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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비전향장기수 김동섭선생 향년 95세로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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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9-01-25 11:34 조회2,1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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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교인 선생이 페이스북에 남녘 비전향장기수 김동석선생이 향년95세롤 지난 1월23일 오전10시에 타계했다는 소식을 알리며 사진들을 올렸다. 이것을 민족통신에 그대로 옮겨 그 소식을 알린다.[민족통신 편집실]
 

김동섭비전향장기수서울서 영면.jpg
남녘 비전향장기수 김동석선생이 향년95세로 영면

김동섭비전향장기수서울서 영면01.jpg


 

통일해방전사 김동섭 선생님 해방된 조국에서 영면하소서.



인민군 출신으로 비전향 장기수이자 2차 송환 희망자인 김동섭 선생이 23일 오전 10시 별세했다. 향년 95세.

1925년 소련 하바로프스크 생. 부친이 함경남도 신고산면에 살다가 항일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소련으로 들어갔기에 하바로프스크에서 태어났다.

고인은 임방규 전 통일광장 대표가 <통일뉴스>에 연재한 ‘빨치산 격전지 답사기’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할아버지가 독립운동 하다가 돌아가시고 아버님, 어머님이 소련으로 가셨답니다. 소련 땅에서 15년을 살았으며 아버님이 특수임무를 맡고 만주로 1930년에 나오셨습니다. 다섯 살 때 아버님 등에 업혀서 국경선을 넘었대요”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고인은 일제 말인 1944년 강제징용을 당해 일본군 비밀공작부대인 722부대 지하군수품 기지에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1945년 해방 후 만주에서 치안유지회에 참가해 토호세력 척결사업을 했다.

1946년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2만8천 리를 행군하며 장춘, 심양을 거쳐 만리장성을 넘어 1948년 북경에 입성해 중국 국민당군을 패퇴시키는데 공을 세웠다.

1950년 4월에 중국 인민해방군 사령부로부터 조선인부대로 전출 통보를 받고 일주일 동안 기차를 타고 이동해 원산 명사십리에 도착했다. 이때 어렸을 때 걸렸던 폐디스토마가 재발해 병가를 지내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평양사령부로 들어가 인민군으로 전쟁에 참가해 낙동강 전투에도 참가했다.

그해 10월 인민군 후퇴시 전북 남원 장안산에 입산해 지역 당일꾼으로 속해 빨치산 활동을 했으며, 이후 덕유산, 회문산, 지리산 그리고 무주구천동까지 진출해 활동을 벌이다 ‘백두산 호랑이’라는 별칭을 받는다.

1952년 지리산에서 연대장 직을 통보받고 10명의 대원과 함께 이동하다 토벌대에 포위당해 10명은 전사하고 홀로 체포됐다.

광주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전쟁포로인데도 일반 형사재판을 받아 무기를 언도받고 20년 2개월 옥고를 치르다 1972년 4월 출소했다.

출소 후 대전갱생보호소에 속해 구두닦이, 고용살이, 고물상 등을 전전하다 결혼을 했으며, 1988년에는 대장암 투병을 하기도 했다.

남쪽에 연고가 없어 홀로 지내다 2000년 비전향 장기수 1차 송환 내용을 모르고 지나쳤다가 이후 광주 통일의 집에서 양희철 선생을 만나고 이후 징역을 함께 산 임방규, 송계채 선생과 재회해 저간의 사정이 알려졌다.

선생님 해방된조국에서 ~ 다시만나뵙기를 바랍니다.

 안녕히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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