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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김동연선생,암투병하며 <조국통일>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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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7-12-08 23:33 조회93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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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편집인은 뉴욕에 체류하는 동안 127일  재미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한바 있는 김동연 전회장(76)이 암투병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자택을 심방해 그의 근황을 알아 본 다음 기자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걸어온 발자취는 재미동포 통일운동사에 한 장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들도 포함되어 있어 언젠가 그의 이야기를 통해 재미동포 통일운동 역사를 다뤄 볼 생각을 제언하고, 그의 건강이 하루 속히 회복되도록 기원하는 말을 남기고 그의 자택을 나왔다.”고 전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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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암투병하고 있는 김동연 전 재미경제인연합회 회장(76)

  

 

 

 

김동연선생,암투병하며 <조국통일>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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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포트 =민족통신 노길남편집인]남북화해협력과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 온 재미동포기업인, 김동연선생(76)은 요즘에는 폐암투병으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어 뉴욕방문중 그의 자택을 심방했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북과 관련하여 사업도 하면서 남북 경제교류를 통하여 남북화해 협력적 분위기를 조성하과 이를 통해 경제활동을 하기위해 1989년경 발족된 <재미경제인연합회>의  뉴욕-뉴저지 지부회 회장, 그리고 제4대 총회장으로 활동하며 북부조국과 초기에 경제활동을 개척하기 위해 활동하기 시작한 인물로 그 당시 김동연 선생은 <재미경제인연합회> 총회장인 죤 김(로스엔젤레스 지역 기업인)을 비롯 중부지회 곽노윤회장, 서부지회 한대식회장 등과 북측을 대상으로 경제교류 활동에 앞장섰던 미주동포 기업인들 중 한 사람이다.

 

김동연선생은 지난 몇개월 동안 건강이 좋지 않아 잉글우드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폐암 3기로 진단받고 치료를 받아 왔으나 지난 3개월 동안 165파운드인 체중이 무려 50파운드가 줄어 요즘에는 105~110파운드가 되었다고 설명하면서 지난 76년 세월의 이모저모를 골똘하게 돌이켜 보며 인간의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김동연선생은 <재미경제인연합회>1990년 이전에 창립되었지만 본격적인 활동은 사실상 남북이 유엔동시가입한 1991년 이후라고 말한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결의문 제702를 통하여 1991 8 8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별도의 국가 자격으로 유엔 가입 신청을 제출한데 대하여 유엔총회에서 투표 없이 만장일치로 유엔 총회에 권고한 결의이다. 그 결과 1991 9 17일 제46차 유엔 총회에서 동시가입안이 통과되었다.

 

김동연선생은 국내외 언론들이 남북이 유엔동시가입에 관한 보도들을 쏟아내는데 자극받아 남북이 하루 속히 평화롭게 통일을 이루면 남북동포들에게도 좋고 그리고 해외동포 기업인들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한층 더 흥분된 마음으로 미주동포 기업인들과 함께 북과의 교류활동에 매진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추억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남북동시 유엔가입이 결정되던 1990년대 초에 북측의 고위급 관리들인 한시해 조평통 부위원장과 로철수 참사 등 4명의 관리들이 최초로 미국을 방문하여 그들과 만나면서 그리고 주동진 선생이 주측이 되어 북측 예술인들4명을 초청하여 그들의 공연을 보면서 남북화해협력과 조국통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며 지난 시간들을 생생하게 떠올려준다.

 

그 다음으로 추억에 남는 것은 북과의 경제활동을 진행하는 동안 이곳 <매일신문>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 신문이 1994년 색깔론쟁을 펼치며 친북이니 뭐니하여 방해를 하는 바람에 이를 견딜수 없어 법정소송을 벌여 승소해 그 신문사 문을 닫게 한것을 잊을 수 없다고 설명하고, 이어서 2014년 문재인대선후보를 지지하고 그를 당선시키기 위해 문재인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설명면서 후원회 회원들의 추천으로 최근에 평통자문위원의 한사람으로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민주운동을 해 오던 최관호(의사)박사 등도 있어 이들과 함께 평통자문위원들이 남북화해협력을 북돋우면서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밝힌다.  

 

   기자는 폐암으로 사경에 시달리고 있는 김동연 선생의 걸어온 약력을 듣고 싶어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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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41724일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서울의 양정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외과를 나와 직장생활하다가 1975년 남미 알젠틴으로 이민갔다가 2년후인 1977년 미국으로 다시 이민을 오게되었고, 초기에는 미국회사 STAPLER에서 창고에서 노동일을 했고, 그이후 봉제공장에서 지배인으로 1, 봉제공장을 인수하여 직접 운영도 5년가량하며 가방만드는 공장도 설립해 운영했고,허드슨 콜택시도 수년동안 해 보았고, 주유소를 운영했고, 그의 부인은 지금 30년째 미용실을 운영중에 있고, 그의 29살 아들은 미국회사에서 간부로 일하고 있다.

