐 아니라 원로 선생님들, 주위의 모든 동지에게 한없이 펼쳐졌다. 그리고 동지의 어린 자녀들에게도 이어졌다”고 덧붙였으며 김철민 감독은 “이창기 동지는 주위의 사람들의 장점을 높이 세워주고, 어린 후배 동지들에게도 존중해주는 사람이었다”라고 기억했다.

 

이창기 동지 정신 마지막 주제로 결사관철에 대해서 권오혁 공동대표가 먼저 발언했다.

 

권오혁 공동대표는 “이창기 동지는 자주민보를 만들 시기에 강남의 대형 논술학원에서 유명한 강사였다. 통일시대 진보언론의 출연이 절실한 시기에 강사를 정리하고 험한 길에 뛰어들었다. 당시의 민족과 민중의 요구를 가슴에 안고 모든 것을 바쳤다. 또한 2000년대 중반에 이창기 동지는 중국의 항일유적지 취재를 혼자서 개척했다. 스스로 항일의 역사, 민족의 항쟁사를 취재해 선전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중국 취재를 이어갔다. 특히 취재를 다녀와서 내용을 신나고 열정적으로 설명해주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리고 이창기 동지는 자주민보 활동 자립을 위한 재정사업을 다양하게 모색했다. 조경사업, 소화기 사업, 인테리어 사업 등 끊임없이 동지들의 경제 사정을 풀고 안정적 활동 조건을 만들기 위해 재정사업을 모색하고 모색했다. 자력갱생의 정신, 재정여건 마련 활동을 스스로 맡아 나섰다”라고 이창기 동지를 기억했다.

 

이창기 동지가 민족과 조국에 가졌던 순결한 마음, 동지들에 대한 사랑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토론회였다.

 

토론회는 전체 참가자들이 노래를 합창하며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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