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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김형근 통일교육교사의 불꽃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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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5-10-02 23:36 조회15,349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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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통일교육교사의 불꽃같은 삶

 

 

 

 

▲ 김형근 선생 영정 

 

▲ 김형근 선생 약력     © 자주시보

 

함께 전교조 참교육 운동을 해온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윤한탁 명예의장은 고 김형근 선생에 대해 가장 열심히 통일교육을 실천한 교사라고 말했다.

 

“김형근 교사만큼 통일교육을 열심히 진행한 교사는 없을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직접 학생들에게 6.15남북공동선언의 내용과 의의를 깨우쳐주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 처지와 조건에서 그 공동선언을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학생들과 함께 적극 모색하였습니다.”

 

김형근 교사가 지도했던 관촌중학교 학생들은 6.15공동선언 전문 외우기 운동, 북녘의 학생들에게 수천통의 편지를 써서 인터넷 상에 공개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등 남북동질성 회복 남북 동포애 고양 교육에서 큰 성과를 일구어 내었다. 이런 공로를 정부에서도 인정하여 표창까지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이렇게 분단에 파열구를 내고 통일을 앞당기는데 큰 역할을 하는 통일교육을 실시하자 조선일보 등 수구세력들이 이를 문제삼기 시작했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빨치산 찬양교사로 매도하면서 이후 끊임없는 재판에 시달려야 했으며 투병 중에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계속 받아야 했고 영면의 길에 들어선 지금도 재판이 예정되어 있다. 피고인도 없는 재판을 계속 진행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김형근 교사는 이런 탄압에 굴하지 않고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국가보안법과 끝까지 싸울 것이며 기어이 살아 조국의 통일을 꼭 안아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여러 언론 대담에서 똑똑히 밝혀왔다.

 

 


전주 ‘평화와 통일을 여는사람들’ 이재호 사무국장은 김형근 통일교육교사의 생을 한 마디로 “불꽃같은 삶”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의 삶을 남김없이 조국과 통일을 위해 바쳤습니다. 청춘시절에서부터 감옥에 끌려가 모진 고문도 이겨냈으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바쳐 오직 통일을 위해 살다 갔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형근 통일교육교사는 '김형근아카데미아 논술학원'을 아주 잘 운영하여 많은 학원생들을 서울대도 보내는 등 명성도 얻었고 돈도 많이 벌었었기에 개인적인 안락한 삶에만 안주하려 했다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었는데 참교육을 하겠다고 늦깎이 교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뜻을 안고 서게 된 교단이었기에 김형근 교사는 아이들과 관계도 특별했다. 개별 가정방문 다 하여 학생들의 구체적인 형편도 깊숙이 파악하고 늦게까지 남아서 돌보고 가르쳤으며 방학 때도 학교에 나가서 학생들을 돌보았다. 한 여름에 학생들 더위에 공부하기 힘들어 하면 대야에다 물 떠서 발도 씻겨주는 등 온갖 사랑을 다 주었다.

 

특히 김형근 통일교육교사는 지식이나 신념을 집어넣어주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 안에 있는 것을 끌어내는 것이 교육이라며 아이들의 자주성을 존중해주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6.15공동선언 전문 암송, 남과 북 학생들 편지교류도 모두 그렇게 학생들 스스로 뜻을 세우고 실천에 나서게 유도했었던 것들이다.

 

김형근 교사를 아끼는 지인들은 그러다보니 보수세력들로부터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악독한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며 이런 싸움 과정에서 병이 생기고 깊어간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더욱 분하다고 했다.

