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3-02 00:00
[특별대담]북부조국 국립교향악단 여성지휘자
 글쓴이 : minjok
조회 : 14,739  

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은 북부조국의 교향악단의 유일한 여성지휘자 허문영 선생과 단독대담을 갖고 북녘의 음악분야를 알아보았다. 조선교향악단의 전용공연 장소인 모란봉 극장에서 허문영 지휘자를 만나 대담한 내용을 여기에 전재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북부조국 국립교향악단 여성지휘자


허문영씨 민족통신과 단독 특별대담


<##IMAGE##> [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조선은 음악의 나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북부조국의 국립교향악단에 여성지휘자가 있어 한층 더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의 이름은 허문영(44). 민족통신 편집인은 모란봉 극장에서 허문영 여성 지휘자와 특별대담을 갖고 북녘의 음악세계를 알아 보았다.

이 모란봉 극장은 역사 깊은 곳이다. 대담을 시작하기 전에 조경희 안내원이이 모란봉 극장에 대해 잠시 설명해 주었다.

1948년 4월 김일성 주석과 김구 선생이참가한 남북연석회의가 열린 곳이며 김일성 주석이 그 해 9월8일 내각수반으로 추대된 곳이며 같은 해 9월9일 북부조국이 창건된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 곳은 그 이후 극장으로 사용되어 왔고 뒤에는 조선 국립교향악단 전용 극장으로 보수되었다. 2005년 9월8일 개건된 이 모란봉 극장은 바닥에 398개의 대리석이 깔렸고, 마이크 없이 생방으로 연주할 수 있는 시설로 개조되었다. 여기에 허문영 여성 지위자와의 특별대담 내용을 전재한다.


<특별대담 질의서>


[질문-1]민족통신이 북부조국의 여성지휘자와 특별대담을 갖고 음악의 나라, 조선을 해외동포들과 남조선 동포들에게 알리게 되어 기쁩니다. 우선 국제사회에서 대부분 남성지휘자들이고 여성지휘자들은 드문 편인데 지휘자가 되기 까지 과정을 먼저 듣고 싶습니다.

[답변]먼저 이역 멀리 땅에서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수고하시는 선생님과 조국의 음악활동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저도 기쁩니다. 제가 여성지휘자로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교향악단 지휘자로 되기 까지 성장하게 된 것은 다 수령님(김일성 주석을 의미)과 경애하는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의미)의 크나 큰 노고와 사랑의 결과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때문에 음악가인 우리 가정은 수령복, 장군복을 타고 난 것이라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1951년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어버이 수령님께서는 저의 아버지를 레닌 그라드 음악대학으로 보내 주시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저의 아버지가 졸업한 후에 국립교향악단 지휘자로, 우리 나라에서 1류급 예술단체인 만수대 예술단 수석지휘자로, 단장으로 내 세워 주시면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믿음을 다 주시었습니다.

그런데 1977년 8월9일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그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너무도 아프시어 나라의 국보인 허재복 동무를 잊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정말 아까운 지휘자를 잃었다고 하시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막내 딸인 저를 평양음악무용대학으로 보내주시고 그 후에는 아버지가 공부하던 레닌 그라드 음악대학에서 아버지를 배워 준 교수에게서 지휘공부를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시었습니다.

