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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가 만난 사람]“유장관이 사퇴하면 나도 물러날 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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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0-03-05 00:22 조회3,9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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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한 편의 연극이라면 희극이라고 해야 할까, 비극이라고 해야 할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에 위원장실이 두 개 있다. 오광수 위원장이 집무하는 본관 위원장실이 있고 그 옆 건물인 아르코미술관 3층에 또 하나의 위원장실이 있다. 김정헌 위원장의 방이다.

예술위의 ‘한 지붕 두 수장’ 사태는 언론과 정치권 안팎의 표현처럼 황당하고 해괴하고 어처구니없다. 김 위원장이 지난 2월 1일 출근하는 장면이라든가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 전체회의에 오 위원장과 나란히 참석한 모습은 그런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 주는 한 편의 연극 또는 행위예술 같다. 보는 사람에 따라 일급 코미디일 수도 있고 삼류 쇼일 수도 있겠지만.

<##IMAGE##>김 위원장을 겨냥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 장관의 ‘자진사퇴’ 발언에서 발단된 이 ‘현실극’은 2008년 12월 5일 김 위원장이 해임되면서 극적 구성 요소를 갖추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해임 무효 소송 등 법적 투쟁을 벌였고, 최근 법원으로부터 해임처분집행정지 결정을 받아냈다. 김 위원장이 법적으로 위원장 지위를 회복하자 예술위는 지난해 2월 취임한 오 위원장과 더불어 동시에 2명의 위원장을 갖게 된 것이다.

예술위는 사기업도 민간단체도 아닌 법률기관이다. 현행법상 예술위에 위원장이 둘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 명은 가짜여야 한다. 그런데 둘 다 법적으로 위원장 지위가 인정된다고 한다. 이런 모순이 성립하는 가상현실 같은 세계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2월 22일 서울 대학로 예술위에 마련된 김 위원장의 방을 찾았다.

그저께(2월 19일) 국회 문방위에서 또 한 번 소동이 벌어졌더군요. 그런 상황을 예상하고 나가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그… 체질에 안 맞는데, 민주당 의원들이 하도 요청해서 망설이다가 나간 거예요. 과거에 국회에서 업무보고를 할 때 한나라당 의원들한테 말도 안 되는 걸 갖고 공격당하고 흠 잡히고 해서 사실은 그런 데 나가기가 싫었거든요.”

예술위 위원장이 둘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글쎄, 국민들은 그게 뭐 희한하고 이해가 안 가겠죠. 한쪽에서는 김정헌이란 사람이 자리 욕심 있어 돌아와서 떼쓴다고 생각할 거고…. 그런 오해나 편견이 있겠지만 어쩔 수 없어요. 법원이 그렇게 판결을 내린 것 아닙니까. 복귀하라는 것이거든요. 복귀해서 업무를 보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 줬는데 구태여 그걸 부정하면서 안 나갈 이유가 없잖아요. 나가 보니 두 위원장이 된 건데요, 뭐.”
정권을 잡은 세력이 기관장을 자기 사람으로 채우려는 시도는 어느 때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잡음도 있었지만 이번처럼 이렇게 모양 사납게 확대된 적은 없었다.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을 중간에 그만두게 하기도 힘들지만 권력을 가진 측의 압박을 견뎌내면서 버티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1980년대에 등장한 민중미술 1세대 대표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전국민족미술인연합 공동의장을 지냈고, 예술위원장에 임명되기 전까지 문화연대 상임집행위원장 및 상임공동대표로 활동했다. 보수 진영의 눈으로 볼 때는 이른바 ‘좌파 예술가’다. 2007년 9월 그가 공모를 통해 예술위원장에 취임했을 때 보수 진영의 공격을 받은 것도 이런 전력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면 임기가 남았더라도 자리를 비워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까.
“맞습니다. 어느 정권이나 장관을 바꾸듯이 그 아래도 바꾸고 싶겠죠. 그러나 다른 부처는 모르겠지만 문화부는 산하 기관을 특별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문화예술인들의 자율성이나 자존심을 생각해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데 무리하게 처리했어요. 내 경우가 대표적인 거죠. 나도 임기를 다 채울 생각이 결코 없었어요. 그런데 하는 짓들이 국·과장 보내서 나가라, 말라 그러고….”

