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선생, 한국서 어처구니 없이 추방돼 도착성명 > 사회, 문화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4월 16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사회, 문화

이종현선생, 한국서 어처구니 없이 추방돼 도착성명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6-05-16 05:57 조회13,239회 댓글16건

본문

양심적인 해외동포의 한국입국을 가로막는 사건이 터져 박근혜정권의 반인륜적, 반인권적, 반민주적 폭거가 또다시 국내외 동포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독일동포 이종현 선생부부는 최근 한국의 민주운동단체 초청으로 서울을 방문했다가 민주운동을 한것을 트집잡아 국정원과 공안당국이 그의 고향방문의 기회를 박탈하고 그리운 고국땅에서 추방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1965년 파독광부로, 광산 근무 후에 듀이스부어크 공대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 바쁜 중에도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하여 헌신하신 분이며 독일인과 결혼하여 슬하에 의학 / 공학 박사  두 자녀들과 손주를 둔 안정된 가정의 가장이며 지금까지 자유롭게 조국을 왕래하여 왔고, 그 어떤 위해도 가할 수 없는 80대 원로인데다 위험인물로 지적받을 아무런 근거도 없는 해외동포의 고국땅 입국을 막은 박근혜정권이 도대체 자유민주주주의니 인권이니, 민주주의니 말할 자격이 있는가를 반문하며 해내외동포들의 분통을 자아내고 있다.입국불허로 독일로 돌아오자 도착성명을 발표한 내용과 한국 민주화운동단체 성명을 여기게 게재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독일동포 이종현선생, 어처구니 없이 추방돼 도착성명

[독일=민족통신 종합].독일동포 이종현 선생은 최근 한국의 민주운동단체 초청으로 서울을 방문했다가 민주운동을 한것을 트집잡아 국정원과 공안당국이 그의 고향방문의 기회를 박탈하고 그리운 고국땅에서 추방된 사건이 발생해 국내외 동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그는  1965년 파독광부로, 광산 근무 후에 듀이스부어크 공대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 바쁜 중에도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하여 헌신하신 분이며 독일인과 결혼하여 슬하에 의학 / 공학 박사  두 자녀들과 손주를 둔 안정된 가정의 가장이며 지금까지 자유롭게 조국을 왕래하여 왔고, 그 어떤 위해도 가할 수 없는 80대 원로인데다 위험인물로 지적받을 아무런 근거도 없는 해외동포의 고국땅 입국을 막은 박근혜정권이 도대체 자유민주주주의니 인권이니, 민주주의니 말할 자격이 있는가를 반문하며 해내외동포들의 분통을 자아내고 있다.

 독일동포 이종현선생 부부는 입국불허로 독일로 돌아오자 도착성명을 발표한 내용과 한국 민주화운동단체 성명을 여기게 게재한다.

이종현 선생과 부인 우술라 여사 독일 도착 성명서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 


내 인생 마지막 고국 방문으로 여기며 설렌 가슴으로 도착한 인천공항. 그러나 현 공안정부는
저희 부부에게 부당한 입국 불허를 명하고, 급기야는 강제추방 시켰습니다. 해외 동포의 입국을 
아무런 명분없이 가로막은 것은 반인권적이며 반민족적 작태임에 분명합니다. 

평생 조국의 평화를 염원하며 실천한 저희 부부에게는 정체성 그 자체가 파괴된 듯한 아픔과 
실망이 엄습해 있습니다. 이는 인간 존엄성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국가 권력의 큰 범죄로서,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거스른 세계적 비난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희 부부는 5.18기념재단의 공식 초청으로 재유럽한인 민주세력을 대표하여 당당하게 입국
하였습니다. 올해로 팔순을 맞이하는 저는, 심장 주치의사의 장거리 여행 만류에도 불구하고, 
36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치루어온 재유럽오월민중제를 알리기 위해 고국방문을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현 정권은 우리를 조국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자”로 분류하여 공항에서부터 가로
막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시간 여행한 우리를 이틀동안이나 억류하였습니다. 

저는 1965년 파독 광부로 와서 독일인 처를 만나 가정을 일구어 살며, 한시도 조국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또한 광주로부터 비롯된 자유와 민주에 대한 우리 민족의 열망이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지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공유하고, 뼈에 사무치도록 사랑하였기에, 나의 고국 땅을 마침내 
밟고자 했습니다. 

