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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요즘어떻게 지내십니까?-프랑스의 이희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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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03-06 12:43 조회11,89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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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 이희세 선생(82)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했다. 여전히 목소리가 쩡쩡하다. 몇년 유럽방문 취재중 프랑스의 이희세 선생을 만날 계획을 가졌으나 당시 스위스의 최기환 박사를 만나는 일정이 제대로 되지 못하여 이희세 선생 댁을 방문하지 못했다.
 
 
[기획]요즘어떻게 지내십니까?-프랑스의 이희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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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 이희세 선생(82)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했다. 여전히 목소리가 쩡쩡하다. 몇년 유럽방문 취재중 프랑스의 이희세 선생을 만날 계획을 가졌으나 당시 스위스의 최기환 박사를 만나는 일정이 제대로 되지 못하여 이희세 선생 댁을 방문하지 못했다.
오늘 생각이 떠올라 전화를 했다. 바로 오늘 35일이 이희세 선생의 진짜 생일이기 때문이다. 호적에 있는 102일은 제때 호적에 올리지 못하고 늦게 신고한데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발자취
이희세 선생은 1932 35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동양학과를 졸업하고 1956년부터 1963년까지 광릉 산림고, 선린상고, 보인상고, 서울공고, 상명여중고 등에서 교사로 일했다. 1962년부터 수년간은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강사로 활동했고, 1963년에는 현대미술전 준비위원, 공모전 부문 심사위원, 66~68년에는 프랑스 국립미술학교 벽화과 연수, 1974년에는 재불한국자주통일추진회를 창립하여 기관지 통일조국 발간한바 있고, 1982 민족문제연구회를 창립하고 민족 발간한바 있다.
그는 ,, 해외 3자연대의 역사적 조직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유럽본부 중앙위원, 그리고 부의장을 역임한바 있었고, 6.15시대에 들어와서는’6.15공동선언 해외측위원회  명예위원장으로 활약해 왔다.
그의 해외생활은 금년 8월이되면 꼭 반세기가 된다.  이희세 선생의 숙부인 고암 이응로 화백의 연락을 받고 프랑스로 향한 게 지난 1964812일이기 때문에 벌써 프랑스에 산지가 50년의 세월로 접어든다. “참으로 세월은 유수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가 고향인 남녘에 다시 찾아간 것도 2005 8월이었기에 그 당시   41년만의 귀향이었다.
 
그 당시 한겨레 신문의 정인환 기자는 이희세 선생과 대담하고서 다음과 같이 보도(한겨레 신문 2005.8.16)한바 있다.
이씨는 1932 3월 충남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다섯 형제 가운데 막내였던 그의 부친은 바로 윗형이던 이응로 화백에게 이씨의 교육을 맡겼고, 그는 15살 나던 해에 서울로 상경해 이응로 화백 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마친 뒤 프랑스로 떠나기 전까지 모교 등지서 강의를 하면서 작품활동을 벌였다.
“파리에서 어느 날 숙부님이 부르셔서 집으로 가보니 ‘갑자기 서울에 가게 됐다’며 짐을 싸 놓으셨더라구요. 파리주재 대사관 무관이 ‘74일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를 받으셨다’고 하더군요.” 그가 기억하는 67년 동백림 사건은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귀국길에 오른 이 화백은 공항에서 곧바로 중앙정보부로 끌려갔고,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의 주모자 가운데 한명으로 몰려 옥고를 치러야 했다.
“당시 국내 언론에는 제가 도피를 했다느니, 행방불명이 됐다느니, 서울로 붙들려왔다느니 온갖 말들이 떠돌았지요.” 흉흉한 소문이 떠돌면서 당시 프랑스로 출국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던 그의 부인과 남매는 당국에 여권을 빼았겨 프랑스로 올 수 없었다. 프랑스로 떠나올 때 3살이던 아들은 9살 무렵 어렵사리 프랑스로 데려왔지만, 생후 10개월이던 딸은 지난 89 1월 이 화백이 숨진 뒤 묘소 참배를 위해 가족들이 프랑스를 방문하기 전까지 27년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의 부인은 이미 세상을 등진 뒤였다.
