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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치100년, 우리는 무얼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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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0-02-27 23:36 조회3,7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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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하얼빈시 양회(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로 하얼빈시 최고의사결정 기구)는 2차 대전 당시 온갖 생체 실험을 자행한 일본 관동군의 악명 높은 세균전 부대였던 731부대 유적지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중앙 정부에 적극 건의키로 했다고 한다.

중국은 지난 2000년부터 하얼빈시에 위치한 일본 관동군 731부대 유적지에 평화공원과 박물관을 조성해 영구히 보존하고 있다. 박물관의 정식 이름은 ‘침화 일군 731부대 죄증진열관’ 즉 침략자 일본군의 731부대가 남긴 죄악을 증명하는 박물관이란 뜻이다. 죄증진열관 입구에는 ‘前事不忘 後事之師(지난 일을 잊지 말고 후세에 교훈으로 삼자)’라는 펼침막을 걸어두고 있는데 이 글귀는 남경대학살기념관에도 걸려 있다.

<##IMAGE##>유네스코가 정하고 있는 세계유산은 크게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나눠지는데 문화유산은 “기념물, 건축물, 기념 조각 및 회화, 고고 유물 및 구조물, 금석문, 혈거 유적지 및 혼합유적지 가운데 역사, 예술, 학문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유산”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다시 6가지 세부 기준 중 하나에 해당돼야 하는데 731부대 유적지는 이 중 6번째 기준에 해당된다며 등록을 추진 중이다. 즉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준에 의해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대표적인 사례는 일본 히로시마 원폭 돔이다.

히로시마 원폭 돔은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로 많은 히로시마 시민들의 노력으로 처참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핵무기 반대와 인류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일본 안팎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히로시마 원폭 돔이 전쟁 가해국인 일본이 마치 전쟁 피해국인양 위장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일본의 침략전쟁에 많은 희생을 당한 중국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중국은 이번 731부대 유적지뿐 아니라 지난 2005년에도 양회(중국 최고의결기구인 전국인민대표자회의와 국정자문기구격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민족정신과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일제의 의해 자행된 남경대학살 사건일(1937년 12월 13일)을 국가공식 제사일로 정하도록 했으며 나아가 ‘침화 일군 남경대학살조난동포기념관’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한 바 있다.

2차 세계대전에 벌어진 3대 비극으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 그리고 남경대학살 사건을 꼽는데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히로시마 원폭 돔은 이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으니 중국 입장에서는 항변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못지않게 일제의 침략을 온 몸으로 당한 우리는 어떠한가.

3.1 만세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을 교회당에 몰아넣고 학살한 화성 제암리 학살사건 현장, 한센병 환자들을 감금하고 비인간적인 행태를 저지른 소록도 병원, 수감자들을 고문 학살한 서대문형무소 등 우리 역시 일제 침략이 남기고 간 상처가 곳곳에 남아있지 않은가.

그런데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면 수원화성, 종묘, 창덕궁, 석굴암, 불국사 등 옛 봉건왕조시절 건축물과 불교유산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침략현장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어 보인다. 바로 이 점에서 현재 중국과 한국의 지도층들의 역사인식의 차이가 있는데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 작년 가을 한국 국회에서 벌어졌다.

2009년 10월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 시간에 정운찬 국무총리는 731부대를 항일독립군으로, 마루타를 전쟁 포로라고 말해 세간의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운찬 총리 개인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기본적인 역사 상식이 없어도 국립대 총장도 되고 국무총리도 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더 큰 문제다. 2012년이면 고등학교 국사과목이 선택과목으로 되면서, 우리 역사를 전혀 배우지 않고도 대학에 입학하는 세대가 배출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발하고 저항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연초부터 몇몇 언론들이 경술국치 100년, 강제병합 100년이란 이름으로 기획특집을 마련하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100년 전 벌어진 이 거대하고도 치욕적인 사건을 가슴 깊게 새기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무총리가 731부대를 항일독립군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정부에서 국치관련 행사 예산을 단 한 푼도 책정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자연스런 귀결이라 여겨지지만 이른바 건국60년 행사는 거창하게 치른 것과 비교하면 정부의 처사가 너무도 야속하다. 애초부터 뉴라이트를 자산 삼아 출범한 정부에 큰 기대를 하는 것은 무리지만 그렇다고 관련단체들과 시민들마저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경술국치 100년인 올해 우리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우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가족 또는 지인과 함께 국치 현장을 둘러보는 것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중명전(서울 정동극장 옆), 1910년 경술국치 조약이 체결된 옛 통감관저 현장(서울 남산 유스호스텔 입구 빈 터) 그리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해방 후 민주투사들이 피 흘린 서대문형무소 등은 반드시 방문했으면 좋겠다.

약 5년 전만 해도 중명전 앞마당은 국립 정동극장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의 주차장으로 쓰였으며 내부 공간은 단원들이 옷을 갈아입는 라커룸으로 쓰이는 어이없는 상태였다. 주변엔 소주병이 굴러다니는 등 그야말로 관리가 엉망이었다. 다행히 을사늑약 체결 100년을 즈음해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몇몇 단체의 문제제기로 겨우 기본적인 보전은 이뤄진 상태이다.

<##IMAGE##>서대문형무소 역시 1987년 의왕시에 서울구치소가 생기고 난 후 그 기능이 상실됐다하여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지으려고 철거를 시작했으나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굴삭기 앞에 드러누우며 저항한 끝에 다행히 오늘 일부 시설을 보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작 1910년 8월 22일 이완용과 당시 통감이던 테라우치가 체결한 국치 조약 현장인 통감관저 터에는 현재 그 흔한 표석도 없다. 근현대 한국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현장인데도 말이다. 변한 것이라곤 아스팔트로 덮여 있던 곳이 현재는 나무와 잔디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나무와 잔디가 깔려 있어 사람들이 모이기가 더욱 어렵게 돼 버렸다.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초기에 이곳에 표석을 세울 테니 허락해 달라는 공문도 보내보았으나 감감무소식이다. ‘디자인 서울’을 외치며 서울 곳곳을 분칠하는 데만 열을 올리느라 정작 이런 곳에 무슨 기념표석을 세울 생각은 전혀 못한 모양이다.

731부대 죄증진열관의 왕펭 씨는 “우리는 역사적 비극이 재현될 수 있는 그 시절의 군국주의가 되살아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전문가들이 731부대 죄증진열관과 남경대학살조난동포기념관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경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등 군사대국화를 꿈꾸는 일본의 야심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대국 중국이 이럴진대 정작 우리는 과거 100년에 대해 반성도 미래 100년에 대한 대비도 없으니 걱정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망명지에서 8월 29일이면 국치기념식을 열며 와신상담하던 시절이 있었음을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알고 있을까.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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