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7-03-29 00:00
[논단]강민화 소장: 미국은 진짜로 변했는가?
 글쓴이 : minjok
조회 : 5,807  

[도꾜=민족통신 종합]일본 재일동포 연구기관인 대동연구소의 강민화 소장은 3월24일자로 작성한 논문 "미국은 진짤로 변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대동연구소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했다. 필자는 논문 말미에 "지금의 정세 상황이 조선(한)반도의 평화와 조국통일에게 긍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에 들려오는 것처럼 조선(한)반도에 “해빙기가 왔다”거나 이제는 다 됐다는 식으로 들뜨기에는 아직 이르며 우리에게는 환상이나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논문을 전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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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진짜로 변했는가?

강민화(대동연구소 소장)


〈 차 례 〉

1.조선(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일어난 변화들

2.일련의 변화는 어째서 일어났는가


3.환상과 지나친 낙관은 금물(맺음을 대신하여)



1.조선(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일어난 변화들

지금 조선(한)반도와 그 주변에서는 불과 몇달전까지만 해도 생각조차 못했던 놀라운 광경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변화들을 꼽는다면 미국이 마카오의 방코델타 아시아(BDA)에 동결된 북의 자금을 전액 반환하겠다고 발표한 일과 이남의 보수정당 한나라당의 갑작스러운 변신, 그리고 좀 전까지만 해도 과거의 군인세상이 부활되었나고 우려될만큼 우익화에로 기세높이 줄달음쳤던 일본이 거듭되는 망신과 국제적 비난속에서 고립된 상황, 이 세가지를 들 수 있다.

①미국의 자금반환 발표

<##IMAGE##> 베이징에서 제6차 6자회담이 개막된 3월 19일, 회담에 앞서 이곳에서 6자회담의 미국측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국무차관보와 함께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부차관보가 BDA에 동결된 북의 자금을 전액 반환하겠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는 북이 2005년에 9.19공동성명이 채택된 직후부터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의 집중적 표현이라고 하면서 그 해제를 강력히 요구해온 대북 금융제재 문제이다. 그런데 당초에 “6자회담과는 별개사항”이라고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조차 거부해 왔던 미국은 그후 6자회담과 병행해서 이 문제를 가지고 북과 마주 앉게 되었다. 그러다가 자금동결 해제가 일정에 오르게 된 이후 “합법적 자금”에 한한 “부분적 동결 해제” 를 내비쳐 왔던 그들이 동결된 자금을 전액 돌려주겠다고 했으니 세상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직은 동결된 자금이 실지로 북에 반환되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6자회담이 본격적인 토의에 들어가지 못하고 휴회에 들어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이번 일은 저들의 대북 적대시정책에 초강경으로 맞선 북과의 관계에서 한발 두발씩 물러서고 있는 미국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조미대결의 주도권은 확실히 북이 쥐고 있다.

②한나라당의 변신

3월 13일, 김충환 한나라당 공보부 대표는 “대북정책에 있어 원칙을 지키되 방향을 근본적으로 조정하는 노력을 해나가겠다”면서 “앞으로 업무협의 또는 교류협력 차원에서 당소속 의원들이 평양, 개성, 금강산을 방문케 하는 등 다양한 대북활동을 허용하고 적극 장려하는 쪽으로 당의 방침을 조정해갈것”이라고 공식발표했다(오마이뉴스 3.13).

이 갑작스러운 변신에 이남사회는 “한나라당에 북풍이 분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있으며 당을 지지하는 반통일수구세력은 배신감과 당혹감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만 봐도 이를 “반역문건”으로 매도하고 남측 관련자들을 특검에 걸어 범죄인으로 만들었을뿐 아니라, 기회있을 때마다 “북한 퍼주기”이니, 6.15공동선언을 “폐기해야 한다”, 또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사사건건 이행을 가로막아 왔으며 심지어는 북과의 ‘전쟁불사론’까지 들고 나온 한나라당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태도를 바꾸게 되었으니 어째 그러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것으로 한나라당이 변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올해 이남에서 있게 될 대선의 ‘유력후보’의 한사람이라고 하는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는 “군정의 잔당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대한민국을 거꾸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해서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그리고 이북에서도 『로동신문』(3.16) 논평을 통해서 “반통일 전쟁당의 서푼짜리 변신술”이라고 한나라당의 변신을 아예 믿지도 않거니와 상종하지도 않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③일본의 고립화

2002년 9월에 국교정상화를 내다보고 모처럼 ‘조일평양선언’이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납치문제’만을 극대화해서 오히려 양국관계를 최악의 상황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지금의 아베 내각에 와서는 대미추종도와 대북적대시의 강도를 한층 높이고 독자적인 대북제재까지 실시했을 뿐 아니라,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과 재일동포 탄압에 광분하게 되었으며, 그러는 사이에 국내 우익화와 군국화를 제 마음대로 다그치게 되었다. 이것이 극히 최근까지 일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처지가 하루아침에 외토리신세로 변했다.

