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자주시보기자와 유가족에게 바치는 조사,조문,결의문들이 쇄도/6.15미국위원회를 비롯 해외동포 각계인사들 조문올려/고인의 마지막 강의 동영상으로 소개 > 사회,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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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기 자주시보기자와 유가족에게 바치는 조사,조문,결의문들이 쇄도/6.15미국위원회를 비롯 해외동포 각계인사들 조문올려/고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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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8-11-18 11:28 조회21,550회 댓글20건

본문

애국언론인 이창기 기자가 11월18일 이른아침 6시에 운명하자 국내외 동포들의 조사와 조문들이 쇄도하고 있다.  자주시보와 민족통신 게시판에 이창기기자의 조문들과 관련한 애도글들은 모두가 고인의 운명은 남과 북, 해외동포사회의 손실이라고 안타까와하고 있다.  특히 고인이 운명하기 수개월 전 고인이  조국반도 정세를 강의한  동영상을 통하여 이창기 기자의 뜨거운 애국심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자료를 여기에  게재하여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https://youtu.be/sGqTnlQEmMA

 

 

 

 

[부고]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18일 새벽 6시 운명 

 

고인이 마지막 강연을 통해 조선의 전자무기의 위력을 설명하며

 

조국의 자주와 통일번영의 미래를 전망



*동영상-이창기 주필 세상 떠나기전 마지막 강의


https://youtu.be/H5oJKCj3V_E



 

 

[부고]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18일 새벽 6시 운명

 

향년 51세로 떠난 애국언론인에 대한

국내외 동포들의 슬픔의 파도가 일고 있다.

 

이창기추모안내.jpg



 


[결의문]

자주통일의 한 길에서 이창기 동지와 
영원히 함께 투쟁할 것이다 

  

진보통일운동가, 민족언론인 이창기 동지가 우리 곁을 떠났다. 

  

평생을 자주통일의 길을 가며 자신의 열정을 깡그리 불태웠던 이창기 동지이기에, 그리고 마침내 통일의 그 날이 바로 코앞에 다가온 지금이기에 더욱 애통하기만 하다. 

암투병을 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던 이창기 동지는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합의되자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생의 마지막 시기, 이창기 동지는 병문안을 온 사람들에게 줄곧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님께서 서울을 방문하셔서 한 번만 뵙게 되면 내가 살아날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깝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머지않았는데 단 몇 주만이라도 더 버티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창기 동지가 마지막 시기에 남긴 말은 통일의 염원을 담은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분단 역사상 최초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대한민국의 수도를 방문하는 것은 남북 정상이 백두산 천지에서 통일을 결의한 것과 함께 분단 역사를 끝내고 통일 시대로 진입하는 장엄한 선언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창기 동지는 바로 그 순간을 간절히 기다렸던 것이다. 

오로지 한 생을 통일을 위해 바친 사람만이 남길 수 있는 유언이며, 이창기 동지야말로 진정한 통일운동가의 전형이다. 

  

비록 이창기 동지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의 현장에, 꿈에도 그리던 조국통일의 순간에도 이창기 동지는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슬픔을 딛고 이창기 동지의 못 다한 염원인 자주통일로 승화시킬 것이다. 

우리는 자주통일의 한 길에서 이창기 동지와 영원히 함께 투쟁할 것이다. 

  

2018년 11월 18일 
국민주권연대

 


 

 

 

 [추도사] 이창기 기자 영전에 

김병길 자주시보 대표  



  

이 무슨 청천에 날벼락인가. 

1주일 전, 새 약을 쓰니 차도가 있다며, 병상에 누어 웃으며 말하던 사람이, 영면하였다니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그러나,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믿어야 하니, 우리의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진다. 

이창기, 그 심장도 불덩이 같이 뜨겁던 이창기, 정말 그 고동이 멈추었단 말인가. 

아, 하늘도 무심하다. 

그는, 파쇼의 난도가 세상을 피로 잠그던 시기에 태어나 자라면서, 흑이 백이라 하고, 백이 흑이라 하는 허수아비 잡신의 주문을 거부하고, 특유의 슬기와 지혜로 허위에서 진실을 찾았다. 

이 때 이창기는 갈 길을 정하고, 허위를 타파할 칼을 벼리었으니, 그것이 통일애국신문 <자주민보>다. 

캄캄한 밤하늘에 나타난 샛별 <자주민보>는, 파쇼와 분열주의의 실체를 폭로하고, 민족의 한결같은 염원인 통일에 바른 길을 밝혔다. 

그런데, 모진 독사가 어린 두꺼비를 그냥 두지 않았다. 

드디어 투옥, 그리고 폐간의 벼락이 떨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을 이창기가 아니다. 

  

<자주시보>가 그 대를 이었다. 

이번에는 재정이 애를 먹였다. 그러나 이창기는 부닥치는 난관과 애로를 초인적인 의지와 신심으로 극복하면서, 긍지 드높이 용기백배 굴함 없이 압제자와 싸웠다. 

이 과정에, 모진 병마가 침습하였고, 그 억대우 같은 이창기도 이 고비를 넘기지는 못했다. 

그는 치료를 중단하고, 병상에서 일어나, 기자로서 마지막 취재를 바랬다. 