사실 저는 가정환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으로서 세상에 나서고 싶은 것이 나의 꿈이었습니다. 나의 이 소박한 꿈이 현실로 될 줄이야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의 어머니(허선욱)는 우리나라 최초의 하프 연주자로서 활동한바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레닌 그라드 음악대학에서 그리고 어머니는 모스코바 차이코프스키 대학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저는 평양음악무용대학 지휘 과에 입학하여 어떻게 하면 아버지처럼 훌륭한 지휘자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나머지 꿈까지 꾸었습니다. 첫 수업 할 때 저에게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내가 지휘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때 첫 박에 대한 지휘 에 대한 과제를 받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인지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 내가 고민하던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꿈도 꾸었습니다. 열심히 하면 이런 일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나는 또 13살 먹은 내 딸(최 은혜)이 우리 가정의 대를 이어갈 것으로 확신됩니다. 딸이라서 그런 것 보다 내가 음악전문가로서 내 딸을 볼 때 유치원 다닐 때에도 하나를 대주면 열을 알았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런 재능을 보았습니다. 피아노를 배워왔는데 지금은 작곡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3대가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조국에 돌아 온 저를 아버지가 섰던 만수대 예술단에 보내주시어 독창, 중창, 합창, 가극, 배합관현악을 지휘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키워주시고 여성기악중주의 담당 지휘자로까지 내 세워주시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러 차례 저의 지휘를 보아주시고 2005년에는 제가 관현악 지휘를 전공하였다고, 배운 지식을 써 먹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저를 국립교향악단 지휘자로 보내주시어 오늘은 이처럼 보람 넘친 여성지휘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남들은 모두 저를 부러워하고 있지만 저는 장군님의 이 섬세한 사랑과 배려에 천만 분의 일도 보답 못한 것이 정말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저는 위대한 장군님께 결의 다진 대로 대를 이어 키워주신 지휘봉을 언제나 억세게 틀어 잡고 한 생을 위대한 장군님의 교향악 전사로서, 위대한 장군님의 친딸답게 살려고 합니다.


[질문-2]조선이 선군정치로 군사강국 중 한 나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조선이 음악의 나라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음악의 나라-조선에 대하여 긍지 높게 말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답변]정말 우리 나라는 세상에 없는 음악의 나라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음악은 나의 첫 사랑이라고 하시면서 우리 혁명은 노래로 시작되고, 노래로 전진하여 왔으며 노래로 승리하였다고 뜻 깊은 말씀을 하시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선군정치로 우리 혁명을 이끄시면서 음악예술부문에서 당의 선군정치를 받드는 노래를 많이 창작하여 우리 당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군대와 인민을 선군의 길로 힘있게 고무 추동 하도록 하시었습니다.

뜻밖에 우리 수령님을 잃고 온 나라가 피눈물 속에 잠겨 있을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공훈국가합창단을 꾸려주시고 신심과 낙관을 주는 혁명의 노래로 군대와 인민을 어버이 수령님의 유훈 관철에로 힘있게 불러 일으키시었습니다.

선군혁명음악은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나날 우리 군대와 인민들에게 혁명적 신념과 승리에 대한 낙관을 더욱 굳게 하고 용기 백배하여 모든 난관과 시련을 뚫고 나가게 하였습니다.

제가 알고 있기에는 우리나라처럼 로동신문과 같은 지면 1면에 음악이 실린다는 것은 그 어느 신문에도 없는 줄 압니다.

작년 12월24일 항일의 ㈋봇동?김정숙 어머님의 탄생일을 맞으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못잊을 삼일포의 메아리> <떠나는 마음>의 노래를 어머님께 선물로 드리었습니다. 이 노래는 오늘도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 어머님의 혁명업적과 더불어 군대와 인민의 마음 속에 충성의 메아리로 울려 퍼지고 천만군민이 어머님처럼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충실성을 더욱 깊이 간직하도록 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정말 음악의 나라이고 음악정치로 펼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진 나라입니다. 어려울 때도 음악으로 극복하고, 어딜 가나 노래가 그칠새 없는 음악의 나라입니다. 각계 각층에는 음악소조들이 활동하고 있어 주체조국의 구석 구석에는 노래가 넘쳐 납니다.

[질문-3]조선 여성들의 일반적인 음악활동에 대해 소개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보통 악기 한가지 정도는 다 배운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만 성인들의 음악활동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IMAGE##> [답변]: 나의 심장 속에 잊혀지지 않는 1996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적 낭만이 없이는 난관과 시련을 뚫고 나갈 수 없다고 미래를 위해 한몸 바쳐 투쟁할 수 없다고, 어렵고 복잡한 때 일수록 사람들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난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가르치시었습니다.

특히 <고난이 행군> 강행군 시기에 군중음악예술활동을 활발하게 벌림으로써 인민들이 혁명적인 노래를 힘차게 부르며 신심과 낙관에 넘쳐 고난과 시련을 맞받아 헤쳐 나가도록 하시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음악예술활동이 대중화됨으로써 그 어디에 가 보아도 선군시대에 맞는 혁명적 노래가 울려 퍼지게 되었습니다.