이 화백 구명운동에 나선 그는 자연스럽게 고국의 민주화와 통일문제까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 73년 한국자주통일추진회 결성을 시작으로 그는 본격적으로 ‘운동가’로 변신하기에 이른다. 그가 지난 85년엔 파리 제2구 오페라구역에 문을 연 ‘김치식당’은 유럽 통일운동 진영의 사랑방 구실을 해왔다.
요리사이자 든든한 후원자였던 가게아먀 나오미에게 지난 99년 김치식당을 넘긴 뒤 파리에서 약 500㎞ 떨어진 도르돈 지방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3년여째 조각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00년엔 폐병으로 오른쪽 폐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기도 했지만, 그의 ‘원칙론’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그는 41년만의 귀국에 대한 감회를 묻는 질문에 “쾰른의 김용무 선생, 베를린의 이영준·윤운섭·한영태 선생, 독일 정부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박충흡·이주희씨 등 후배들이 여전히 귀국길에 오르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정인환 기자는 그 당시 이미 이희세 선생과 그의 숙부 이응로 화백 사이의 관계나 1960년대 일어났던 이른바 동베르린 사건의 일면을 반영해 주었다.
이희세 선생은 언제나 정의감에 불타는 청년과 같았다. 목소리도 쩡쩡하고 몸짓도 청년같아 그의 연령을 제대로 알기가 어려울 정도의 성품을 지녀 왔다. 지금도 그는 청년으로 살고 있다. 
그는 6.15해외측위원회와 릴레이 토크를 통해서도 6.15남북공동선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6.15선언은 분단민족이 원래 단일민족이였던 정체성을 되찾고자하는 의지와 실천의 요망임을 분명히 하여야 것이며 10.4선언은 남북공동의 민족경제활성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청사진으로서 민족의 정당한 자주적 주권의 행사임을 재확인하여 주었다고 강조하면서 남녘 정치인들은 이 선언들을 실천하여 줄 것을 호소한바 있었고, 지금도 그 길만이 살길이라고 말한다.
근황
이희세 선생은 유럽지역 뿐만 아니라 해외동포 통일운동의 원로가 되었지만 지난 수십년 세월을 보내면서도 어느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고 지조를 지켜온 애국자 중 한분이다.
요즘에는 어떻게 소일하시느냐고 묻자, 그는 "김치식당 정리하고 시골로 들어가서 사는데 나무도 많은데서 산책하다 보면 나무 뿌리들도 발견하게 되어 그것들을 줏어다가 목각을 해 왔는데 그것도 돌이켜 보면 10여년이 됐어요."라고 취미생활 겸 대답한다.  그는 본래 동양화 가운데 추상적 그림들이 많은데 지금은 1백여점 되는 것을 창고에 넣어 놓은 상태라고 한다. 동양화에 손뗀지가 반세기가 되어 붓이 제대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각이 취미인데 요즘의 목각 작품은 한국에서 '안녕하십니까"에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이 젊은이들의 풍자이기에 그런 소재의 작품들을 만들고 있다고 밝힌다. 
부인이 2004년 사별하였으니깐 혼자 산지도 벌써 10년이 된 셈이다. 자식은 1남1녀인데 딸은 한국에, 아들은 프랑스에 있어 자신도 이산가족이라고 말한다. 프랑스에는 손자, 손녀가 있는데 그 손자가 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아 증손자까지 보았다며 크게 웃으신다. 몇년전에는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데리고 서울을 다녀왔고, 작년 7월에는 아들 손자 데리고 평양에 다녀왔다고 근황을 설명해 준다. 
이희세 선생과 전화통화를 마치면서 다른 유럽지역의 통일운동 인사들도 떠오른다. 특히 유럽지역은 박정희 군사독재시절 가장 탄압을 많이 받아온 해외동포사회였다. 임민식 박사부부이영빈 목사부부, 이지숙 박사, 이종현 선생부부,리준식 선생부부, 최영숙 선생김진향 선생, 림원섭 선생, 장일중 선생, 이한경 선생부부, 김대천 선생부부, 윤운섭 선생, 이영준 선생, 이민자 박사, 서의옥 선생, 박소연 선생, 송두율 박사, 그리고 세상 떠난 정규명 박사, 신옥자 선생, 한계일 여사 등도 보고 싶다. ()
·         *이희세 선생 연락처(프랑스): hise.lee@facebook.com
0033-5-5351-0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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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세 선생님의 생신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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