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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영세중립 통일론에 평생 바친 황인관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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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6-01-05 00:00 조회11,4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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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김영희 민족통신 편집위원] 로스엔젤레스에서 평양까지 들릴거라는, 우렁차면서도 명쾌한 목소리로 통일운동권의 모임에 늘 활기를 불어 넣는 황인관박사. 청년들보다 더 젊게 들리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올해 76세의 원로학자라는 사실이 전혀 믿겨지지 않는다.

1954년에 미국에 유학을 와 국제정치학을 전공하고, 시카고 근교 피오리아에 있는 브레들리대학에서 35년간 교수생활을 한 그의 쟁쟁한 목소리는 강단에서 단련된 것이기도 하다.

<##IMAGE##>올해로 미국생활이 52년째이지만 자신을 여전히 “미국인이 아닌 코리안”이며 “미국에서 죽으면 객사한다”고 생각 하는 순종 한국인 황박사는 남한 군사정권시절 핍박을 받아 가면서도 평생 한반도 영세 중립화연구에 몸바친 양심적인 학자이다.

3.8선 근처에 있는 문산에서 소지주 농부의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일제시대 기차통학을 하며 개성 상업학교에 다니다 “비행장 만들러 가는 학교가 싫어서” 휴학 중 8.15해방을 맞았다.

용산고 1회 졸업생이 되어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으나 곧 6.25가 발발, 국군에 모집된 청년 황인관은 군복을 입고 동족상쟁의 처절한 현장을 체험했다.

1954년 미국으로 유학온 그는 다음해 5월 10년간 미, 영, 프, 소의 점령국이었던 오스트리아가 영세중립국으로 독립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한반도 영세중립론에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된다. 25살 때의 일이다.

그 후 반세기 넘게 학자로서 한반도 평화통일안으로 영세중립론을 계속 주창해온 그는 2001년 교직에서 은퇴한 후 일년 후 “기후 좋고 한국사람 많고 통일이야기 함께 할 수 있는 로스엔젤레스”로 이사를 왔다.

로스엔젤레스에서 한홍구선생, 오인동박사, 조경미선생등과 매달 한번씩 남북통일관련 강연회를 주최하는 “한반도 평화통일포럼”을 창설하고, 동포럼의 회장으로 원로학자로 통일운동가로 만년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지난 세월 동포들이 별로 없는 외지에서 살았던 게 “억울하다.”고 한다.

다음은 민족통신과 황인관박사가 그랜드호텔 식당 회의실에서 가진 대담이다.

민족: 한반도 영세중립론에는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황: 1954년에 UC 버클리대학으로 유학을 왔는데 55년 5월에 오스트리아가 영세중립국으로 독립이 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오스트리아는 1938년에 독일영토가 되었다가 2차대전 후 1945-1955 10년간 미, 영, 소, 프 4개국이 점령했다. 독립 전 소련이 영세중립국안에 동의하지 않자 오스트리아 지도자가 소련까지 가서 당국자를 만나 영세중립안을 설득시켰다.

나는 당시 오스트리아가 세계지도상에 어디 있는 줄도 모르고 오스트레일리아랑 혼동할 정도로 무지했지만, 한반도 통일문제와 관련시키면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남가주대학(USC)에서 석사논문을 오스트리아 중립화에 대해 썼다. 1960년 4.19직후에 졸업하자 마자 한국에 나가 교편을 잡고 언론을 통해 영세 중립화 통일에 관한 집필도 했다. 인기도 좋고 관심도 많이 끌었는데 5.16군사구데타가 나면서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IMAGE##>당시 박정희군사정권하에서는 통일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이북은 괴뢰인데, 괴뢰하고 무슨 통일인가 하는 식의 논리였다. 나는 자유로운 학문생활이 어려워지자 다시 미국으로 들어와 워싱턴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영세 중립안은 노태우정권시절 이후부터 과거같은 혹평을 받지 않았다. 그전에는 용공이다, 친북이다, 회색분자다, 줏대가 없다, 강대국이 되야 하는데 약하게 한다, 내시 같다, 무성이다 등 주로 군사정권 시절 반공 보수파들에게서 비판과 오해를 많이 받았다.

요즘은 많은 이들이 호응를 보여 주는데, 한편으로는 “너무 이상적이다. 우리 같이 약한 나라가 어떻게 강대국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하면서
자신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민족: 남북이 영세 중립국으로 통일이 되야 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황: 영세 중립안은 작은 나라가 강대국에 끼여 독립을 잃을 가능성이 많을 때 주체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건 사대주의가 아니고 용대주의이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미, 일, 중, 소 4강의 관계를 조정하고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유지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구한말에 강대국들이 우리나라에 들어 오려고 서로 싸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우리나라에 피해가 막심했다. 한반도 영세중립국은 4강이 보장해주어 한반도를 가운데 두고 자기네 끼리 싸우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예를 들어, 4강중 한나라가 한반도를 차지하려고 하면 나머지 3나라가 함께 막아야 한다. 4강이 보장하는 영세 중립통일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4강 자신에게도 득이 되어 전쟁 없이 누구나가 승자가 되는 방법이다.

