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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4]주체철학의 세계화와 미국의 위상(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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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3-05 16:31 조회12,519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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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민족통신 편집위원은 '주체철학의 세계화'라는 주제로 몇차례 글을 쓰면서 주로 미국의 역사적 배경을 다뤘다. 이것은 미국이 그동안 입버릇처럼 외쳐 왔던 세계화란 말의 뜻은 곧 미국화를 의미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구촌 문화가 미국화가 되어 그 본성과 속성이 국제화 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화되어 가고 있다. 왜냐하면 미국화는 곧 크고 작은 나라들이 미제국주의에 예속화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미국의 최고시인 알렌의 말을 인용하여 미국을 향해 " 미국이 주체사상을 배워야 한다"고 천명한바 있다. 이번 연재-4는 이와 관련한 내용을 담았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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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통킹만사건조작을 폭로한 다니엘 엘스버그, 그 뒤에 안경을 쓴 시인 알랜 긴스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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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970년대 반전시위-시카고 대학생들과 노동자들 반전시위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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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970년대 워싱턴 디씨에서 열린 반전시위 모습 




1973년의 징병제폐지는 청년대학생들이 주도

   최고 시인 알랜 미국이 주체사상 배워야

 


*글:김영희(민족통신 편집위원)


 

미국판 막시스트란 대개 계급투쟁과  단당제인 프롤라테리아독재를 내세우지 않음을 의미한다이미 일본을 상대로 핵전쟁도 불사했던 막강한 군사제국주의 세력을 무너뜨릴 있는 객관적 조건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이들은   레닌주의의 영향도 크게  받았다.   레닌은 막스의 이론과 달리 산업도시가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제정 러시아의 1세계대전참가를 분석하며제국주의를  필요로 하는 러시아 나름의 자본주의가 발달되어 있었다고 통찰했다. 막스이론을러시아현실에맞게창조적으로적용하여1917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국가를 세운  레닌은 미국의 막시스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케네디대통령과 함께 민주당 내부에서 쌍두마차로 불리우며 미국판 막시스트로 꼽히던 죤슨대통령은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민권운동을 적극 지지하여 흑백 통합, 소수민족투표권등  역사적인 민권법안을  신설하고  일부 백인들만 받아들이던 이민법개정을 위시하여 노동, 교육, 의료, 사회복지등제분야의  법안을  혁신적으로 바꾸었다

 

민족통신 애독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시카고 변호사출신이며 총법무장관 램씨 클라크는  30 젊은 나이에 케네디대통령에  발탁되어  법무부, 국토부( department of land)요직에근무하다가  죤슨대통령시절에 총법무장관에 임명되어 60년대혁신적인미국  법조계 대표가 되었다


민중들이 주체가 되는 반전평화운동민권운동, 노동운동등을적극지원했던그는5년이나  끌었던 유명한  “시카고8”( 1968 헤이든등 8명의운동가가시카고에서열리던  민주당 전당대회장 부근에서  5일동안  2만여명의 시민들과  경찰에 맞서며 경찰폭력이 난무한 가운데  반전시위를벌였다.) 재판에  시카고8인이시민폭동(RIOT) 선동했다는 경찰측의 주장을 들어주는 대신 경찰이 무고한 시민시위대를 상대로 폭동을 일으켰다는 판결을 내렸다.


(램씨 클락은 관직을 떠난 이후에  지금까지도 저서활동과  조직활동을  통해 반전평화운동에 진력하고 있다.   6.25 발생한  미군에 의한 노근리 민간인학살사건의진상을 알리는 국제전범재판을 주최한  국제행동센터(IAC: International Action Center) 의장인 그는 현재 미국내 진보진영 권의 존경받는 인사중에서 한반도 평화통일문제에 가장 관심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지난 12 김정일위원장 서거 3주기를맞아민족통신을통해추모사를  보내기도 했다.


