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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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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신]전순태선생 추모해 주신 국내외 동포들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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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7-06-23 06:06 조회22,682회 댓글3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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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순태 선생 유가족측을 대신하여 사모님 방우경여사는 오늘 민족통신을 통해 그 동안 고인을 추모하며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들을 주신 여러분, 조화와 조사, 조문,조의금을 보내주신 국내외 선생님들, 단체들 여러분에게 진실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당부하면서 특별히 불편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고별예배때 조사를 하여 주신 양은식박사님을 비롯하여 노길남 박사님, 손세영 선생님, 김백호 선생님 등 민족통신 편집위원님들에게 온 정성을 다하여 주시면서 동영상까지 제작하여 국내외 친지들에게 널리 알려주신데 대하여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민족통신 편집실]


[랭캐스터=손세영/김백호 편집위원] 전순태 선생을 추모하는 고별예배는 624 오후3 로스엔젤레스에서 2시간 가량 북쪽에 소재한 랭캐스터 인근에 있는 새마음 침례교회(3275 Glendower St. Rosamond CA93560)에서 유현준 목사의 집례로 진행되었다. 특히 고인의 두딸들이 "내가 보아온 아버지"에 대하여 추모하는 심정을 토로해 주었고, 양은식 박사가 고인과의 단체생활을 통하여 추억되는 애국적인 활동들을 되돌아 보는 조사가 있었다.

*고 전순태 선생 추모 및 고별예배 동영상



한편 남녘에서는 김동수 박사와 백하나 교수의 조문, 북녘에서는 해외동포원호위원회의 조사,덴마크에서는 임민식 선생의 조문, 독일에서는 이영빈목사와 김순환여사의 조문과 도르트문트의 리준식 선생 부부, 카나다에서는 김수해 선생, 전순영여사, 그리고 미국 각지역 중에 뉴욕의 신필영 선생, 리준무 선생과 강은홍목사를  비롯하여 유태영박사, 최기봉선생, 보스턴의 이민용 선생, 택사스 휴스턴의 구기본 선생, 로스엔젤레스의 오인동박사, 조경미선생, 박대명 선생, 예정웅 선생, 손세영 선생, 노길남 선생, 이인숙 선생, 이정수 선생, 레이크 선생, 김백호 선생, 시카고 오영칠선생,송성자목사 등 여러분이 조문, 조사를 각각 보냈다.

로스엔젤레스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농촌지역, 로사몬드에 위치한 새마음 침례교회 강당에는 고인의 유가족들을 비롯하여 교인들과 남가주 지역 통일운동진영 원로들인 양은식 박사, 현준기 선생,  윤길상 목사, 홍순호 장로부부, 김현환 박사부부,  김윤경 선생, 백승배 목사, 이인숙선생부부, 왕용운 선생 및 특히 샌프란시스코에서 참석한 폴 림선생, 백행기 태권도 관장부부, 그리고  다수의 젊은 애국 통일운동 일꾼등 1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집례자의 예식사로 시작  찬송 ‘저 높은곳을 향하여’ 를 다함께부르고 유현준목사의 말씀  ‘의식을갖고 자기생각을 갖춘 전순태 선생의 의문에 답’으로 고인이  하나님말씀을 받아드리기까지 부인과 두딸의 인도가 컷으며  양은식박사는 고인과는  ‘50여년 친구로  그의삶은  오직 분단된 조국이하나되기위한 삶이었다’는 조사와  그리고 고인의지나온 생애를그리는 동영상을 시청 한후  유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참석자들은  근처 히바치 식당에모여 오찬을나누며 고인을회상하는 시간을가졌다.

전순태선생은 송도중학교 재학시(1951년6월) 단신남하 외국어대학교 서반어과 졸업후 1960년대후반기 미국으로 이민와 샌프란시스코 가주 주립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수료하고 북가주한인회와 한미정치협회에서 지역사회에 봉사 제1차 북과 해외동포 기독자모임에 참가하였다. 북미주통일협회(통협)임원으로 샌후란시스코에서 장기간거주하며살다가10여년전 로스엔젤레스로이사와  재미동포전국연합회,  6.15미국위원회임원 및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등 미주통일운동 진영에서 활약하며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쳐왔다. 그리고 이산가족 찾기운동 등에 전념해왔다.

고별예배장에는 유가족들이 준비해 온 조화들을 포함하여 6.15미국위원회, 범민련재미본부, 재미동포전국연합회, 미주민가협양심수후원회, 우리문화나눔회, 6.15중남부지역위원회, 민족통신 등 동포사회 진보계 단체들이 각각 조화들을 보냈고, 양은식 박사를 위시하여 왕용운, 정영철, 장민호 등 개인들이 보낸 조화들도 고별식장에 놓여 있었다. 

