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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교수 한국기지촌여성 실태 발표-김미라씨가 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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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9-05-01 01:28 조회4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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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서부지역위원회 김미라 사무국장(전 방송인)이 최근 로스엔젤레스에서 박정미 교수(기지촌여성연구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 취득)와 하주희 변호사(민변에서 기지촌여성 승소함)가 로스엔젤레스 홈리스 쉼터에서 지난 4월24일 오후7시부터 2시간 동안 발표한 한국의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유린 실태에 관한 발표를 듣고 쓴 글이다. [민족통신 편집실] 


김미라-사진.jpg
[사진]김미라 6.15서부지역위원회 사무국장(전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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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교수와 하주희 변호사 발표
 한국기지촌여성 실태를 알아본다. 

*글:김미라(6.15서부지역위원회 사무국장)



지난 수요일(2019.4.24) 한국에서 기지촌여성들의 인권 유린을 나라가 합법적으로 승인해준것에 대해 나라를 상대로 손배상 소송을 진행중인 활동가들이 엘에이를 찾았다.
 
미국의 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님들과 연결이 되어서 뉴욕과 오클랜드 그리고 이곳 엘에이에서도 간담회를 하고 우리 진보단체 사람들과 작은 모임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오랫만에 먹는 한국음식을 반가워하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주었다. 

그동안 난 기사를 통해서만 아주 얇게 알고 있었던 이슈여서 조금 공부를 하고 갔었는데 너무 몰랐단걸 알아버렸다 어쩜 그렇게까지 모르고 살았는지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젠 좀 더 관심을 갖어보려한다 내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인지도 찾아보아야겠다. 

그분들이 들려주신 소중한 얘기를 들려드릴께요. 많은 관심 갖어주시고 응원해주세요. 요약글은 엘에이 민문연 김창옥 사무국장님께서 정리해주신 글 퍼왔습니다. 

<기지촌 여성소송문제>

일시:4.26일 7:00pm~9:00
강사:박정미 교수(기지촌여성연구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 취득), 하주희 변호사(민변에서 기지촌여성 승소함), 두레방 소셜워커(기지촌여성들의 재활프로를 돕고 계심)
장소:엘에이 홈리스쉼터

<기지촌 운영의 시대별 고찰>

1. 미군정과 625전 : 1945~1950
- 미국국내법 : 성매매 금지 통과(1941 챕터287)
- 한국내 미군 : 점령군 지위로 성병만연, 전투력 확보 위해 성병문제 대두
- 1947.8.13. 하지 편지 : 음주와 성병문제 큰 문제, 군기문란, 
식민지공창제 고려 및 도입(Entertainment Girl)
군정위반 범죄:성병여성 처벌

2. 한국전쟁시 : 1950~1953
- 위안소 위안부 운영(1951년 문서, 청소 위생 접객)
- 미군야전병원의 주 업무: 성병검사
- 1951 미군법안 문서:위안부는 한국보건부 책임, 어드바이저로 발뺌, 
성매매가 합법이 아님을 인정
- 한국은 1948년 성매매 금지법 발효, 위안소는 외국군의 요청에 의해 설치 인정

3. 한국전쟁 후 : 1953년 이후
- 유엔군 특수간이음식점 이라는 명으로 운영
- 도쿄의 미군사령부를 용산으로 이전 : 내국인은 출입금지
- 기지촌 운영의 직접적 원인 : 미군으로부터 민간인의 성범죄를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
- 1977년까지 기지촌 여성을 위안부로 부름 <- 
한국군의 근간이 일본군 장교출신임으로 자연스럽게 연장선으로 명칭이동
- 기지촌 여성 중 검진증이 없는 여성 검거를 토벌이라는 명칭사용<- 
일본군이 독립군 살해를 할 때 사용한 용어(검진증 없으면 바로 체포)

<기지촌 운영의 미군의 시대별 실태>
1. 1950년대 : 한국정부에 위임 및 관리요구 (위임과 감시체제)-1957.9.30.일:미군당사자 참여하의 한국 기관장참석 성병회의- 보고 받는 자리였음
2. 1960년대 : 적극적 개입감시 – 부대마다 성병클리닉 만듦, 1965년 성병관리소 만들어짐,1963년 1군단이 적극적 요구
3. 1970년대 직접 개입 : 1971년 흑인병사들의 폭동, 술집 및 위락시설 난동 및 파괴, 콘돔박스 등 자유제공

<기지촌 여성 소송 및 법안 발의>
- 전체 기지촌 여성 숫자 : 매년 1만명 수준, 누적 인원 20만명 이상, 그중 15만명은 결혼후 미국이주
- 기지촌 여성 대부분이 10대에 들어옴, 현재는 이주여성 들 필리핀 러시아 등이 많음
- 기지촌 여성들의 가장 큰 문제점 : 미교육과 가난 성폭행, 직업소개소의 불법납치 등으로 입소됨, 노예상태의 현실을 한국남성문화의 폭거 와 국가의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팔자타령, 전생타령 등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문제, 
- 2014년 소송참여 인원 120명 모두 60세 이상 고령, 5명 사망 현재 115명
- 한국의 기지촌 여성의 특징 : 정부가 불법적으로 적극적 개입
* 각종 공문서 심지어 대통령 날인 공문서에서 매춘 금지 임에도 애국자로 위장
* 기지촌에서 국가공무원이 직접 국가지시를 받고 정기적 교육, 
심지어 아파트까지 구매 약속
* 미군으로부터 한국민간인 여성 보호차원에서 방파제로 기지촌 여성을 이용
* 경찰은 도망 여성을 불법적으로 체포하여 다시 기지촌으로 입소시킴
- 2014년 6.25일 소송
* 2017년 2차 공판에서 소송 승리 : 기지촌 여성들의 증언을 중요 증거로 채택
정부의 공소시효를 인간에 대한 기본인권으로 방어하여 기각시킴
- 두레방 인권단체의 활약
* 문동환 목사의 사모 페이문이 1986년 설립, 기장(기독교장로회)에서 지원
* 제빵기술 전수로 사회생활 재활프로 성공
- 한국여성운동의 대표적 성과 : 성매매 방지법 2004년 통과, 성매매여성 지원법 통과

<결론>
- 여성인권의 신장을 위해 반드시 기지촌 여성의 국제문제화 시킴
- 미국의 국내법과 한국의 미군운영 실태의 이중성을 고발하고 한국여성의 문제가 아닌 여성인권차원에서 미군의 범죄행위 부각
- 여성 성노예 문제는 적어도 60년 이상의 세월과 지속적 노력이 필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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