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5-07-30 00:00
[대담]이승만 목사와 이화영 선생
 글쓴이 : minjok
조회 : 10,256  

이승만 목사(74)가 최근 열린 제2차 6.15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 회의에 배석하여 자문하려고 로스엔젤레스에 방문. 그는 이 기간 중 선우 학원 박사의 부인 소니아 선우 여사의 생일잔치에도 참석했고, 지난 지난 달(6월18일) 고인이 된 서정균 선생의 부인 이화영 선생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자택도 방문했다.

<##IMAGE##> 이 목사는 귀가하는 날 밤 여러 시간을 이화영 선생(62)에게 배려했다. 이날 민족통신 기자는 이승만 목사와 이화영 선생과의 만남을 주선하며 이들과 함께 뜻깊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고인에 대한 생애 업적들을 포함하여 서정균 선생이 발행하였던 『해외한민보』를 모아 한 뭉치는 이남에, 그리고 또 한 뭉치는 이북에 보내기로 하였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고령이 된 워싱턴 디씨의 최정렬 여사가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고 몸이 불편하여 외출을 하지 못하는 근황과 관련 최 여사의 딸이 손자를 낳아 벌써 그 손자가 1년 전 결혼식을 하게되어 이승만 목사가 주례를 섰다는 소식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샌후란시스코의 시인 김운송 선생, 시애틀의 최익환 교수, 고인들이 된 홍동근 목사, 전충림 선생, 오재식 선생(도꾜), 김재준 목사, 문재린 목사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왔다.

그런가 하면 고인을 잃은 이화영 선생(간호원)은 첫 결혼에 실패하여 오랜 동안 혼자 살다가 고인의 첫 부인(간호원)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병고로 고생하던 서정균 선생을 돌보기 위해 재혼하였으나 지난 10여 년 동안 그를 간호하는데 혼신을 다 바쳤던 가정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진보적인 의사였던 이 화영 선생은 어려서부터 우리 민족의 비극을 엿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카톨릭 의과대학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이민와 간호사로 생활하면서도 오랜 동안 조국통일 운동에 참여하였고 전민특위 활동과 관련하여 미국인 평화운동가들과도 많은 교분을 갖고 활동해 왔다. 그는 환갑을 넘긴 나이이지만 매사에 정열적인 활동을 전개해 온 두 아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IMAGE##> 이야기 중 세 사람은 우연히 일치하는 대목도 있었다. 세 사람은 모두 이북을 여러 차례 방문하였고 그 중에 김일성 주석을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김 주석을 만난 소감들은 모두가 일치했다. "큰 인물이다", "거목이다", "자상하면서도 폭이 크다"...등등이었다.

대화 속에는 「동지애」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동지를 위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통일 운동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여야 발전한다. 인류사회에서 그 동안 많은 혁명들이 있었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존중하는 혁명이라야 생명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혁명은 오래가지 못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혁명은 인간의 뿌리가 없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다. 우리 운동도 인간을 아낄 줄 아는 기반이 서야 발전한다. 서로간에 의견이 다를지라도 서로를 아낄 때 동지애가 나오는 게 아닌가. 주의 주장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위로하고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 그 운동이 성공한다. 운동한다, 혁명한다는 사람들이 인간미를 잃어버리면 그 운동이 어떻게 성공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 승만 목사의 생애도 전쟁과 분단의 역사에서 산전 수전 겪어 온 삶이었다. 1931년 3월25일 평양에서 태어나 19살 되던 1950년 12월3일 평양을 떠나 두 살 아래 남동생과 함께 걷고 걸어서 한달 만에 서울로 왔다. 당시 그는 평양성화신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와서는 서울중앙신학교를 졸업하고 1956년에 유학생으로 미국에 왔다고 한다. 이 목사는 휴전되던 1953년에 오도 갈데 없어 "봉급을 많이 준다"고 하여 남한 해병대에 입대하여 복무를 마치고 56년에 도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는 이제 미국생활 50년째 접어 든 셈이다. 시카고 신학교에서 종교학 박사를 받은 이 목사는 1960년부터 72년까지 루이빌 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그곳 장로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했고, 1976년에 북미기독학자회 회장, 80년~86년에 미국장로교회 세계선교부 부총무, 92년~93년에 미국교회협의회(NCCUSA) 회장, 94년에 미주동포전국협회(NAKA) 회장, 그후 미국장로교 총 회장을 역임했고 그 동안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 왔다. 그의 미국에서의 교계 경력은 미국인 목회자들 중에도 가장 성공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위치이다.

