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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남녘 서민화가 고 <박병제 화백>과 그 후배들<br><br>남북6.15선언 4주년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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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0-10-07 11:50 조회3,4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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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세상에 선후배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인터네트상에 미담으로 올라왔다. 서민 화가로 알려졌던
고 박병제 화백(1954~2009.5.26)은 55세의 짧은 인생을 살며 서민들의 모습을 주로 형상화하며 작품활동을
했던 작가로 지난 해 세상을 떠났지만 생전에는 1985년부터 2005년까지 15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2004년에는
남북6.15선언 4주년 교류전을 개최한바 있었던 고인은 가난 속에서 작품활동을 해 온 인물이었다. 그러나
작년에 그가 세상을 떠난후 금년 9월에는 후배작가 45명이 힘을 모아 부산의 "민주공원"과 "석류원"에서
회고전을 열어주어 선배와 후배들의 끈적 끈적한 모습을 보여주어 관심을 모은바 있었다. 이 소식과 관련하여
오마이뉴스, 부산일보, 국제일보에 보도 된 내용들과 그의 주요 작품들을 여기에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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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남녘 서민화가 고 <박병제 화백>과 그 후배들

남북6.15선언 4주년 교류전에서도 활약



메마른 세상에 선후배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인터네트상에 미담으로 올라왔다. 서민 화가로 알려졌던 고 박병제 화백(1954~2009.5.26)은 55세의 짧은 인생을 살며 서민들의 모습을 주로 형상화하며 작품활동을 했던 작가로 지난 해 세상을 떠났지만 생전에는 1985년부터 2005년까지 15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2004년에는 남북6.15선언 4주년 교류전을 개최한바 있었던 고인은 가난 속에서 작품활동을 해 온 인물이었다.

그러나 작년 2009년 5월26일 뇌출혈로 그가 세상을 떠난후 금년 9월에는 후배작가 45명이 힘을 모아 부산의 "민주공원"과 "석류원"에서 회고전을 열어주어 선배와 후배들의 끈적 끈적한 모습을 보여주어 관심을 모은바 있었다. 이 소식과 관련하여 오마이뉴스, 부산일보, 국제일보에 보도 된 내용들과 그의 주요 작품들을 여기에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끈적한 사람냄새 물씬" 박병제 화백 회고전
부산 민주공원, 석류원 10~26일 사이 ... 동료작가 40여명 힘 모아 화집 출판


고 박병제 화백, 서민화가, 갤러리 석류원, 민주공원

<##IMAGE##> 산동네, 산복도로, 도시의 변두리, 자갈치시장 등 끈적한 사람냄새 물씬 나는 서민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아온 고 박병제(1954-2009) 화백의 회고전이 열린다.

"아름다운 사람 고(故) 박병제 화백의 1주기 회고전"이 오는 10일부터 26일까지 부산 민주공원 기획전시실에서 60여 점, 문화골목 갤러리 석류원에서 40여 점씩 선보인다.

고 박 화백은 도시서민들의 모습을 그려낸 우리시대의 작가주의 화가였다. 고인은 주로 산동네, 산복도로, 도시의 변두리, 자갈치 등의 풍경 속 일반서민들의 일상 모습을 작품 속에 녹여내어 잔잔한 감동과 삶에 대한 희망을 담는 서민화가였다.

박 화백의 오랜 벗이었던 이광호 민주공원 관장은 "이번 전시가 생전에 그가 보여 주었던 도시의 변두리, 산복도로와 자갈치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와 맞물려 있는 우리 내면의 빛과 그늘에 대한 이야기들을 함께 기억하는 좋은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회고전에는 박 화백이 남긴 작품 중 산복도로, 자갈치 등 풍경화 60여 점과 자화상·인물화 등 40여 점이 전시된다.

<##IMAGE##> 40여 명의 동료작가들은 박 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 1주기가 되던 지난 5월 26일 <아름다운 동행>이란 제목으로 추모전을 열었다. 당시 작품 판매로 마련된 기금으로 박 화백의 화집을 이번에 출판하였다. 회고전 개막식과 출판기념회가 10일 오후 7시 석류원에서 열린다.

박병제 화백은 개인전 15회(1985~2005), 베트남 호치민시 문화공보관 초대전(1999), 민주공원 기획전시실 초대전(2001), 남북 6.15선언 4주년기념 교류전(2004), 부산시립미술관 초대전(은유의 도시 "풍경으로서의 부산")(2005) 등의 활동을 벌였다.