유 장관과 그런 문제로 만나거나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습니까.
“김정헌과 김윤수, 이름까지 들먹이며 자진해 물러나야 한다고 말한 게 보도된 적 있잖습니까. 그때 유 장관이 사과하겠다고 해서 저녁 한 번 먹은 적이 있죠. 미안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그때 내가 그랬어요. 당신 장관 열심히 해라, 나는 법적으로 3년 임기가 있는 사람이다, 내가 알아서 나가고 싶으면 나가는 거지 어떻게 그런 식으로 하느냐고 했죠. 유 장관은 2기 위원들이 8월까지 바뀌니까 그때 좀 나가 주었으면 하는 뉘앙스를 주긴 했어요.”
예술위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2005년 9월 현장 문화예술인 중심의 지원 기구로 재출범한 조직이다. 현장의 민간 문화예술인 10명이 위원 자격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구조이며, 약 4000억원의 기금을 운용한다. 한 해 예산이 1000억원에 이르고, 그 가운데 800억원 가량을 문화예술계 지원에 쓴다. 결국 김 위원장의 ‘자진사퇴’는 물 건너가고, 해임과 소송이라는 극한 대결로 치달았다. 해임의 결정적인 사유는 기금 운용과 관련한 것이었다.

기금 운용 부실이 주된 해임 사유인데, 그 문제를 놓고 양쪽이 법적 대응을 했잖습니까.
“기금 문제는 이렇게 돼요. 여기 기금이 4000억원 정도 되잖아요. 이걸 분산투자를 하는데 그 중에 100억원을 메릴린치 회사에 투자했죠. 그 당시 금융 위기가 극심했을 때여서 평가하니 한 60억원 됐지요. 그 회사가 C등급 회사인데 거기에 투자하지 말라고 했지만 투자해서 손해를 자초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를 해임시켰고, 내가 해임 무효소송을 내니까 저쪽에서 ‘저 친구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냈어? 좋아! 너도 맛 좀 봐’ 하는 식으로 그 회사 투자금을 뽑아냈거든요. 그렇게 하면 평가 손실이던 것이 확정되잖아요. 그러고 나서 나한테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걸었어요.”

그 소송은 어떻게 됐습니까.
“지난해 10월에 저쪽이 졌죠. 말도 안 되는 거니까…. 40억원 가량 손실을 봤는데 그것 그냥 놔뒀으면요 지금은 호전돼 110억~120억원으로 불어나 이득이 됩니다. 그런데 60억원 받고 뽑아냈으니 결과적으로 50억~60억원을 날린 겁니다. 다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인데 그런 엉터리 같은 짓을 한 거죠.”

그 소송은 끝난 겁니까.
“아니, 그것도 항소했어요. 변호사 비용을 막 쓰는 거예요. 기관, 부처의 돈을 말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맞대응하면서 개인 돈을 쓰지만….”
‘한 지붕 두 수장’ 사태를 만든 해임처분무효 소송은 1심에서 김 위원장이 승소했다. 지난해 12월 1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김 위원장의 “해임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유 장관 측의 항소로 1심 판결이 곧바로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되자 김 위원장 측은 해임처분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2심, 3심까지 가게 되면 재판에서 이기더라도 그 사이에 임기가 끝나니까 손해를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는 이 신청을 받아들였다. 김 위원장이 제기한 해임무효소송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해임 처분의 집행을 정지한다는 것이다.

법정 싸움에다 ‘출근 투쟁’까지 하는 게 정신적으로 피곤하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승소하면 내가 들어와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이 커지면서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닌 걸로 됐어요.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공적 의미에서 정부가 잘못한 것을 바로잡아야 하는 일을 떠맡은 셈이 됐어요. 나는 원래 노는 걸 좋아해요. 여기 앉아 있기 싫어요. 잠시만 나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와 보니까 그게 아니야.(웃음)”
2명의 위원장을 모시게 된 예술위는 지난 2월 8일 전체회의를 열어 김 위원장의 법적 지위 회복을 인정하고 그동안의 고통에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에게는 지위에 따른 예우만 하고 기관 대표권을 포함한 모든 업무 권한은 오 위원장이 행사하도록 결정했다. 김 위원장은 이런 결정 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회의가 정해진 소집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고, 결정 사항도 법원의 결정 취지를 부인한 것이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게 그 이유다. 김 위원장은 오 위원장과 동반사퇴 제안도 거부했다.

출근해서 무슨 일을 합니까.
“업무를 보려고 하는데 업무 지시를 해도 안 들으니까 할 수 없이 기록만 남기고 있어요. 업무를 지시했다는 걸 문서상으로 남기는 거죠. 지금까지 대여섯 가지를 지시했는데 하나도 안 들어요.”

무슨 지시를 했습니까.
“주로 현황 보고를 하라는 건데 안 하고 있죠. 지난주 금요일(2월 19일)에는 한국작가회의에 (불법집회 불참) 확인서를 요구한 앞뒤의 경과를 보고하라고 했어요. 어디서 그런 지시를 받았는지, 앞으로 대처 방안이 무엇인지 관련 문서가 있으면 가져오라고 했죠. 그랬는데 말을 안 듣는 거죠.”