만약 뭔가 잘못되어 남 혹은 북 어느 한쪽이 흡수하여 일방적인 통일이 될 경우, 4강중 어느 한쪽의 불만으로 그 통일을 유지하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영세중립론이 고립주의라는 지적도 있는데, 스위스를 누가 고립국으로 보는가? 세계의 돈이 다 몰려 오는 나라가 스위스이다. 한반도는 동양의 스위스가 되어 세계 평화기구가 대거 들어 앉고, 세계경제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영세중립론은 세계를 품안에 넣을 수 있는 활동적인 외교정책이기도 하다.

참고 삼아 말한다면, 영세 중립국과 중립국은 다르다. 영세 중립국은 전쟁시와 평화시 모두 중립을 유지하는 반면, 중립국은 전쟁시만 중립을 지킨다.

영세 중립국가도 원한다면 일반국가로 바뀔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옛 고구려땅을 찾고 싶으면, 영세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면 된다.

민족: 영세 중립론자로 9.19 6자 공동성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황: 영세 중립안이 채택되면 6자회담의 공동성명은 쉽게 실천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가 다른 테러국에 가는 걸 두려워 하는데, 북한이 핵무기를 버리면 4강에게서 체제와 제도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남북 모두 핵무기 없애야 한다. 영세 중립국에게는 핵무기같은 공격적인 무기가 허용이 되지 않지만 방어적인 무기는 보유할 수 있다. 스위스도 무장된 영세 중립국가이다.

<##IMAGE##>영세 중립은 남한의 미군을 밀어서 몰아내는 대신 국제적 명분을 주고 자존심을 잃지 않게 하고 물러가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반도 영세중립화가 미국에도 이롭다는 사실을 우리가 미국에 설득시켜야 한다.

안타깝게도 6자회담에서 아직 아무도 영세중립론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 장차 6자회담이 상설화 되면 핵문제뿐 아니라 한반도 통일문제, 영세중립화문제가 거론될 수 있다.

민족: 미국의 현 네오콘세력들이 한반도의 영세중립안을 지지할 것 같은가?

황: 군사 팽창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네오콘세력들은 물론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부쉬가 물러 가고,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나온다면 어떨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이 힘을 합쳐 주체적으로, 주동적으로 영세중립안을 4강에게 설득시키며 몰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영세중립은 통일이념이 될 수 있다. 우리 나라가 영원히 살려면 이 방향 밖에 없다고 본다.

민족: 북에서도 영세중립안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황: 북한은 1980년 10월 10일에 발표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에서 이미 중립안을 내 놓았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어떠한 정치군사적 동맹이나 쁠럭에도 가담하지 않는 중립국가로 되여야 합니다.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를 가지고있는 북과 남의 두 지역을 하나의 련방국가로 통일하는 조건에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이 중립국가로 되는것은 필연적인것이며 또 현실적으로 가장 합리적인것입니다.” 라는 귀절인데, 내가 주장하는 영세중립안과는 같지 않다.

북한의 중립안은 고려연방제가 수립된 이후의 외교정책이 중립화라는 것이다. 나는 현재 분단상태에서 영세중립화를 남북한 공동의 목적으로 삼고 거기에 맞춰 통일정책을 맞춰 나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1980년 이후 북에서 중립화 론이 얼마나 연구되고 진척되었는지 아는 바가 거의없다. 남한에 있는 “중립화 통일연구소” 학자들 등과는 교류가 있었는데 북한학자들과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북한학자들과도 대단히 만나고 싶다.

민족: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 6.15남북공동행사에 다녀 온 소감은?

황: 지난 남북대결시대에 가장 큰 장애였던 상호불신의 장벽이 무너지고 상호상조 하면서 평화공존의 체제로 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남북은 계속 대화하고 신뢰를 쌓으면서 북미 평화조약뿐 아니라 남북 평화조약도 맺어야 한다.

민족: 영세중립안에 대해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은?

황: 영세 중립론은 극단으로 가지 말고 중도적인 길을 가는 불교의 중도, 조화를 추구하는 원효의 화쟁, 유교의 중용, 도교의 음양론, 아리스토텔레스의 황금분할론과 다 통하는 통일방법이다.

베트남전이 끝난 후 미국학생들이 동양을 너무 모르니 동양종교등 동양문화를 강의해 달라는 대학총장의 부탁을 받고 70년대 중반부터 20여년간 국제정치이외 동양문화, 세계종교를 강의 했다. 동양관계 재료가 없던 시절이라 독학을 하며 강의준비를 했는데, 막상 공부를 해보니 종교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종교인들이 신의 이름으로 그 누구보다 잔인한 일을 많이 저질렀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한때 나는 기독교인이었는데 요즘은 다종교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민족: 고맙다.

황인관박사 저서로는 Neutralized Unification of Korea(1979), One Korea Via Permanent Neutralization, United States and a Neutral Reunited Korea 이외 중립화에 관한 50여편의 학술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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