한편 유가족은 전순태 선생의 이민 초기의 삶의 터전이었던 샌후란시스코에서 고인의 첫 부인이 묻혀있기에 고인의 유골도 그곳에 안치할 계획이기 때문에 오는 6월29일(목) 오전10시에 Holy Cross Catholic Cemetery(1500 Mission Road, Colma, CA94014)에서 하관식겸 추모모임을 갖는다고 밝혔다.  문의 연락은 408-505-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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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전순태선생께 남,북,해외 각지에서 조문 답지

북부조국을 비롯하여 남부조국, 덴마크, 카나다 등지에서 조사,조문을 보내왔다. 전순태 선생이 6월21일 밤10시20분께 자택에서 뇌출혈로 쓸어져 인근 AV 병원에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운명했다. 향년 78세. 유가족은 부인 방우경여사와 1남2녀(전진환, 전수미, 전진희)를 두고 있다. 장례식(고별예배)는 6월24일 오후3시 진행된다. 관련자료는 다음과 같다.[민족통신 편집실]
 

전순태선생의 유가족들에게

 

우리는 자주통일운동에 앞장서온 전순태선생이 뇌출혈로

갑자기 별세하였다는 뜻밖의 비보에 접하여 슬픔을 금치 못하며 고인의 부인을 비롯한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전하는바입니다.

 

선생은 민족분단의 아픔을 안고 자주통일운동의 앞장에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조국통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일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온 통일운동의 원로였습니다.

 

전순태선생이 그토록 바라던 통일의 날을 못보고 비록 우리의 곁을 떠났으나 조국통일과 민족대단합을 위한 길에 바친 고결한 생과 애국의 넋은 해외동포들과 우리들의 가슴속에 길이 남아 있을것입니다.

 

다시한번 고인의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주체106(2017) 6 24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

 

 


*고인이 출연한 동영상 보기
잊지못할 코리아 전쟁(MEMORY OF FORGOTTEN WAR - TRAI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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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순태 선생은 맨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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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일성주석 오른쪽으로 두번째가 전순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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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순태 선생이 맨왼쪽,오른쪽이 서거하신 배동호선생, 곽동의선생,그리고 양은식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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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맨왼쪽의 전순태 선생,그 다음이 (고)이승만목사, 
일본의 정경모선생,(고)문익환목사, (고)홍동근목사, 양은식박사


[부고]
전순태 선생 고별식은 6월24일(토) 오후3시
 새마음 침례교회서 유현준목사 집례로 진행


[캘리포녀 랭캐스터=민족통신 종합]전순태 선생이 621 1020분께 자택에서 뇌출혈로 쓸어져 인근 AV 병원에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운명했다. 향년 78. 유가족은 부인 방우경여사와 12(전진환, 전수미, 전진희) 두고 있다

 

고인을 위한 고별예배는 624(토요일) 오후3 랭캐스터 인근에 위치한 새마음 침례교회(3275 Glendower St. Rosamond CA93560)에서 유현준 목사의 집례로 진행된다


교회문의는 전화 661-256-9626. 

유가족 연락은 661-722-0807  661-952-8713, 혹은 408-505-1265 


 

전순태 선생은 1960년대 후반기에 미국으로 이민와 샌후란시스코에서 장기간 거주하며 살다가 10여전에 캘리포니아 랭캐스터로 이사와 자영업을 경영하다가 금년 1월에 사업을 그만두고 은퇴생활을 시작했다

 

고인은 북미주통일협회(통협) 임원을 비롯하여 재미동포전국연합회, 6.15미국위원회 임원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미주통일운동 진영에서 활약해 오면서 자주, 민주, 통일운동을 전개하여 왔고, 그리고 이산가족 찾기운동 등도 벌여왔다

 

*조화는 계정자 꽃집에서 주문받아 고별식장에 배달하여 주기로 했다.

그리고 전순태 선생을 추모하는 글들을 아래에 직접 올려주기 바랍니다.

( 전화주문: 213-388-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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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리준무님의 댓글

리준무 작성일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듣고 슬픔에 싸여있습니다.
부인 방여사님께 위로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 통일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오신 선생님!
환희의 통일의 그날을 보지못하시고 떠나셔서 가슴이 아픕니다.
선생께서 갈망하시던 재미운동도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는데...
정말 아쉽습니다.

못다 이루신 조국통일의 대업을, 남은사람들 모두 웃으며 이어가겠습니다.
부디 평안하소서!

뉴욕에서 리준무올림

이인숙님의 댓글

이인숙 작성일

청천벽력같은 소식입니다

가슴이 멍합니다. 일주일 전에 함께 식사 할때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너무 슬픕니다.