1986년 연 개인전 때 그는 "어두운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시각의 끝난 변두리, 헤어날 수 없는 색깔의 틈 속에서 솟구치는 빛. 아무 것도 나를 속이는 것은 없다. 언제나 정해인 그 위치에서 나의 존재는 시나브로 나이프 위에 떨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 박 화백은 지난해 가을로 예정되었던 개인전을 위해 작품활동하다 갑장스럽게 병원에 입원해 병세가 악화되어 2009년 5월 세상을 떠나 안타깝게 했다.


[출처:오마이뉴스 2010년 9월9일윤성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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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파 고스란히 겹겹의 덧칠


<##IMAGE##> "박병제 화백이 마지막 작업을 하던 화실을 찾은 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스산했을까. 물감들은 제 색을 잃어버린 채 캔버스에 말라붙어 있었고, 물감 통들은 쥐어짠 뒤에 또 짜내어 이제 더 이상 내어놓을 것이 없는 빈 껍질이 된 작은 무덤으로 이곳 저곳에 팽개쳐 있었다. 마찬가지로 며칠이 지난 지도 모를 막걸리 통은 볶은 멸치를 담은 플라스틱 반찬통 옆에 노숙자들처럼 너부러져 있었다. 그런 풍경은 스산하고 혹은 처절했다." "박병제-질감의 주름, 흰 그늘의 길"에 실린 문학평론가 최갑진의 회고담이다.

박병제(1954~2009)는 리어카 호떡 장수와 미술학원 강사 몇 개월을 합쳐 1년 남짓한 기간을 빼고는 전업 화가로 그림만 그렸다. 경남 양산시 동면 법기리의 축사 개조 창고를 거쳐 노포동 산자락 비닐하우스를 빌려 작업하다, 한 애호가의 배려로 만덕동에 넉넉한 작업 공간을 마련했지만, 좁은 공간에 익숙해진 그는 2003년 사직동 5~6평 남짓한 녹동화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최갑진이 회고한 만년의 풍경은 그 녹동화실이 배경이다.

자갈치·달동네·산복도로 등
고단한 서민 삶 "화폭에"
회고전에 부산 작가 십시일반


그 공간에서 박병제는 달동네와 산복도로, 자갈치시장 등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서민들의 풍경화와 인물화를 자주 그렸다.

몇 번인지도 모를 밑칠과 중간 칠을 겹겹이 쌓아 달동네의 가파른 골목길과 번잡한 시장통, 해변가 등 남루하고 고단한 서민들의 삶을 그렸다. 왠지 쓸쓸하고 처연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그 속에서도 정겨움이 묻어나온다. 곤궁함 속에서도 포기하거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그림이다. 박병제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동석 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는 그의 그림을 "따뜻한 비관주의"라 이름 붙였다.

박병제는 자화상도 자주 그렸다. 마른 북어 몇 마리 앞에 둔 그의 눈은 퀭하고 볼은 있는 대로 들어갔다. 박병제의 고단했던 삶이 직방으로 다가오는 작품들이다. 이성희 시인은 역설적이게도 "깡마른 자화상은 기실 엄청나게 두터운 살의 두께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두꺼운 질감은 박수근을 뺨치는 마티에르를 말하며, 동시에 치열하게 가난했던 신산한 삶의 깊은 주름을 의미한다.

박병제 화백은 지난해 5월 26일 세상과 이별했다. 꼭 1년 뒤인 지난 5월 26일 문화골목 갤러리 석류원에서 그를 기억하는 부산작가 45명이 "아름다운 동행"이란 이름으로 추모전을 열었다. 2천200만 원가량이 작품 판매 금액으로 모였다. 그 돈으로 화집을 만들고 1주기 회고전을 열었다. 소주와 북어가 있는 자화상을 비롯해 그가 자주 그렸던 인물화는 문화골목 갤러리 석류원에서, 산복도로와 자갈치를 비롯한 낮은 곳의 풍경화는 민주공원 기획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출처-부산일보 2010년 9월24일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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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 화가" 박병제 예술혼 기리며…