우선, 그들은 6자회담은 물로 2.13합의에 따르는 조일국교정상화를 위한 실무급회의에서 망신을 거듭했다.

2005년의 제4차 6자회담에서 발표된 9.19공동성명 제2항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일본은 평양선언에 따라 불행했던 과거와 현안사항의 해결을 기초로 하여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것을 약속한다”고 명기되었다. 또한 이 성명을 이행하기 지난번의 2.13합의문에도 그같은 취지에 따라 양자대화를 개시한다고 지적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6자회담에서 그 의제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납치문제’를 꺼냈다가 다른 참가자들로부터 눈총을 받았으며 2.13합의 이후도 “납치문제가 해결 안되면 단 한푼도 내줄 수 없다”(아소 외상)는 태도를 고집했다. 그러다가 그들은 하노이에서 열린 조일간 실무회의에서 북측으로부터 “우리는 일본의 지원을 바라지 않으며 받을 생각도 없다”(송일호 대사)고. 강한 반발을 사게 되었으며 결국 회의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짧은 시간내에 끝나고 말았다.

일본 정부는 또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3.9)이 “아베 총리가 10여명의 일본인 납치문제를 북과의 협상에서 최우선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수십만명의 위안부가 겪은 고통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와 같이 과거에 저질렀던 ‘종군위안부’범죄 때문에 세계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같은 사태는 미 하원에서 ‘종군위안부’문제에 관한 결의안이 다시 상정되자 일본의 정부 관계자들이 그 통과를 어떻게 하나 막아보려고 추태를 부린것이 발단이었다.

‘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1993년에 일본의 당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내각 관방장관이 ‘종군위안부’에 일본의 관권과 군부가 관여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말로는 이 ‘고노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하면서도 지난 3월 5일에 국회에서 “만약에 미 의회에서 결의안이 통과되여도 사죄하지 않겠다”고 배짱을 내밀었으며 16일에는 각료회의에서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는 (일본)군이나 관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나타내는 듯한 기술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고노담화’ 자체를 뒤집는 ‘공식입장’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후안무치한 언행에 대해서 호주 수상이 “일본은 구차스러운 변명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지일파(知日派)‘ 의원들까지 결의안 찬성으로 태도를 바꾸는 등 세계 각국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감으로써 일본 정부는 참으로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2.일련의 변화는 어째서 일어났는가

①배경은 ‘부시 쇼크’

그러면 이 일련의 변화들은 어째서 일어났을까?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당초에 북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핵 선제공격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리하여 오늘까지 정치적 고립화와 경제적 질식, 군사적 압살로 북의 체제를 붕괴시킬것을 일관하게 추구해 왔었다. 특히 그들은 2002년에 다시 ‘북의 핵문제’가 불거지자 “(북과는)접촉은 해도 협상은 하지 않겠다”,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은 없다”면서 그같은 적대시정책의 강도를 더욱 높임으로써 북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위협하고 조선(한)반도 정세를 극도의 위험속에 몰아넣었다. 그러던 그들이 ‘어느 한 시점’을 계기로 위에서 본 것처럼 태도를 바꾸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서재정 미 코넬대 교수는 “이는 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북미 양자협상과 외교적 타결에 반대하던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입장이 전적으로 바뀐 결과이며,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다자적 탈 미국헤게모니 질서’가 동북아시아에서 형성되기 시작하는 첫걸음이라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 ‘부시 쇼크’라고 표현했다(프레시안 2.21).

결국 위에서 본 세가지 변화는 모두 이 ‘부시 쇼크’에 의해서 일어났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의 전면해제는 ‘부시 쇼크’에 의해서 미국의 권력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네오콘’이 무력화된데 따른 것이며, 한나라당의 갑작스러운 변신이나 일본의 고립상황은 모두 미국이 자신의 방향전환에 추종하도록 그들에게 압력을 넣었거나, 아니면 태산같이 믿던 상전의 돌변에 동맹자나 추종자들이 극도로 당황하거나 부랴부랴 상전의 뒤를 쫓게 되었다는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사실 한나라당의 변신만 봐도 이는 미국의 전 국방장관 윌리암 페리나 주한 미국대사 버시바우가 한나라당의 ‘대선주자’들을 모두 만난 직후에 벌어졌다. 또한 이남의 인터넷언론 『오마이뉴스』(3.14)는 똑똑한 대북정책도 없는 한나라당이 변한 것은 “부시 따라하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논평했다.