직원이 지시를 이행하지 않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합니까.
“아무것도 못 하는 거죠. 언젠가는 나한테 업무 권한이 주어지고 직원들이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되면 지금까지 했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죠. 메일에다 가끔 써 놔요. 너희들이 이런 식으로 내 업무 지시에 대해 아무 처리를 하지 않고 이행하지 않으면 나중에 그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그러니까 ‘공갈’만 치고 있는 거예요.(웃음)”

한국작가회의 관련 보고를 지시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내가 지휘해서 확인서를 요구한 건 아니지만 현직 위원장으로서 어쨌든 그 문제에 대해 공개사과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예술위가 그러면 안 되거든요. 행정안전부나 기획재정부가 그런 지침을 내렸다고 해도 문화부는 장관이 ‘예술가들 자존심 상하는 이런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한 것 같아요. 상당히 큰 파문을 몰고 올 거예요.”

김 위원장 잘못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두 위원장 체제는 빨리 정리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술계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걱정해야 할 문제가 됐는데….
“제 입장에서 다른 것은 할 수도 없고 오로지 이 사태를 만든 유 장관한테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게 됐어요. 유 장관이 나를 해임한 게 부적절하고 무리했다는 걸 인정하고 나한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공개사과를 해야죠. 그런 다음에 사퇴하면 깨끗이 해결됩니다.”

유 장관이 사퇴하면 김 위원장께서도 사퇴하겠다는 뜻입니까.
“그러면 나도 이 자리를 포기하죠. 그렇게 할 용의가 있어요. 아, 내가 장관한테 사퇴하라고 했으면 나도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죠. 그대로 있으면서 그 사람만 아웃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겠습니까. 나도 이 사태를 좋게 생각은 하지 않으니까요. 나도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죠.”

예술계에서 일어난 사태인 만큼 해결도 예술처럼 감동적으로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예술계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정말 비극입니다. 많은 사람이 불난 집 구경하듯이 재미있어 하잖아요. 이게 한 편의 셰익스피어 연극 같기도 하고, 가상과 현실이 뒤섞인 것 같기도 하고…. 돌발영상이란 걸 봤는가 모르겠어요. 거기 보니까 내가 얘기한 게 그쪽에서 얘기한 것하고 비슷하고 그쪽에서 얘기한 게 내가 얘기한 것하고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패러디하고 말이죠. 알레고리 관계에 있는 연극 같기도 한 이 가상의 무대에서 이제 그만 내려왔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무대에서 내려와 이 연극 같은 현실을 끝낼 생각은 없습니까.
“내가 먼저 결단을 내리는 방법도 있죠. 주로 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어른답게 사퇴하는 쪽으로 결단을 좀 내려 주면 되지 않느냐고 하죠. 주변에서도 대충 명예 회복이 됐으니 끝내라는 사람도 있고요. 그건 적절치 않은 것 같아요. 이 문제의 밑에는 부당한 짓을 한 게 깔려 있어요. 내가 관둔다고 그런 짓이 깨끗이 마무리되는 건 결코 아니라고 봐요. 개인적인 심정은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거예요. 학교도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빨리 정리하고 싶고요.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예술가의 한 사람이 이런 짐을 도맡아서 허우적대는 꼴이 그리 좋지는 않죠.”
공주대 미술교육과 교수인 김 위원장은 내년 8월이 정년이다. 원래는 한 해 일찍 퇴직해 위원장에 해임된 뒤 만든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 활동에 주력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는 예술을 통해 마을 공동체의 회복을 추구하는 일에 흠뻑 빠져 있다. 그런데 되레 이번 사태로 지난 2월 5일부로 학교를 휴직했다.

정상적인 업무도 하지 못하면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렇게 매일 출근하는 게 불편하고 괴롭지 않습니까.
“그건 걱정 없어요. 처음에 적응하기 어렵지만 저는 한 번 적응하면 괜찮아요. 여기서 내가 할 일을 찾아서 즐기면 되니까요. 내가 약간 불량기가 있어요. 앞으로 정 안 되면 유 장관도 한 번 찾아가려고 해요. 복귀 인사차 가는 거죠. 복귀했으니 장관한테 인사하러 가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 아무 반응도 없으니 내 식으로 행동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또 한바탕 하겠죠. 언론·방송에서 기회를 놓칠 리 없으니까. 나 참, 어떻게 하다 이런 일을…. 하하하.”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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