그러나 그것마저 그가 자판에 타자를 하기에는 몸이 너무 쇠약했다. 사력을 다해 최후로 글 하나를 남겼다. 그 기사의 마지막에 

"노신의 말처럼, 도를 깨닫지는 못했지만, 저는 그것을 확신하기에,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으며, 행복한 미소 가득한 얼굴로, 언제든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 

  

아 이창기 

그래서 나에게 웃어주었던가. 

우리의 사랑하는 이창기 

그래서 행복한 미소 머금고 눈을 감았는가. 

오로지 하나 통일, 이것을 위해 50도 안 되는 인생을 불같이 살았던가. 

아, 비통하다. 우리 통일애국언론의 커다란 대들보 하나가 무너졌다. 바위 같이 튼튼하던 우리 자주언론의 큰 기둥 하나가 넘어졌구나. 

그렇게 펄펄 끓던 심장은 멈추고, 그렇게 형형하던 안광은 감기고 말았다. 

  

아, 사랑하는 이창기, 

다정한 목소리 귀에 쟁쟁하고, 병상에서 보여준 미소가 망막에 역력하다. 

이창기는 갈라진 겨레를 이대로 두고 갈 수 없고, 우리는 그대를 결코 보낼 수 없다. 

  

이창기, 그대가 언론인으로서 조국통일운동사에 남긴 커다란 자욱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오래오래 살아있을 것이며, 조국과 민족은 그대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못 다한 일, 남은 우리가 하리니, 모든 짐 다 벗어놓고, 편히 쉬시라. 

  

이창기, 

그 이름 가만히 불러보며, 그대의 이름 앞에 삼가 영광의 꽃다발을 바치노라.



 


 [조사] 

이창기 기자 영전에 


민족통신 노길남  대표  

 

 


민족통신 운영위원들과 편집진 일동은 자주시보의 이창기 기자( 자주민보 대표) 암투병중 지난 1118 새벽6시에 운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우선 남편을 잃고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 여러분의 아픔은 오죽하겠습니까. 이창기 선생을 잃은 아픔과 슬픔은 우리 해내외 동포들에게도 유가족 심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창기 선생을 잃은 것은 남과 북은 물론 우리민족의 손실이며 해내외동포 양심언론의 손실이기도 합니다.

 

이창기 선생의 20 언론활동은  2백년 활동의 업적들이었습니다. 고인의 언론활동은 하루 25시간도 모자랐습니다. 신념, 집념, 끈기, 열정, 그것들은 모두 불타오르는 애국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민족통신은 2014 4 민족언론상을 이창기 기자에 의해 운영되어 자주시보에 시상한바 있었습니다.

 

이창기 선생의 언론철학은 남과 북이 하나였고, 자주사상, 평화사상, 민족대단결 사상으로 응집되어 있었기에 남과북을 포함한 해내외 동포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하여 민족통신 성원들은 언제나 이창기 선생의 글과 자주민보, 자주시보의 글들을 읽을때마다 많은 것을 배우며 감동받아 왔습니다.

 

이창기 선생의 짧은 생의 철학은 투쟁이었습니다저희들이 고인과 사귀어 오는 동안 그는 언제 한번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주, 민주, 통일도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투쟁> 통해서만 쟁취할 있다는 삶의 철학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보여주었습니다고인의 삶의 철학은 투쟁뿐만 아니라  뜨거운 동지적 사랑에 의한  참다운 인간관계였습니다.   

 

 

이창기 동지, 그대는 우리 해내외 민족민주언론인들의 모범이며 표본입니다. 비록 그대의 몸은 땅에 묻혀 우리 곁을 떠나가지만 그대의 순수하고 정열적인 애국심은 우리 해내외동포들과 영원히 함께 것입니다.

 

민족통신 성원들은 모두 머리숙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8 1119

민족통신을 대표하여

대표 노길남 삼가 올림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님의

영전에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조국의 자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언론인의 길을 많은 어려움과 탄압 가운데서도 꿋꿋이 걸어 왔던 이창기 기자님의 영전에 우리 6.15 미국위원회 모든 성원들은 마음을 여미며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이창기 기자님께서 자주언론인의 기상처럼 병마도 이겨내고 곧 다가올 자주통일그 역사의 현장에서 올곧고 살아있는 필봉을 휘두르리라 믿었는데 너무도 애석합니다.  

 

하지만 이창기 기자님께서 추구하신 자주통일의 염원이 우리들 속에 그대로 살아 있기에 그 염원은 계속 실천되고 반드시 실현 될 것입니다.  이창기 기자님이 향하였던 그 길 위에 우리 모두가 늘 함께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창기 기자님의 영전에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2018년 11월 18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대표위원장 신필영

(6.15공동선언실천 뉴욕지역위원회 대표위원장 김대창

 6.15공동선언실천 중부지역위원회 대표위원장 김려식

 6.15공동선언실천 워싱턴지역위원회 대표위원장 양현승

 6.15공동선언실천 서부지역위원회 대표위원장 박영준

 6.15공동선언실천 시애틀지역위원회 대표위원장 홍찬)




 


<조시>

자주시보 이창기 주필 영전에 



통일의 문 열리는 끝자락에서 
홀연히 떠나신 님이여 

클릭 한번하면 환히 드러나는 통일의꿈을 
보여주는 “자주시보”임니다. 

한 평생 민족통일의 의지의 꿈으로 사는 길을 
우리 모두 함께가야하는 생사의 가사밭 길을 
산 넘고 물건너 시련의 길을 
이창기님은 
홀로 묵묵히 
끝까지 가시였습니다.  