인민군대에서는 중대예술소조, 군인가족들의 예술소조활동, 노동계급과 농업근로자들, 지식인들, 학생들을 비롯한 각계 층 인민들의 예술소조공연, 노래 경연이 벌어지고, 기동예술선동대, 수천수만명이 출연하는 대합창단, 학생취주악대가 울리는 힘찬 음악이 사람들에게 힘을 돋구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배운 음악적 소질을 성인이 되어 마음껏 꽃피우고 있습니다. 온 나라 전체 성인들은 자기의 사회적 직업을 가지고도 우리 사업과 생활에 힘과 낙관을 주는 노래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려는 충성의 노래를 마음껏 부르며 살고 있습니다.

[질문-4]뉴욕 필하모니가 26일 평양에서 공연한다고 합니다. 조선 국립교향악단의 수준과 다른 나라 교향악단의 수준을 비교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답변]우리 교향악단의 역사는 다른 나라 교향악단처럼 100년 이상은 되지 못합니다. 나라가 해방이 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나라의 전문예술단들의 전신으로 처음으로 내세워주시고 이것으로 해서 교향악단은 우리나라 음악 발전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오늘 날에 와서는 6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70년 7월26일 위대한 장군님께서 3관 편성의 교향악단을 친히 무어(조직)주시고 주체적 교향악을 위해서 세심한 지도를 주시어 오늘과 같이 세계 무대에 당당히 내 세워 주시었습니다.

지난 해 10월 조선방문을 위한 미국 뉴욕 필하모니 교향악단 단장(메터)이 왔을 때 우리 교향악단의 연주(‘아리랑’ 과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등)를 감상하고 깜작 놀랐다고 하면서 “조선교향악단 수준이 대단하다. 우리가 조선에 대해서 너무도 몰랐다. 서방도 조선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오늘 공연한 관현악 ‘아리랑’을 가지고 서방나라들에게 나가 공연을 한다면 그들이 조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다.”라고 하면서 우리 교향악단이 미국을 방문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올해 1월 중순 뉴욕 필하모니 교향악단 조선방문 선발대와 함께 기자들의 성원 중 한 도이치란드 기자는 우리 모란봉 극장을 보고 “조선에 이런 극장이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귀국이 문화발전에 얼마나 관심하고 투자하는 가를 잘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런 훌륭한 극장에서 창조하고 있는 예술인들의 수준이 어느 높이에 있는가를 짐작이 간다.”고 말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향악단은 다른 나라 교향악단과는 달리 우리 식의 독특한 <주체적 배합관현악>이 있습니다. 이 배합 관현악은 우리나라 관현악 발전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데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주체적이며 독창적인 구상 속에서 1970년대에 새롭게 창조된 우리 식의 관현악입니다.

이것은 민족악기에 양악기를 배합하여 음색과 표현력에 있어서 종래의 관현악과 완전히 다른 독창적이며 주제가 확고히 선 우리 식의 완성된 새로운 관현악입니다. 예를 들면 <청선 벌에 풍년이 왔네>를 들 수 있습니다.

온 나라 천만 군민은 주체적 교향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저는 우리 교향악단은 장군님의 교향악단으로서 머지 않아 온 세상을 들었다 놓은 것繭箚?봅니다.

나는 우리 국립교향악단을 사랑하고 우리 교향악단이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소리높이 자랑하고 싶습니다.

[질문-5]음악예술분야 중 조선에서 가장 자랑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무엇을 자랑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저는 우선 먼저 우리 국립교향악단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우리 음악은 그 동안 몇 가지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해 왔습니다.