렘씨 클락은  군사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산물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쟁기간동안  미국내  로스엔젤레스샌디에고, 프란시스코, 뉴욕,   워상턴 디시, 시카고, 시애틀 등지에서  전국적인 반전평화시위를  주도한 앤써(ANSWER)의장으로 60년대부터 쌓인 그에 대한 미국 민중의 오랜  신뢰감은 15여년동안이나계속된시위가성공적으로진행되는데에역할을했다.  IAC ANSWER 주요 회원중에는  막시스트  사회주의자들이 많다.


물론 근년에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등중동을중심으로일어난전쟁은 인류공동체의식을 불러 일으켜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반전평화시위가 일어났다.  6,70년대와 달리 그동안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국경을 넘는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교환이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한편군부에 맞서 케네디대통령의 베트남전  개입 반대정책을  계속 고수하던 죤슨대통령은  1964 통킹만 사태가 벌어지자  군부의 압력을  이상 버티지 못하고 1965  파병에 동의하고 만다.   통킹만사태란 인도지나해의 통킹만에서     해군과  북베트남 사이에 벌어진 전투인데  이사태는 미국내 반공주의자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았으나  후에 국방부와  CIA 조작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반전평화운동은 마틴 루터 킹이 1968년 테네스주의 멤피스에 청소부들의 파업에 동조하는 행사에갔다가암살되고,   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 역시 해에  로스엔젤레스의  한인타운과 밀접한  앰버서더 호텔에서 암살당하자  더욱 치열해지기작했다.  1955 부터 시작된 미국 민권운동의  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은 베트남에 미군파병이 시작되자 본격적인 반전평화운동에 뛰어 들었고 노동운동현장에도  직간접으로 동참할 만큼 지도자였으며형인 케네디보다  힘찬 막시스트 행동파로 알려진 로버트 케네디는 민권운동 시위장, 노동운동현장반전평화 시위장에    나와  즉흥적이고 감동적인 웅변으로    미국민과 특히 청년학생들에게  사회주의, 공산주의를역설하며미래의  꿈을 심어주었다


전국민이 알고 있는 두지도자가 같은 해에 암살당한 다음해인 1969년에베트남전파병의결정적인원인이통킹만사태가국방부의완전조작임이국방부에근무하던휘파람꾼(whistle blower/주로정부등의공기관과사기관의불법성을용감하게위험을무릅쓰고고발하는사람. 한국의 양심선언과 유사하다.) 다니엘  엘스버그가   목숨을 걸고 뉴욕 타임즈워싱턴 포스트등에 알려  미국과 전세계에 널리널리 보도되었다.   미국 국방부와 CIA  자국정부와  자국국민들을 속이고  무기장사꾼들의   돈벌이를  위해 일으킨 베트남전의 부도덕성, 불법성, 야만성등이 온천하에 알려진 것이다.


1969 통킹만사태의 진실이 알려지자   미국내의  반전평화시위는 불같이 달아올랐다.   특히  당시의 징병제를 피하여 도피하는 미국청년들이 전국에서 급증하기 시작했다강제로 베트남에 파병되었다가  부득불 전투경험까지 쌓은  미국청년들 중에는  용감하게 탈출에 성공하여 귀국한   감옥행도 아랑곳 없이 반전평화시위장에 등장하여  “나혼자만 살겠다고 탈출한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들과 청년들에게 너무나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전쟁의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 아직도 무지한 미군들이 숱한 무고한 베트남 양민들을 죽이고 있다.”식으로  보고연설을  해서 젊은 시위대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1970 54, 오하이오주 켄트대학 캠퍼스에서 주방위군이 대학생시위대를 향해 무작위로 총격을 가해  대학생 4명이숨지고 9명이 부상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공화당의리챠드닉슨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베트남에 이어 미군이  캄보디아   침공하자 이에 격분한 학생들이 교내의 ROTC 건물을 방화하며 항의시위를 하던 중이었다.   총격사건이 일어나자   전국 수백개의 중고교와  대학교에서 1000여만 학생들이  추모시위를 벌여 휴교를 정도로 전체에 반향을 일으켰었다. 이때는이미 60, 70년대의 민권운동, 반전평화운동의  주요시위대가 청년학생층으로 뿌리를 내린 후였다. 미국역사상최초로청년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이다.


