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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조용한 애국자,뉴욕의 김수곤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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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8-01-21 12:31 조회7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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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노길남편집인은 뉴욕에서 조용한 애국자 한분도 만났다. 1967년 미국에 이민온 김수곤선생(84)이다그는 뉴욕지역에서는 조용한 애국자로 알려져 왔다그는 50년전 정신과의사로 이역 당 미국에 와서 살아오면서 21녀의 아버지로서가장으로서 그리고 이민사회 자녀들의 민족교육을 위해재미동포들의 한국자주화운동과 조국의 통일을 지원하는 운동 등 과외활동등으로 바쁘게 생활해 온 인물이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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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조용한 애국자,뉴욕의 김수곤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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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영한 애국자, 김수곤 박사(의사)


 

[뉴욕=민족통신 노길남편집인]1967년 미국에 이민온 김수곤박사(84)는 뉴욕지역에서는 조용한 애국자로 알려져 왔다.

 

그는 50년전 정신과의사로 이역 땅 미국에 와서 살아오면서 21녀의 아버지로서가장으로서 그리고 이민사회 자녀들의 민족교육 동포들의 자기정체성 확립재미동포들의 한국자주화운동과 조국의 통일을 지원하는 운동 등 과외활동 등으로 바쁘게 생활해 왔다.

 

그는 학생시절이나 군대생활 심지어 이민 초기까지 극우까지는 몰라도 의식없는 반공주의자 수준의 지식인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그러나 선친의 감화로 일제식민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고사회부조리에 대해서는 나름의 저항심도 있었다고 말하면서 1970연대 중반에 아는 사람들 몇이 모여 <주말학교설립 운영에 참여하면서 자녀들의 우리말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데 신경을 썼다고 뒤돌아 본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 까지 코리안인지, 미국인인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인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자기멸시 내지 자학적 민족관에 허덕이는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하였기 때문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힘을 모아 공립학교를 빌려서 주말학교 운영에 동참했던 것이기도 했다.

 

그러던 과정에서 그는 1980 5월광주민중항쟁을 통해 역사의 눈을 뜰수 있었다고 고백한다그 무렵 어느날 주말"한국학교" 동료가 뉴욕 시내에 시위하러 나가자고 해서 친분관계도 있고하여 뉴욕중앙도서관 층층대 앞에서 진행되는 시위현장에 나가 구호를 외치며 소리도 치고 데모도 했다. 또한 이 무렵에 뜻을 같이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주동이 되어 우리문화와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다그때 청년조직을 이끌던 김난원 강원모씨 부부와 연계가 되었고이어서 미국으로 망명온 윤한봉씨와도 연결되고청년학교, 한청한겨레연합 등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청년학교 운영을 지원했고이 단체가 생겨 20 년 뒤에 <민권센터>로 이름이 바뀌는 과정을 겪으며 이사장직을 맡아 청년들을 돕기도 했다. 지금은 늙고 병들어 은퇴와 동시에 사회활동에서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지내고 있다그리고 그는 한청련, 한겨레 시기의 청연운동과 오늘에 와서 민권센터가 벌이는 이민자 소수민족 권익 위주의 시민운동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요즘에 들어와 조국의 평화와 통일에 중점을 둔 청년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는 <노둣돌>로 생각된다고 평가한다.

 

김수곤그는 어떤 분인가?

 

그는 경상북도 영일군 청하면 (현 포항시)에서 1933년에 태어나 대구에서 소위TK 본산인경북중고등학교를 나온 뒤 서울의과대학에 진학, 의사가 되어 8년동안 해군 군의관 생활을 했다제대하고 미국에 취업이민으로 왔지만 미국병원들이 외국인 의사들을 받아 들이는 것은 의료기업의 약소국 brain drain과 저임금 고용 편법에 불과했다고 지적한다인턴을 하고 미국에 왔는데 또다시 인턴을 하라고 하면서 살인적인 32시간 연속근무,  시간당 그 당시 68센트를 주면서 노동착취를 하는 사회가 바로 미국이구나 하고 깨닫게 된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군의관 시절인 1960년에 미해군 병원에 정신의학 교육받으러 와서 일년 여를 보낸 일도 있는데 되돌아 보면 의학교육도 받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때 미국의 패권침략주의에 대하여 눈을 뜨게된 씨앗이 심어져 친미사대주의자로 전락하지 않았던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며 지난날들을 떠올려본다.

 

기자는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민족학교청년학교통일학교조국통일범민족연합 재미본부, 6.15미국위원회 등 많은 조직들을 거론하면서도 그들 조직들의 역사가 나름대로 한 역할을 담당하여 온 업적들도 적지 않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분열의 역사로 이어져 온 것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는 표정이다.

                                                     

그는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지는 않았지만 대화가운데 그의 표정에서 통일운동 진영의 분열상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자세로 그의 표정을 읽 수 있었다선배들이 한 말들이 떠오른다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세력은 분열로 망한다는 그 교훈이 재미동포 운동역사에도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것을 이번 대담에서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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