 

기자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걸어온 발자취는 재미동포 통일운동사에 한 장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들도 포함되어 있어 언젠가 그의 이야기를 통해 재미동포 통일운동 역사를 다뤄 볼 생각을 제언하고, 그의 건강이 하루 속히 회복되도록 기원하는 말을 남기고 그의 자택을 나왔다.()





 [참고자료]


“하나의 조선정책 변화 없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韓時海 부위원장 단독 인터뷰


 

<시사저널>볼티모어·이석렬 특파원 승인1991.06.20(


 한시해(韓時海)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 머물고 있는 볼티모어의 할리데이 호텔은 그를 만나려는 재미동포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동안 막혔던 북한·미국간 말문이 트이면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과 때를 같이하는 현상인 듯싶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을 적성국가로 지목하여 모든 공식적 접촉을 단절해온 미국은 불과 전부터 태도를 바꿔 “두 나라 관계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평양 정권이 먼저 행동으로 몇가지 ‘성의’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도 걸맞게 손을 내밀 생각이다”라면서 등을 돌리고 있는 상태였다. 가지 성의란, 테러 행위를 중지한다는 선언을 , 국제원자력위원회(IAEA) 핵협정을 성실히 이행할 , 남북한 대화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해 노력할 , 그리고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군축함으로써 신뢰구축에 나설 등이다.


 이런 주문을 달면서 미국은 88 가을부터 북경에서 처음으로 나라 외교관의 공식접촉을 시작해 지금까지 참사관급이 15 만났다. 그러면서 미국은 그해부터 북한에 대한 미국인의 여행제한을 완화하는 동시에 북한의 학자·예술인·종교인들의 미국 방문을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비정치적인 민간 접촉의 길이 트이자 그동안 30명의 북한 민간인이 미국을 다녀갔다.


 미국 기독교 단체의 초청으로 지난 523 미국에 일행 8명의 단장인 한시해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은 세상이 모두 아는 정치인이다. 비록 종교단체 모임이기는 하지만 2명의 목사와 한사람의 신학생을 빼고 나머지 5명은 모두 정치적 인물들이다.


 미국 정부가 한시해 부위원장 일행에게 입국을 허가해주고, 한달 동안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아무런 제약을 하지 않은 것은 과거에 없던 파격적인 예우로 분명 화해의 몸짓임에 틀림없다.


 오랫동안 북한 유엔대표부 대사로 봉직한 엘리트 관료 출신이며 당의 부부장인 그와 숙소인 워싱턴 교외 볼티모어 할리데이 호텔에서 40분간 단독회담을 가졌다. 세련된 용모의 한부위원장은 전날 아침 호텔식당에서 기자와 둘이서 아침을 들면서 회견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따로 다음날 차분하게 만나자고 만큼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지금까지 한국기자와는 회의장 복도에서 주고받은 얘기가 전부였다. 그런데 《시사저널》의 질문서를 보니 1시간은 필요할 같다”면서 다음날 다시 만나자고 했다. 되풀이되는 내용이 많았던 그의 답변을 정리해서 소개한다.


공교롭게도 한부위원장의 방미는 북한의 유엔가입 결정이 발표된 때와 일치됩니다. 다소 의외였던 이런 결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이미 외교부 성명에 나와 있듯이, 우리 입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조선 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사실에 비추어 이미 오래 전에 유엔가입이 실현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49 우리는 가입신청을 일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까지 유엔가입을 서두르지 않았고, 70년대 와서는 유엔가입을 북과 남이 동시에 하는 것이나 어느 하나가 하는 것이 조선통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반대해오고 있었습니다. 조선의 분열을 심화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통일이 뒤에 하나의 조선이 유엔에 들어가자고 주장해왔습니다. 특히70년대초에 남조선쪽에서 6.23성명을 통해 유엔 동시가입과 교차승인을 정책화해 내놓았습니다. 이것은 조선을 영구히 분단하는 것을 합법화하자는 뜻으로 해석이 되어 최소한 연방제라도 만들어 하나의 국가단위로 유엔에 가입할 것을 제의했던 것입니다. 최근에는 남쪽이 국제정세의 변화를 이용해서 동시가입을 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가입하겠다는 것을 정책으로 굳혔습니다. 만일에 남쪽만 일방적으로 유엔에 들어가면 통일에도 해롭습니다. 유엔에서 논의되는 우리 민족 전반적인 이익과 관련된 문제들이 편견적으로 처리될 있습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도 가입을 하지 않을 없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가 결코 두개의 조선정책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하나의 조선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한 결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북과 남이 합의하여 동시에 유엔에 들어간다면 이것은 서로가 서로를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두개의 조선정책이지만 남쪽의 일방적 조처에 대응해서 우리가 유엔에 가입하는 것은 절대로 정책의 변화가 생겨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점 오해없기를 바랍니다.