가슴 무너지는 충격과 아픔을 지니신 가족분들께 위로를 드립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래이크님의 댓글

래이크 작성일

믿기지 않는 부고네요. 2주전에 행사에서도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백호

리정수님의 댓글

리정수 작성일

믿어지지 않는 소식입니다.

갑작스런 일을 당하여 슬픔이 크실 가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인사를 드립니다.

삼가 고 전순태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노길남님의 댓글

노길남 작성일

전순태 형님에게,

시카고를 방문하고 뉴욕에 체류하는 동안

부인 방우경여사로부터 부음소식을 받고

너무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몇일 전만 해도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하기위해서는

우리민족의 최대 걸림돌인 미제국주의 세력을 청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목청을 높이면서 외세를 하루속히 타도해야 된다고 강조하시던

형님의 애국적 열정이 눈에 선합니다.

형님은 이산가족의 한사람으로

언제나 1천만 이산가족들이 마음대로 만날수 있는 날이 올것을

그 누구보다 열렬하게 소원하여 오셨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8천만 겨레의 염원이며 소원인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북부조국을 바로 알아야 한다고 외쳐 오셨습니다.

형님은 또한 북녘에 흩어진 가족들을 찾는 재미동포들을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해 오셨고,

남과 북의 통일운동 인사들이 미국에 오는 경우에 집으로 초청하여 그들의 숙박을 도와주셨고

많은 손님들을 초청하여 융숭한 대접을 해 주셨던 따뜻한 사랑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국내외 애국인사들을 도우며 내조를 하여 주신 형수님이 샌후란시스코에서 간호원으로

일하다가 세상을 떠난 그 때에도 장례식에 참석하였는데

이번에는 형님이 곁을 떠났다는  소식을 시카고에서 뉴욕에 와서 체류하는 동안 슬픈소식을

듣고 충격속에 잠겨 있습니다.

몇일 전 양은식박사의 건강을 걱정하여 함께 위로하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엘시노 온천장에서 유태영박사님과 오영칠선생님과 함께 휴식을 취하면서도 조국통일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된다고 열변을 토하던 형님의 그 모습이 어른 거립니다.

특히 유태영박사님과 오영칠선생님이 로스엔젤레스를 떠난다고 만리장성에 와서

환송만찬에 참가하여 그들을 위로한다고 둘째 형수님이 통일노래까지 지어 불러주셨는데

형님께서는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통일을 보지 못하고 그만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형님 이젠 그만 편히 쉬세요.

살아있는 우리들이 힘을 합쳐 형님의 소원이며 염원인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해 더 한층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맞이한 형수님, 방우경 여사에게 자주 전화도 걸고 위로할 것입니다.

진환이, 수미, 진희에게도 아버지 대신에 우리들이 가끔이나마 안부를 묻도록 하겠습니다. 

 
형님이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하나된 6.15미국위원회>>가 새롭게 거듭난것을 직접 보시고 떠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재미동포 통일운동도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 될 것으로 예견됩니다. 그것이 형님의 염원이었습니다.

형님의 운동철학은 첫째도 단결이고, 둘째도 단결이며, 셋째도 단결이 아니었습니까?

바로 그것 때문에 형님이 마음을 태운적이 많았습니다.

형님이 속상해 하는 것이 바로 운동권 내부의 분열이 아니었습니까?

마지막으로 형님이 그것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전순태 형님, 이제 편히 쉬세요.

우리 남아 있는 동지들은 모두 형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유가족을 위하여 안녕을 기도할 것입니다.

뉴욕에 체류하면서 ..

2017년 6월22일 밤

노길남 삼가 올림니다.

시카고님의 댓글

시카고 작성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유가족 여러분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시카고에서

오영칠

유태영님의 댓글

유태영 작성일

전순태 선생 이게 어찌된 일이요?

이렇게 갑자기 갈수가 있단 말이요?

믿기지 않습니다.

내 아내가 지난 3월5일 떠나 아직도 아픈 마음을 달래는 중인데

이제 당신까지 갔으니 ...

하지만 하나님 보좌 아래에 있는 내 아내와 당신이 만날수 있을 것이요.

사람은 언젠가 한번은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니겠오.

당신은 떠나기전에 화해와 협력의 사도가 되어

우리 재미동포 통일운동의 단결단합을 위하여

하고 싶은 이야기도 참으며 대를 위하여 힘쓰고

이 세상을 떠나갔오.

저 세상에서도 우리민족의 하나됨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 재미동포 통일운동의 단결단합을

위해서도 기도해 줘요.

주안에 영원한 평안을 빌며.

