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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광주항쟁행사에 <임을 위한 행진곡>울려퍼진다(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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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7-05-18 03:37 조회17,535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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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9년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민중항쟁 행사에서 부르게 되었다.  광주항쟁이 일어난 이후 37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한국의 민주화는 정착되지 못했다.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진 극우세력은 또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변신하여 한국민주화 운동과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방해하고 있다. 그래서 2017 5.18민중항쟁 기념식은 그 어느때보다 의미심장한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주시보가 517일 보도한 <5.18광중민중항쟁의 넋을 기리며...>라는 기사는 여러가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민족통신 편집실]


*관련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KU7oVpidTtc








5.18 광주민중항쟁의 넋을 기리며…
박한균 수습기자 
기사입력: 2017/05/17 [20:0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5월 16일 전남도청앞 광장에서는 분수대를 중심으로 2만여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열고 대대적인 횃불행진을 벌였다.<사진-518기념재단>    

 

▲ 1980년 5월 29일 망월동에서 일제히 진행된 1백29구의 장례식(좌) 독일'슈피겔'지에 실린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든 아이 사진은 죽은자와 살아남은 자를 절묘하게 대비함으로써 광주의 아픔을 전세계인에게 전해준 5•18의 상징적인 사진중 하나이다.(우)<사진-518기념재단>    

 

https://www.youtube.com/watch?v=4iJ2acuwMhg

 

 

그 해, 서울의 봄은 길지 않았다.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암살되면서 민주화의 바람을 억누르던 유신체제는 사실상 종언을 고하게 된다. 마침내 찾아온 ‘서울의 봄’. 하지만 그해 봄은 길지 않았다. 국가 지휘권 부재를 틈타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것이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여 학생운동의 지휘부와 김대중을 비롯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 구속하며 자유로의 희망을 총칼로 짓밟은 것이다.

 


신군부에 저항하며 들불처럼 일어난 광주

 

계엄확대와 함께 대학가에도 군이 진주하면서 광주에서도 수십 명의 대학생이 연행된다. 18일 아침 전남대학교 앞에는 학생들이 모여들며 계엄군과 학생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였고 이후 흩어진 학생들은 광주역 앞에서 재집결, 시외버스 공용터미널과 금남로 일대에서 '김대중 석방하라', '전두환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파출소에 투석하는 등 경찰과 대치, 충돌한다.

 

군과 경찰은 시위를 한 학생들을 골목까지 뒤쫓아가 무자비하게 곤봉으로 구타하고 차에 태워 어디론가 싣고 가버린다. 이는 학생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분노하게 만들어 광주의 시위는 강경진압에도 불구하고 더욱 확산되기에 이른다.

 


시민에게 총을 겨눈 전두환 신군부

 

시민까지 합세한 시위대는 강경진압에 맞서 군경과 대치하였고 20일 밤에는 시외전화가 두절되어 광주는 철저히 외부와 고립되게 된다.  
 
5월 21일, 석가탄신일로 공휴일이었던 이날,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의 만행에 항의하기 위해 아침부터 금남로로 모여들었다. 전남도청 앞에서 군과 시민이 대치하는 가운데 오후 1시 계엄군은 시민을 향하여 사격을 강행했다. 군은 철저히 시민을 적으로 여긴 것이다.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던 시민 중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이때부터 시민들은 무장의 필요성을 느꼈고 예비군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장하기 시작하였다. 총격에도 굴하지 않은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밀린 계엄군은 퇴각하면서 무차별 발포하여 사상자를 내고 조선대 뒷산을 넘어 화순의 길목인 주남마을로 철수하며 광주에서 화순으로 이어지는 외곽도로를 차단하기에 이른다. 광주는 고립되었다. 
 


고립된 채 항쟁을 이어나간 광주 시민  

 

계엄군의 철수로 광주는 정부의 힘이 미치지 않는 상태가 되었지만 결코 무질서하지 않았다. 시민군은 자발적인 지도부를 형성하여 무기조작법과 무기관리 등 무기소지자의 통제 아래 훈련을 실시하였고 일반차량을 통제하는 등 일사불란하게 항쟁을 준비해 나갔다.

