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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우리는 김원봉을 얼마나 알고 있나?>(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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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9-06-13 09:53 조회2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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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의 극보수정당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김원봉>발언을 놓고 요란한 격론을 벌였다. 독립운동과 좌우합작 운동에 기여하였다고 평가하고 독립운동 애국자라고 주장하는쪽이 있는가 하면 <자유한국당>측은 북측 건국에 관여한 것 때문에 애국적 인물이 아니라고 반대하는 논란을 벌여왔다. 약산 김원봉(金元鳳, 1898년 9월 28일 (음력 8월 13일) ~ 1958년)은 일제 강점기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호는 약산(若山), 본관은 우록김씨이다. 그는 1919년 아나키즘 단체인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하였고, 황푸군관학교를 거쳐 조선의용대를 조직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임시의정원(경상도 지역구)의원, 한국 광복군 부사령관 겸 제1지대장으로 활동하였고, 1944년 임시정부 군무부장에 선출됐다. 1946년 2월 민족주의민주전선 공동의장, 6월 인민공화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48년 김구·김규식 등과 함께 남북협상에 참여한 뒤에 그대로 북녘에 남았다. 하지만 2019년 3월 피우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장은 비록 김원봉이 광복 후 친북에 기여한 점은 있으나 이전에 독립운동 이력을 토대로 서훈도 가능하다고 입장을 밝힌바 있었다. 또한 2019년 6월 6일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를 두고 일각에서 김원봉을 재평가하고 서훈대상자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정치권에 논란이 확산되었다. 하지만 6월 10일 청와대는 약산 김원봉의 서훈 여부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조항상 유보한바 있다. 경향신문 서의동 논설위원이 이 문제를 다뤘다. 이글을 여기에 소개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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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김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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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김원봉



우리는 김원봉을 얼마나 알고 있나

글:서의동 경향신문 논설위원

입력 : 2019.06.12 






우리는 김원봉을 얼마나 알고 있나

소련을 제외한 3개 연합국은 사회주의 정치가 레너가 주도하는 임시정부를 경계했으나 얼마 안 가 승인했고, 임시정부는 오스트리아 전역에 관할권을 행사하게 됐다. 그해 11월 총선에서 50%를 득표해 제1당이 된 보수계 국민당은 단독정부 수립 대신 사회당, 공산당과 ‘대연정’을 구성했다. 분단 위기를 딛고 통일독립을 이루려면 정치권이 기득권을 버리고 단합해야 한다는 시국인식이 좌우합작을 가능케 했다.

국민당은 사회주의 정책인 국유화를 수용했고, 사회당도 미국이 주도하는 마셜플랜 참여에 찬성하는 등 정치권은 실사구시의 태도로 국난을 타개해 나갔다. 1955년 주권을 회복하기 전까지의 10년간 오스트리아 정치권의 이념을 넘어선 결속과 협력은 지금 봐도 감탄스럽다. 해방 후 극심한 분열로 날을 지새우다 분단과 전쟁으로 치달았던 한반도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를 계기로 약산 김원봉이 다시 논란의 핵으로 떠올랐지만 문 대통령이 말하려던 것은 ‘김원봉의 복권’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같은 ‘좌우합작’이었을 것이다.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을 이뤘고, 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중략) 광복군에는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 기득권이나 사익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 애국”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말이라면 무조건 물어뜯고 보는 자유한국당과 보수세력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리 없으니 결국 사달이 난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때 만들려다 폐기된 국정교과서의 고교 한국사에 문 대통령의 추념사와 거의 같은 기술이 등장하는 것은 흥미롭다(오마이뉴스 6월7일 보도). “독립운동 세력이 임시정부로 결집한 것처럼 중국 관내의 무장세력도 한국광복군으로 결집하였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합류한 데 이어, 조선의용대 본부 병력이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였고 김원봉은 부사령에 임명되었다.” 필진이 보수학자들 일색이던 국정교과서조차 김원봉의 ‘좌우합작’을 평가한 것이다. 1920~1930년대 항일무장투쟁에서 가장 혁혁한 업적을 세운 김원봉이 자신의 기반인 조선의용대를 해체하고 광복군에 합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원봉은 대의를 위해 기득권을 내려놨다.