2017년 6월23일
뉴저지
해링톤 파크에서

유태영

최기봉님의 댓글

최기봉 작성일

너무 갑짝스러운 비보에 달리 뭐라고 애도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인생무상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통일이 되면 고향 개성을 걸어서 가신다고 하셨는데,결국 통일을 보지 못하시고 먼저 가셨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전순태 선배님 가시는 길, 명복을 기원합니다.


2017년 6월23일 뉴욕에서

최기봉 올림

애독자님의 댓글

애독자 작성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는 전순태선생님을 만난적도 대화를 나눈적도 없습니다. 단지 오늘 민족통신에서 보도한 자료들과 사진들을 보면서 생전에 많은 일들을 하신분이구나라고 생각하에 되었습니다.

전순태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중에 (고)이승만목사, 일본의 정경모선생,(고)문익환목사, (고)홍동근목사, 그리고 분단을 뛰어넘어 방북기를 펴내신 양은식박사님이 보이고, 일본동포들중에 통일운동 지도자들이셨던 배동호 선생님과 몇일전에 세상 떠나신 곽동의 선생님이 보이는 사진도 역사의 지난날을 되새겨 줍니다.

저는 또 김일성주석님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에서 전순태선생님을 포함하여 이미 세상을 떠난  홍정자여사, 선우학원박사, 최정렬여사가 보이고 생존해 계신 김현환목사, 김운하선생,그리고 강은홍목사께서 보입니다.

사진들 모두가 전순태선생님의 족적을 반영해 주어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애독자
김선호

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Memory of Forgotten War
Directed by Deann Borshay Liem, Ramsay Liem

Description

Featuring a live performance by Korean drumming group Jamaesori, a conversation with filmmakers Deann Borshay Liem and Ramsay Liem, and interactive photo booth by HOBAK (Hella Organized Bay Area Koreans)!

The year 2013 marks the sixtieth anniversary of the unofficial end to the Korean War (no formal peace was ever made), a civil war-turned-global conflict that ravaged a nation, and whose consequences continue to reverberate up an down the peninsula today. From award-winning filmmaker Deann Borshay Liem (First Person Plural; In the Matter of Cha Jung Hee) and Ramsay Liem, professor emeritus at Boston College, comes a powerful new documentary about that watershed event. Memory of Forgotten War follows the stories of four Korean Americans who witnessed firsthand the war’s devastation and its aftermath. Drawing on the oral history collection of Still Present Pasts: Korean Americans and the Forgotten War, a multimedia exhibit directed by Professor Liem, this documentary is the first to tell about the experiences of Korean civilians who later immigrated to the United States. The memories recounted here challenge the historical amnesia that has long characterized America’s popular understanding of the so-deemed unknown war, and serves as a cogent reminder that for survivors and their families, it has remained anything but forgotten.

Following a screening of the film, cast and crew will engage in a candid conversation about the repercussions of the Korean War and the actions being taken toward a reunified Korea. Members of the drumming group Jamaesori will also perform live with acclaimed singer/rapper Skim, followed by an interactive photo booth from HOBAK.

Co-presented by: Korean American Professional Society (KAPS)

Check out Jamaesori performances here: http://www.youtube.com/watch?v=RaHBJxnvFkU

Jamaesori (Pronunciation: “JAH-mae-soh-rlee”) is a collective of women of Korean descent who use traditional Korean drumming to support social justice movements. They are a diverse and intergenerational group of Korean-Americans, Korean adoptees, mixed-race Koreans and Korean nationals, queer and straight, community activists and artists. Jamaesori uses Pilbong style Pungmul, a participatory folk art tradition, to coalesce around the expression of communal hopes and to overcome sorrow and hardship. Since being founded in 1991, Jamaesori has taken inspiration from the spirit of Pungmul and contributed to the vitality of our community by participating in numerous events, celebrations and protests. They play to recognize our culture, honor our history and to rally in shaping our future.

Learn about HOBAK (Hella Organized Bay Area Koreans) here: https://www.facebook.com/groups/166522990050746/
Credits

Producer: Deann Borshay Liem, Ramsay Liem

이민자님의 댓글

이민자 작성일

동영상 넘 좋네요.

북한도 우리 형제자매
남한도 우리 형제자매

외세는 통일을 바라지 않습니다.

조국은 하나!

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오인동박사께서 전순태 선생 부음을 받고 반응한 이멜입니다.


<<바로 지지난 주, 6.15 모임에서 뵜는데 이게 웬 날 벼락이오.
 
1998년 1월,  Korea-2000의 <남북 두 지도자에게 드리는 통일정책건의서>를
전하기 위해 평양에 갈 때 김현환 목사와 더불어 함께 했던 전 선생님입니다.
너무 허무해 할 말이 없네요.>>

신필영님의 댓글

신필영 작성일

민족통신보도를 통하여
전순태 선생의 부음을 접하고 놀랐습니다.