1973닉슨대통령은  비록 공화당이지만  미국의 병역법을 징병제에서 자원제로 바꾸어 군사제국주의에  역사적인 타격을 가했다.  사실 닉슨대통령은 공화당내의 막시스트였지만,   막시즘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별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주요원인이 되어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은 비교적 진취적인 정치인이었다.  1968 닉슨대통령이  대선후보로 나왔을  민주당은  미국민과   사회주의진영의  국민들에게서 까지 사랑을 받던 젊은 케네디형제와  당내 막시스트노선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마틴 루터 킹목사와 말콤 엑스등 여러 동지를 정치적 암살에 잃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이상의 희생은 삼가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것이주요원인이되어공화당내관계자들과막후교섭을벌여공화당이닉슨, 포드팀을  대선후보로 내세우는데 동의하고 민주당은 패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미약한 선거유세를 하는 전략을 세웠다.  하여 닉슨, 포드팀은민주당에서요구하는  병역  자원제와  베트남전 종식을 들어주기로 했다.


양당간의 이런  비공개적인 막후교섭은 요즘까지 전통이 되고 있다. 우리일반인들이양당간의정책노선을대할노선이서로바뀐같아혼동을느낄  때가 가끔 있는데바로 막후교섭이 주원인이다.


닉슨대통령은 병역제를 자원제로 바꾼 댓가로 워터 게이트사건에 연루되어 미국대통령으로는 최초로 재직중에 사임하는 사례를 만들었다. 군사제국주의의진로를바꾼  공화당내의 막시스트 닉슨대통령이 군부와 CIA눈에곱게비칠리가만무했던것이다그의 사임 후에도  반전평화시위는  계속  맹렬해져  일부 대학생층에서는 시민전을 주장하는 가운데  점점 많은 시민들이 뜨겁게  가세하기 시작했다.     20여년동안 계속된 미국의 민중운동에    힘입어 무력대신 외교정책을 선호하는 온건파가 군부와 CIA 내부에서득세하기시작했다.  1975,   닉슨대통령의 후임인  포드대통령은   베트남전  종전협정에  국민의 뜻으로 서명할 있었다.포드대통령도  물론 닉슨 전대통령과  같은 노선이었다.

 

1955 알라바마주의 몽고메리시에서 로자 파크라는 평범한 흑인여성이 버스에서 백인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도화선이 미국의 민권운동은 6,70년대의  반전평화운동과 합세하여 20년동안미국을혁신적으로변화하게했다.   종전이라는 승리를 이끌어낸  20년간의 민중운동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은  미국민의 교육수준이 높아진 데서도 요인을 찾을 있다.   오랫동안의 민중운동은 미국에서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가 꽃피게 했고  상업주의라는 한계속에서도 노동, 법률, 반핵, 인권, 여성, 환경,교육,  영화,  금융, 컴퓨터, 언론,과학, 의료등 제분야가 발달하여 세계 최고라는 평판까지  받아 왔다

 

그러나 연재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20년동안의미국민중운동을통해많은미국판청년막시스트가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대학 캠퍼스에서 배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대학신문, 대학방송, 팜플렛, 포스터, 편지, 엽서, 전보, 전화등으로연락망을만들어1970년의 켄트주립대학 발포사건을 1000중고대학생이나서는전국적청년학생시위로주동하는결정적인역할을맡았다.  이들은 징병제폐지를 계속 주장반전평화의 전국이슈로 만들어 1973결실을맺게되었다