통일의 꿈으로 아니 통일의 의지로 
가슴파고드는 
눈물나게 하는 
이창기 기자의  남기고 간 씨앗 
남쪽 하늘만 아름다운것 아니라 
북쪽 하늘에서도 아름답습니다. 

민족의 횃불되여 어둠을 사르고 
자주의 길 
오직 통일의 길 달리고 달리셨는데 
이창기님은 
민족의 영혼속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조국 강산에 가득찬 님의 오뚝이 정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아편이라고 
오직 
이 나라 조국통일을 위한 행동을 
그 피 맺친 당부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이창기님은 
투병중에도 행동하는 양심으로 
민족통일을 부르짖는 액국심의 
회오리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이창기님은 
우리에게 조국통일의 완성을 
남겨 놓고 떠나가셨읍니다 
복된 평화통일을 남겨놓고 
떠나가셨습니다.    

              고이창기님을 추모하여
 
                        뉴욕에서 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유태영드림 
                                         (11/18/18)



  <조시>

위대한 혁명의  촛불 
(이창기 혁명시인을 심장에 묻으며)


*리준식(민족통신 논설위원, 독일거주 민족시인)


그대 지긋지긋, 시도때도 없이
꽁꽁 얼어붙는 매국의 땅에서
몸서리치도록 봄이 오지않는
식민의 땅에서 
심장이 병상에서 멈추는 순간까지
이 땅의 봄을 노래한 혁명시인
갈데 없는 애국의 아들이었어라

거짓말 같은, 믿고 싶지 않은
애통할 그대의 비보가
너무도 짧은 그대의 생이
가슴을 후벼파는 순간의 기억들이
영원으로 파랗게 피워 올리는 불꼿...

마지막 겨울 우등불로
사랑한 사람들 가슴에 타오르며
억장 무너지는
먹먹한 심장에 걸어오는 혁명시인 

그대가 온 맘으로 오르던 혁명의 성산,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노래한 조종의 산
그대가 목숨처럼 사랑한 동지들이,
산자들이...
그대 못다한 노래, 이어 부르리니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운명
의지이며 신념인 사랑의 품에
고단하고 긴장했던 생 다 맡기고

국가보안법 없는 하늘나라에서
답답했던 속 후련하게
노래와 춤으로 서정서사시로
찬양, 칭송 원없이 하다가  

자주의 불꽃,
위대한 혁명의 촛불
승리한 통일삼천리에
덩실덩실 춤추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오시라


                                                                                  2018. 11.18.

 





 

지난 7월 간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던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가 너무나 안타깝게 11월 18일 새벽 6시경 운명했습니다.

이창기 기자2.jpg

생전의 이창기기자



최근 몸이 갑작스레 안좋았지만 반드시 일어서서 독자들에게 돌아와서 '통일의 기사'를 쓰겠다고 다짐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유족들과 협의 후에 장례절차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창기 기자의 명복을 빕니다.

 

자주시보와 이창기 동지를 사랑해주셨던 독자분들도 이창기 동지의 마지막 길에 함께 해주십시오

 

 [부고]


이창기 기자 본인상

빈소: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1호실 (지하 1층)


추모의 밤: 19일 저녁 7시 30분 (1층 영결식장)


발인:11월 20일 오전 9시


노제: 11월 20일 오전 10시 광화문 광장(시간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장지:마석모란공원


문의: 010 9432 1051(박한균 기자)/ 010 7577 3375(김영란 기자)


 

-자주시보- 

 


 

 


끝내 우리 곁을 떠난 이창기주필님,


삼가 명복을 빌면서 그대의  뜨거운 애국정신은


영원히 우리의 심장속에 함께 것입니다




<민족통신> 지난 717일부터 85일까지 <자주시보 이창기주필을 돕는 운동> 펼치면서   동안 재미동포를 비롯 카나다독일스웨덴 동포 4명을 포함하여  53명이 성금을 모아  모두 126백달러를 가족에게 전달하며 쾌유를 빌었으나  이창기 애국언론인은 2018 1118 서울시간으로 새벽6시에 끝내 운명하고 말았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고인의 쾌유를 간절히 기원하며 성금하여 주신 민족통신 해외동포 독자들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면서 동시에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창기 기자의 뜨거운 애국열정과  그의 끊임없는 민족자주정신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것입니다.  그리고 고인의 생애업적은 오늘의 분단시대 뿐만 아니라 통일조국이 실현되는 시대에도 영원한 등대가 되어 조국반도를 밝게 비춰줄 것입니다.   

 

고인의  통일조국에 대한 염원이 하루속히 이뤄질 것을 간절히 바라는 한편 고인의 쾌유를 위해 그리고  그동안  고인의 출옥을 위하여 <자주시보> 헌금해 주신 여러분에게도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2018  717일부터 85일 이창기기자 돕기 민족통신 모금운동)

 

6.15미국위원회(신필영 대표위원장 비롯5개지역위원장들(김대창,양현승,김려식, 박영준, 홍찬),1,000 ▲구기본 1,000, ▲자주논단(예정웅박사 비롯 6) 900, ▲이태선 500, ▲해롤드 500, ▲김현환500, ▲지창보 500, ▲이인숙 500, ▲양은식 500, ▲손세영 500, ▲한호석 500, ▲노길남 500, ▲모욱빈300,▲현준기300, ▲김수해300, ▲리준무300▲윤길상 300, ▲송학삼 300, ▲정기성 200,▲림원섭 200, ▲정경배 200,▲리금순 200, ▲유태영 200, ▲박기식 200, ▲정기열 200, ▲오인동 200, ▲백승배 150, ▲장일중 100, ▲정신화 100, ▲박승우 100, ▲김수복100, ▲김백호 100, ▲리준식 100, ▲변정옥 100, ▲김중산 100, ▲강은홍 100, ▲하용진 100, ▲이용식 100, ▲황규식 50, ▲이선명 50,▲최기봉 50, ▲이미일 50, 그리고 ▲이흥노 선생의 금일봉 성금이 답지하여 지금까지 53명과 미주민가협양심수후원회가 300 성금해  모금 총액은 126백달러로 집계되었습니다.

