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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최장길 선생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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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7-12-06 18:27 조회55,82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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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길남 민족통신 편집인은 요즘 시카고, 뉴욕에 이어 오늘은 워싱턴 디씨 지역을 방문하며 통일진영 인사들을 심방하는 과정에 워싱턴 디씨에서 20분가량 떨어진 교외도시 매릴랜드의 엘리코트 시티에 거주하는 통일운동 진영의 원로인 최장길선생(82) 댁을 방문했다. 그는 요즘 샌후란시스코에 있는 자제분들을 보기위해 미국의 서부와 동부지역을 오가는 경우들이 많다고 전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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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최장길 선생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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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장길 선생



[워싱턴 디씨 근교 엘리코트 시티=민족통신 노길남편집인]워싱턴 디씨에 거주하는 통일운동 진영의 인사들가운데 우선 최장길 선생과 이선명 선생, 안은희 선생, 신행우 선생 등 몇분을 방문 첫날 만나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들을 나눴다. 


이곳의 원로들인 최정열여사, 안용구선생, 문명자 선생, 로광욱박사, 최성남선생 등은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래서 오래 전에 만났던 최장길선생(82) 댁에서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요즘 샌후란시스코에 있는 자제분들을 보기위해 미국의 서부와 동부지역을 오가는 경우들이 많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온지도 1971 1월에 도미하였으니깐 금년으로 어언 48년이 된다그동안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회원으로 6.15미국위원회 회원으로 방북하여 혈육들을 만난 기쁨도 많았지만 북부조국이 승승장구 발전하여 나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마음이 훈훈하다고 생각하면서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의 고향이 잘되기만을 학수고대하여 왔다. 기자가 2008년 그의 댁을 방문하여 그의 살아온 이야기들이 하도 재미있어 그의 살아온 발자취를 취재하여 3차례 보도(아래 별도 참조)한바 있었다. 


그때 그는 1935년 1월23일 북 강원도의 원산근처 <신고산>이라는 마을에서 태여났다고 하면서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야기를 들여준 적이 있었다. 

 

 원도에 속하는 내공향 신고산은 해방 직후, 내가 떠날 때만 해도 천여호가 넘는 아름다운 도시로서 광활한 농토가 있어 살기가 좋았고, 원산이 겨우 백리길에다 기차가 자주 다녀서 해산물도 많았다. 원래 구고산이라는 작은 마을이 옆에 있었으나 기차길을 놓기가 어렵고 도시로 꾸리기가 적합치않아 새로 <신고산>이라는 도시가 만들어젔다고 한다. 이곳의 명물이라면 큰 저수지가 있고, 불과 두 정거장 지나면 <석왕사>라 불리는 절이 있다. 이성계가 여기서 꿈을 꾸었다하여 그가 왕위에 오른 다음 이곳에 <석왕사>라는 이름이 붙게됐다고 한다. 또한, 이 고장의 이름을 따서 유명한 "신고산타령"이라는 민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나는 아내와 함께 고향반문을 했을때 <석왕사>를 찾아가아내에게 여기에 얽힌 어린날의 옛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었다.

 

기자와 첫 대담을 가진 2008년 그때로부터 벌써 9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 지녀 온 애국심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남과북이 서로 화해협력하여 8천만 국내외동포들이 바라고 염원하는 조국의 자주통일이 이룩되기를 간절히 빌고 있다최장길선생도 앉으나 서나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뜨거운 가슴을 갖고 있다.


최장길 선생의 부인 김영자 여사(75)는 매일 아침 수영과 걷기 운동을 하며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여사는 서울태생인데 피난때 충청도 청주로 가서 살다가 청주사범학교를 나와 제천여고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최장길 선생과 인연이 되어 결혼했다. 


결혼하게 된 것은 최선생이 베트남서 큰 식당 총지배인을 하던 시절 한국신문에 한 여성의 글이 올라와 그것을 읽고 그 학교에 편지를 보내 그것이 인연이 되어 한국에 돌아가 1967년 결혼하여 1남1녀를 두었는데 자녀들은 지금 둘다 캘리포니아 샌후란시스코 지역에서 결혼하여 살고 있다. 손자손녀는 3명이다. 최선생은 부인에 대해 "아내는 보편타당성의 기준"이라고 묘사하면서 "정직하고 그릇된 일을 하지 않는 올바른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부부관계가 화목하고 단란하여 자녀들은 부모들의 본을 받아 주변 사람들의 칭친을 받고 성장했고, 지금도 자식들과의 관계가 돈독하여 미대륙의 동부와 서부지역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 낙이되고 있다. 아들은 프린스턴대학을 나와 필라델피아에 있는 의과대학을 나와 안과의사로 활약하고 있고, 딸은 코넬대학과 하바드 대학의 건축학과를 나와 설계사를 하며 스탠포드 대학에 나가 강의도 하고 있다.   


기자는 단지 최장길선생의 외모가 여위였고살이 많이 빠진것 같아 건강을 빌었다.()

 

 

[최장길]<고향가기 운동도 통일운동이다(1)>

 

[최장길]<고향가기 운동도 통일운동이다(2)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othernews&wr_id=4215

 

 

[최장길]<고향가기 운동도 통일운동이다(3)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nkstory&wr_id=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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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미주동포님의 댓글

미주동포 작성일

최장길선생님 자식 농사를 정말로 잘 지으셨네요.
미국에서 최고 일류대학들 나와도록 잘키우셨고
조국통일 운동에도 소리나지 않는 자세로 겸손하게
참여하신 선생에 관한 글을 읽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훌륭하신 사모님의 소개도 흥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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