 

5월 22일에는 시민군이 도청을 장악하고 어지러운 거리를 자발적으로 청소하는 등 질서를 회복해가기 시작하였다. 시장과 상점들도 문을 열고 전기, 수도 등은 관련 공무원의 지원으로 해결되었다. 많은 부상자들 때문에 혈액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헌혈자가 잇따르는가 하면, 치안력이 없는 상황에서도 은행 같은 금융기관에 대한 사고는 한 건도 없었으며 금은방 등 일반 상점에도 별다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시민군과 항쟁지도부의 식사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 항쟁에 임하는 시민들의 이런 질서정연함은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시민군은 오직 폭군 신군부로부터 광주를 지키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싸운 것이다.

 


죽을 각오로 끝까지 항쟁한 광주 시민

 

한편, 5월 18일에 발발한 일들은 언론보도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전남일원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5월 21일의 집단발포 소식은 전남도민을 분노케 했다. 이에 화순 나주 영암 강진 무안 해남 목포 등 전남 일원으로 민주화운동이 확산되었다. 
 
상황 수습을 위하여 신부, 목사, 변호사, 교수 등 20여명이 나선 『5·18수습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계엄군과 협상에 나서지만, 신군부가 장악한 계엄사의 무성의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무기회수 문제도 수습대책위원회의 의견 불일치로 결국 무기반납을 거부하고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는 새로운 항쟁지도부 탄생으로 이어지게 된다.

 


마지막 요새, 도청을 향한 총소리

 

한편 강제진압의 뜻을 굳힌 계엄군은 결국 5월 26일 새벽, 탱크 등 중화기를 앞세우고 농촌진흥원 앞까지 진출하자 수습대책위원들은 일명 '죽음의 행진'을 감행하여 무력진압을 저지 만류하였다.

 

저녁 7시 계엄군의 침공이 감지되는 가운데 학생지도부에서는 시민군에 참여하고 있던 고등학생이나 여성의 귀가를 종용하고, 27일 새벽 1시 30분을 전후로 조선대학교 뒷산에서 최종점검을 마친 뒤 군이  시내 주요지점을 향해 잠입, 침투하기 시작했다.

 

새벽 4시가 지나면서 도청표적은 탱크와 중무장 헬기, 자동화기와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공수부대원들에 의해 시민군 말살 초토화 작전이 전개되어 작전개시 1시간 30분 만에 도청진압이 완료되면서 광주 시민의 피로 얼룩진 열흘간의 5.18 민주화운동도 막을 내리게 된다.

 


끝나지 않은 항쟁의 역사

 

광주민중항쟁이 있은 지 2년 뒤인 1982년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서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에 희생되었던 윤상원, 그리고 그와 함께 들불 야학을 하다 연탄가스로 먼저 숨졌던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기리기 위해 백기완 선생의 시를 기초로 황석영과 대학가요제 출신 김종률 등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었다. 이 노래는 훗날 민주화운동의 상징곡이 되었으며 매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불리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며 박근혜 정권이 탄핵으로 막을 내리기까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이 노래가 금기시 되며 시민사회의 공분을 샀다. 더욱이 학살자 전두환은 수많은 꽃다운 이들의 가슴에 총질을 해댄 처벌은 커녕 자신의 자서전에서 자신이 광주항쟁의 희생자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나아가 광주민중항쟁의 씨앗이었던 유신 독재자 박정희의 딸은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며 광주민중항쟁의 의미를 왜곡하려 하기도 했으니 지난 9년은 참으로 가혹하고 한탄스러운 시간이었다.

 


다시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

 

그러나 국민은 다시 역사를 만들었다. 기나긴 근현대사에 축적되어온 반민중 적폐 세력을 촛불 국민의 손으로 응징하고 비로소 다시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켰으며, 이윽고 문재인 정부는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제창하는 것으로 선포한 것이다.

 

비단 노래의 문제이겠는가. 우리에게는 광주항쟁으로부터 배운 역사를 다시 잊지 않은 것이 가장 중요한 숙제일 것이다.

 

다시 봄, 5월이 왔다. 다시는 이 봄을 빼앗기지 않으리라.


그날 오후 광주의 어느 거리에서, 그날 밤 어두운 도청의 귀퉁이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름 없이 쓰러져 간 넋들에게 이 노래를 바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 임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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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한완상 전 국무총리와 경향신문이 대담한 내용:
'
“사자가 여물 먹듯…갑이 체질 바꾸는 노력 필요”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172219005&code=210100#csidx448144e5b4aec26afcd037d7c3591b2


“9일 밤 10시30분쯤 당선이 유력하다는 보도를 보면서 전화를 걸었어요. 앞으론 이런 전화도 쉽지 않을 테니 마지막이라는 심정이었지요. ‘이번 대선이 한국 정치사 70여년에서 가장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했어요. 최초로 색깔론이 무효화된, 무력화된 대선이었다고 말이지요. 그런 정치공작과 통제가 드디어 시효가 끝났음을 선언한 사건이었다고요. 말 그대로 상전벽해의 감동이었습니다. 그 감동을 나누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신감을 드리고 싶었어요.”