남쪽 여론 가운데는 남북한이 유엔 회원국이 되어 관계가 발전하면 대화를 통해 양자관계가 부드러워질 것이라는 희망적인 견해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엔에 가입한 우리는 분단된 북과 남이 하나의 의석으로 유엔에서 대표권을 행사할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유엔 무대가 조선의 분열이 아니라 통일에 도움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그러나 조선통일 문제에서 남쪽은 두개의 조선정책을 기초로 삼고 있는 만큼 그것이 어떻게 유엔에서 나타날지 두고 봐야 합니다. 만약 남쪽이 계속 두개의 조선정책을 가지고 유엔에서 고집할 경우 결코 좋은 결과는 기대할 없을 것입니다. 관계가 부드러워지는가 아닌가는 유엔에서 자리를 잡는가 아닌가보다는 근본적인 조선반도 안에서 서로 불신과 오해를 없애는 달린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본이 되는 군사·정치적 대결을 해소해야만 합니다. 북과 남이 군축을 실현하고 불가침선언을 하여 신뢰를 조성하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유엔가입 수락 연설차 뉴욕을 방문할 계획입니다. 김일성 주석도 유엔에 와서 연설을 하고 자리에서 수뇌회담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 질문에 한부위원장은20~30 가량 눈을 감고 침묵을 지키다가 대답했다)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가입신청은 언제 어떤 형태로 생각입니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무자들이 절차 규정에 따라서 일이지요.


단일 결의안으로 가능성도 있다는 말도 있는데···


 것은 유엔절차 규정에 위반되는 일이 아닐까요. 단일 결의안을 낸다면, 하나의 의석으로 낸다면 몰라도 남쪽이 일방적으로 가입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단일 결의안을 낸다는 것입니까.


지금 미국 정부쪽이나 언론들은 미·북한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 조성은 북한의 핵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핵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습니까?


  나라 관계를 개선하는 일은 호상평등과 자주권의 존중, 내정불간섭의 원칙에 기초해서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우리는 말합니다. 어떤 조건을 달고 그것을 강요하면서 관계를 개선하자는 것은 이러한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핵사찰문제를 놓고 말한다면 실제적인 위협이 어디서부터 오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조선반도 내의 실제적인 핵위협은 남조선에 배치된 1천여개의 핵무기와 핵무기 사용을 좀더 효율화하기 위해서 진행되는 팀스피리트 같은 군사연습이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조선반도에서 핵위협을 없애려면 이런 핵무기의 철거와 미국이 우리나라를 상대해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담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로 말하자면, 우리는 오래 전부터 핵무기를 생산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천명했습니다. 그래도 미국이 우리가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의심을 품고 있다면 우리는 그런 의심을 없애기 위해, 미국이 남조선에서 핵무기를 철수하고 우리에게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담보만 한다면 언제든지 우리 핵시설을 국제 감시하에 공개할 것입니다.


주한미군이 가지고 있다는 핵무기의 철수문제와 관련해 미국 합참의장을 지낸 윌리엄 크라우 제독 같은 일부 사람들은 북한이 핵개발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주한미군의 핵무기를 철수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뉴욕 타임스> 사설에서 북한에 미국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먼저 주한미군의 핵무기를 철수하라고 주장한 일도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있다는 점을 이번 기회에 확인할 있었는지요.

 내가 만난 분들 가운데 적지 않은 분들이 그와 유사한 견해를 표시했습니다.


북한이 핵시설에 대한 국제적인 사찰을 수용할 의사가 있다는 보도가 나온 또다시 미국 관변에서는 단계 나아가 위프위츠 국방부 차관보는 북한이 핵시설을 아예 없애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와 같은 발언을 국무부 사람들에게서도 들었습니까?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어디까지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시설을 국제원자력기구 감시하에 공개하라는 것뿐이지요.