 

………………………………………………………………………………………..


2012 326


통일언론 자주민보 이창기 대표 석방 재미동포대책위원회(손세영 위원장)

 

통일언론 자주민보 이창기 대표 석방 재미동포대책위원회 위원들

선우학원, 유태영, 함성국, 양은식, 현준기, 박문재, 지창보, 리준무,최기봉,송기뢰, 김대창, 송학삼, 장광선, 강은홍, 이미일, 이금순, 강상배,오영칠, 이응곤, 송성자, 임춘성, 조명지, 김현환, 백승배, 전순태, 예정웅,왕용운, 육재규, 홍순호, 이화영, 정신화, 이용식, 양운석, 하용진, 이정호,이준수, 조경미, 이태선, 이만영, 김상일, 남정택, 노길남, 최경자, 정무, 박영준, 박승우, 김봉호,정기성, 윤길상, 안용구,김정현,박기식,전화심,유경숙,김수복,장정옥,전석우,김성일,송숙주,박충선,유옥자,이주연,이현정,정근해,JTAKAGI,홍석중,박무재,황규식,모욱빈,한수현,우경아,김진양,이재원,현계해,김여식,최성용,이활웅,김찬국,김혜란,이은주,김우창.허석헌,서평원,홍경택,이영준,진영일,이서영,이정재,이현철,박선아,고안나,옥은혜,유한국,이동익,노영 (무순

(
:96 2012 .326 현재)


 



<진보통일운동가 민족언론인, 이창기선생 약력>


- 1968년 4월 4일 전남 목포 출생

- 1987년 광주인성고등학교 졸업

- 1988년 고려대학교 산림자원학과 입학

         고려대학교 농악대 활동

- 1993년 시집 ‘바보과대표’ 출간 (필명-홍치산)

- 1997년 고려대학교 졸업

- 1999년 8월 15일 ‘자주민보 창간준비1호’ 발행

- 2000년 5월 월간 ‘자주민보’ 창간호 발행, ‘자주민보’ 대표 및 발행인

- 2001년 10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3개월간 옥고)

- 2002년 9월 ‘월간 우리’ 재창간, ‘월간 우리’ 발행인

- 2005년 ‘인터넷 자주민보’로 전환

- 2012년 국가보안법으로 두 번째 옥고(1년 6개월간 옥고)

- 2015년 국가보안법 등으로 ‘자주민보’ 폐간 조치 

- 2015년 3월 자주시보 창간 및 대표 기자 활동

- 2018년 7월 간암 말기 판정

- 2018년 11월 18일 오전 6시경 영면 


* 저서- 시집 바보과대표(1993년), 시집 10분사랑(1996년)


* 등단- 문학계간지 [노둣돌]


* 수상- 대학시절 심산문학상, 효원문학상, 임수경 통일문학상 등

        제4회 민족언론상 (2014년, 미주 민족통신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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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손새영님의 댓글

손새영 작성일

조국통일운동에 큰 기둥 이창기 동지의 운명에
삼가 조의를 표하며 명복을 빕니다.
로스엔젤레스에서
손세영 삼가올림

재미동포님의 댓글

재미동포 작성일

이창기 동지 영전에 깊고 깊은 조의를 표하며
동지의 조국 통일을 향한 견결한 뜻은 우리에게 계속될 것입니다

유태영님의 댓글

유태영 작성일

자주시보 이창기 가자 영전에

통일의 문 열리는 끝자락에서
홀연히 떠나신 님이여

클릭 한번하면 환히 드러나는 통일의꿈을
보여주는 “자주시보”임니다.

한 평생 민족통일의 의지의 꿈으로 사는 길을
우리 모두 함께가야하는 생사의 가사밭 길을
산 넘고 물건너 시련의 길을
이창기님은
홀로 묵묵히
끝까지 가시였습니다. 

통일의 꿈으로 아니 통일의 의지로
가슴파고드는
눈물나게 하는
이창기 기자의  남기고 간 씨앗
남쪽 하늘만 아름다운것 아니라
북쪽 하늘에서도 아름답습니다.

민족의 횃불되여 어둠을 사르고
자주의 길
오직 통일의 길 달리고 달리셨는데
이창기님은
민족의 영혼속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조국 강산에 가득찬 님의 오뚝이 정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아편이라고
오직
이 나라 조국통일을 위한 행동을
그 피 맺친 당부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이창기님은
투병중에도 행동하는 양심으로
민족통일을 부르짖는 액국심의
회오리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이창기님은
우리에게 조국통일의 완성을
남겨 놓고 떠나가셨읍니다
복된 평화통일을 남겨놓고
떠나가셨습니다.   