1970년부터 1975년까지 교내에서  가장 치열한 활동을   벌인 미국의 대학생 막시스트들은 1950 이후에 태어난 전후세대라고도 불리운다. 1950년의한국전쟁  이후 미국에 불어닥친 반공주의 맥카시선풍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전후세대는 맥카시선풍때문에  금서처럼 되어버린 이북, 쿠바같은사회주의국가에관한학습도했다책들이 별로 없어 1,20쪽에불과한작은팜플렛도  귀중한 교재였다이북의 주체사상도  이당시  비로서  대학생층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학생들 간에  “ 솥밥을 먹는 식구  이북의  사회주의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경귀였다고 한다이들은 막스, 레닌을비롯하여  김일성모택동, 카스트로, 케네디 사회주의 지도자들의 사진을 교정에서 학생들에게 값에 팔며 사회주의를 선전하기도 했다.  동양문화에 호의를 가진 학생들 사이에서는  70년대의  매카시선풍에서 가장 질타하는 김일성주석이 역반응으로 가장 관심을 끌었고 가장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예술을 전공하는 막시스트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동백림사건의 화가  이응로선생과  작곡가 윤이상선생도 알려져   작품 사진과  음반도 대학가에 퍼졌다.

 

6,70년대의 미국은 민중운동을 고양시키는 예술, 대중예술의전성기이기도했다. 딜런, 바이어즈, 사이먼과 가픈커 등이 부른 반전대중가요는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필자가 70년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시절엔 한국의 대학캠퍼스에까지 유행이 되었다

 

시인으로서는  유태인계의 알랜 긴스버그를  꼽지 않을 없다.  I am Marxist, I am Marxist poet라는그의많은시귀절에서도있듯그는평생막시즘의  공산주의단계까지 신봉하며 시를 썼다물질주의와 개인주의에  집착하는 미국인의 소시민적 삶을 경멸하며거부하는 1950년대 비트 세대의 대표적 시인인 알랜은 뉴욕에 살면서6,70년대의반전평화시위를이끌었다고할만큼혁명과  사회참여정신에  가득 찼었다.


그의 반전평화 시낭독회에는 통킹만사태가 국방부의 조작이었음을 만천하에 폭로한 다니엘  엘스버그반전 대중가수 딜런과 바이어즈 반상업주의적인    민중가수들이 출연하여 함께 즉석공연을 하며 반전의 기세를 높이 드높혔다.   미국시의 아버지 월트 휘트만의 시정신을 이어 받아쉽게 읽히는 일상언어로 쓰인 그의 시에는 제국주의가  세계에서 일으킨 온갖 전쟁들이 총망라 되다시피 하여 희비극적으로 고발되어  있다. 군부와 CIA 대한 고발과  풍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젊은 시인들의 귀감이 되었다.   때문에 많은 막시스트 후배시인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역시 월트 휘트먼처럼 5백년에 가까운  인종차별의 참혹한 역사를 가진 미국의 참된 미래는 여러 민족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문화의 다양성에 있다고 내다 보았다.


이북에 대한 알랜의 관심 또한 지대했다. 1994김일성주석이  북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주선으로 김영삼대통령과  남북회담을 하기  직전에 서거한 소식은  미국 최고의 시인 알랜을 포함하여 미국의 많은 막시스트들과  양심적인 지식인들을 애통케 했다.   “미국을 이해하면 북도 이해할 있다평소북의주체사상을높이평가해알랜은언젠가미국이북의주체사상을배워야날이올것이라고예견까지했다고그의지인들과후배시인들은전하고있다.

