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명재휘 선생 향년 94세로 운명 > 사회, 문화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3월 29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사회, 문화

[부고]명재휘 선생 향년 94세로 운명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4-23 06:20 조회31,631회 댓글2건

본문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종합] 명재휘 선생이 지난 17일 숙환으로 운명했다. 향년 94세. 고인은 재미동포사회의 한국민주화운동 초기(1970년대)에 한국의 초대민선 서울시장을 역임한 김상돈 선생, 차상달 선생, 양재순 선생,백학구 선생, 홍동근 목사 등과 함께 한국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인물이다. 

  명재휘 선생은 1920년 7월10일 평안남도 강동군 지단리에서 출생하여 1937년 평양 산수보통공립학교 졸업하고, 1945년 도꾜 소재 와세다대학교 제이고등학원 해방상 중퇴, 1960년 미국 테네시 내쉬빌 소재 죠지 피바디 대학교 도서관학과 졸업, 1967년 뉴욕 콜럼비아대학교 도서관학교 석사학위, 1960~1964년 연세대학교 도서관학 조교수, 1967-1969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도서관 근무, 1969년 8월 다시 미국에 이민와서 1969~1989년 UC 어바인 도서관 근무, 그리고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민주화운동에 헌신해 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명종숙 여사와 2남(인호, 인태), 2녀(선금, 선옥)를 두고 있다. 

장례식은 문형준 목사 집례로 4월23일(목) 오전 11시 리마패밀리 밀피타스 프레몬트 장의사(Lima Family Milpitas Fremont Mortuary, Mission Hill Chapel, 48800 Warm Springs Blvd., Fremont)에서 진행된다.

*유가족 문의: 510-791-7658  이멜 연락은 remember.dad@myong.org


 
In Memory of

Jae Hwi Myong

July 10, 1920 - April 17, 2015
Obituary


myongjaehui20150417died-01.jpg


April 17, 2015, Jae Hwi Myong peacefully passed away at the age of 94. He leaves here his wife of 70 years, four children, eight grandchildren four great grandchildren and many wonderful relatives and friends.
He retired in1989 to enjoy the rest of his life with his loving wife at his side – together making countless loving memories of precious moments. Born in Pyongyang, Korea, he lived in many places in Korea and in the United States.

 Everyplace he's been he loved and was loved by many. He served many churches as an elder. He graduated from Yeon Sei University Korean Library School. Then, at George Peabody University in Nashville and Columbia University in New York. He moved to Los Angeles where he rejoined his family who migrated from Korea in 1969. 

He lived full and fruitful life dedicating his time and effort for many causes such as to establish a better democracy in Korea. He also actively served in churches in LA and Denver. He always dreamed of setting his footsteps in the village he grew up in Pyongyang. In his hospital bed, he remembered, and talked of the childhood village – the hills, the river, the people, and stories…

He as an accomplished calligrapher produced many wonderfully written calligraphic arts on paper, stones, Korean style gourds (bag-a-ji), and many other articles showing the creative side of him. 
The celebration-of-life service: Thursday April 23 at 10:00 AM.

(Source: The late Myong's family)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도라지님의 댓글

도라지 작성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목란꽃님의 댓글

목란꽃 작성일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아는 바로 언론!!!입니다.

이 썪어빠진 대한민국의 종편들이란 매일같이 돈을 위해 광고주와 권력자들이 씨부리는 말을 대필하며,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의 삶은 제대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바보가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세상의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오판하고 착각하며, 엉뚱한 선택을 하고 말도 안되는 개소리를 따라하고 있는겁니다.

그래서 국회의원도 엉뚱한 사람을 뽑고, 대통령도 엉뚱한 사람을 뽑습니다. 그리고 몃년을 후회하고 그리고 다시 또 쓰레기 언론에 속아 또 엉뚱한 사람을 뽑습니다.

국민 여러분!!! 언제까지 그렇게 살겁니까??? 속고 또 속고!!! 당신들은 정녕 바보입니까??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