              고이창기님을 추모하여
                        뉴욕에서 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유태영드림
                          (11/18/18)

양은식님의 댓글

양은식 작성일

이창기 선생
어찌된 일이요?
병환이 호전되어
방북취재신청도 한다는 소리듣고
정말로 기뻐하였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벼락같은 소리입니까?
무어라 할말이 없습니다.
산자들이 그대의 소원, 그대의 염원을
위해 땀흘리는 길만이 ...

나도 몸이 신통하지 않으나
마지막 순간까지
그대의 염원을 위해서...
민족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을 위해서
노력하리라!

미국 컬버시티
양은식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6.15미국위원회님의 댓글

6.15미국위원회 작성일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님의 영전에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조국의 자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언론인의 길을 많은 어려움과 탄압 가운데서도 꿋꿋이 걸어 왔던 이창기 기자님의 영전에 우리 6.15 미국위원회 모든 성원들은 마음을 여미며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이창기 기자님께서 자주언론인의 기상처럼 병마도 이겨내고 곧 다가올 자주통일, 그 역사의 현장에서 올곧고 살아있는 필봉을 휘두르리라 믿었는데 너무도 애석합니다. 

 

하지만 이창기 기자님께서 추구하신 자주통일의 염원이 우리들 속에 그대로 살아 있기에 그 염원은 계속 실천되고 반드시 실현 될 것입니다.  이창기 기자님이 향하였던 그 길 위에 우리 모두가 늘 함께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창기 기자님의 영전에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2018년 11월 18일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대표위원장 신필영

(6.15공동선언실천 뉴욕지역위원회 대표위원장 김대창

 6.15공동선언실천 중부지역위원회 대표위원장 김려식

 6.15공동선언실천 워싱턴지역위원회 대표위원장 양현승

 6.15공동선언실천 서부지역위원회 대표위원장 박영준

 6.15공동선언실천 시애틀지역위원회 대표위원장 홍찬)

현준기님의 댓글

현준기 작성일

이창기 선생이 운명했다는 민족통신 급보를 접하고
51세의 젊은 나이에 떠난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투쟁해 온
애국언론인, 이창기 선생이었는데...

슬픔과 함께 분노가 치밉니다.

분단역사가 죽음으로 몰았고
국가보안법이 병으로 몰아갔고
사대매국세력이 당신을 일찌기 데려갔습니다.

너무나 아깝습니다.

민족통신 행사때, 그리고 노길남박사 7순잔치때
로스은젤레스에 다녀갈때마다
이창기기자의 애국열을 느껴왔습니다.

온몸이 애국심으로 가득찬 기자
이창기 선생의 그 뜨거운 애국심은
우리 해내외 동포들과 영원히 함께 할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유가족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8년  11월17일
로스엔젤레스에서
91살 현준기 삼가 올립니다.

리준식님의 댓글

리준식 작성일

조시

위대한 혁명의  촛불
(이창기 혁명시인을 심장에 묻으며)


*리준식(민족통신 논설위원, 독일거주 민족시인)


그대 지긋지긋, 시도때도 없이
꽁꽁 얼어붙는 매국의 땅에서
몸서리치도록 봄이 오지않는
식민의 땅에서
심장이 병상에서 멈추는 순간까지
이 땅의 봄을 노래한 혁명시인
갈데 없는 애국의 아들이었어라

거짓말 같은, 믿고 싶지 않은
애통할 그대의 비보가
너무도 짧은 그대의 생이
가슴을 후벼파는 순간의 기억들이
영원으로 파랗게 피워 올리는 불꼿...

마지막 겨울 우등불로
사랑한 사람들 가슴에 타오르며
억장 무너지는
먹먹한 심장에 걸어오는 혁명시인

그대가 온 맘으로 오르던 혁명의 성산,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노래한 조종의 산
그대가 목숨처럼 사랑한 동지들이,
산자들이...
그대 못다한 노래, 이어 부르리니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운명
의지이며 신념인 사랑의 품에
고단하고 긴장했던 생 다 맡기고

국가보안법 없는 하늘나라에서
답답했던 속 후련하게
노래와 춤으로 서정서사시로
찬양, 칭송 원없이 하다가 

자주의 불꽃,
위대한 혁명의 촛불
승리한 통일삼천리에
덩실덩실 춤추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오시라


                                                                                  2018. 11.18.

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조사

민족통신 운영위원들과 편집진 일동은 자주시보의 이창기 기자(전 자주민보 대표)가 암투병중 지난 11월18일 새벽6시에 운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우선 남편을 잃고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 여러분의 아픔은 오죽하겠습니까. 이창기 선생을 잃은 그 아픔과 슬픔은 우리 해내외 동포들에게도 유가족 심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창기 선생을 잃은 것은 남과 북은 물론 우리민족의 큰 손실이며 해내외동포 양심언론의 손실이기도 합니다.



 

이창기 선생의 20년 언론활동은  2백년 활동의 업적들이었습니다. 고인의 언론활동은 하루 25시간도 모자랐습니다. 그 신념, 그 집념, 그 끈기, 그 열정, 그것들은 모두 불타오르는 애국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민족통신은 2014년 제4회 민족언론상을 이창기 기자에 의해 운영되어 온 자주시보에 시상한바 있었습니다.



 

이창기 선생의 언론철학은 남과 북이 하나였고, 자주사상, 평화사상, 민족대단결 사상으로 응집되어 있었기에 남과북을 포함한 해내외 동포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하여 민족통신 성원들은 언제나 이창기 선생의 글과 자주민보, 자주시보의 글들을 읽을때마다 많은 것을 배우며 감동받아 왔습니다.



