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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경원 범남 전 사무처장 30일 4년형기 채우고 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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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5-31 14:51 조회3,6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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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원 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이 4년 형기를 모두 채우고 30일 새벽 5시 경북 안동교도소의 감옥문을 나서고 있다.     © 강경태 기자


"반드시 통일세상을 이루어 내자"
범민련 남측본부 이경원 전 사무처장, 4년 만기출소



  
5월 30일 새벽 5시, 안동교도소의 철문이 열리면서 젊은 통일운동가가 4년의 형을 꼬박 채우고 가족들과 동지들 품으로 걸어왔다. 
  
범민련 남측본부 이경원 전 사무처장은 2009년 5월 7일, 범민련 남측본부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벌어지던 당시 이규재 의장을 비롯한 6명의 범민련 남측본부 간부와 함께 구속되었었다. 
  
이후 2009년 11월 27일 통신비밀보호법 위헌심판청구신청이 받아들여져 보석으로 석방되었다가, 2011년 12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25 합의부(재판장 한창훈, 김정환, 최문수) 1심 선고공판에서 법정 구속되어 4년의 형기를 모두 채우고 감옥문을 나섰다. 
  
이른 시간임에도 안동교도소 앞에는 범민련 남측본부, 통일광장, 한국진보연대,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원들과 대구·경북, 서울, 안산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모인 150여명이 꽃다발을 들고 동지가를 부르며 이경원 전 사무처장의 출소를 환영했다. 
     
지난 11월 28일 3년 6개월의 형을 꼬박 채우고 출소했던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은 환영사에서 “갈라진 조국을 통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고통을 안겨주는 고약한 권력과 저들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하며 “저들의 만행도 잊지 말고 오늘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면서 “언젠가는 통일도 오늘처럼 우리 앞에 다시 올 것이므로 좀 더 열심히 통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조국통일운동에 매진하자”고 강조했다.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오늘 이 자리는 이경원 동지의 출소환영회지만 전국의 많은 통일일꾼들이 오셨기 때문에 통일한마당으로 오늘 이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며 “자주와 대단결로 반드시 통일세상을 이루어 내자”고 당부했다.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이규재 의장을 비롯한 범민련 일꾼들이 자기 역할, 자기 할 일, 자기 책임을 다한 것’에 대해 언급하며 “변절과 야합의 시대에 떠돌아다니는 낙엽처럼 함께 가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는 것은 비록 가시밭길 이었지만 우리들의 사상과 양심 속에서는 꽃방석이었다”며 “장구하고 고단한 세월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승리를 위해 달려가는 범민련의 정신을 배우자”고 밝혔다. 
  
한기명 범민련 대경연합 의장은 이른 새벽임에도 안동교도소에 모인 전국의 동지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4년을 굳건히 견디고 나온 이 전 처장의 건강을 각별히 챙겼다.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자주와 통일의 대전환기로 만들기 위해 함께 실천하며 노력하자”며 환영의 인사를 보냈다. 
  
김종일 서울 평통사 대표는 건강에 유념하면서 활동력을 잘 조절해 줄 것을 당부하고 “6·15와 7·27, 8·15를 뛰어넘는 민족대단결의 장을 올해에 기필코 열어나가자”고 호소했고, 윤기진 민권연대 공동의장은 “여러 가지 난관이나 조건의 어려움이 있지만 전 민족적으로 지금처럼 희망적이고 큰 힘을 가진 적은 없다”며 “자주통일의 길에 큰 열매와 결실들이 차려질 것”이라는 의견을 말했다. 
  
이 날 출소 환영식에는 희망새와 가수 박종화씨가 ‘강철은 따로없다2’, ‘갈 길은 간다’를 부르며 환영의 분위기를 더했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를 감옥으로 보낸 아들은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버지의 가슴에도 못 미치던 키가 이제 손가락 한마디 차이도 나지 않게 자란 이 전 처장의 아들(17)이 편지를 낭독했다. 
  
“아빠가 겪은 고통이 상상이 잘 안되긴 하지만 아빠가 무척 힘들었다는 건 알고 있어요”라며 “매일 보던 우리를 한 달에 한 번 또는 화면으로 한번 보면서 작은 방 한 칸에서 긴 4년을 보낸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며 “오늘이 아무래도 살면서 제일 아름다운 새벽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편지를 읽어내려 갔다. 
  
이 전 처장의 아내는 “법정 구속될 당시 아이가 6학년이었는데 아빠가 다녀올 거라고 인사하고 갔던 그날 돌아오지 못했다”고 회상하며 그러나 4년여의 시간을 원로선생님들과 선배, 후배, 친구들, 마을공동체 분들께서 함께 해주셔서 버틸 수 있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밝혔다. 
  
가족들의 인사가 끝나고 이 전 처장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그는 “여러 동지들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밖의 상황이 엄혹하게 전개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감옥에 있으면서 꼭 하고 싶었던 두 가지’를 이야기 하면서는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과 함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나도 분향소에 가고 싶다. 팽목항에 가고 싶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의 가족들, 유족들 곁에 머물러 주고 싶다, 같이 있어주고 싶다. 손이라도 한 번 내밀어 보고 싶다”고 회상에 잠겨 절절히 말했다. 
  
또 “감옥과 밖에서의 체력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자랑할 만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건강”이라며 “동지들 믿고 이 험한 세상에 다시 나왔다. 건강한 다리로 다니면서 열심히 힘을 보태서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밝히며 함께 한 참가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 날 1시간가량 진행된 출소환영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아침식사를 하며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진 후 자리를 마감했다. 
  
이 전 처장은 출소 후 첫 일정으로 안산 세월호 분향소를 방문하고, 옥중에 있을 때 쓰러져 요양 중인 어머니를 가족과 함께 찾아 뵐 예정이다.

<강경태 기자>
[출처: 사람일보 2015.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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