그런 나의 조국이 어찌하여 저희 부부를 강제 출국시켜야만 한단 말입니까?
저의 강제 출국은 반민주적인 박근혜 정권이 해외동포를 탄압하기 위한 비열한 수단이자 
금년 5.18광주 행사를 방해하려고 하는 무지한 술법임에 분명합니다. 

저는 국내 양심에 호소 합니다.
해외 동포를 분단의 희생양으로 제발 삼지 말아 주십시오.
조국이 부끄럽고, 우리의 처지가 억울하여 이렇게 항의합니다 !!

1. 현 정부는 저희 부부 입국불허 사유를 명백히 밝혀라!

2. 강제출국을 조장한 국정원은 사과하라!

3. 해외동포의 자유로운 고국 방문을 허용하라!


저의 강제 출국을 보도하여주신 국내 언론과 입국을 위하여 수고 하여 주신 5.18기념재단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충격적 사태에도 불구하고, 저희 부부는 조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남은 일생을 더욱 불꽃처럼 태우며 살아 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5월14일
이종현 & 우술라 올림


  
  

사진 뒷줄 가운데 안경쓰고 흰 머리에 검은 와이셔츠를 입은 사람이 이종현 님입니다.



......................................................성 명 서...................................................................

.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재유럽오월민중제를 대표하여 초청받은 이종현 선생님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이 거절되어 공항에 억류되어 있으며 내일 강제추방을 당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

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종현 선생님은 1965년 파독광부로, 광산 근무 후에 듀이스부어크 공대를 졸업하고 다시 직장생활을 하셨다. 

바쁜 중에도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하여 헌신하신 분이며 독일인과 결혼하여 슬하에 의학 / 공학 박사 

두 아드님과 손주를 둔 안정된 가정의 가장이다. 지금까지 자유롭게 조국을 왕래하셨고 어떤 위해도 가할 

수 없는 80 노인이다. 위험인물이 결코 아니다.


1997년 이래 518 민주화운동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식에 공식으로 초청받은 

인사가 공항에서 입국이 거절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뜻을 

같이하고, 조국의 민주화와 평화적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지금까지 36년 동안 재유럽오월민중제를 열고 있다.


조국의 민주인사들도 참여하고 이번 베를린에서 열리는 제 36주년 재유럽오월민중제에도 518기념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국내인사들도 참여할 예정이다. 우리는 합법적이고 정당하게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그런데 왜, 국가행사에 공식적으로 초청받은 우리 대표를 입국하지 못하게 하는가?


우리는 강력하게 요구한다.


1. 구체적인 입국거부사유를 밝혀라!


2. 해외동포의 자유로운 고국방문을 허용하라!


위의 요구가 즉각 이루어지지 않으면 국내외 양심인들과 연대하고 세계여론에 호소하면서, 이러한 

부끄러운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조처를 강구하겠다.


2016년 5월 12일

재유럽오월민중제 36주년 준비위원 일동


 

2012년 6월16일 민족통신 특파원이 독일현지서 인터뷰한 보도자료:

[기획-17]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이종현선생과 우즈-라 여사 방문
 글쓴이 : 민족통신
   
[독일 보흠=민족통신 손세영/노길남 특파원]국적과 인종이 달라도 코리아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분이 유럽의 한국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운동에 헌신해 온 이종현선생의 부인 우즈-라 여사이다. 60년대와 70년대의 한국상황은 박정희군사독재 정권의 민권탄압으로 할말도 제대로하지 못하고 살던 암흑시대였다. 특히 박정권의 긴급조치들이 남발되었고, 의식있는 지식인들에 대한탄압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살벌한 시대로 회고된다. 








 [독일 보흠=민족통신 손세영/노길남 특파원]국적과 인종이 달라도 코리아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분이 유럽의 한국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운동에 헌신해 온 이종현선생의 부인 우즈-라 여사이다. 

60년대와 70년대의 한국상황은 박정희군사독재 정권의 민권탄압으로 할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던 암흑시대였다. 특히 박정권의 긴급조치들이 남발되었고, 의식있는 지식인들에 대한 탄압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살벌한 시대로 회고된다. 