양은식박사와 함께 한생을 통일운동에
바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전합니다.

고인께서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진행된
6.15남북공동선언 제17주년을 맞이한
행사에 참석하시어 다함께 한 이번 모임을
화해와 단결의 정신으로 승화시켜 준데 대하여
뜨거운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행사가 끝난지
일주일이 되어 이렇게 비보를 접하게 되어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전순태선생이 염원하여 온 평화통일을 위하여
우리 재미동포들과 함께  해외동포들, 그리고
남과 북 동포들이 다같이 손을 잡고
8천만겨레의 통일합창 소리에 발맞추어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애국열사들의 뜻을 따라
보무당당하게 일해 나가겠습니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7년 6월23일
워싱턴 디씨에서

신필영

카나다님의 댓글

카나다 작성일

전순태선생님 이게 무슨 벼락같은 소식입니까?

이제 통일의 날은 다가오고 있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시다니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입니다.

그렇다고 좌절할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저 세상에 가서도 조국의 자주통일을 성원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우리들은

전순태 선생님의 몫까지 합쳐

더 열심히 더 열심히 힘써

우리 모두의 소원을 반드시 이뤄내고

말것입니다.

삼가 명복을 다시한번 기원합니다.

카나다 몬트리얼에서

김수해 올림

전순영님의 댓글

전순영 작성일

사람들의 생명도 낙엽처럼 가는가 봐요. 홍동근 목사도 가셨고, 선우학원 박사도 가셨고, 일본의 곽동의 선생도 가셨고, 이번에는 전순태 선생도 가셨군요.

제 남편 전충림도 1995년 4월17일 소천했습니다. 1923년 9월22일 중국 용정에서 태어 났으니까 사망당시 향년72세였습니다. 

나는 전순태 선생을 떠 올리면 25년 전에 쌍둥이 딸 수미와 진희를 데리고 카나다 우리집을 다녀간것을 추억합니다. 그리고 전순태 선생 소개로 한국의 리영희 선생도 우리집을 다녀갔습니다. 그 때는 제 남편도 생존해 있었지요.

이번에 미국에서는 6.15미국위원회가 성과적으로 행사를 치루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순태 선생도 큰 역할을 해주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 카나다 지역도 6.15행사를 카나다 진보인사들과 함께 잘 치루었습니다. 민플러스와 민족통신에도 그 소식이 보도되어 기뻤습니다.

전순태 선생의 명복을 빌면서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카나다 토론토에서
전순영 올림

덴마크 임민식님의 댓글

덴마크 임민식 작성일

아 아 전순태 선배님이시여!

그냥 갑자기 떠나버리시는군요.

조국을 사랑하시고 조국의 아픔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시던 뜨거운 가슴의 선배님, 항상 낙천과 희망을 마음에 담고 살아오신 선배님.

선배님을 그동안 너무 멀리 잊고 살아온 나의 불찰을 이제야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제 선배님께서 주신 평범한 삶의 지혜들을 되새기면서 고향이 개성이신 선배님을 고향땅에서 만나 개성사람들의 상업기질과 언젠가 개성정신으로 자력갱생 부강할 통일된 조국을 낙관하시던 모습 간직하고 선배님의 뜻을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가겠습니다.

이제 당신이 꿈꾸던 통일된 조국을 이룩하는 꿈, 자립된 부강한 평화의 나라를 만들려던 꿈, 가난과 소외가 사라지는 해방된 사회의 꿈일랑 우리가 대신 지고 가겠습니다.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부활하소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7년 6월 24일
더 먼 이국땅 덴마크에서
임민식

왕용운님의 댓글

왕용운 작성일

순태 형 이렇게 갑자기 떠날줄 몰랐습니다. 고향이 나와 같아서 이북을 갈때면 같이 간적이 많았어요. 우리는 따져보면 한가족이나 같았어요. 개성에 가면 나는 친척들이 30여명 가량 모였지만 순태형은 언제나 40여명 가족들이 모였지요.

형님 어머니 성씨도 왕씨라서 나와는 여러모로 인연이 깊었지요. 형님 어머니가 세상떠난지가 20년이 되는것 같은데 그 때 우리는 고향인 개성에 가서 형님 어머니 묘소에서 통곡하며 울던 그 때가 잊져지지 않네요.

얼마전 6.15미국위원회가 하나로 결집되는 경사에 뉴욕에서 유태영목사님, 시카고의 오영칠 형님이 오셔서 온천도 가고, 행사도 참석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가졌는데 일주일만에 벼락같은 소식을 듣게 되어 아주 슬펐습니다.

형님 인생은 어차피 누구든지 가야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 아닌가요?

그동안 너무 수고와 고생이 많았어요. 이제는 편하게 쉬세요.