또한 일본의 고립상과 관련해서는 『오마이뉴스』(3.20)가 “냉전과 미국의 지도력은 자민당내 파벌들의 분열을 봉합하는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북한의 도전은 미국의 역내 지도력에 중대한 의문을 품게 만드는 일이었다”면서, 오늘의 고립상은 그같은 ‘국제적 기반’의 약화때문이라고 분석했다.


②‘부시 쇼크’의 발단은 북의 핵실험

필자는 위에서 ‘부시 쇼크’가 ‘어느 한 시점’을 계기로 해서 일어났다고 썼다. 그 시점이란 더 말할 것도 없이 북에서 작년 7월의 미사일 발사시험에 이어 10월에 실시했던 지하 핵실점이다.

물론 ‘부시 쇼크’의 배경에 대해서는 국제적 시각에서 보면 미국이 이라크에 발목을 잡혀 있는 상황이나 작년 11월에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완패한 일을 비롯해서 여러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한)반도에 한해서 본다면 미국은 북의 핵 억지력앞에서 무릎을 끌었으며 그 결과로 ‘부시 쇼크’가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남의 인터넷언론 『민중의 소리』(3.19)가 전한 ‘사회동향연구소’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미국이 기존의 태도를 바꾸어 조미관계 개선에 나서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무엇인가고 묻는 질문에 700명의 성인 남녀중 40.7%가 “핵실험을 비롯한 북한의 군사적대응”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이라크전에 대한 미국내 반전여론”(35.6%), “주변국의 중재노력”(16.1%)보다 훨씬 높은 수자였다.

여기서 우리는 얼마전에 평양에서 벌어진 한가지 일에 새삼스럽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예술공연 ‘내 나라의 푸른 하늘’(여명편)을 관람한 사실이다.

이 소식을 전한 『로동신문』(3.8)에 의하면 이번 공연은 2005년에 조선로동당 창건 60돌을 맞으며 “선군시대의 새로운 예술형식으로 창조공연된 ‘김일성상’ 계관작품(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강성대국의 여명을 마중해 가는 영웅 조선의 거창한 숨결을 반영한 대서사시적 하폭으로 더욱 훌륭히 형상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술공연이 조선(한)반도와 그 주변의 현 상황, 특히 북의 지하 핵실험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공연의 소재가 되었던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이라는 노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민들래 곱게 피는 고향의 언덕에
하얀 연을 띄우며 뛰놀던 그 시절
아 철 없이 바라본 푸른 저 하늘이
내 나라의 자랑인줄 어이 몰랐던가



보다 싶이 노래는 매우 소박한 것이다. 그러나 이북의 해설에 의하면 198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이 노래가 요즘에 와서 다시 불리우게 된데는 “그 누구도 우리 혁명의 승리적 전진을 가로 막을 수 없고 내 나라의 맑고 푸른 하늘을 흐리게 할 수 없다”(2006.1.1 신년 공동사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사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이같은 의도에 따라서 예술공연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이 창작되었으며 그 첫번째 공연이 2005년에 9.19공동성명이 채택된 직후에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번 공연은 2.13합의가 나온 직후에 ‘여명편’으로 형상되어 진행되었다.

사실 최근에 평양을 방문해서 돌아온 동포의 말에 의하면 지금 이북 동포들은 “이제야 조국의 맑은 하늘 아래서 가까운 연간에 강성대국의 높은 영마루를 반드시 점령할 수 있다”는 신심과 낙관에 넘쳐 있다고 한다.

또한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얼마전에 평양에서는 9개월만에 제20차로 장관급회담이 열리고 6.15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북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조만간에 경제협력과 이산가족들의 화상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적조치도 다시 진행될 전망이며 얼마전에는 분단사상 처음으로 북의 청소년축구팀이 제주도를 방문하는 등 한때 경색되었던 남북간의 화해, 협력·교류 기운이 다시 활성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민간분야에서도 3월 8, 9일 양일간에 걸쳐 중국 선양(瀋陽)에서 6.15민족공동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6.15통일시대의 새로운 전성기를 마련하기 위한 대책이 토의되었으며 6.15공동선언 7돐기념 민족공동행사는 평양에서, 8.15통일행사는 남측지역에서 개최하며 이 행사들이 과거보다 더 폭넓고 성대한 마당이 되도록 준비하기로 하는 동시에 올해도 6월 15일을 민족공동의 기념일로 제정하기 위한 운동을 적극 펼쳐나가기로 하였다 한다.