 

▲ 김형근 선생의 아들     © 자주시보

 

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민철 아들도 아빠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아빠의 뜻을 이어갈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아빠는 늘 바쁘게 돌아다녔습니다. 초등학교 때도 감옥에 잡혀가신 아빠를 보러 엄마랑 면회를 다녔던 기억이 많습니다. 어쩔 때는 경찰들이 아빠를 만나지도 못하게 해서 엄마가 막 싸워서 경찰서에 들어간 적도 있습니다. 워낙 일상적인 일이어서 초등학생이었지만 아빠가 잡혀갔다고 해서 충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빠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청소년 시기엔 아빠랑 갈등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통일을 위해 일을 하시느라 그런 것이기에 이젠 이해를 합니다. 아빠가 지리산 산골에 거처를 마련하고 투병 중일 때 여자 친구와 함께 찾아갔는데 그렇게 좋아하셨습니다. 마지막에 아빠에게 작은 기쁨이나마 드릴 수 있어서...”

 

김형근 교사는 이렇게 떠났지만 그의 제자들과 아들의 가슴 속에서는 조국통일의 의지가 계속 자라나고 있다. 많은 제자들이 빈소를 찾아와 고 김형근 통일교육교사의 추모 동영상을 만드는 등 추모제 준비를 하는 모습만 봐도 그의 삶이 얼마나 값 높은 삶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기사출처: 이창기 기자 자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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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김형근 선생님의 아들 참말로 잘생겼네요? *^^***** 진짜 배우해도 될것같은 외모얘요~!!!!! 현재 약사로 일한다는데 앞으로도 열심히 일잘하시기를....!!!! 저런 약사가 있다면 젊은여자들이 와서 약사는일이 즐거웠을것같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나도 만약에 아프면 김형근선생님의 아들인 김민철약사가 근무하는 약국에 가서 약사고싶어~!!!! ㅠㅠㅠㅠㅠㅠ

자주통일님의 댓글

자주통일 작성일

왕의(신인식)선생님께 효량(김형근)의 사과문은 이미 그들의 과거사로 음해의 재발은 형극입니다 http://blog.daum.net/123sis/97
 
존경하는 왕의선생님께

최근 저의 불찰로 인해 무례했던 점을 먼저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동안 왕의선생님을 따라왔고 앞으로도 조국통일까지 같이 가고 싶습니다.

조국통일의 열정과 헌신성이 누구보다 뛰어나신 선생님께
몇 가지 오해를 하신 것에 대해서 진실을 밝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왕의선생님 글을 삭제한 것은 왕의 닉네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왕의선생님인 줄 모르고 삭제를 한 것입니다.
글 내용이 한명숙에 대한 내용 같은데, 닉네임도 이상했고,
내용 또한 기존 게시글에 신문기사의 내용이 반복되어서 삭제를 한 것입니다.
삭제를 하며 예의상 '회원이 아니어서 삭제합니다'라고 쪽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그동안 카페에서 왕의선생님 말씀을 따라왔습니다.
카페를 인수 받으라 하시면 인수 받고, 운영자를 누구로 하라시면 누구로 하고
게시판을 바꾸라시면 바꾸고, 통일대학을 만들라 하시면 만들었습니다.
제가 일을 하고 있는 관계로 시간은 좀 굼떴을지언정 원하시는 대로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최근 제가 일을 잠시 쉬고 있는 조건에서
왕의선생님의 요구와 행동을 제가 따라갈 수 없는 현상을 많이 발견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24일 행사에 관한 것을 왕의선생님께서 먼저 공지로 올리셨습니다.
또 ‘누구나 한줄’란을 ‘통일기자 한줄(소식)’으로 바꾸신 것 등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왕의선생님의 결정을 쫒아가느라고 허겁지겁하였습니다.
특히 통일대학에 관한 결정에서는 왕의선생님께서 탁월한 판단이셨지만,
그 내용을 채워가야 하는 저에게는 너무 준비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왕의선생님에게 최소한 카페에서 책임을 지신 분들이 무슨 일을 할 때 토론을 하고 집행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이후 몇 가지 또 선생님께서 일방적으로 진행시키신 일(지도위원 문제 등)이 있어서 왕의선생님께 메일을 드렸습니다.
메일이 오고 가는 중에 선생님께서 뜻밖에 카페에 공지를 내시고 저에게 청구서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왕의님께서 올리신 카페의 공지는 봄호수님의 요구가 있어 삭제를 했고, 선생님을 찾아가 직접 만나서 당시까지 있었던 오해를 풀고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 서로의 갈 길을 가면 된다 하시기에 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카페에 관한 모든 일에 운영진들의 합의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또 인신공성 내용을 카페에 올리신 것을 보고 당혹스러웠습니다.
마치 제가 무슨 커다란 잘못이 있는 양 비추어지는 것도 억울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저의 부족함으로 비롯된 것입니다.
선생님을 더 설득하고 더 이해를 해서 같이 했어야 했는데...
왕의선생님이 보시기에 잘못이 있다고 한다면, 저의 미욱함 때문이지 저의 진정은 아닙니다.
선생님을 그동안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앞으로 선생님께 어떤 결정을 하든 존경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선생님 말씀대로 통일된 조국의 광장위에서 만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2009. 12. 17. 효량올림