이종현선생은 1936년 9월7일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영등포공고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일찌기 1956년 죽산 조봉암선생의 진보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진보운동에 가담하면서 이승만 자유당 정권으로부터 그리고 박정희 군사정권으로부터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이종현선생은 1965년 이른바 도망유학 형식으로 독일로 갔다. 그리고 1968년 뒤스부르크 공과대학 기계공학을 전공하며 독일대학에 재학하던 중 인연이 된 독일여성 우즈 라와 인연이 되어 1968년 결혼했고, 뒤늦게 1973년 졸업하고 그후 독일시민이 되어 줄곧 독일회사에 근무하다가 지난 1998년 은퇴했다. 

그는 독일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한국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 운동에 참여했다. 1975부터 1990년까지 재독한인노동자연맹 창랍회원이며 위원장직을 역임했고, 77년부터 95년에는 한독위원회 창립회원으로 이사로 활동했고, 1985년에는 재유럽민주민족통일한국인연합 회원으로 그리고 사무국장으로 활동했고, 1991년에는 재유럽민족민주운동협의회 의장, 1993년에는 코리아협의회 창립회원으로 그리고 부의장으로 활약했고, 한민족유럽연대의 의장으로 오랜동안 일해오다가 3년전 최영숙선생에게 의장직을 승계시키고 지금은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IMAGE##> 그는 이런 애국 운동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 당국은 이러한 인물들의 고향방문을 가로 막아 왔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 전두환정권, 노태우정권, 김영삼정권 시대에는 해외통일운동 인사들이 한국을 방문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종현선생은 1990년 7월 조국통일범민족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회의가 한국에서 열렸는데 이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약간의 불안감을 가진 상태에서 귀국을 결심했다. 그것이 고향을 떠난지 22년만이었다. 해외동포대표들이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수십명의 사진기자들이 카메라 후레쉬를 터뜨리고 있었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 오는 줄 았았는데 알고 보니 평소에 출입금지된 해외동포들이 대거 도착하는 것을 촬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된 것은 당초 노태우정부가 북측 대표단이 판문점을 통해 남측으로 들어오도록 해 놓고 갑자기 정책을 바꾸어 북측대표들의 남측방문이 좌절되자 기자들의 관심이 해외동포들에게 쏠렸던 것이다. 김포공항 앞에는 해외동포들을 환영하는 인파들이 들끓었고, 대기했던 버스는 크리스천 아카데미로 향했다. 그곳에는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들로 둘러쌓여 있었다. 이들은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도록 경계망을 치기도 했다. 나중에 독일로 돌아온 이종현선생은 한국 동생에게 전화했을 때 제수씨가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간청했다는 것이다. 정보부원들이 동생가족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이종현선생은 그후 전화를 걸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고향 떠난지 오랜 세월을 보냈다. 독일시민이 되어 이곳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산지가 어언 반세기에 가까워 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인 우즈 라 여사와의 사이에 낳은 자녀는 두 아들이 있는데 이들은 장성하여 큰 아들은 의사이고, 작은 아들은 물리학박사이다. 

 이 가정을 잘아는 주위동포들은 이종현선생의 부인 우즈라 여사를 가리켜 “코리안보다 더 코리안 같다”라고 칭찬한다. 남편 친구들(주로 통일운동권 국내외 인사들)이 집을 방문하여 밤늦게까지 있어도 전혀 불평이 없고, 손님들이 새벽이 되도록 자지 않고 있으면 손님들 뒷켠에 앉아 신문을 보고, 책을 보며 끝까지 필요한 일을 돕는다고 한다. 기자들이 방문한 날도 그렇게 처신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부인은 독일여성이면서도 우리나라 음식을 배우고 연구하여 코리안여성들 못지 않게 코리안 음식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있다. 실가는데 바늘간다고 이종현선생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우즈라 여사가 있다. 이 부부도 남과 북을 하나의 조국으로 간주하며 평화통일의 그날을 무척 고대하고 있다. 이 부부는 가정에서 한 쌍의 원앙새처럼 보인다. 우주 라 여사는 얼굴이 다르고, 우리말 구사력은 서툴지만 이미 코리안여성이 되었다. 두분의 대화속에 ‘여보’라는 우리말이 오고갈 때 이 부부는 이미 인종도 초월하고, 이념도 초월한 사랑의 부부라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남과 북도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면 서로 사상과 이념, 신앙과 정견이 다를지라도 하나의 조국을 이룰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준다.