이렇게 되자 이남에서는 요즘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이 활발히 거론되고 그에 대한 기대가 비상히 높아가고 있다.

작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강성대국 건설의 여명이 밝아 온다”고 한 말을 전해들었을 때 이북은 미사일 발사시험과 지하핵실험 때문에 유엔의 제재까지 받을 정도로 고립된 상황에 있었다. 또한 이북의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 “60여년의 분열 역사가 흘러온 이 땅위에 통일의 서방이 밝아오고 있다”고 강조했을 때도 정세는 그와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고개를 기욱거리던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말이나 구절을 다시 되새겨볼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을 것이다.


3.환상과 지나친 낙관은 금물(맺음을 대신하여)

지금의 정세 상황이 조선(한)반도의 평화와 조국통일에게 긍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에 들려오는 것처럼 조선(한)반도에 “해빙기가 왔다”거나 이제는 다 됐다는 식으로 들뜨기에는 아직 이르며 우리에게는 환상이나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을 계속 수세에 몰아넣고 있는 이북도 지금의 정세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경각성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번에 제6차 6자회담에 참가한 북측 대표단은 『조선신보』 기자에게 “적대시정책 전환에 관한 미국의 실천적 의지가 조선측에 정확히 전달되어야만 이번 회담이 조선반도 비핵화의 첫단계 행동을 힘있게 추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조선신보 인터넷판 3.17).

바로 이것이다. ‘부시 쇼크’라고 불리우는 미국의 변화가 대북 적대시정책의 포기를 의미하는가 어떤가, 우리는 바로 이 판단기준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측 대표단이 BDA에 동결된 자금이 실지로 돌아오지 않으면 6자회담의 토의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 것도 결코 몇푼의 돈에 구애되어서가 아니라 그를 통해서 미국의 언행불일치를 엄격히 견제하고 그들의 입장과 태도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 국교정상화를 시야에 넣은 조미회담탁에 앉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대규모적인 군사연습을 벌이려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우리는 미국이 아직도 양면전술을 쓰고 있다고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남, 북, 해외 온 겨레가 대화와 군사연습은 양립될 수 없다고 그렇게도 반대하고 중지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3월 25일부터 이남의 전역에서 ‘한미련합전시증원연습’과 ‘독수리’ 합동군사연습(ROSI/FE)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한미연합사령부’는 “연례적인 연습”이라느니, “방어적 성격”이라고 하고있지만 이 연습은 대북 핵 선제공격과 평양 점령을 목표로 한 ‘작전계획 5027’에 입각한 철저히 침략적인 것이다. 따라서 정전상태에 있는 조선(한)반도에서는 이 군사연습으로 말미암아 예측불허의 사태가 벌어질 위험성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또한 위에서 본 한나라당의 갑작스러운 변신도 만약에 그것이 미국의 압력이나 조종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는 연말에 진행될 이남의 대선에서 어떤 정권이 등장하며 또 그들이 어떤 대북정책으로 나오는가 하는 것이 미국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목격하고 있는 셈이 된다.

제반 사실은 비록 조선(한)반도 정세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있으나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고 민족적 화해와 단합, 남북간의 교류·협력에 제동을 거는 요소는 의연히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바로 이러한 때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탱크사단’ 지휘부를 시찰했다는 소식이 『조선중앙통신』(3.16)에 의해서 전해졌다.

이 탱크사단으로 말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60년 8월 25일에 이곳을 시찰해서 김일성 주석에 의해서 개척된 ‘주체의 선군사상’과 ‘혁명위업’을 계승하고 오늘의 선군정치로 전면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고 하는 군 부대이다. 미국이 조미회담의 막뒤에서 침략적인 군사연습을 위해서 어마어마한 무력을 이남에 들이밀고 있을 때 이 소식이 전해진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한편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도 『로동신문』(3.14) 논평은 “지금 북남관계는 다시금 회복의 궤도에 올라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각성하지 않는다면 북남관계의 현 추세는 외세의 간계에 따라 임의의 시각에 또 다시 결단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북남관계가 화해와 단합, 자주통일의 단단한 궤도를 타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북과 남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주변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6.15의 기치를 기어이 고수하고 그에 따라 자주통일운동을 힘있게 벌여나갈 결심을 이미 다진 우리는 정확한 정세관을 갖고 지금의 상황과 흐름을 주시하고 그에 주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07.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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