 

이창기 선생의 짧은 생의 철학은 또 투쟁이었습니다.  저희들이 고인과 사귀어 오는 동안 그는 언제 한번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주, 민주, 통일도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는 삶의 철학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고인의 삶의 철학은 투쟁뿐만 아니라  뜨거운 동지적 사랑에 의한  참다운 인간관계였습니다. 



 

 


이창기 동지, 그대는 우리 해내외 민족민주언론인들의 모범이며 표본입니다. 비록 그대의 몸은 땅에 묻혀 우리 곁을 떠나가지만 그대의 순수하고 정열적인 애국심은 우리 해내외동포들과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민족통신 성원들은 모두 머리숙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8년 11월19일


 
민족통신을 대표하여


 
대표 노길남 삼가 올림

자주시보님의 댓글

자주시보 작성일

재미동포 김수복선생님이 보낸 조문입니다.
Soobok Kim 18/11/18 [12:36]

충격입니다. 몇일전에 병마에 개념치않고 통일운동에 나서겠다는 글을 보고서 건강이 호전되었다고 짐작했는데 이제 갑자기 기사 보고 말문이 막힙니다. 전화도 못했고 인편에 받은 선물 인사도 못했습니다. 몸이 불편한데 전화를 삼가자고 한 내가 원망스럽습니다. 걸직한 음성 그립습니다. 뉴욕에 왔을 때에 타임스퀘어에서 시위 도중에 한판 벌린 춤사위가 놀랍도록 전문가수준이어서 그 내력을 물어 알게되었었습니다. 대학생시절 펴낸 얇은 시집을 보고 당신을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 들렸을 때 찾아간 근교 감옥에서 만난 것이 첫만남이었습니다. 당신의 행동하는 그 불굴의 통일염원이 내 가슴에도 넘어와서 살아있습니다. 이창기동지, 자나깨나 그렇게 원하던 통일의 그 날이 한 걸음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먼데서 동지 사진 보며 머리 숙입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자주시보님의 댓글

자주시보 작성일

자주시보에 보낸 미국동포 조문입니다.

김상일 18/11/18 [13:27]
청기야 몇 해 감옥 안에 있을 때 면회가 만난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구나. 조금도 불행해 보이지 않던 너의 모습, 너는 진정한 혁명아였다. 평창동 북악정에서 갈비탕 먹으면서 민생단 사건으로 김주석이 다홍훼 회의에 불려 갔을 때에 중공당이 김주석을 체포하려 한 음모를 미리 알고 회의장을 같이 간 부대원들로 회의장을 포위해 놓고 김주석이 회의장에 들어 간 것이 진정한 선군정치의 시작이라고 했을 때에 너의 생각에 감탄을 했다. 나는 너의 말을 그대로 믿고 글을 썼다 걸리고 했다. 그러나 너의 말이 늘 나에게 귀감이 되었다. 언제나 남이 생각하지 못 한 발상을 해 오던 너를 잃었으니 횃불을 잃은 듯, 이 어둠을 어찌 헤치고 나갈 수 있을런지. 부디 하늘나라에서도 더 밝은 광명으로 비추이고 자주시보에 글도 자주 써 주게나. 참 안타깝고 야속하구나. 너의 묘 앞에 어떻게 설지 두렵기만 하구나. 부디 고이 잠들게.

자주시보님의 댓글

자주시보 작성일

자주시보에 보낸 독일 장일중 선생님의 조문입니다.

암혹의 지배속 에서 한 자루의 붓을 잡고 민족의 자주와 평화 통일을 위해 한결같은 삶을 바쳐온 이창기기자의 별세소식은 고인과 뜻을 같이 하였던 해외동포들에게 깊은 슬픔과 애석함을 줍니다. 이제 이창기 기자는 떠나갔으나 그가 남긴 숭고한 업적은 통일된 조국역사에 길이 남아 후세에 전 할 것입니다. 이창기 기지님의 자주시보와 가족친지들에게 깊은 애도인사 드립니다. 고 이창기 선생님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2018년 11월 18일 새벽 베를린에서
 재도이췰란트동포협력회 회장
장 일 중 올림

김병길님의 댓글

김병길 작성일

[추도사] 이창기 기자 영전에

김병길 자주시보 대표 





 

이 무슨 청천에 날벼락인가.

1주일 전, 새 약을 쓰니 차도가 있다며, 병상에 누어 웃으며 말하던 사람이, 영면하였다니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그러나,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믿어야 하니, 우리의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진다.

이창기, 그 심장도 불덩이 같이 뜨겁던 이창기, 정말 그 고동이 멈추었단 말인가.

아, 하늘도 무심하다.

그는, 파쇼의 난도가 세상을 피로 잠그던 시기에 태어나 자라면서, 흑이 백이라 하고, 백이 흑이라 하는 허수아비 잡신의 주문을 거부하고, 특유의 슬기와 지혜로 허위에서 진실을 찾았다.

이 때 이창기는 갈 길을 정하고, 허위를 타파할 칼을 벼리었으니, 그것이 통일애국신문 <자주민보>다.

캄캄한 밤하늘에 나타난 샛별 <자주민보>는, 파쇼와 분열주의의 실체를 폭로하고, 민족의 한결같은 염원인 통일에 바른 길을 밝혔다.

그런데, 모진 독사가 어린 두꺼비를 그냥 두지 않았다.