작년 5월 뇌출혈로 숨져
후배작가 45명 힘 모아 민주공원·석류원서 회고전
생전 갖지 못한 도록도 발간


"저 세상에 가셔서도 지지리 복도 없으시지. 하필 이런 때에 전시가 잡혀서는…." 지난 10일부터 부산 중구 영주동 민주공원과 남구 대연3동 문화골목 갤러리 석류원에서 열리고 있는 "박병제 회고전"을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회고전은 지난해 5월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작가를 추억하며 지인과 후배들이 마련한 행사. 때마침 부산비엔날레 등 대형 행사가 겹쳐 이 전시가 상대적으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안타까움이 크다. 석류원 박봉련 관장은 "생전에 개인전을 한 번 열려다 못한 것이 가슴 아팠다"며 "이리저리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그림만 그리고,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전업작가였던 박병제(1954~2009) 화백은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도 도시의 변두리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작가는 1985년부터 2005년까지 개인전을 15번이나 열었다. 단체전이나 기념전은 30여회에 이른다. 부지런히 그림을 그렸지만 생계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과작(寡作)이었죠. 1년에 20점 정도 밖에 안 그렸으니까. 그림은 제법 팔렸어요. 그래도 워낙 작품수가 모자란데다 가격도 그리 높지 않아 늘 형편은 어려웠지요." 중구 광복동에 있었던 "백조"라는 음악다방에서 20대 초년병 화가였던 박 화백을 만나 30년 이상 그를 지켜본 사람이 민주공원 이광호 관장이다. 이 관장은 "남항동"이라는 작품을 가리킨다. 불빛에 아늘거리는 바다를 멀리하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좁은 골목길을 가로등 불빛 하나가 비추고 있는 그림이다. "여기서 10m 정도 돌아들어가면 술집이 하나 있어요. 만 원짜리 안주가 기가 막히지."

박 화백의 풍경화는 주로 산동네와 시장이 배경이다. 태어난 곳이 서구 아미동이고 어머니가 자갈치에서 오랫동안 생선을 팔았다. 작가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유년의 추억을 그렸기 때문에 아픔이나 고통은 찾기 힘들다. 어둠이 내려도 어디선가 항상 빛(달빛이나 가로등, 혹은 지는 해)이 비추고 있고, 그 빛과 그늘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면서 관람자들로 하여금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하는 따뜻한 풍경이다. 담배 피는 아낙이나 고기 파는 여인, 만선의 기쁨에 소주 한 잔 걸치는 어부, 단칸방 홑이불 속에서 아웅다웅 다투는 가족은 모두 웃고 있다. 그러나 자화상은 확연히 다르다. 퀭한 눈과 바싹 말라붙은 볼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이 관장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컴플렉스 혹은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확인 작업이 자화상에 담겨있다"며 "인물화를 통해 표현기법을 실험하기도 했던 만큼 그의 예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그림"이라고 말했다.

기름에 섞지 않은 유화 물감을 화면에 올린 다음 나이프로 긁어내는 방식을 사용했던 작가는 박수근과 같은 거칠거칠한 마티에르, 파내도 파내도 또다른 것이 나올 것 같은 깊은 중첩의 효과를 내고 있다. 캔버스나 하드보드가 아닌 장판지에 그린 그림도 몇 점 된다. 이웃 주민들이 집수리를 하느라 뜯어낸 종이 장판지를 구해다가 이어붙여 그림을 그린 것이다. 석류원에 있는 황토색 인물화 대부분이 장판지 그림이다. 민주공원에는 작가가 초기에 그린 풍경화("산동네")도 한 점 있다. 액자에 그림을 대고 뒷면을 종이로 마감한 모습이 당시 그의 생활을 말해준다.

이번 회고전은 지난 5월 석류원에서 후배작가 45명이 작품을 전시("아름다운 동행"展)하고 그 판매수익금으로 마련됐다. 일부는 유족에게 전달하고 나머지는 도록 발간 비용으로 쓰였다. 도록은 223쪽 분량이다. 1980년대(법기), 1990년대(노포동과 만덕동), 2000년대(사직동) 등 작가가 작업실을 옮기던 시절에 맞춰 시기별로 제작된 작품의 도판과 이성희(시인) 박경효(화가) 등 지인의 글이 함께 실려있다. 생전에 한번도 갖지 못했던 도록을 사후에 갖게 된 셈이다. 회고전에 전시되는 작품은 소장가 40여 명이 뜻을 모아 대여했다. 전체 110여 점 가운데 민주공원에 70여 점(풍경화), 석류원에 40여 점(인물화와 조각)이 전시되고 있다. 오는 26일까지.

민주공원 (051)790-7400, 문화골목 석류원 (051)625-0765
강필희 기자 flute@kookje.co.kr

[출처:국제신문: 2010.09.19 / 수정: 201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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