16일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만난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81)는 “정말 감동적이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2차례 해직되고 옥고를 치른 그는 김영삼 정부 이후 통일부총리, 교육부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지냈다. 평생에 걸쳐 친일 냉전 수구세력의 색깔론적 공격을 받았던 그에게 이번 선거는 한국 정치사의 일대 사건일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남다른 감회로 다가온다.

그는 최근 회고록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를 내놨다. 책의 제목은 성경 ‘이사야’에서 따왔다.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는 세상은 촛불의 열망이 만들어내야 할 바람직한 세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의 음식을 먹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갑들이 자신의 본질을 비워내고 체질을 바꾸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새 정부에선 대통령부터 ‘소의 여물을 먹는다’는 자세와 마음을 보여주길 바라고 또 기대합니다.”


- 새 정부 출범 1주일이 지났습니다.

“지난 1주일을 보니 문 대통령이 자신감을 갖고 발걸음을 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촛불의 정신에 충실했던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만큼 촛불의 열망을 제대로 수용해 새 역사를 만들어 가야겠지요. 그것을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적폐청산입니다. 탄핵 심판이 내려지던 날에도 당시 문 후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절대 값싼 통합의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적폐청산이 반드시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적폐청산은 진실 규명을 통한 화해와 통합을 의미합니다. 청산이 우선되어야 바람직한 통합이 가능하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배설물, 쓰레기를 껴안고 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세월호 7시간을 비롯해 아직도 많은 것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무서운 죄를 지은 당사자들은 여전히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감춰진 진실을 밝혀 드러내는 것이 시작입니다.”

- 일각에선 반발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들 입장에서 봤을 때 분노하는 것이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들의 분노는 정당하다고 칭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기득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지, 옳은 것을 외치는 것은 아니니까요. 70여년간 한국을 지배해왔던 그들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그들이 알 수 있도록 조용하고도 착실하게 청산작업을 지속해야 합니다.”

- 소박하게 시작한 촛불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여전히 놀랍습니다.

“기적이죠. 기가 막힐 정도로 놀라운 일입니다. 촛불은 명예로운 혁명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수출한 서방 언론들은 하나같이 감탄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연 1700만명의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단 한 건의 사고나 폭력이 없었고, 평화롭게 정권을 교체했다는 건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어요. 서구 입장에서 봤을 땐 자신들에게 민주주의를 배워 간 후진국 한국이 이젠 흠모하고 쳐다봐야 할 대상이 된 것이죠. 전 우리 촛불시민들은 올해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21세기 서구 사회가 도무지 이룩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민주적인 명예시민혁명을 성공시킨 주체들이거든요. 우리 속에 이런 집단 지성과 감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어요.”

한 전 부총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가 신념을 지키고 색깔론의 공격에 굴복하지 않으며 정의와 평화운동을 지속해올 수 있던 데는 신앙이 바탕이 됐다. 그래서 더욱 가슴 아팠던 것은 탄핵 정국에 보인 기독교계의 모습이다.

- 세월호 사건 때도 그랬지만 이번 탄핵 정국에도 기독교계가 논란의 대상이 됐습니다.

“촛불시위 마지막 단계에 태극기와 성조기, 십자가를 든 군중들이 거리로 나왔지요. 정말 아프고 부끄러웠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증오의 몸짓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한국 교회에 예수도, 예수의 복음도, 우리를 자유케 하는 진리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지요. 십자가는 자기를 비우고 내려놓고 지워내는 용기와 실천의 상징인데 그들이 들고나온 십자가는 남을 박멸하고 패배시키겠다는 십자군의 그것이었습니다.”