<##IMAGE##> "나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이화영 선생은 이승만 목사가 걸어 온 발자취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에 "기독교인들이 보는 사회주의에 대한 관점이 뭘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승만 목사는 이북에 4 동생들이 있다는 말부터 시작한다. 첫 방북은 1978년에 하였고 두 번째 방북은 1985년에 했다면서 그 동안 가족방문 겸하여 이북을 방문한 횟수는 총26번이나 된다고 설명해 준다.

그러면서 그는 이북의 막내 동생 이경복 박사(의사. 49세)가 의사를 하면서 환자들에게 자기 오른 쪽 다리의 살쩜(피부)을 두 번씩이나 떼 내어 그들을 치료하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러한 박애정신이 기독교의 "사랑"과 공통되지 않느냐는 대답으로 이 화영 선생의 물음에 답한다.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면서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면서 사회주의자라고 말할 수 없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는 이어서 이런 사실을 회고하면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참으로 반성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승만 목사는 80년대 해외기독학자들과 이북의 주체사상 신봉자들이 함께 만나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그 공통점이 "인간의 존엄성, 또는 인간사랑"이라고 공감한 때도 있었다고 회고하면서 "기독교와 주체사상은 그 뿌리들이 다르다. 하나는 유신론이고 또 하나는 유물론이지만 이 두 가지 사상은 인간사랑이라는 지점에서는 같이 만난다"고 풀이해 준다.

<##IMAGE##> "어떻게 미국에서 유명한 목회자가 조국의 통일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는가?"라고 묻는 질문에 이 목사는 자신의 배경을 설명한다.

그는 미국의 민권운동 바람이 한창 불던 1960년대 민권운동지지자로 관여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목사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 당했다."고 돌이켜 보면서 "피해자가 역사를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미국 기독교가 걸어 온 모습들을 살펴 주었다. 60년대 보여준 기독교(미국교회협의회 활동을 중심)의 모습은 바람직했으나 그 후 70년대, 80년~90년대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오기까지 미국교계가 보여 준 사회정의 운동은 너무나 미약하였다고 한탄한다. 그는 특히 부쉬 행정부가 들어선 시기부터 기독교계가 보여 준 모습은 실망스러웠다고 지적하는 한편 우리 동포사회 기독교계 그리고 남한사회의 기독교계가 가고 있는 방향에서도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철저히 검토되어야 할 절박한 시기라고 강조한다.

이 목사는 60년대 미국민권운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였고 동시에 남한에서 4.19의거이후 불기 시작한 민주화운동으로 남한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면서 "그후 1972년 연세대학교 교목실장으로 잠시 귀국한바 있으나 여러 가지 갈등을 느껴 그곳에 머무를 수 없어 되돌아와 미국장로교 선교부에서 민권운동에 가담하였다"고 설명한다. 민족문제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장로교 국제선교부에 일할 당시였던 1970년대 후반 카이로에 나갔다가 우연히 이북 대사관에 들려 가족문제를 문의하는 과정에서 평양방문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78년 첫 방문이후 미국교계에서도 빨갱이 논쟁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고 회고하면서 "우리 동포사회나 미국인 사회에도 비슷한 현상이었다"고 지난날들을 돌이켜 본다.

세 사람의 대화는 개인들이 살아 온 이야기, 정세 이야기, 통일운동하다가 세상을 떠난 고인들의 이야기와 적조해 진 인물들의 이야기, 종교이야기, 전쟁과 평화, 그리고 화해와 협력을 위한 방안 등의 이야기들로 대화의 꽃이피었다. 이화영 선생은 싱싱한 사시미, 찌개, 그리고 이태리 음식으로 식탁을 채웠고 이승만 목사는 이 가정을 위해 특별기도를 해 주었다. 식사후 후식으로 과일들이 나왔고 대화중 포도주 잔들이 오고 갔다. 이날 주고 받았던 대화들은 삶의 활력소를 주었다.

*이승만 목사의 연락처:(804)257-5505
*이화영 선생의 연락처:(310)915-9946

[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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