남은 우리들이 형님 몫까지 다할것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들에게 조의를 전합니다.

2017.6.23

풀러톤에서
왕용운

김 시환님의 댓글

김 시환 작성일

열흘전 또 일주일전에 식당에서 같이 웃고 떠들었는데 이렇게 황망히 가시다니요.....
슬픔을 금할길없습니다.
돌이켜보면 통일운동의 불모지 이곳에서 통일의 기치를 남보다 앞서 내걸으셨다 영사관 또 반동적교포들의 막말과 위협을 얼마나 많이 당하셨나요......
이제 편히 쉬쉽시요 선생님의 큰 뜻을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백행기님의 댓글

백행기 작성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유가족 여러분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샌후란시스코에서 오래 사시다가 남가주로 이사가셨지만 이산가족들을 위해 오랜 세월 노력하여 오신

노고를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산가족의 한 사람으로 아픈 마음을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

하루 속히 남이나 북이나 한 형제 자매로 사이좋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일이 고별예배를 본다고 하여 제 가족과 함께 대여섯시간 운전하여

참석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2017년 6월23일
샌후란시스코
백행기 올림

구기번님의 댓글

구기번 작성일

정말 슬프고... 애도합니다.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 한분을 또 보내드리고 나니,..

동포련합의 후배성원으로 죄송한 마음 뿐 입니다.

 부디 천국에서 부모님과 영생하는 큰 기쁨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휴스턴에서,

구 기번드림.

강은홍님의 댓글

강은홍 작성일

전순태 선생은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한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달려왔고

북미주통일협회(통협) 임원을 비롯하여 재미동포전국연합회, 6.15미국위원회 임원 및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등

 미주통일운동 진영에서 활약해 오면서 자주, 민주, 통일운동, 이산가족 찾기운동 등에 크게공헌 하였습니다.

 급작스런 부고에 놀람을 금치못하며 술픔을 당한 유가족위에 하나님의 크신은혜와 평강이 함께사기 빕니다.
 

Owego NY에서

강 은홍 목사 드림

예 정 웅님의 댓글

예 정 웅 작성일

전순태 선생 영전에  향기있는 힌 꽃 한송이 놓아 드립니다

6월17일 저녁 오대산 식단에서 내 옆에서 저녁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슬을 좋와하는 전순태 선생게서 그날
술이 잔득 취했지 않습니까. 너무 많이 마신다고 내가 좀 잔소리를 했는데 조금있다가 바닥으로 쓰러졌지요
야 이거 야단났네 잡아서 겨우 잃으켜 세웠는데 혹시 뇌진탕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바짝붙어서 의자 옆으로
내가 몸으로 지탱까지 했었지요.  그러나 다행으로 뇌진탕은 없었으며 허리가 아프다기에 그런줄 알았습니다.
허리 아픈것이야 흔히있는 일인데...

그런데 부인과 같이 만리장성 식당에 오신것을 보고 괜찮구나 했지요. 그런데 민족통신을 보고 24일 뇌출혈로
사망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찢어지게 아픕니다. 남보다 식사도 잘하고 미국에 대한 비난의 열변을 토할때는 세
상에 이렇게 반미 래디칼한 사람이 있었는가 했는데  세상사 이별을 고하는 연습이 너무도 갑자기 순간에 연습
이 아니라 진짜 영원히 세상과 하직하는 이별의 순간이 닥치는것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먼저 가서 우리들 좋은 자리좀 잡아두십시요. 못 이룬 조국통일의 한 맺힌 삶에 그 곳에서는 분단의 비극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웃으며 같이 삽시다. 우리 전순태 선생께서 너무 일찍우리곁을 떠난 것 가슴이 아픕니다. 그 먼
곳 랭커스타에서  L.A까지 두사건이 넘게 차룰 타고 왔다갔다 한 지난날의 영상들이 눈에 선 합니다. 아무쪼록 조순
태선생은 우리곁을 떠났지만 전순태 선생의 조국통일 운동에 바친 헌신적인 활동은 세월이 지나도 잊지못할 것이
니다. 부디 편하게 잠드십시요. 당신의 영면을 위해 우리모두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예정웅 하얀 꽃 한송이 당신의 영정에 바칩미다.

 2017년 6월 23일

 예  정  웅

손세영님의 댓글

손세영 작성일

분단된 조국통일위해
일생을 애쓰시다가신
전순태 선생님 영전에
삼가 깊은 조의를 표하며
편히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박대명님의 댓글

박대명 작성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생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조선반도에 참된 평화의 세상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김동수님의 댓글

김동수 작성일

또 하나 좋은 친구가 가셨군요.

수수하고 소탈한 동지, 전순태 선생,

아직 젊은데 애석하게 가셨군요.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꾸준히 수고하신 멋진 투사 드디어 가셨군요.