-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개신교는 가톨릭의 잘못된 부분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로 시작됐지만 500년이 지난 지금 개신교는 예전의 잘못을 답습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됐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주기도문에 나와 있듯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는 것입니다. 즉 정의와 평화, 공의가 이 땅에 강물처럼, 단비처럼 흐르도록 하는 것이 기독교 신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복음에 담겨 있는 공공성이 감동을 주고 변혁적인 결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는 예수천당 불신지옥만을 외칩니다. 내 영혼이 천국 가고, 내 사업이 복을 받고, 내 몸이 건강하면 된다는 이기적 축복만을 강조합니다. 복음이 아니라 천박한 기복 종교의 모습이지요. 복음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세속적 물질과 권력을 따른 결과입니다. 실제 한국 교회는 소금의 역할은 고사하고 기득권의 부패를 촉진시키는 촉진제 역할만 하며 성장해왔습니다. 특히 한국 대형교회는 정신 차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는 이 시대 기독교 신자들의 역할을 설명하며 소통에 대해 강조했다. 국가와 시장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갑과 을 사이에 소통이 이뤄져야 하며 그 단계는 3가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낮은 단계는 상대의 입장을 머리로 아는 것, 다음은 가슴으로 공감하는 것, 가장 높은 수준이 앞서 언급한 사자가 여물을 먹는 것처럼 자신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갑들이 자신의 체질을 바꾸려는 노력의 정도가 그 나라의 선진적 수준을 보여준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 기득권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 새 정부가 떠안은 과제 중 북핵 해법이 시급해 보입니다.

“북한이 왜 핵개발을 하려고 할까요. 고립된 상황에서 체제 유지에 극도로 불안감을 느끼는 데 따른 것입니다. 내 생각엔 미국이 통 크게 결단을 한다면 북핵 문제도 해결되고 미국과 북한의 관계도 풀어질 것으로 봅니다. 미국이 북한 체제의 안정을 보장하는 대신 북한의 핵동결과 핵물질 비확산을 끌어내는 것이지요. 우리의 외교적 역량도 그렇게 발휘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러지 못했어요. 북한을 옥죄는 미국 뒤에 숨어 ‘북한 더 혼내주세요’ 하고 부추기는 식이었지요.”

김대중 정부 때 교육부총리를 지냈던 그가 주장한 것은 ‘학벌 타파’였다. 평소 가져오던 소신을 교육현장에 실현하고 싶었던 그는 기업체의 입사 서류에 학력란을 없애자고 제안하는 등 파격적인 정책들을 내놨지만 당시 기득권의 극렬한 반발에 부딪혀 좌절됐다.

- 교육 문제의 해법은 여전히 ‘학벌 타파’로 보십니까.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학벌처럼 ‘벌(閥)’자가 들어가는 단어들이 또 뭐가 있을까요. 재벌, 군벌, 족벌에 이어 최근에는 검벌까지. 소중한 재원과 자원을 독식하는 세력들을 일컬어 ‘벌’로 칭합니다. 이를 타파하는 것이 사회를 바로잡는 길이고 그 최전선에 학벌이 있습니다. 학교 교육을 통해 군벌이니 검벌 등이 계속 형성되는 것이지요. 제가 교육부총리 시절 강조했던 것이 교육을 통해 가르치고 길러야 할 인간상 3가지였습니다. 창조적 인간, 온정적 인간, 공익적 인간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인간상을 산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훨씬 교육환경이 나빠진 것 같습니다.”

그의 회고록에는 학자로, 공직자로 살아온 개인사와 한국 정치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의 개인사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과도 드라마틱하게 맞물린다. 여느 회고록답지 않게 겸허한 경어체로 서술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줍잖은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삶을 성찰할 때 필요한 거울 같은 역할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정치인이나 기성세대에게는 각성을 촉구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회고록이라기보다는 자괴록에 가깝습니다. 예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갔을 때 만델라의 동상에 새겨진 ‘그의 삶은 메시지였다’는 글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제 삶이 메시지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172219005&code=210100#csidxbe0be02256f7034968d67decbaa0359

광주현장님의 댓글

광주현장 작성일

문재인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제37주년을 맞아 내놓은 기념사의 핵심어는 '광주정신'과 '촛불혁명'이다.

새 정부가 한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던 5·18 민주화 운동과 지난해 박근혜 정권을 조기 퇴진시킨 '촛불혁명'의 토대 위에서 탄생한 정부임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5월 광주는 지난 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다"고 말했다. 촛불민심이 37년 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에 뿌리를 뒀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새 정부가 같은 5·18 정신의 뿌리에서 출범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이어받은 '민주정부'로서의 정통성을 부각했다.