1960년대에는 교향악과 영화음악이 발전하였고, 1970년대에는 가극음악(5대 가극)과 주체적 배합관현악과 여성기악중주가 발전하였고, 1980년대에는 우리 식 전자음악이 발전하였고. 1990년대에는 강력한 남성합창이 발전하였고, 2000년대 에 들어와서는 종합적 예술이 발전하였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야의 발전은 모든 인민들의 마음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는 음악의 나라라고 자부합니다. 특히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아리랑> 관현악곡은 온 세상에 자랑할 수 있는 주체적 배합관현악곡들입니다. 우리 민속악기들, 예를 들면 장새납, 젓대, 중음젓대, 꽹가리 등이 조화를 이뤄 울려 퍼집니다. 우리 민속악기들은 주로 서양의 금관악기와는 달리 죽관 악기들(대나무로 만든 악기들)이 독특한 음색을 자랑합니다. 장군님의 지도로 만들어 진 <아리랑>,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들어 보면 그것이 형상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민들이 좋아하는 우리의 주체적 배합관현악곡입니다.

[질문-6]재일동포 출신 김병화 지휘자가 국립교향악단의 원로지휘자로 알고있습니다. 그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답변]: 우리 아버지나 같은 분으로 일찍이 일본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활약하다가 한 러시아 연주자가 하도 잘하기에 그것을 보고 더 이상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을 포기하고 1960년대 조국에 와서 지휘를 공부하여 국립교향악단 지휘자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일본계 부인도 성악가로서 음악광신자 입니다. 정말 열정적인 사람입니다.

[질문-7]지금의 국립교향악단 제1바이올린 연주자가 과거 카나다 동포이며 태권도의 선구자였던 최홍희 선생의 처 언니 아들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특징의 음악가인지 간단히 설명해 주시면…


[답변]: 최기혁 제1바이올린 연주자는 우리 교향악단의 얼굴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이 위치는 대단히 중요한 자리입니다. 최기혁 동무의 여러 가지 특징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그는 음악에 대단히 열정적입니다. 이런 사람은 인간으로서도 열정적입니다.

[질문-8]국립교향악단 초대 허재복 단장이 아버지인 것으로 들었다. 부친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답변]: 아버지는 일제시대 중국 용정에서 태어나 작은 할아버지 한테서 바이올린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허이복 작은 아버지도 아버지와 함께 음악에 뛰어났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소련 레닌 그라드 음악대학에 유학하고 조국에 돌아와 1957년 내무성 협주단, 국립교향악단 지휘자, 1971년 만수대 지휘자, 수석지휘자로 활약한바 있었습니다. 제가 14살 때인 1977년 8월9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질문-9]국립교향악단 규모, 지휘자 숫자, 그리고 지휘자들의 특징에 대하여 간단하게나마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답변]: 우리 교향악단 규모는 120명 정도 됩니다. 다섯 명의 지휘자가 있는데 원로인 인민예술가 김병화 지휘자(72세), 40대 초의 리철웅 지휘자, 40대 초의 공훈예술가 김호윤 지휘자, 그리고 저인데 이제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하고 돌아 온 젊은 지휘자가 국립교향악단 지휘자로 함께 활동하게 됩니다. 리철웅 지휘자는 내심적이며 정확성이 특징이고, 김호윤 지휘자는 지휘기법에서 아주 정확하고 단원들을 편안하게 하는 지휘자로 특징이 있습니다.

[질문-10]조선 국립교향악단이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연주하는 것을 감상하고 이 곡에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 곡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답변]: 1970년 초 김영규 작곡의 관현악곡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는 우리인민이 좋아하는 곡입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 밑에 창조된 주체음악예술의 귀중한 재보로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평양방문 특별취재(!)


[평양]뉴욕 교향악단 공연에 뜨거운 반응

[특별기획]15살 평양 소년 전승훈 군 오바마 지지

[평양]북 사회 각 직장단위들 아침율동체조 실시


북부조국 국립교향악단 허문영 여성지휘자와 특별대담

[평양]비전향 장기수 3명과 평양서 특별대담

[평양]2.16경축 수중발레 창광원서 공연


[평양]빙상축전에 니콘회사 광고 등장...제17차<백두산상>국제휘거축전

[평양]해외동포 예술인들 종합공연서 기량발휘

북녘 신천 박물관 참관해 김병호 관장과 대담

평양에 <해외동포 기증도서실> 설치


[출처 : 민족통신 2008-02-27]

twitter로 보내기 facebook으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구글로 북마크 하기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남녘 19대 대통령이 된 인물에게 대외관계에서 가장 바라고 싶은 점?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캐나다동포전국연합회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17 MinJok 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