 

알랜은 미국민중에게 만연되어 있는 가장 단점은  개인주의라 진단했다. 그는해결책을5,60년대부터 동양사상, 그중에서도무아의경지를찾아가는불교에서찾아대승불교인티벳불교에입도했다시인으로서  미국민중에게 모범이 되고자 했던 알렌에게  불교중에서 제일 수준이 높은  한국불교는 미국민중에게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알랜에게 있어서  한국, 중국, 일본과 달리 불교시대를 전혀 거치지 않은 미국민중이 한번은 반드시 거쳐야 단계가 탐진치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무아) 찾아가는 불도이었다알랜은 막시스트 불교도가 것이다. 그리고알랜을위시한  미국의 많은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어떻게 하면 바른 인간으로 것인가하는 질문에 답을 주는 동양철학을 찾아 나섰다이제 반세기라는 오랜 세월이 흘러 주체철학이  미국에 들어와도 생소하지 않을 동양적 토양이 마련되었다고 있다. (계속)

 

다음 연재부터는 미국인의 개인주의를 자본주의의 사회문제로 접근하여 인간중심의 주체철학에서 답을 구해본다.


http://youtu.be/hDDRqaQ-Gbs




http://youtu.be/1oOU4lI50q4






[기획-3] 주체철학의 세계화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social&wr_id=6416#c_6418


[기획-2] 주체철학의 세계화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social&wr_id=6391#c_6393


[기획-1] 주체철학의 세계화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social&wr_id=6362#c_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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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고슴도치님의 댓글

고슴도치 작성일

미국의 최고 시인이던 알렌 긴스버그의 자세가 관심을 갖게 한다.

"이북에 대한 알랜의 관심 또한 지대했다.
1994년,  김일성주석이  북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주선으로
 김영삼대통령과  남북회담을 하기  직전에 서거한 소식은
 미국 최고의 시인 알랜을 포함하여 미국의 많은 막시스트들과  양심적인 지식인들을 애통케 했다.

  “미국을 이해하면 북도 이해할 수 있다”며
평소  북의주체사상을  높이  평가해온  알랜은
 언젠가  미국이  북의주체사상을  배워야할 날이
올것이라고
예견까지했다"고 
그의지인들과후배시인들은전하고있다.

진달래님의 댓글

진달래 작성일

김영희 선생님 좋은 자료들을 제공한 글을 읽고 많은 걸 배웠습니다.
계속해서 좋은 글 부탁합니다.
감사^^

무등산님의 댓글

무등산 작성일

주체철학을 알면 정의를 알고, 공동체를 알고, 사랑을 안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믿는다.

백두산님의 댓글

백두산 작성일

김영희 편집위원님

선생님글로 미국의 민중운동의 역사를
반전평화 민권운동 학계 문화 예술 종교등
많은것을 공부합니다.

더욱  미국의 많은 막시스트들과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활동 많이 배웠습니다.
계속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감사드리며....

노갈 남님의 댓글

노갈 남 작성일

방송통심심의위원회(방심위)는 26일 통신심의소위원회(통신소위)를 열어 인터넷 종북매체 ‘자주민보’를 폐쇄에 해당하는 이용해지(시정요구) 조치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자주민보가 북한의 이념·체제 등을 찬양·동조하는 게시물을 유통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방심위는 “북한의 주의·주장에 동조하는 기사를 창간 이후 반복적으로 게재한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죄의 범죄행위 또는 그에 준하는 행위라는 사법부의 인터넷신문 등록취소 확정 판결을 존중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법원의 인터넷신문등록취소 확정판결 이후에도 해당 사이트에 ‘자주일보’라는 동일한 제호와 등록번호가 적시돼 있는 등 여전히 인터넷 신문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방심위는 자주민보가 이용하는 웹호스팅업체에 시정요구 내용이 담긴 문서를 보내 사이트 폐쇄 요청을 할 계획이다.

 

자주민보는 대법원의 폐간 확정 판결 이후에도 사이트가 차단되지 않고 접속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접속할 수 없는 상태다. 자주민보 측은 폐간이 확정되자 제호 한 글자만 바꾼 꼼수를 써 ‘자주일보’를 재창간했지만, 자주일보 또한 서울시로부터 3개월 발행 정지 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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