멀리서 애도의 뜻을 보냅니다.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평시 고인의 갸륵한 뜻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한국 인천에서,

옛 친구  김동수와 백하나 올림

조경미님의 댓글

조경미 작성일

전순태 선생님 유가족에게,

얼마나 마음이 허전하고 아프시겠어요?

애국자 한분이 우리 곁을 떠난간것은 큰 손실입니다.

하지만 고인의 애국심은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히 자리잡고 있을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7.6.24 아침
로스엔젤레스
조경미

이 민용님의 댓글

이 민용 작성일

아, 전 순태 선생님
가셨군요!

꼭 한번 만나,
두 손 마주잡고
한 많은 이산 가족의 켜켜이 얽힌 사연을
하소연하고 싶었습니다.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
발설을하자 마자 남북으로 찢기는 이산의 이야기들.
결코 발설을 해서는 않되는 이야기들,
이 잊혀진 사연들,

다행이 램지 임(Ramsey Liem)교수는 "잊혀진 전쟁(The Frogotton War)"이란
다큐맨타리로 만들어 우리를 영상의 한자리에 모여 앉혔습니다.
마주 대하지는 못했지만 영상을 통해
많은 사연과 감정을 교감했습니다.
그래서 손 한번 꼭잡고 싶었습니다.

이산의 아픔,
2차 대전과 월남전의 비극, 중동분쟁마저
서민이 겪는 전쟁의 참혹함, 그 후유증에 대해
인간비극의 드라마로 신화화되고 전설이되고
인류 구원의 귀감이고 메세지로 세세생생이
전수되는데
우리가 겪은 이 전쟁,
이 반세기를 훨씬 지난
이 이산의 전쟁 이야기는 잊혀지고 있습니다.

달리 겪은 경험, 얽힌 사연의  비극성
그러나 이 모든 사연은  분단의 정치와 정쟁의 소재로만 활성화되고
이산의 이야기는 저주스런 개인의 비극으로 만드는 군요.
아, 이 모든 사연을
온몸에 간직한채 표연히 떠나셨군요.

내생에서나,
아님 전선생님의 천국에서
다음 생에 다시 만나
이 모든 속박을 훌훌 털고
인류 구원의 이야기로 담소하지요.

편히 가소서, 전 선생님!

이민용 합장_()_

[Prof. Ramsey Liem의  Forgotten War의 대담자]

김순환님의 댓글

김순환 작성일

1981년 11월 비엔나에서 1차 통일대화 모임에서 전 선생님을 첨 만나뵈옵고, 그로부터 여러 모임에서 선생님은 쉬지 않으시고
민주,통일운동을 위해 활동하셨습니다. 언젠가 전화를 드렸드니  독일의 동지가 잊지않고 있다고 무척 기뻐한 그 음성이 아직
귀에 쟁쟁합니다.

통일조국을 못보시고 가신 선생님, 언젠가 반드시 쟁취할 것이니
전선생님! 편히 쉬소서.

독일에서  이영빈과 김순환

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독일 리준식 선생이 오늘 이멜로 조문을 보내
여기에 올려드립니다.(내용은 아래 전문)



만나면 친동생처럼, 제수씨를 만난 것처럼
어쩔줄 모르게 사랑해 주시던 정 많은 순태 형님!... 


너무도 뜻밖인 뇌출혈 비보에도 불구하고
어제(토요일) 밤 늦게 집으로 돌아와
운명을 달리한 순태형의 명복과 영면을 기원하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유자녀분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면서 
아버지의 생전유지를 이어나가기를 간구하겠습니다.

6월25일(일요일)
도르트문트에서  순태형을 생각하며 준식-정옥  영전에 온립니다.

홍순희님의 댓글

홍순희 작성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송성자님의 댓글

송성자 작성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집도 상당하시더니 이제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교회에서 장례예배를 드렸으니
언젠가 천국에서 반갑게 만날수 있어 참으로 기쁩니다
그러나 나그네의 길인  이땅에서 더 이상 뵐수없는것이 너무나 아쉽고 섭섭합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기도하며 바라며 원하는 하나되는 조국통일은
하나님의 소원과  눈물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질것입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유족들위해 기도합니다

미주동포님의 댓글

미주동포 작성일

전순태 선생의 별세를 애도하며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내가 전순태 선생을 만난 것은 1980년 초였다. 1981년 내가 시카고에서 엘에이로 이사하자 얼마 되지 않아 전 선생은 나를 만나러 샌프란시스코에서 엘에이로 왔다. 나는 그와 금세 친해졌다. 얼마 후 나는 가족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전 선생은 나보다 7년 선배였지만 결혼을 늦게 하여 아이들은 나의 큰아들보다는 2~3살 아래였고 나의 작은 아들보다는 1살 위였다. 그의 부인은 나의 처와 동갑이었다. 우리는 식구들끼리도 친해졌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어떤 모임이 있으면 우리 식구들이 다 올라가 전 선생 집에서 머물렀고 엘에이 지역에서 모임이 있을 때는 전 선생 식구들이 모두 내려와 우리 집에 머물렀다. 그 후 우리 두 가족은 한 가족처럼 친하게 지냈다. 나에게 있어서 전 선생은 통일 동지이자 형님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우리 둘은 자연스럽게 말을 놓고 지냈다.
 