1985 유엔대사로 7년간 미국 생활을 하고 평양으로 돌아간 6년만에 다시 미국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이번에 내가 여기에 것은 과거 유엔에서 사업하던 때와는 달리 기독학자들의 모임에 참가하는 일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윌리엄 캐리대학 초청강연 등이 목적입니다. 우리 대표단은 미국 장로교단 초청을 받았기 때문에 여러 곳을 돌아다닐 있게 됐습니다. 가는 곳마다 우리 동포들이 열렬히 환영을 해줘서 무엇보다도 감명을 받았습니다. 유엔에 있을 때는 우리 동포들이 나와 만나는 것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자유롭게 접촉할 있게 돼서 매우 기쁩니다. 우리를 맞이해주는 미국 초청단체 사람들도 아주 성의껏 대해줘서 우리는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조선인민과 미국인 사이에 친선을 도모하고 정을 두터히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국인들의 태도가 과거보다는 더욱 친근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인민과 인민 사이에는 사로 나쁜 감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대표단 이름이 기독학자대표단인데 우리를 초청한 단체들이 조선인민과의 친선을 염원하고 있고, 조선통일이 조선인민의 이익에 맞게 이루어지기를 염원하고 있어 더욱 친근감을 갖게 됩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까다롭기만 했던, 그래서 사실상 막혀 있던 ‘북한정치인’의 미국 입국을 이번에는 순순히 허가해주어 한부위원장 같은 ‘거물급 정치인’이 와서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미국 조야의 각계인사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로 기억됩니다. 나라의 관계개선을 위해 화해라는 차원에서 매우 긍정적인 일로 평가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국 정부가 우리 대표단의 입국사증을 문제없이 내주고 여러 지역을 자유롭게 여행할 있도록 해준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축적되고 발전되면 나라 관계도 훨씬 좋아질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우리들에게 특별히 사증을 주어 미국에 있게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좀더 부드러워진 것이라고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에서 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났습니까?


 물론 우리 목적은 미국 기독교인들과 만나는 것이고 윌리엄 캐리대학 관계 인사들을 만나는 것이지만 그런 기회에 여러 사람들과 넓게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엊그제 카네기재단 평화연구소 주최 모임과 환영만찬에서 국무부 고위관리들과 만나 긴밀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시아·태평양지역 담당 솔로몬 차관보와 오랫동안 환담을 했다고 하는데, 고위관리들을 명이나 만났습니까?


 카네기재단 연구소 셀리그 해리슨씨가 시간이 있으면 조선문제에 관심이 있는 미국사람들과 비공식적인, 개인적 의견을 교환할 것을 제의해와서 그렇게 것이지요. 자리에 국무부 사람들도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는데 서로가 상대방을 이해하는 크게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한시해 부위원장 힐행의 ‘정치성 체류기간’은 한달이나 됐고 그들의 여행지역도 뉴욕 워싱턴 볼티모어에서 멀리는 서부의 로스앤젤레스까지 확대됐다. 과거 유엔주재 북한 외교관들의 이동반경이 뉴욕시에서 25마일 이상 벗어날 없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변화이다.


 체류기간 동안 내외의 주목을 것은 민간연구기관인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이 마련한 ‘북한과 미국’이란 주제의 세미나였다. 65 열린 세미나에서 한부위원장이 미국의 한반도 최고실무자인 국무부의 리처드 솔로몬 차관보를 만났다. 국무부의 현직 차관보가 북한 고위관리를 만나 의견을 교환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북한의 유엔 가입 결정이 있고 후의 모임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미·북한관계 개선과 관련해 주목된다.


 비공개로 열린 세미나에는 솔로몬 차관보는 물론 전·현직 미국 행정부 고위관리들이 참석해 미국 정부의 관심도를 그대로 반영했다. 이날 모임에는 북측에서 박승덕(조선사회과학원 주체사상연구소 소장), 김구식(조선평화통일연구소 부소장), 로철수(해외동포원호위원회 참사) 4명이 참석했다. 국무부측에서는 리처드 솔로몬 국무부 차관보, 스펜스 리츠드슨 국무부 한국과장, 로버트 카린 정보연구국 동북아국장, 노먼 헤이스팅스 북한담당관, 로버트 매닝 자문관, 메릴 정부연구국 한국담당 과장 등이 참석했다. 전직 행정부 관리 가운데는 리처드 앨런 국가안보보좌관, 아서 허멜 주중대사가 참석했고, 한국관계 전문가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앨런 론버그 외교협회 아시아담당 책임연구원, 레너드 스펙터 카네기재단 연구원이 참석했다. 특히 이번 세미나에는 중앙정보국의 조제프 클레어 한국과장, 모건 클리핑거 북한연구관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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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리준무님의 댓글

리준무 작성일

병마를 이겨내시고 하루속히 완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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