귀국한 뒤 김원봉은 좌익계의 민주주의민족전선에 참여하는 한편 중도세력의 좌우합작 운동을 지원하다 월북했다.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구타를 당하는 수모를 겪은 데 이어 여운형의 피살이 결정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월북 뒤 북한 정권에 참여한 것은 알려진 대로이지만, 납북·월북된 중도파 정치인들과 함께 ‘중립화 평화 통일방안’을 내놓는 등 조선노동당과 다른 노선을 걸으려 했던 점은 특기할 만하다. 

역사에 가정은 부질없지만 해방 후 정치가들이 오스트리아처럼 좌우합작을 이뤘더라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좌우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정치인, 기득권 대신 통합을 선택한 정치인들이 정국을 주도하고 미·소와 협상을 벌여나갔더라면 적어도 수백만이 희생되는 전쟁의 참화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한국사회가 굳이 71년 전 남한 땅을 등진 김원봉을 기억하고 불러내려는 것은, 그의 항일투쟁 때문만이 아니라 통합의 대의를 위해 기득권을 버릴 줄 아는 정치인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김원봉은 투르게네프와 톨스토이를 좋아했고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에 두루 심취했다. 편협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독립에 필요하다면 누구와도 손잡는 실사구시형 전략가였다. “의열단원은 스포티한 멋진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잘 손질했으며, 어떤 경우에도 결벽할 정도로 말쑥하게 차려 입었다.”(님 웨일스·김산 <아리랑>) 김원봉과 의열단원들은 만주, 상하이, 일본을 종횡무진하며 일본 제국주의를 공포에 몰아넣은 ‘어벤저스’이면서도 자신의 삶과 일상에 충실한 멋진 청년들이었다. 김원봉을 편협한 이념의 틀에 가둬선 그를 제대로 기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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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 김원봉이 당리당략에 이용되는 현실을 통탄한다 (전문)
                                   
-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사람들의 입장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을 언급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임시정부가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5년 동안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을 이루어 광복군을 창설했다”며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이 집결하였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 내용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추진됐던 ‘국정 역사교과서’조차 기술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또 대통령의 발언은 여러 독립운동세력이 이념과 관계없이 단일대오를 구축한 사실을 상기시켜, 우리 사회 통합의 당위를 강조한 것으로 우리는 이해한다. 

그러나 정치권 일부와 보수 언론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북의 전쟁 공로자에게 헌사를 보낸 대통령”, “감히 가해자인 김원봉을 떠받들었다”, “보훈대상에 친북좌파인물을 넣어 ‘역사 다시쓰기’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구태의연한 색깔론 프레임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때인가?

남북정상회담으로 평화의 한반도를 향한 도정이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는 남과 북이 상호존중과 배려를 통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조치들을 현명하게 풀어낼 것을 희망한다.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은 칠십 년 넘게 쌓인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하루 아침에 해결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기에, 남과 북이 서로 더욱 전향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때 기존관행을 유지하려는 일부의 완강한 반대도 엄존한다.
이들에게 ‘색깔론’은 전가의 보도이다.

달을 가리키는데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색깔론과 종북몰이에는 지지 세력의 결집을 기대하는 ‘당리당략’이 근저에 깔려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약산 김원봉을 현실 정치에 끌어들이는 의도가 통탄스러운 것이다.  
약산 김원봉은 일제강점기, 누구보다 빛나는 항일 영웅이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남과 북이 모두 역사의 그늘로 밀어낸 약산 김원봉. 

그를 역사의 양지로 불러내는 것이 평화의 한반도를 향한 도정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라고, 우리는 믿는다. 
더구나 2019년은 3.1운동 백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백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광복후, 임시정부의 군무부장으로 고국으로 돌아왔던 약산 김원봉.  

이런 그를 철지난 이념논쟁으로 외람되게 인구에 회자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다 성숙한 논의를 통해 약산 김원봉을 우리 독립운동사와 대한민국 역사 속으로 불러오기를, 우리는 충심으로 희망한다.   

2019년 6월 10일 

김도현 (전 문화체육부 차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김수옥 (우사 김규식연구회장) 
김원웅 (광복회장)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 
김정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이만열 (숙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부영 (몽양 여운형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우재 (매헌 윤봉길월진회장) 
이종찬 (재)우당장학회 이사장
이  철 (희망래일 이사장·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
이해동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공동대표)
임재경 (조선민족대동단기념사업회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차영조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채현국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고문) 
함세웅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이 게시물은 편집실님에 의해 2019-06-13 10:17:22 사회, 문화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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