우리는 예성강을 사이에 두고 전 선생은 황해도의 개성에서 나는 벽난도에서 6.25전쟁 때 남으로 내려왔다. 당시 전 선생은 11살이었고, 나는 4살이었다. 나는 이남으로 내려와 강화도에 며칠 머물다가 김포에서 계속 살았다. 전 선생은 개성에서 송도중학교를 다니다가 아버지와 인천으로 피난 나와 며칠 지내다가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러 간다고 개성으로 다시 간 후 내려오지 못하고 영영 헤어지고 말았다. 전 선생은 갑자기 고아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전 선생은 영특한 소년으로 혼자 먹고살며 개성에서 인천으로 옮겨온 송도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외국어대학 브라질어과에서 공부하였다. 전 선생은 남녘에서 고아로 안 해본 일이 없이 갖은 노동을 다 치렀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그는 대학을 마치고 브라질로 유학을 가다가 샌프란시스코에 잠간 들렀다가 영영 샌프란시스코에 머물게 되었다. 거기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주로 사업을 해왔다. 그가 가방 가계를 할 때 나에게 선물로 준 서류가방이 아직도 있다. 그는 일찍 눈이떠서 미 제국주의의 본질을 보게 되었고 베트남전쟁의 반대 운동을 포함한 평화운동을 열심히 하였다. 1980년부터 캐나다에서 시작한 이산가족사업을 통하여 개성의 가족을 찾은 전 선생은 만사를 제쳐두고 이북을 방문하여 어머니와 동생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그때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없었다. 그 후 그는 이산가족사업을 미국에서도 해야 한다고 늘 강조해왔다. 양은식 박사와 전 선생, 그리고 여러 이북을 방문한 분들은 기행문을 엮어 그 유명한  [분단을 뛰어 넘어]를 출판하였다.
 
1986년 <조국통일북미주협회(통협)>을 창립할 때도 전 선생은 주동적인 역할을 하였다. 통협에서는 1986년부터 이산가족위원회를 만들어 이산가족을 찾아주고 이산가족의 방문사업을 도와주었다. 전 선생과 나는 자주 이산가족을 안내하며 이북을 방문하였다. 전 선생은 90년도부터 새로 결성된 <재미범민족연합>의 간부로도 열심히 활동하였다. 1996년에 결성된 <재미동포서부지역연합>에서도 전 선생은 열심히 활동하였고 서부지역연합의 2대 회장도 역임하였다.  전 선생은 2,000 년 이후 결성된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에서도 서거하기 전까지 열심히 활동하였다. 최근 6월 10일에 엘에이에서 개최된 6.15행사에 전 선생도 참석하였다. 여기서 그를 본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그는 열정적인 통일운동가로서 쉬지 않고 통일운동조직에 열성적으로 참석하여 열심히 활동하였다. 샌프란시스코에 살 때는 그의 집이 해 내외 통일인사들의 호텔이었다. 그는 동지들을 열심히 찾아다녔고 동지들과 술을 마시며 장시간 이야기 하는 것을 즐겼다. 그의 집은 항상 유학생들과 해 내외 운동원들로 붐볐다. 독서도 많이 하여 아는 것이 많았다. 그는 아는 것을 실천하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또 미주동포들에게 북을 제대로 알리려는 목적으로 북 영화를 상영하는 등 북 바로 알기 운동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열정적이고 따뜻한 인간이었다.
 
나는 친형 같은 전 선생과 개성도 자주 함께 방문하여 그가 나서 자란 기와집에서 자면서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만나곤 하였다. 그의 동생들은 나를 만나면 친형을 만난 것처럼 반겨주었다. 개성의 동생들에게 형님이 돌아가셨다고 어떻게 말해줄지 고민이다. 지난 토요일 전 선생의 고별식에 참석하여 아들 진환이와 쌍둥이 딸 진희와 수미를 보는 순간 나는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이 계속 나왔다. 전순태형, 잘 가시오. 곧 다시 만게 되리다. 늘 앞장서 하시던 조국통일운동은 우리가 계속 해나가겠소. 형님의 명복을 빌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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