*연락처: 

049-0203-446948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밀영님의 댓글

밀영 작성일

성명서 발표해도 입국 불허가 철회 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대한 민국 법을 지키든지 입국 불허를 감수 하든지
양자 택일만 있습니다

원 저런님의 댓글

원 저런 작성일

로인님.대할망국이 외세에겐 무사통과지만 애국동포에겐 금지됫지요
그럼 가보지 못한  북에 한번 다녀 오세요
민족의 넋과 동포애가 차구 넘칠거예요
지난날 반공일선에 섯던 사람도 애국.애족의 마음1퍼센트를
크게여겨 극빈으로 반겨 주고 고국에 묻히게
해주엇어요

음음님의 댓글

음음 작성일

대한 민국 국적을 버리고 외국 국적을 취득하였다면

외국인 기피 대상에 해당 되어 입국 불허 당했네요 

북쪽에 가면 당 간부 대접을 받으니 북에 가세요

남쪽에서는 대한 민국 국적을 버린 님을 외국인 취급하여 받지 않습니다

%%%%%%%%%님의 댓글

%%%%%%%%% 작성일

이남에선 미국놈이 사람깔아죽여도 찍소리 못하지만
바른 소리하는 사람은 늑대가 되서 깨물어요
반대로 이북에선 탈북햇던 사람도 살기 어려워
다시 돌아오면 죄를묻지 않아요

관새님의 댓글

관새 작성일

탈북 했던 사람이 재 탈북 해서 돌아온 경우도 있지 않나요 ?

관새님의 댓글

관새 작성일

남과 북은 하나의 조국 이라는 신념 이라면

남측에서 받지 않으면 북측의 김정은 체제에 가서 살면 됩니다

허허 그 녀석님의 댓글

허허 그 녀석 작성일

조국이란 상처입은 자식 짐스럽다 탓하지 않고 더 따뜻이 품어 주는 어머니품이다.

관새님의 댓글

관새 작성일

남측에 가면 북한의 법에 의해 조국을 배신한 죄로 처벌 받기 떄문에

남측에 가지 말고 북측의 김정은 체제인 조선 인민 공화국의 품에 가서 사세요

탈북자님의 댓글

탈북자 작성일

머저리.탈북이란말 다시배워. 한국에서 탈출한건 재탈북이아니라 탈남이야.
알겟니 꼬마. 하지만 성격은 달라. 고향이 더 살기 좋앗다는걸의미하지.

관새님의 댓글

관새 작성일

독해력이 얼마인가 ?

북한에서 탈북해서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가 북한에 재 입북 해서 기자회견 까지 하고 재 탈북 해서 한국으로 돌아온 경우를

탈북했던 사람이 재 탈북해서 돌아온 경우도 있지 않나요 ? 하고 물었는데 아이큐가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장황하게 설명 해 주어야 이해 하겠냐 ?

쯔르쯔쯔르님의 댓글

쯔르쯔쯔르 작성일

그래요 죄지은 자식 불효자식.병신자식도 탓하지 않고 용서해주고 더욱 깊이 품어주고 잇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야말로 해외동포들의 가닿을수 잇는 진정한 조국이며 민족애를 느낄수 잇어요

관새님의 댓글

관새 작성일

결론은 북한에 가서 사세요

호호호님의 댓글

호호호 작성일

관쌔님. 조국을 3번바꾸는게 온전한대가리에 싸람쌔끼루 보여요.
그게 사람으루 보이문 니 아이큐는 짐승과 같단소리구나

관새님의 댓글

관새 작성일

조국을 3 번 바꾸 다니요 ???

님들은 남과북을 하나의 조국이라고 주장 하지 않나요 ?

님은 북한 김정은 체제도 조국인데 북한 가서 살라는 소리에 왜 흥분 하나요 ? ㅎㅎ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민주인사들이 해외로 쫓겨나는것에 대해서 호호호 하하하 허허허하며 좋아할것같은 사람은 바로 극우탈북자들이죠~!!!!

관새님의 댓글

관새 작성일

해외로 쫒겨 나간 것이 아니라 대한 민국 국적을 포기 하고 외국인이 되어 입국이 금지 된 것 입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