눈물 닦는 문 대통령과 국회의장


(광주=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회의장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srbaek@yna.co.kr
문 대통령은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1987년 6월 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헌법에 5·18 정신을 반영해 5·18 정신을 국민 전체가 공유하는 '정신적 유산'의 반열에 올리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5·18 민주화운동이 더는 진보와 보수 간 이념 대결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새 헌법 전문(前文)에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지난해 촛불항쟁의 정신을 반영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유가족 위로하는 문 대통령
유가족 위로하는 문 대통령
(광주=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마친 뒤 5.18 때 희생된 문재학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srbaek@yna.co.kr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다. 이 자리를 빌려서 국회의 협력과 국민 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기념사를 통해 5·18 정신의 헌법 반영을 언급한 것은 '광주정신'과 '촛불혁명'을 관통하는 민주 세력의 연속성과 정통성을 부각하는 한편, 개헌 의지가 변치 않았음을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광주정신'과 '촛불정신'에 입각해 국민의 손으로 직접 세운 정부라는 정통성을 강조하면서 강력한 사회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5·18 관련 의혹의 진상규명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과거사가 정리돼야 사회 통합과 개혁도 가능하다는 인식에서다.


5·18 기념식 참석한 문 대통령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제37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유가족 등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minu21@yna.co.kr

실제로 기념사 곳곳에서 5·18 민주화운동의 위상을 높이고, 5·18 관련 진상규명도 철저히 하겠다는 의지가 묻어났다.

문 대통령은 먼저, 5·18 당시 계엄군에 발포 명령을 내린 자가 누구인지, 계엄군이 시민군을 향해 헬기 사격을 가했는지 등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5·18 당시 계엄군의 사격으로 건물 곳곳이 파손됐던 전남도청 구청사의 복원 문제를 광주시와 협의하는 한편, 5·18 관련 자료의 폐기와 역사 왜곡을 막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5·18 관련 역사 왜곡을 언급한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달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에서 "5·18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기술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광주=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등 참석자들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고 있다. srbaek@yna.co.kr
'님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서는 "5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이자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라고 평가하면서 "오늘 '님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은 그동안 상처받은 광주정신을 다시 살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인 12일 '2호 업무지시'를 통해 2009년부터 5·18 기념식에서 '합창' 형식으로 불린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광주시민에게도 아픔을 딛고 정의로운 국민통합에 앞장서 달라고 부탁했다.

문 대통령은 "광주의 아픔이 아픔으로 머무르지 않고 국민 모두의 상처와 갈등을 품어 안을 때, 광주가 내민 손은 가장 질기고 강한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언론님의 댓글

진보언론 작성일

[민중의 소리-사설] 다시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

오늘은 37주년을 맞는 광주항쟁 기념일이다. 정권교체를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서 열리는 기념식에서는 지난 9년여간 논란이 되어왔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모든 참석자들이 함께 부를 수 있게 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피어린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사회 진보를 향한 염원을 압축한 노래다. 이 노래를 다시 부르는 오늘의 심정이 각별한 이유다.

광주항쟁은 이미 정부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됐고, 2011년엔 관련 기록물 모두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광주항쟁에 대한 극우세력들의 훼손 시도는 끝없이 이어져왔다. 인터넷에는 ‘당시 시민군이 먼저 발포했다’, ‘북한군 특수부대가 침투해 일으킨 폭동이다’는 허위 주장이 떠돌고 있고, 심지어는 지난 정부의 국정원장을 지낸 인사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이런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5.18 유공자들의 자녀가 공무원 채용에서 ‘싹쓸이’를 한다는 황당한 내용도 나온다.

극우세력들이 광주항쟁을 훼손하려는 이유는 광주정신이 가진 진보성을 폄훼하려는 데 있다. 광주는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고, 착취가 있는 곳에 투쟁이 있다는 인류 보편의 정신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선 광주 시민들의 투쟁은 1980년대 내내 우리 민족민주운동, 진보운동의 지탱하는 근간이었고, 19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이끌어낸 발원지였다. 지금도 저항과 투쟁에 나선 이들이 하나같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전야제도 광주정신의 현재성을 그대로 말해줬다. 5.18 유족과 함께 무대에 오른 세월호 유가족들, 백남기 농민과 함께 싸웠던 농민들, 사드 배치 저지에 나선 원불교 인사들이 그들이다. 이들에게 광주는 여전한 오늘이며, 이들의 목소리가 실현되는 세상이 ‘대동세상’일 터이다.

그렇기에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기념 행사장 안에서 박제화된 노래로 남을 수 없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광주항쟁 기념식에서조차 밀려났던 이 노래는 그러나 전국 어디서나 불려왔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이 노래를 박물관으로 보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삶과 투쟁의 모든 현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더욱 힘차게 부르자.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님을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은 정우택을 비롯 자유당 인간쓰레기들을 모두 목을 매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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