드디어 투옥, 그리고 폐간의 벼락이 떨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을 이창기가 아니다.

 

<자주시보>가 그 대를 이었다.

이번에는 재정이 애를 먹였다. 그러나 이창기는 부닥치는 난관과 애로를 초인적인 의지와 신심으로 극복하면서, 긍지 드높이 용기백배 굴함 없이 압제자와 싸웠다.

이 과정에, 모진 병마가 침습하였고, 그 억대우 같은 이창기도 이 고비를 넘기지는 못했다.

그는 치료를 중단하고, 병상에서 일어나, 기자로서 마지막 취재를 바랬다.

그러나 그것마저 그가 자판에 타자를 하기에는 몸이 너무 쇠약했다. 사력을 다해 최후로 글 하나를 남겼다. 그 기사의 마지막에

"노신의 말처럼, 도를 깨닫지는 못했지만, 저는 그것을 확신하기에,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으며, 행복한 미소 가득한 얼굴로, 언제든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

 

아 이창기

그래서 나에게 웃어주었던가.

우리의 사랑하는 이창기

그래서 행복한 미소 머금고 눈을 감았는가.

오로지 하나 통일, 이것을 위해 50도 안 되는 인생을 불같이 살았던가.

아, 비통하다. 우리 통일애국언론의 커다란 대들보 하나가 무너졌다. 바위 같이 튼튼하던 우리 자주언론의 큰 기둥 하나가 넘어졌구나.

그렇게 펄펄 끓던 심장은 멈추고, 그렇게 형형하던 안광은 감기고 말았다.

 

아, 사랑하는 이창기,

다정한 목소리 귀에 쟁쟁하고, 병상에서 보여준 미소가 망막에 역력하다.

이창기는 갈라진 겨레를 이대로 두고 갈 수 없고, 우리는 그대를 결코 보낼 수 없다.

 

이창기, 그대가 언론인으로서 조국통일운동사에 남긴 커다란 자욱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오래오래 살아있을 것이며, 조국과 민족은 그대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못 다한 일, 남은 우리가 하리니, 모든 짐 다 벗어놓고, 편히 쉬시라.

 

이창기,

그 이름 가만히 불러보며, 그대의 이름 앞에 삼가 영광의 꽃다발을 바치노라.

자주시보님의 댓글

자주시보 작성일

자주시보에 입수된 재미동포 조문입니다.

[추모] 이창기 기자, 샛별이 되어 통일광장에 빛을 뿌리네
이흥노 재미동포 


통일운동의 향도였던 이창기 기자가 통일의 문턱까지 가서 그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이창기 기자는 통일을 앞당기려는 일념으로 자신의 몸과 맘을 통일제단에 바쳤다.

 

그는 결코 영원히 가버린 게 아니다. 그가 남긴 불굴의 정신은 반짝이는 샛별이 되어 통일광장에 빛을 찬란하게 뿌리고 있다.

 

악랄했던 적폐세력이 들씌운 온갖 모진 시련에도 그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 까지 통일 성전의 최전선에서 자주의 필봉, 통일의 필봉을 휘둘렀다. 병마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조국 북녘 땅을 맘껏 취재하고자 당국에 방북신청을 했었다. 진작 방북 허가가 떨어졌다면 잠시라도 그가 얼마나 기뻐했을까를 상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진다.

 

이제는 누구의 허락을 받지 않고 조국 삼천리강토를 맘껏 취재활동 하면서 <자주시보>에 기사를 송고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주의 기수, 통일의 화신, 이창기 기자는 우리 산자들에게 자주의 깃발, 통일의 깃발을 더 높이, 더 많이, 더 자주 휘날려서 통일을 앞당기라는 유언을 남기고 갔다. 그는 멀지 않은 통일의 그날, 산자와 죽은 자 우리 모두 멋지게 어울려 두둥실 춤을 추자는 굳은 약속을 하고 생을 마감한 게 분명하다

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고 이창기 자주시보 기자의 운명과 함께 한국의 <주권연대>는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발표했습니다.

[결의문]자주통일의 한 길에서 이창기 동지와 영원히 함께 투쟁할 것이다

 

진보통일운동가, 민족언론인 이창기 동지가 우리 곁을 떠났다.

 

평생을 자주통일의 길을 가며 자신의 열정을 깡그리 불태웠던 이창기 동지이기에, 그리고 마침내 통일의 그 날이 바로 코앞에 다가온 지금이기에 더욱 애통하기만 하다.

암투병을 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던 이창기 동지는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합의되자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생의 마지막 시기, 이창기 동지는 병문안을 온 사람들에게 줄곧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님께서 서울을 방문하셔서 한 번만 뵙게 되면 내가 살아날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깝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머지않았는데 단 몇 주만이라도 더 버티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창기 동지가 마지막 시기에 남긴 말은 통일의 염원을 담은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분단 역사상 최초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대한민국의 수도를 방문하는 것은 남북 정상이 백두산 천지에서 통일을 결의한 것과 함께 분단 역사를 끝내고 통일 시대로 진입하는 장엄한 선언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창기 동지는 바로 그 순간을 간절히 기다렸던 것이다.

오로지 한 생을 통일을 위해 바친 사람만이 남길 수 있는 유언이며, 이창기 동지야말로 진정한 통일운동가의 전형이다.