자주통일님의 댓글

자주통일 작성일

"한국이 싫어" 北망명시도 의사 집행유예

등록 일시 [2011-04-28 10:34:06] 
       

【서울=뉴시스】박유영 기자 =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 김형배 판사는 28일 북한으로 망명을 시도한 혐의

(국가보안법 상 잠입·탈출)로 구속기소된 의사 신모(60)씨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3

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을 명했다.

신씨는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된 지인들과 함께 지난해 2월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망명을 기도했지만 실패하

고 한국으로 귀국, 공안당국에 적발된 이후 기소됐다. 이들은 공안기관의 수사과정에서 "한국이 싫어 북한으

로 가려했다"고 자신들의 망명이유를 설명했다.

신씨는 국내에서 북한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정당 창설도 준비했으며, 당 구성 준비작업을 위해 2009년 8월

스웨덴에 거주 중인 북한 인사의 집으로 지인들을 보내 주체사상을 배우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해 12월에는 전주 모악산 소재 김일성 시조묘를 방문해 "경애하는 수령님 만세, 위대하신 장군님 만세"

등을 제창하며 북한에 대한 충성도 다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10428_0008050512&cID=10203&pID=10200



법무부 공무원도 北 찬양글

종북카페 운영 前육군대위 구속 기소

김동은 기자 입력 : 2011.11.24 17:31:26 
 

법무부 직원ㆍ육군 예비역 대위 등 국가 안보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사람들까지 종북 사이트 활동을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대구지검 김천지청(지청장 이석환)은 종북 사이트에 가입해 지속적으로 북한 체제 찬양글을 올리고 이적표현물을 퍼나른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법무부 교정공무원 A씨를 조사 중이라고 24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A씨가 북한 체제에 대한 확신을 갖고 활동했는지, 심심풀이로 활동했는지 등을 조사 중에 있다"며 "올린 글과 횟수 등을 분석하고 이적단체에서 활동한 경력은 없는지 등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도 이날 국내 최대 규모의 종북 인터넷 카페인 '세계물흙길연맹'을 운영하면서 이적표현물을 게시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방 모씨(48)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방씨는 지난해 5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카페 자유게시판에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찬양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이적표현물 379건을 게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방씨는 대학 졸업 후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해 소위로 임관한 뒤 7년간 장교로 복무하다 대위로 전역했다.

매일경제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762433

양심수님의 댓글

양심수 작성일

http://blog.daum.net/skxogkswhl/17958932

눌러서 계속 보시면 놀라운 사실입니다

교수님의 댓글

교수 작성일

모함을 하다가 참으로 안타까운 임종입니다 
 
효량의 배신 아류들로 인하여 사이비진보가 몰락한 이유입니다

존경하는 봄호수 김태정 선생님

기념비 사업은 완료단계입니다

통일의 환영대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http://blog.daum.net/123sis/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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