 

비록 이창기 동지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의 현장에, 꿈에도 그리던 조국통일의 순간에도 이창기 동지는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슬픔을 딛고 이창기 동지의 못 다한 염원인 자주통일로 승화시킬 것이다.

우리는 자주통일의 한 길에서 이창기 동지와 영원히 함께 투쟁할 것이다.

 

2018년 11월 18일
국민주권연대

다물흙,림원섭님의 댓글

다물흙,림원섭 작성일

참으로 애석하구나!
참 통일 꾼

참 기자 이창기님!

참 애국자 이창기님!

큰 별을 잃었습니다.

불의가 없는 곳에서 참 글을 맘것 쓰시리라 믿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4351/2018.11.18일
스웨덴에서

통일학연구소님의 댓글

통일학연구소 작성일

재미동포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님이 자주시보에 추모글을 보내주셨습니다.


백두산 아침노을 그리워하던 검은 눈동자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2003년 어느 날, 뉴욕 플러싱에 있는 통일학연구소의 문을 열고 웬 낯선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펴낸 자그마한 시집 한 권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세월이 퍽 흐른 지금 첫 만남의 기억은 희미한 자취로 남아있건만, 내가 “태양이 떠오르면 촛불을 꺼야 합니다”고 말하였을 때 별빛처럼 반짝이던 그의 검은 눈동자를 잊지 못합니다.

 

그는 시인이었습니다. 백두산 아침노을을 그리워하는 시인이었습니다. 이 나라 산천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백두산 아침노을을 가슴 한 가득 안고 그는 통일시를 썼습니다. 거리에 고요함이 깃든 신새벽에도 문득 깨어나 통일시를 썼고, 쇠창살 서릿발 아래서도 저 푸른 하늘 우러러 통일시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통일시를 쓰고 또 쓰던 그의 손길이 갑자기 멎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나겠다고 합니다. 통일시를 아직 다 쓰지 못했는데, 어찌 떠날 수 있습니까. 그를 떠나보내지 않으렵니다. 그가 쓰는 통일시에는 석별의 언어가 없습니다. 통일시인의 심장에는 희망의 언어만 있습니다.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나겠다고 하지만, 그를 떠나보내지 않으렵니다. 백두산 아침노을 그리워하던 검은 눈동자의 시인을 잊지 않으렵니다. 영원히 잊지 않으렵니다.

 

2018년 11월 18일

 

통일시인 고 이창기 동지의 영전에 삼가 이 글을 바칩니다

카나다님의 댓글

카나다 작성일

이창기 기자님의 명복을 빕니다.

 

할 일이 많은때에 너무 일찍 떠나시니 참 안타깝습니다.

 

선생님께서 뿌려놓은 씨앗이 싹트고 자라서 열매맺는 계절이 속히 오기를

기원합니다.

 

카나다 토론토에서/ 정 학 필

정기성님의 댓글

정기성 작성일

2001년 뉴욕에서 열렸던 지난 전쟁시기 미군양민학살만행에 대한 전범재판 행사가 있었을 당시 자주민보 취재기자로 뉴욕을 찾은 이창기 기자와 김봉호 선생댁에서 머물며 며칠을 밤낮으로 함께 뒹굴던 생각이 나는군요. 그래서 그 때부터 형 동생하며 지내던 창기였지요.  언젠가 한양대에서 남북공동행사가 끝나고 밤이 늦도록 학교내 구내포장마차에서 여럿이 어울려 술들을 같이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의 뜨거운 열정이랄까요.. 그 무슨 말로도 담아 낼 수 없는 그에게서 느껴지던 통일운동에 대한 그 열정과 헌신은 나에게 삶의 가치관을 일깨워 주던 참 형 같은 동생이었는데.. 감옥에서 나온 후론 오히려 건강이 좋아졌다 들어 아 이제 됬구나 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고 보고 싶어 했던 그 땅 그 하늘을 마음껏 밟고 보고 느낄 수 있는 그 통일의 날이 이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데..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혁명동지 이창기의 그 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리준식 선생님의 말씀처럼 위대한 혁명시인이었던 이창기 동지가 "국가보안법 없는 하늘나라에서 답답했던 속 후련하게 노래와 춤으로 서정서사시로 찬양, 칭송 원없이 하다가 승리한 통일삼천리에 덩실덩실 춤추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오시길" 빌어 봅니다.

황규식님의 댓글

황규식 작성일

이창기 기자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조국을 에워싼 온갖 부조리를 그토록 구체적으로 또 그처럼 간명하게 파혜쳐 낸 참 애국자가 어디에 있겠으며 한국의 오랜동안 누적된 적폐를 자신의 몸뚱아리와 정신력으로 이겨내고자  스스로 고난의 행군을 실천하신 분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주 옛날 60년대 그 혹독했던 박정희 시절 함석헌은 신문이 오늘의 예수라고 했습니다.

50여년전의 이야기를 제가 어찌 정확하게 기억하겠읍니까 그러나 그 내용은 아직 제 머릿속에 분명히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현대역사에서 시대가 안겨준 고난을 안고 살다가신 분이 어찌 그 한 분 뿐이겠읍니까만 이창기 기자는 적어도 최근에 있어서는 그중 가장 위대한 분들 중에 속할 것입니다. 난 이창기를 오늘의 한국의 예수라고 주저하지 않고 부르겠읍니다. 이창기기자가 가셨다는 비보 가슴 찌져지는 듯한 소식입니다.  황규식

swaqny님의 댓글

swaqny 작성일

شكر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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